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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님의 웹 페이지를 검사 하다 이런 글이 있기에 퍼 왔어요 ★
문서제목 : 제가 조용필 노래, 조용필 보다 더 잘하는 것 아세요?
URL http : //my.dreamwiz.com/punknut/girl16.htm
검 색 어 : 조용필
인생은 후회의 연속
조용필 !
왜 그가 웃을 때도 웃는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 걸까. 누군가 커트 코베인에게 왜 그렇게 당신은 우울하고 울적해 보이냐고 묻던 기억이 난다. …지난 밤의 녹음으로 피로해진 그와 악수하는데, 손대는 게 수류탄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는 너무 많이 노출됐고, 너무 많은 전선에서 살아남았는데, 이렇게 예민한 호기심으로 세부를 살펴보려는 노력이 무슨 소용 있나. 내 자신이 먼저 포위된 느낌이 든다. "피곤해요. 아, 잠은 네 시쯤 잤나?"
그가 지치면 그 얼굴은 아주 긴 시간 동안 그가 만들어놓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그는 10월 28일부터 11월 2일까지 동숭동 라이브 소극장 공연을 앞둔 채였다.
"일본에서는 소극장 공연을 너무 많이 해봤어요. 한국선 못 했는데, 어느 날 한 프로듀서가 형은 너무 멀리 있는 사람 같아요. 보면 문예회관, 세종문화회관, 그런 데서만 하니까. 서민들 갈려고 해도 비싸니까, 가까워 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폭을 좁힌다는 것. 그래서 소극장을 생각한 거예요. 내년에는 더 해야지…."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같은 그룹에서 제일 기타를 잘 치고 싶었을 뿐인 채 68년, 미8군에서 대타로 노랠 시작한, 간략하고도 주된 야심을 숨겼던 애트킨즈의 기타리스트가 그렇게 30년을 기념하기 위한 베스트 앨범을 녹음 중이었다. 30년, 그가 확보한 음조가 응급 처치가 아니라 그대로 자신이 돼버린 서사저인 시간, 그건 바다 소리처럼 형언할 길 없지만 그게 뭔지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아프리카 노동요가 일의 속도를 조절해 압제자의 매질을 줄여준 것처럼 여러 세대를 횡단해 오면서 우리의 위안 중의 위안이었던….
강헌이 그를 두고 트로트에서 스탠더드 팝, 로큰롤, 댄스 뮤직, 민요와 동요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시대 이래 한국 대중 음악의 문법을 결산한 아티스트라고 썼던 생각이 난다. 최고의 찬사는 전치사처럼 이 대중 가수의 데이터베이스를 따라다니고.
"본인은 자기 얼굴을 잘 모르는 거예요. 평가는 다른 사람이 해주는 거고, 또 후에 하는 거예요. 난 그런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냥 내 길을 가는 거니까. 조용필은 닉네임이라고…방송에 나가도 수퍼 스타, 국민가수, 작은 거인, 그런 말들이 너무 싫은 거 있지. 겸손해서가 아니라 항상 미완성이라고 생각하니까. 모자라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거고, 끝이라는 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음악은 순간의 아이디어예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추억할 수 있는 것. 어떤 결정체도 아닌 상태에서…."
옛날에 그의 다음 무대에 선 가수들은 너무 위축되었다. 청중은 박수도 안쳤다. 얼마 전 콘서트에서 그는 요즘 젊디나 젊은 가수 애들과 함께 섰었다. 새 기풍의 흐름 속에 묽어져버린 건 아닐까. 옆 사람들의 근심을 바라보면서.
"기분이랄 게 없어요. 공연일 뿐이지. 세 시간 했나? 자기 싸움인 것 같애요. 그때 주위 사람들이 그랬어요. HOT나 젝스키스 같은 어린애들하고 어떻게 해요? 가 객들이 초등학교 중학교가 90퍼센트라는데. 내가 지금 신세대 애들하 같이 붙었을 때 백 번 깨지거든요.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나가서 해야지, 걔들도 대중인데…. 사실 내가 <창밖의 여자>, <고추잠자리>할 때는 걔네들, 세상에없던 애들이라구요. 나한테 불모지라구. 그런데도 내가 신청곡,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물어보니까, <바람의 노래>를 다 하는 거예요. 요즘 어린 세대들 음악보단 사람을 더 좋아하는 걸 음악으로 맞서야지요. 난, 그래요.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건 용기라고 생각해요."
