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문화일보 2008-06-05] 까까머리 중학교 친구 대중예술 역사가 되다
2008.06.05 19:03
신문사 | |
---|---|
기사 날짜 |
까까머리 중학교 친구 대중예술 역사가 되다
국민배우 안성기 - 국민가수 조용필
한국 연예계의 슈퍼스타인 조용필과 안성기. 조용필은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았고, 다섯살 때인 1957년 ‘황혼열차’의 아역배우로 데뷔한 안성기는 올해 연기생활 51주년을 맞았다. 두사람은 경동중학교 동기 동창이다.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삶, 친근하고 소박한 미소 등이 닮아 있다. 이들의 발자취는 그대로 한국 가요사와 영화사의 살아있는 역사일 뿐만 아니라 잡초처럼 살아온 서민들의 고통과 슬픔, 꿈과 희망과 함께 해온 세월이었다. 두사람 모두 1950년대 초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태어난 6·25세대다.
이들은 모두 처음에는 서구음악과 영화의 세례를 받았지만 이를 치열한 예술적 추구로 극복하고 한국적인 대중예술의 전형을 만들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사람은 외국 팝 음악의 공세를 이겨냈고, 다른 한사람은 할리우드 영화의 폭격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1960년대 후반 가요계에 뛰어든 조용필은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가요계 정상에 섰다. 젊은층들이 환호하는 록 리듬이 폭발하는 ‘고추잠자리’에서부터 할아버지들도 장단을 맞출 수 있는 절절한 노래 ‘한오백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래들은 한국가요계의 흐름과 양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안성기도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현저하게 적었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는 ‘작품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저예산 영화에도 기꺼이 참여할 정도였다. 안성기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조용필에 대해 “내가 군대에 갔다 와 영화를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조용필씨가 가수 생활을 시작했고, 당시에는 ‘가수가 됐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배우는 나이가 들어도 역할이 있는데 가수들은 대부분 지나간 노래나 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지요. 지나간 곡만 해도 벅차고 많을 텐데 조용필씨가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통해 신곡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있는 일입니다. 본인도 노력을 많이 하지요.” 그는 “대중의 인기와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얻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조용필씨는 대중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의 꿈이자 숙제인 인기와 작품성의 결합을 완벽하게 이뤄냈다”고 밝혔다.
“중학교 때 조용필씨는 공부를 잘했고, 묵묵하게 자기 스타일대로 생활했어요. 나중에 조용필씨의 기타치는 손을 봤는데 보기가 흉할 정도로 손가락에 홈이 움푹 패어 있더군요. 곪았다 아물었다 다시 곪아 곰팡이가 생긴 거죠. ‘참 대단하게 치네’라고 생각했었죠. 또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 ‘얄개전’이 상영되던 서울 아카데미 극장에 조용필과 몇몇 친한 친구들을 초청했던 일은 지금도 두사람이 가끔 나누는 대화 내용 중 하나입니다.”
그는 자신이 박중훈과 함께 출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에 자신이 좋아하는 조용필의 곡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를 쓰자고 이준익 감독에게 이야기했다는 것. 안성기는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진다. 처음에 짠하게 흘러나갈 때 기분이 편안해지고 환해지는 느낌이 좋고, 때로는 사람을 사색적으로 만드는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좀처럼 영화에 음악을 안주는 조용필은 친구인 안성기의 부탁을 받고 흔쾌히 ‘라디오 스타’에 곡 사용을 허락했다.
조용필도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안)성기가 이야기해 내 노래를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TV에서 추석 특집으로 상영된 ‘라디오 스타’를 봤고, 이 영화에서 최곤(박중훈)이 ‘조용필처럼 만들어 준댔잖아’라고 한 대목도 주의깊게 봤다”고 밝혔다.
조용필과 안성기 두 사람 모두 장르와 스타일이 다양하다는 점도 국민가수와 국민배우답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조용필은 이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가 됐다”며 “그의 음악세계는 록, 발라드, 뉴웨이브, 솔, 민요, 동요 등 장르의 백화점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같이 폭넓은 장르를 소화하면서도 조용필은 중용을 잃지 않는다.
조용필은 “사람의 꿈이나 사랑 표현 등 지극히 우리 정서에 기초했다. 하지만 극에서 극으로 흐르지 않고 직선적인 표현을 피하자는 원칙을 지켰다”며 “앞으로 팬들에게 음악을 통한 새로운 경험, 음악적인 충격을 주고 싶은 게 나의 희망”이라고 밝혔다. 안성기도 배역의 무거움과 가벼움에 상관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을 듣는다. 한국 리얼리즘의 걸작인 ‘바람불어 좋은 날’ ‘만다라’ ‘안녕하세요 하나님’ ‘개그맨’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예진수기자 jinye@munhwa.com
출처: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60401033130025003
국민배우 안성기 - 국민가수 조용필
한국 연예계의 슈퍼스타인 조용필과 안성기. 조용필은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았고, 다섯살 때인 1957년 ‘황혼열차’의 아역배우로 데뷔한 안성기는 올해 연기생활 51주년을 맞았다. 두사람은 경동중학교 동기 동창이다. 두 사람 모두 오랫동안 성실하게 살아온 삶, 친근하고 소박한 미소 등이 닮아 있다. 이들의 발자취는 그대로 한국 가요사와 영화사의 살아있는 역사일 뿐만 아니라 잡초처럼 살아온 서민들의 고통과 슬픔, 꿈과 희망과 함께 해온 세월이었다. 두사람 모두 1950년대 초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태어난 6·25세대다.
