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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의 가인열전]<1> 조용필

팔색조 창법… 대중음악 틀을 깬 ‘창밖의 남자’

《신군부가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오욕의 권좌에 오르던 1980년 바로 그 시점에 이 땅의 대중음악은 불세출의 젊은 장인을 영접하면서 새로운 정지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막 30대에 들어선 조용필은 더 이상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덤에 오른 보수 회귀의 선봉장이 아니었다. 정상에 오르자마자 들이닥친, 대마초로 인한 3년간의 활동 정지는 그에게 독공의 수련기를 안겨다 주었고 그 결실은 스스로가 1집으로 자리 매긴 1980년 컴백 앨범의 앞뒷면 머리곡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로 나타났다.》


 

38516988_2.jpg캐리커처 최남진 기자 namjin@donga.com

조용필 자신의 말을 빌리자면 1980년 시점에 그 자신은 물론이고 당시 대중의 마음속에 형언하기 어려운 복잡한 갈망들이 존재했고, ‘창밖의 여자’가 과거와 기존 세대의 갈망을 대변한다면 ‘단발머리’는 미래와 다음 세대의 갈망을 담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도들은 한국 대중음악사의 거대한 분기점이 되었다.

컬러 방송의 시대가 열리고 대중음악의 주력 수용층이 10대로 이동하는 지각변동 속에서 그는 단순히 ‘오빠부대’의 원조 아이돌 스타로 그치지 않고 이후 15년 동안 무수한 히트곡을 분만한, 유일무이한 주류의 왕자였을 뿐만 아니라 포크와 힙합을 제외하고 한국 대중음악이 서술 가능한 모든 장르의 문법을 집대성한 단 한 명의 음악가였다.

소망스러운 대중음악가의 모든 면모가 비주얼적으로 왜소한 그의 초상에 녹아들어 있다. 정녕 ‘가왕’이라는 칭호가 어울리는 카리스마 충만한 보컬, 음악의 핵심을 포착해 내는 집요하면서도 자유자재인 작곡 능력, 새로운 테크닉과 효과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비판적 수용, 스타 시스템이라는 복마전 속에서도 투철했던 자기 관리와 연습, 라이브 콘서트에 대한 정열, 그리고 무엇보다도 ‘위대한 탄생’이라는 백 밴드에 대한 지나칠 만큼의 집착과 투자. 이러한 미덕의 총합은 컴백 직후 5년 연속 연말 가수왕에 등극하는 전무후무한 금자탑을 쌓는 원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조용필이 위대함으로 빛나는 것은 그가 타고난 재능이 아니라 오로지 피와 땀의 절차탁마로 이 모든 것을 조금씩 획득해 내었다는 점이다. 1969년 경동고 3학년을 자퇴하고 파주 용주골의 초라한 클럽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첫발을 내디딜 때, 그는 60년대 서구의 록과 리듬앤드블루스에 경도된 수많은 음악 청년의 한 명에 불과했다. 1971년 동료 보컬리스트의 군 입대로 얼떨결에 보컬 녹음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도 그는 그저 특징 없는 미성의 소유자였다.

그가 록음악과 흑인음악이 요구하는 탁성까지 완벽하게 습득한 것은 낮에는 조선호텔의 살롱밴드로, 밤에는 나이트클럽 밴드 리더로 무명의 7년을 보내는 동안 서서히 이루어졌다. 짧은 성공 후 3년간의 활동금지 기간에도 그는 좌절의 울분 속에서 전통 민요와 판소리 ‘흥부가’의 구걸하는 대목을 익히고 또 익히며 후일 새로이 날아오르게 될 때 어느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득음을 마침내 일구어낸 것이다. 3집 ‘여와 남’(1981년)에서 보여준 화려한 진성과 가성의 엇갈림, 4집 ‘자존심’(1982년)에서 아로새긴 민요적 발성과 리듬앤드블루스적 창법의 조화, 꾸준한 시도 끝에 8집 ‘허공’(1985년)에 이르러 완성된 트로트의 꺾는 목, 팔색조와 같은 그의 다채로운 목소리는 폭발하기 시작하는 80년대 젊은 세대의 욕망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왼쪽부터 조용필 1집(1980년), 3집(1981년), 8집(1985년),16집 ‘이터널리’(1996년) 앨범. 동아일보DB38516987_2.jpg

그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바다와 같다. 그의 영광은 우리 모두의 영광이었으며 그의 좌절과 눈부신 극복 또한 우리 시대의 자화상이었다. 새로운 90년대의 감수성이 그를 잠시 잊었을 때도 그는 1996년 ‘바람의 노래’로 다시 일어선다. 이 16번째 앨범의 제목처럼 조용필은 우리 대중음악사의 영원한 ‘불멸’(eternally·영원히!)인 것이다.

강헌 대중음악평론가
 
출처:http://news.donga.com/3/all/20110704/38517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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