어쩌다 음악이 이렇게 수다스러운 포화 상태의 소음, 아무데서나 뺑뺑이를 도는 캬바레 쓰레기 음악처럼 돼버렸을까.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고어텍스를 입고 떼로 몰려나오는 어린 것들은 보기도 겁난다. 요즘 노래가 갖지 못한 속성들을 아쉬워하면서 열거하다보면 그렇게 조용필이 생각나는데, 대한민국적 대중가요 시스템 속에서 그의 처지가 가증스러운 나이주의에 속하게 된 걸까? 그가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건 그다지 이른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재즈 뮤지션들은 음악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고들 한다. 그는 용기를 통해서라고 말했다. 수단으로서의 용기, 고전적 가치가 주는 단순한 아름다움. 그는, 생의 볼륨이라기보단 음악적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도록 짜여진 것처럼. 그건 어떤 의미의 외과적 정확성이다.
"난 완벽한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난 내 자신, 그렇게 좋은 평을 하지 않아요. 자신만만해야 되는데, 성격이 그렇지 않아요."
자연인 조용필의 특징은 어휘 선택에서 드러난다. 단순성은 그가 무의식 가운데 밟는 지뢰다. 하지만, 복잡한 신념, 마음을 어지럽히는 추상 대신, 무력한 아이 같기도 하고, 힘센 마초를 보는 것도 같고. 소주 열 잔의 관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좋은 눈과 나쁜 눈, 소년의 얼굴과 노인의 얼굴, 과거에 이끌리는 마음과 미래를 향한 마음…. 나는 가수와 영웅 사이에서 줄을 탔던 그 얼굴을 쳐다본다. 왜 언제나 그의 가장 값진 친구는 그 자신 같을까? 그는 자꾸만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긴장의 연속 아닙니까? 습관적으로 피는 거죠. 난 어렸을 때 가수 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그냥,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고, 대역에서 출발했다고. 어느 날 베이스 기타겸 싱어가 없어서 내가 대신 했고, 하다보니까…. 그땐 기타로만 만족했었거든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끝내고 3년 공백 있었을 때, 대마초, 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기타를 못치게 했고, 직업을 죽여버렸어요. 외국에도 못 나가게 독재 밑에서 음악을 했던 불행했던 시절이니까. 히트된다는 게 싫었고, 유명인이 되는 게 너무 불만이었어요. 사람들이 날 몰랐으면 누가 날 뭐라 그럴 수 있을까. 난 내 목소리를 너무 싫어했어요. 락을 좋아했지만, 아무리 롤링 스톤즈처럼 노래 할려고 해도, 탁성은 락과 사운드가 흡수가 되는데, 미성은 안 맞거든요. 그래서 목소리를 변화시킬려고 판소리를 해서 목소릴 좀 바꿨어요."
이 이야길 몇 번째 하는 걸까. 나는 그가 했던 대답들의 숫자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음악말고 신중하게 선택된 게 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음악 말고는 바게트 하나 살 줄 모르는 것 같은 단순한 서정 속에서 그는 나이를 먹었다.
"그래요. 다른 건 할 수가 없어요. 음악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보면 이미자씨, 패티김씨, 가끔씩 활동을 하시잖아요. 전 현역으로 활동한다구요. 그래서 옛날 가수란 소리 안 듣는 거죠. 그냥 조용필로 남아버리니까. 왜냐하면 아마 혼자 유일하게 일을 계속해왔으니까. 어떤 가수가 현역으로 50세까지 한 전례가 없는 거야. 후배들을 만나 대포 한잔 할 때도 '선배님이 꾸준히 오래 하셔야 저희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참 잘 된 거구나 산다는 건 릴레이, 나는 개척해 가는 거예요."
그는 차이점을 덧붙인다. 널 전채 요리로 해치우고 디저트가 나올 때쯤이면 까맣게 잊고 말 걸, 이라고 겁주는 요즘 노래판에 관심없다는 듯 우월감을 늘어뜨리면서. 그의 직업적 삶은 성공했다. 그가 참된 뮤지션이란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노랠 왜 하는지 아니까. 또 가끔 세상은 한 사람 손에 바뀌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개인적 삶은 모르겠다.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으로 행복하다고 포만해하는 그 사이로 이 고독한 성분은 뭐지? 왜 그는 늘 금욕적인 골목안에서 서성거리는 것 같을까?