이들은 모두 처음에는 서구음악과 영화의 세례를 받았지만 이를 치열한 예술적 추구로 극복하고 한국적인 대중예술의 전형을 만들어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사람은 외국 팝 음악의 공세를 이겨냈고, 다른 한사람은 할리우드 영화의 폭격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1960년대 후반 가요계에 뛰어든 조용필은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가요계 정상에 섰다. 젊은층들이 환호하는 록 리듬이 폭발하는 ‘고추잠자리’에서부터 할아버지들도 장단을 맞출 수 있는 절절한 노래 ‘한오백년’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래들은 한국가요계의 흐름과 양식 자체를 바꿔놓았다.
안성기도 한국영화 제작편수가 현저하게 적었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는 ‘작품이 너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저예산 영화에도 기꺼이 참여할 정도였다. 안성기는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데뷔 40주년을 맞은 조용필에 대해 “내가 군대에 갔다 와 영화를 다시 시작하려고 할 때 조용필씨가 가수 생활을 시작했고, 당시에는 ‘가수가 됐네’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영화배우는 나이가 들어도 역할이 있는데 가수들은 대부분 지나간 노래나 하면서 생활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지요. 지나간 곡만 해도 벅차고 많을 텐데 조용필씨가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통해 신곡을 계속 만들어낸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있는 일입니다. 본인도 노력을 많이 하지요.” 그는 “대중의 인기와 평단의 찬사를 동시에 얻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조용필씨는 대중예술을 하는 모든 사람의 꿈이자 숙제인 인기와 작품성의 결합을 완벽하게 이뤄냈다”고 밝혔다.
“중학교 때 조용필씨는 공부를 잘했고, 묵묵하게 자기 스타일대로 생활했어요. 나중에 조용필씨의 기타치는 손을 봤는데 보기가 흉할 정도로 손가락에 홈이 움푹 패어 있더군요. 곪았다 아물었다 다시 곪아 곰팡이가 생긴 거죠. ‘참 대단하게 치네’라고 생각했었죠. 또 중학교 3학년 때 내가 주인공으로 출연했던 영화 ‘얄개전’이 상영되던 서울 아카데미 극장에 조용필과 몇몇 친한 친구들을 초청했던 일은 지금도 두사람이 가끔 나누는 대화 내용 중 하나입니다.”
그는 자신이 박중훈과 함께 출연한 영화 ‘라디오 스타’에 자신이 좋아하는 조용필의 곡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를 쓰자고 이준익 감독에게 이야기했다는 것. 안성기는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진다. 처음에 짠하게 흘러나갈 때 기분이 편안해지고 환해지는 느낌이 좋고, 때로는 사람을 사색적으로 만드는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좀처럼 영화에 음악을 안주는 조용필은 친구인 안성기의 부탁을 받고 흔쾌히 ‘라디오 스타’에 곡 사용을 허락했다.
조용필도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기자와 만났을 때 “(안)성기가 이야기해 내 노래를 쓰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언젠가 TV에서 추석 특집으로 상영된 ‘라디오 스타’를 봤고, 이 영화에서 최곤(박중훈)이 ‘조용필처럼 만들어 준댔잖아’라고 한 대목도 주의깊게 봤다”고 밝혔다.
조용필과 안성기 두 사람 모두 장르와 스타일이 다양하다는 점도 국민가수와 국민배우답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조용필은 이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가 됐다”며 “그의 음악세계는 록, 발라드, 뉴웨이브, 솔, 민요, 동요 등 장르의 백화점이라고 할 만큼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같이 폭넓은 장르를 소화하면서도 조용필은 중용을 잃지 않는다.
조용필은 “사람의 꿈이나 사랑 표현 등 지극히 우리 정서에 기초했다. 하지만 극에서 극으로 흐르지 않고 직선적인 표현을 피하자는 원칙을 지켰다”며 “앞으로 팬들에게 음악을 통한 새로운 경험, 음악적인 충격을 주고 싶은 게 나의 희망”이라고 밝혔다. 안성기도 배역의 무거움과 가벼움에 상관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줬다는 평을 듣는다. 한국 리얼리즘의 걸작인 ‘바람불어 좋은 날’ ‘만다라’ ‘안녕하세요 하나님’ ‘개그맨’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많은 영화에 출연했다.
예진수기자 jinye@munhwa.com
출처: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08060401033130025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