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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 [추억의 LP 여행] 조용필(上)

2003.11.27 22:46

찍사 조회 수:6373 추천: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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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기타 두 대로 연주한 '돌아와요 부산항에'




슈퍼 스타 조용필은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가수다.

록, 트로트, 포크, 발라드, 댄스, 퓨전, 동요, 민요 등 35년 간 모든 장르의 음악을 섭렵하며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한 작은 거인이다. 국내 무대를 평정한 그는 '20세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이다.


그는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의 넉넉한 농가에서 부친 조경구씨와 모친 김남숙씨의 3남 4녀 중 여섯째이자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조용한 성격이었던 그는 어린 시절 둥글둥글 성격이 좋아 '풀빵'으로 불렸다. 송산초등학교에 다니던 10살 때 뒤늦게 찾아온 홍역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을 뻔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심야 라디오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외국 팝송이 좋았던 그는 연주 그룹 벤쳐스와 비틀스 음악에 반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다.


중2 때 서울 정릉으로 이사를 해 경동중학에 들어갔다. 훗날 국민 배우가 된 안성기는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 경동고에 진학하면서 공부보다는 더욱 음악에 빠져 었다. 3학년 때는 서소문의 대한일보 13층 스카이 라운지에서 대타로 무대에 설 실력을 가지게 되었다.

1968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출을 했다. 대학에 진학해 의사가 되길 바랬던 부모님이 가수가 되는 것을 반대했기 때문.


음악을 좋아하는 동네 친구 3명과 동대문 근처에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월세 방을 얻어 그룹 '애트킨스'를 결성했다. 석 달 동안 열심히 연습했지만 일자리를 얻지 못해 문산의 용주골로 갔다.

이 시절의 1년은 흑인 병사와 양공주들이 던져주는 팁으로 생활하는 가혹한 시절이었다. 팀 해체 후 1969년 와해 직전의 화양 소속 그룹 '화이브 휭거스'에 리드 기타로 들어가 파주군 장파리의 DMZ클럽을 주무대로 활동했다.


당시 주 레퍼토리는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의 히트곡들. 하숙방과 업소에서 라디오나 음반을 통해 들은 노래의 선율을 도화지에다 건반을 그려가며 독학으로 음악 공부를 하던 시절이었다.

업소로 찾아온 가족들에게 끌려 고향 화성에서 반년동안 원치 않는 대입 준비를 하며 잠시 음악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또 다시 가출을 시도, 경기도 광주의 한 클럽의 무명 하우스 밴드에 잠시 합류했다.


이때 보컬을 맡은 친구가 입대를 해 대타로 노래를 불렀다. 생일을 맞은 한 미군 병사가 바비 블랜드의 "Lead Me On"음반을 건네며 노래를 신청해왔다.

"밤새 음반을 듣고 연습해서 다음날 그 곡을 연주해 줬어요. 너무 좋아하더군요" 가수로서의 첫발이었다. 미8군 시절 조용필은 백인, 흑인, 라틴계 병사의 서로 다른 취향에 맞춰 소울, 리듬&블루스 등 다양한 장르의 레퍼토리들을 접했다.



광주 클럽 활동 이후 서울로 올라와 국제호텔의 레인보우, 조선호텔의 투모로우 등지에서 활동을 했다.

1970년 드러머 김대환, 기타ㆍ건반 최이철과 함께 록 그룹 ‘김 트리오’를 결성했다. 당시는 지미 헨드릭스를 비롯, 3인조 록 그룹이 유행하던 시절이었다. 1971년 5월 시민회관에서 열린 '선데이 서울컵 그룹 사운드 경연 대회'. 이변이 벌어졌다.

"길 잃은 철새"와, "Unchained Melody"를 부른 김 트리오의 조용필은 he6, 키보이스 등 정상의 그룹 싱어들을 제치고 가수왕의 영예를 안았다.


이에 TBC방송 신광철 PD는 '패티 킴의 스페셜 쇼'에 그를 김정호와 동반 게스트로 출연 시키는 파격적인 대접을 했다.

가창력을 인정받은 조용필에게 음반제작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71년, 최초로 그의 육성 노래 4곡이 담겨 있는 데뷔음반 <뮤지칼 사랑의 일기/사랑의 자장가-오스카>가 발매되었다. 이때는 조영필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또한 김트리오의 유일한 독집도 아세아에서 나왔다. 이 음반은 최근에서야 존재 여부가 알려졌다. 색소폰 강태환. 건반 김종화가 참여했고 조용필은 평범하게 기타만 연주했다.

1972년 첫 독집 <조용필 스테레오 힛트 앨범-아세아>가 나왔다. 흥미로운 것은 이 음반에 통기타 두 대로 연주한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첫 조용필 버전이 수록되어있다는 것.

76년 히트곡 버전과는 달리 "돌아왔다 부산항에/그리운 내 형제여"부분이 "돌아와요 부산항에/ 보고픈 내 님아"로 가사가 달리 녹음되어 있다.


아마도 76년 재녹음 당시는 제일동포들의 고향 방문 물꼬가 트인지라 그 사회적 분위기가 반영 된 듯 싶다. "솔직히 이 시기의 음반들을 생각하면 부끄럽다. 내가 이런 음반들을 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제작자가 주문해 떠밀려 했다. 직접 신경을 쓴 80년 이후 음반부터가 진짜 내 음악이다"

김 트리오가 해체되면서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마쳤다. 이후 ‘조갑출과 25시'에 잠시 합류해 부산을 주무대로 극동 호텔 등지에서 일했다. 1974년, 옛 음악 친구들을 모아 7인조 브라스밴드 '조용필과 그림자'를 결성, 동대문 이스턴 호텔을 주무대로 활동하며 당시 유행하던 팝 그룹 ‘시카고’의 음악을 선보였다.

이 시절 조용필은 록 이외에도 트로트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킹박의 기획으로 발표한 트로트 록 앨범 <조용필/영사운드 너무 짧아요/돌아와요 부산항에-서라벌, 1976>는 그에겐 잊지 못할 음반. 조용필은 음반이 100만장이 넘게 팔려 나가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1978년 김성수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 <돌아와요 부산항>이 탄생되었을 정도였다. "깜짝 놀랬다. 새벽다방에서 인기가 시작됐는데, 타이틀곡보다 오히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신청이 자꾸 들어와 곡을 찾아 다시 연습을 했다. 다시는 부르지 않으려 했던 곡이 대표 곡이 되어 버렸다."


최규성 가요칼럼니스트 ks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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