"보면 고독한 사람 같대요. 그렇게 보인대요. 어느 날엔 또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얘길 하는 거야. 결혼 후에 이젠 매력 없다고. 어느 날 기자회견을 하는데, 또 누군가 결혼하고 나서 행복한 줄 알았는데 굉장히 고독해 보이는 것 같다고.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마 음악을 하면서 표정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근데, 나 옛날에 이혼하고 혼자 살 때도 외롭단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외로움을 즐기는지도 모르지. 난 2세를 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기는 저도 몰라요. 암튼 2세는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그의 윤리로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걸로 박제돼버리리라는 두려움은 그와 상관 없다. 아이는 다른 방문객들을 위한 요람에 누워 있을 뿐.
"난 굉장히 단순하게 살아요. 음악하는 사람들은요, 삶에서 쾌락을 느낄 땐 노래 부르는 순간예요. 또 컨디션이 좋아서 어느 날 녹음이 잘 될 때, 차로 막 달릴 때-제가 좀 밟는 편이거든요. 옛날에는 고속도로에서 많이 잡혔어요. -가정적으로 와이프가 어떤 땐 유난히 이뻐보일 때가 있어요. 그대 그런 행복을 느끼고. 그게 전부죠."
…가끔 어던 종류의 삶의 외면까지 마음을 붙잡는다. 굳이 옆에 노련한 익살꾼들을 끌어모으지 않아도….
"사람 앞에 나서는 걸 꺼린다기 보다는 수줍음이 많은 편예요. 내성적예요. 옛날에 막 나 좀 봐줘. 이런 친구들도 있더라구. 난 그걸 못 해. 무대에선 오히려 편하지만, 사적인 데, 사람들 많은 데는 되도록 피해요."
그가 일으킨 반향은 타악처럼 두 배나 더 컸지만, 대한민국 안에서 그의 음악적 크레딧은 불필요하다지만, 그는 스타들의 공통된 이슈, 푸념 대신 무심함을 발산한다.
"얼마 전 중국에서 활동하는 최건이 가기 전에 날 꼭 좀 만나고 싶다, 그래서 만났어요. 내 노래를 1집투너 모르는 게 없두만. 그 친구한테 음악을 뭐라고 생각하냐, 그랬더니 '분노'라고 말해요. 이해해요. 사회주의 국가고 처지도 그렇고. 그러나 난 분노를 사랑으로 승화시켜봐라고 했어요. 얘가 그렇게 깜짝 놀래요. 그것은 부분적인 거고, 결국 사랑이라고."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헤쳐가기엔, 사랑은, 왜 이렇게 고루하게만 느껴질까? 왜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을까? 알콜 없는 샴페인을 마시는 것 같은 이 기분.
"봐요. 우리나라 말에 '정'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시대적인 변화라구요. 억양도 옛날 말하고 너무 다르잖아요. 60년대 뉴스 들어봐요, 이북 방송 듣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옛날엔 사랑합니다란 말은 인생에 한 번 해볼까 말까였거든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라구요. 지금 너무 흔해졌잖아요. 20대는 정이란 말을 몰라요. 그렇지 않아요?"
그 말을 들으니 급한 허기 대신 미지근한 식욕만이 남아버린 기분이다. 향수를 말해주는 그 사람의 내면의 재질은 요즘 표준과 다르다. 어쨌든 시간의 물결 따라 삶의 과정도 변했다.
"그냥 음악인으로 남았다는 평가면 좋겠어요, 얼마까지 더할진 모르지만. 스스로 과감하게 물러날 줄도 알아야 돼요. 미국에서 어느 유명한 가수가 자기 생일에 TV에서 노래를 하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노래가 안 돼. 내가 너무 좋아했는데, 안 불렀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내가 다음에 TV나와서 안 되는 노래 하면 얼마나 실망스럽겠어요? 아, 난 저렇게까지 하면 안 되겠다…."
누군가 그의 찬란한 레테르 뒤에 소울은 약화되었다던 생각이 난다. 조용필이 이젠 위험을 감수하는 걸 두려워한다고. 그러나 그는 추운 밤에 독주나 마시면서 겨울이 지나길 기다리는 부류가 아니다.
"내가 노래를 불렀지만 그건 대중의 것이에요. 며칠 전 소극장에서 한 작가 친구가 형, <꿈>은 내 노래야, 형 노래가 아냐, 또 MBC에서 토크쇼 하는 한선교가 형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내 노래야. 그 가사 내용이 자기래. 그런 줄 알래. 그게 맞는 거예요."
대중 가요는 길게 남는다. 하지만 온통 개인적 번민과 슬픔 투성이다. 물론 대한민국 유행가 때문에 머리에 총을 쏜 사람은 없다 하긴, 질펀해지고 싶을 뿐인 관객에게 복잡한 이념이 무슨 소용 있나.
"난 레코드를 만들어요. 그것 자체가 기쁨이죠. 후세 사람들도 내 목소리를 영원히 들을 수 있는 거 안녜요? 음악이라는 것 자체를…."
레코드를 만드는 기쁨. 이 키 작은 사람을 유지하는 건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브 몽땅이 말예요. 죽기 전에 소극장에서 6개월을 공연했다고 들었어요. 그 사람을 보려면 공연장에 가야 된다는 거지. 나도 거기까지는 안 되더라도 몇 개월은 나도 해야되지 않겠느냐, 야망이 있다면 그런 거예요."
연민을 주는 조그만 사람의 얼굴로 다가와 노래의 피부 위를 산책했던 이 사람은 마지막 전장에서 죽기를 고대하는 직업군인 같다.
"제가 집착이 강하단 소릴 많이 듣는 편예요. 걱정이 있다면 내역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죽고 난 후에 조용필을 평가받아야 되잖아요. 지나간 건 지나간 거란 말예요. 지금부터 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단 말예요. 내년은 국내에서 노래한 지 30년, 후년연말은 20세기 마지막이잖아요. 그래서 10월말쯤 음반을 낼 거예요. 20세기 마지막 작품을 11월달쯤 내면 21세기로 넘어가 하나의 첫 작품이 될 수 있도록."
20세기 21세기 양 세기를 사는 건 행복한 일일까. 그 말을 들으니 자식이 다 자라는 걸 보기 전에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부모가 된 기분이다. 그건 가버린 흔적 대신 그를 마중나온 다른 길.
하지만, 난 그를 처음 알았을 때, <정>이나 <돌아오지 않는 강>, <외로워 마세요>를 부르던 조용필, 초라한 시작에 모든 에너지를 바친 그때 노래들과 성품이 더 좋다.
"우린 계급이 없어요. 그게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딴 사람보다 나이를 그렇게 안 먹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항상 난 계산을 해요. 내가 몇 살 정도에 죽을 건지. 우리 마누라 하고. 앞으로 내 남은 기한이 몇 년일까. 내가 칠십에 죽는다 치면, 22년 남았죠. 그럼 한 4년 정도 병원에 있다면 18년 정도밖에 안 남았을 거 아닙니까. 그쵸? 그럼 난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매달려 있는 시간의 폭력. 삶을, 너무 자주 우릴 간섭하는 불의한 무엇. 하지만 그는 다루기 힘든 시간을 조종하면서 규모가 큰 항해 모자를 다시 쓴다.
"하지만 행복해요. 만족을 못하지만, 행복하다는 느낌은 자꾸 가지고 싶어요. 난 후회가 유난히 많은 사람일지 몰라요. 인생은 고뇌의 연속, 후회의 연속. 하지만 난 음악이 지겹단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어요."
하지만 하나 말고 다른 걸 생각할 수 없다면 어떻게 즐거울 수 있지? 그건 지겨움이고 악습이 아닐까.
…그는 피로한 눈으로 창문 블라인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순결함만을 지니고 방문하는 것처럼 푸르스름 한 프레임 안에 갇힌 채 카메라를 향해 순수하게 웃어보이던 그 옆모습을 보면서 난 생각했다. 음악은 포옹이라고, 그렇지 않다면 그는 앉지도 서지도 싸울 수도 살 수도 없을 거라고, 그리고 그건 우리도 같다고.
헤어질 때 그는 말했다. "나중에 대포 한잔 해요."
나는 웃어보였다. 그것말고 다른 건 할 수 없는 것처럼.
문서제목 : 제가 조용필 노래, 조용필 보다 더 잘하는 것 아세요?
URL http : //my.dreamwiz.com/punknut/girl16.htm
검 색 어 : 조용필
인생은 후회의 연속
조용필 !
왜 그가 웃을 때도 웃는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 걸까. 누군가 커트 코베인에게 왜 그렇게 당신은 우울하고 울적해 보이냐고 묻던 기억이 난다. …지난 밤의 녹음으로 피로해진 그와 악수하는데, 손대는 게 수류탄을 만지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그는 너무 많이 노출됐고, 너무 많은 전선에서 살아남았는데, 이렇게 예민한 호기심으로 세부를 살펴보려는 노력이 무슨 소용 있나. 내 자신이 먼저 포위된 느낌이 든다. "피곤해요. 아, 잠은 네 시쯤 잤나?"
그가 지치면 그 얼굴은 아주 긴 시간 동안 그가 만들어놓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그는 10월 28일부터 11월 2일까지 동숭동 라이브 소극장 공연을 앞둔 채였다.
"일본에서는 소극장 공연을 너무 많이 해봤어요. 한국선 못 했는데, 어느 날 한 프로듀서가 형은 너무 멀리 있는 사람 같아요. 보면 문예회관, 세종문화회관, 그런 데서만 하니까. 서민들 갈려고 해도 비싸니까, 가까워 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폭을 좁힌다는 것. 그래서 소극장을 생각한 거예요. 내년에는 더 해야지…."
비틀즈나 롤링 스톤즈 같은 그룹에서 제일 기타를 잘 치고 싶었을 뿐인 채 68년, 미8군에서 대타로 노랠 시작한, 간략하고도 주된 야심을 숨겼던 애트킨즈의 기타리스트가 그렇게 30년을 기념하기 위한 베스트 앨범을 녹음 중이었다. 30년, 그가 확보한 음조가 응급 처치가 아니라 그대로 자신이 돼버린 서사저인 시간, 그건 바다 소리처럼 형언할 길 없지만 그게 뭔지 누가 말해줄 수 있을까.
아프리카 노동요가 일의 속도를 조절해 압제자의 매질을 줄여준 것처럼 여러 세대를 횡단해 오면서 우리의 위안 중의 위안이었던….
강헌이 그를 두고 트로트에서 스탠더드 팝, 로큰롤, 댄스 뮤직, 민요와 동요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시대 이래 한국 대중 음악의 문법을 결산한 아티스트라고 썼던 생각이 난다. 최고의 찬사는 전치사처럼 이 대중 가수의 데이터베이스를 따라다니고.
"본인은 자기 얼굴을 잘 모르는 거예요. 평가는 다른 사람이 해주는 거고, 또 후에 하는 거예요. 난 그런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냥 내 길을 가는 거니까. 조용필은 닉네임이라고…방송에 나가도 수퍼 스타, 국민가수, 작은 거인, 그런 말들이 너무 싫은 거 있지. 겸손해서가 아니라 항상 미완성이라고 생각하니까. 모자라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거고, 끝이라는 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음악은 순간의 아이디어예요. 시간이 흘러가면서 추억할 수 있는 것. 어떤 결정체도 아닌 상태에서…."
옛날에 그의 다음 무대에 선 가수들은 너무 위축되었다. 청중은 박수도 안쳤다. 얼마 전 콘서트에서 그는 요즘 젊디나 젊은 가수 애들과 함께 섰었다. 새 기풍의 흐름 속에 묽어져버린 건 아닐까. 옆 사람들의 근심을 바라보면서.
"기분이랄 게 없어요. 공연일 뿐이지. 세 시간 했나? 자기 싸움인 것 같애요. 그때 주위 사람들이 그랬어요. HOT나 젝스키스 같은 어린애들하고 어떻게 해요? 가 객들이 초등학교 중학교가 90퍼센트라는데. 내가 지금 신세대 애들하 같이 붙었을 때 백 번 깨지거든요. 어쩔 수 없어요. 그래도 나가서 해야지, 걔들도 대중인데…. 사실 내가 <창밖의 여자>, <고추잠자리>할 때는 걔네들, 세상에없던 애들이라구요. 나한테 불모지라구. 그런데도 내가 신청곡, 듣고 싶은 노래가 있냐고 물어보니까, <바람의 노래>를 다 하는 거예요. 요즘 어린 세대들 음악보단 사람을 더 좋아하는 걸 음악으로 맞서야지요. 난, 그래요.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건 용기라고 생각해요."
어쩌다 음악이 이렇게 수다스러운 포화 상태의 소음, 아무데서나 뺑뺑이를 도는 캬바레 쓰레기 음악처럼 돼버렸을까. 텔레비전을 켤 때마다 고어텍스를 입고 떼로 몰려나오는 어린 것들은 보기도 겁난다. 요즘 노래가 갖지 못한 속성들을 아쉬워하면서 열거하다보면 그렇게 조용필이 생각나는데, 대한민국적 대중가요 시스템 속에서 그의 처지가 가증스러운 나이주의에 속하게 된 걸까? 그가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건 그다지 이른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재즈 뮤지션들은 음악을 통해 자유를 얻는다고들 한다. 그는 용기를 통해서라고 말했다. 수단으로서의 용기, 고전적 가치가 주는 단순한 아름다움. 그는, 생의 볼륨이라기보단 음악적 편집증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한 가지 생각에만 몰두하도록 짜여진 것처럼. 그건 어떤 의미의 외과적 정확성이다.
"난 완벽한 프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난 내 자신, 그렇게 좋은 평을 하지 않아요. 자신만만해야 되는데, 성격이 그렇지 않아요."
자연인 조용필의 특징은 어휘 선택에서 드러난다. 단순성은 그가 무의식 가운데 밟는 지뢰다. 하지만, 복잡한 신념, 마음을 어지럽히는 추상 대신, 무력한 아이 같기도 하고, 힘센 마초를 보는 것도 같고. 소주 열 잔의 관용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좋은 눈과 나쁜 눈, 소년의 얼굴과 노인의 얼굴, 과거에 이끌리는 마음과 미래를 향한 마음…. 나는 가수와 영웅 사이에서 줄을 탔던 그 얼굴을 쳐다본다. 왜 언제나 그의 가장 값진 친구는 그 자신 같을까? 그는 자꾸만 담배를 피워 물었다.
"긴장의 연속 아닙니까? 습관적으로 피는 거죠. 난 어렸을 때 가수 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어요. 그냥, 음악이 좋아서 시작했고, 대역에서 출발했다고. 어느 날 베이스 기타겸 싱어가 없어서 내가 대신 했고, 하다보니까…. 그땐 기타로만 만족했었거든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끝내고 3년 공백 있었을 때, 대마초, 난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인데, 기타를 못치게 했고, 직업을 죽여버렸어요. 외국에도 못 나가게 독재 밑에서 음악을 했던 불행했던 시절이니까. 히트된다는 게 싫었고, 유명인이 되는 게 너무 불만이었어요. 사람들이 날 몰랐으면 누가 날 뭐라 그럴 수 있을까. 난 내 목소리를 너무 싫어했어요. 락을 좋아했지만, 아무리 롤링 스톤즈처럼 노래 할려고 해도, 탁성은 락과 사운드가 흡수가 되는데, 미성은 안 맞거든요. 그래서 목소리를 변화시킬려고 판소리를 해서 목소릴 좀 바꿨어요."
이 이야길 몇 번째 하는 걸까. 나는 그가 했던 대답들의 숫자들을 헤아리고 있었다. 지금까지도 음악말고 신중하게 선택된 게 뭔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음악 말고는 바게트 하나 살 줄 모르는 것 같은 단순한 서정 속에서 그는 나이를 먹었다.
"그래요. 다른 건 할 수가 없어요. 음악을 가장 좋아하기 때문에. 보면 이미자씨, 패티김씨, 가끔씩 활동을 하시잖아요. 전 현역으로 활동한다구요. 그래서 옛날 가수란 소리 안 듣는 거죠. 그냥 조용필로 남아버리니까. 왜냐하면 아마 혼자 유일하게 일을 계속해왔으니까. 어떤 가수가 현역으로 50세까지 한 전례가 없는 거야. 후배들을 만나 대포 한잔 할 때도 '선배님이 꾸준히 오래 하셔야 저희도 오래 할 수 있습니다.' 이건 참 잘 된 거구나 산다는 건 릴레이, 나는 개척해 가는 거예요."
그는 차이점을 덧붙인다. 널 전채 요리로 해치우고 디저트가 나올 때쯤이면 까맣게 잊고 말 걸, 이라고 겁주는 요즘 노래판에 관심없다는 듯 우월감을 늘어뜨리면서. 그의 직업적 삶은 성공했다. 그가 참된 뮤지션이란 것도 의심하지 않는다. 노랠 왜 하는지 아니까. 또 가끔 세상은 한 사람 손에 바뀌기도 하니까. 그러나 그 개인적 삶은 모르겠다.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으로 행복하다고 포만해하는 그 사이로 이 고독한 성분은 뭐지? 왜 그는 늘 금욕적인 골목안에서 서성거리는 것 같을까?
"보면 고독한 사람 같대요. 그렇게 보인대요. 어느 날엔 또 너무 행복해 보인다는 얘길 하는 거야. 결혼 후에 이젠 매력 없다고. 어느 날 기자회견을 하는데, 또 누군가 결혼하고 나서 행복한 줄 알았는데 굉장히 고독해 보이는 것 같다고.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아마 음악을 하면서 표정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근데, 나 옛날에 이혼하고 혼자 살 때도 외롭단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오히려 외로움을 즐기는지도 모르지. 난 2세를 가지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기는 저도 몰라요. 암튼 2세는 내 인생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는 그의 윤리로 아이를 생각하지 않는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걸로 박제돼버리리라는 두려움은 그와 상관 없다. 아이는 다른 방문객들을 위한 요람에 누워 있을 뿐.
"난 굉장히 단순하게 살아요. 음악하는 사람들은요, 삶에서 쾌락을 느낄 땐 노래 부르는 순간예요. 또 컨디션이 좋아서 어느 날 녹음이 잘 될 때, 차로 막 달릴 때-제가 좀 밟는 편이거든요. 옛날에는 고속도로에서 많이 잡혔어요. -가정적으로 와이프가 어떤 땐 유난히 이뻐보일 때가 있어요. 그대 그런 행복을 느끼고. 그게 전부죠."
…가끔 어던 종류의 삶의 외면까지 마음을 붙잡는다. 굳이 옆에 노련한 익살꾼들을 끌어모으지 않아도….
"사람 앞에 나서는 걸 꺼린다기 보다는 수줍음이 많은 편예요. 내성적예요. 옛날에 막 나 좀 봐줘. 이런 친구들도 있더라구. 난 그걸 못 해. 무대에선 오히려 편하지만, 사적인 데, 사람들 많은 데는 되도록 피해요."
그가 일으킨 반향은 타악처럼 두 배나 더 컸지만, 대한민국 안에서 그의 음악적 크레딧은 불필요하다지만, 그는 스타들의 공통된 이슈, 푸념 대신 무심함을 발산한다.
"얼마 전 중국에서 활동하는 최건이 가기 전에 날 꼭 좀 만나고 싶다, 그래서 만났어요. 내 노래를 1집투너 모르는 게 없두만. 그 친구한테 음악을 뭐라고 생각하냐, 그랬더니 '분노'라고 말해요. 이해해요. 사회주의 국가고 처지도 그렇고. 그러나 난 분노를 사랑으로 승화시켜봐라고 했어요. 얘가 그렇게 깜짝 놀래요. 그것은 부분적인 거고, 결국 사랑이라고."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걸음으로 헤쳐가기엔, 사랑은, 왜 이렇게 고루하게만 느껴질까? 왜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을까? 알콜 없는 샴페인을 마시는 것 같은 이 기분.
"봐요. 우리나라 말에 '정'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시대적인 변화라구요. 억양도 옛날 말하고 너무 다르잖아요. 60년대 뉴스 들어봐요, 이북 방송 듣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옛날엔 사랑합니다란 말은 인생에 한 번 해볼까 말까였거든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거라구요. 지금 너무 흔해졌잖아요. 20대는 정이란 말을 몰라요. 그렇지 않아요?"
그 말을 들으니 급한 허기 대신 미지근한 식욕만이 남아버린 기분이다. 향수를 말해주는 그 사람의 내면의 재질은 요즘 표준과 다르다. 어쨌든 시간의 물결 따라 삶의 과정도 변했다.
"그냥 음악인으로 남았다는 평가면 좋겠어요, 얼마까지 더할진 모르지만. 스스로 과감하게 물러날 줄도 알아야 돼요. 미국에서 어느 유명한 가수가 자기 생일에 TV에서 노래를 하는데, 나이가 너무 많아서 노래가 안 돼. 내가 너무 좋아했는데, 안 불렀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내가 다음에 TV나와서 안 되는 노래 하면 얼마나 실망스럽겠어요? 아, 난 저렇게까지 하면 안 되겠다…."
누군가 그의 찬란한 레테르 뒤에 소울은 약화되었다던 생각이 난다. 조용필이 이젠 위험을 감수하는 걸 두려워한다고. 그러나 그는 추운 밤에 독주나 마시면서 겨울이 지나길 기다리는 부류가 아니다.
"내가 노래를 불렀지만 그건 대중의 것이에요. 며칠 전 소극장에서 한 작가 친구가 형, <꿈>은 내 노래야, 형 노래가 아냐, 또 MBC에서 토크쇼 하는 한선교가 형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내 노래야. 그 가사 내용이 자기래. 그런 줄 알래. 그게 맞는 거예요."
대중 가요는 길게 남는다. 하지만 온통 개인적 번민과 슬픔 투성이다. 물론 대한민국 유행가 때문에 머리에 총을 쏜 사람은 없다 하긴, 질펀해지고 싶을 뿐인 관객에게 복잡한 이념이 무슨 소용 있나.
"난 레코드를 만들어요. 그것 자체가 기쁨이죠. 후세 사람들도 내 목소리를 영원히 들을 수 있는 거 안녜요? 음악이라는 것 자체를…."
레코드를 만드는 기쁨. 이 키 작은 사람을 유지하는 건 그것이면 충분하다. "이브 몽땅이 말예요. 죽기 전에 소극장에서 6개월을 공연했다고 들었어요. 그 사람을 보려면 공연장에 가야 된다는 거지. 나도 거기까지는 안 되더라도 몇 개월은 나도 해야되지 않겠느냐, 야망이 있다면 그런 거예요."
연민을 주는 조그만 사람의 얼굴로 다가와 노래의 피부 위를 산책했던 이 사람은 마지막 전장에서 죽기를 고대하는 직업군인 같다.
"제가 집착이 강하단 소릴 많이 듣는 편예요. 걱정이 있다면 내역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죽고 난 후에 조용필을 평가받아야 되잖아요. 지나간 건 지나간 거란 말예요. 지금부터 내 역사를 만들어가야 한단 말예요. 내년은 국내에서 노래한 지 30년, 후년연말은 20세기 마지막이잖아요. 그래서 10월말쯤 음반을 낼 거예요. 20세기 마지막 작품을 11월달쯤 내면 21세기로 넘어가 하나의 첫 작품이 될 수 있도록."
20세기 21세기 양 세기를 사는 건 행복한 일일까. 그 말을 들으니 자식이 다 자라는 걸 보기 전에 죽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부모가 된 기분이다. 그건 가버린 흔적 대신 그를 마중나온 다른 길.
하지만, 난 그를 처음 알았을 때, <정>이나 <돌아오지 않는 강>, <외로워 마세요>를 부르던 조용필, 초라한 시작에 모든 에너지를 바친 그때 노래들과 성품이 더 좋다.
"우린 계급이 없어요. 그게 너무 행복해요. 그래서 딴 사람보다 나이를 그렇게 안 먹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항상 난 계산을 해요. 내가 몇 살 정도에 죽을 건지. 우리 마누라 하고. 앞으로 내 남은 기한이 몇 년일까. 내가 칠십에 죽는다 치면, 22년 남았죠. 그럼 한 4년 정도 병원에 있다면 18년 정도밖에 안 남았을 거 아닙니까. 그쵸? 그럼 난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가 매달려 있는 시간의 폭력. 삶을, 너무 자주 우릴 간섭하는 불의한 무엇. 하지만 그는 다루기 힘든 시간을 조종하면서 규모가 큰 항해 모자를 다시 쓴다.
"하지만 행복해요. 만족을 못하지만, 행복하다는 느낌은 자꾸 가지고 싶어요. 난 후회가 유난히 많은 사람일지 몰라요. 인생은 고뇌의 연속, 후회의 연속. 하지만 난 음악이 지겹단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어요."
하지만 하나 말고 다른 걸 생각할 수 없다면 어떻게 즐거울 수 있지? 그건 지겨움이고 악습이 아닐까.
…그는 피로한 눈으로 창문 블라인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이 순결함만을 지니고 방문하는 것처럼 푸르스름 한 프레임 안에 갇힌 채 카메라를 향해 순수하게 웃어보이던 그 옆모습을 보면서 난 생각했다. 음악은 포옹이라고, 그렇지 않다면 그는 앉지도 서지도 싸울 수도 살 수도 없을 거라고, 그리고 그건 우리도 같다고.
헤어질 때 그는 말했다. "나중에 대포 한잔 해요."
나는 웃어보였다. 그것말고 다른 건 할 수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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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댓글
유니콘
2002-07-18 23:57:15
무정^^
2002-07-19 04:44:07
필미소
2002-07-19 07:39:33
아름다운향기
2002-07-19 21:4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