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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초 가수 조용필’ 구원 투수로 나선 청와대 출입기자

[TV리포트 신일하의 연예 X파일]  '대마초 연예인’이란 족쇄가 채워진 가수 조용필을 위해 생존의 박정희 대통령을 독대, 해금시켜줄 수 없는지 건의 한 당시 청와대 출입기자가 있다. 그 구원 투수는 70년대 청와대 출입 경향신문 이형균 차장(전 편집국장). MBC 라디오 제작국 국장 출신의 최성근씨를 만나 하마터면 묻혀버릴 뻔한 35년 전에 있었던 조용필 구명 운동의 작업 과정과 숨겨진 방송비화를 들어 보았다.

 요즘 조용필에 어울리는 수식어는 ‘가왕’(歌王)이다. ‘국민가수’ ‘가객’ ‘필이오빠’ 등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많지만 ‘가왕 조용필’이 제일 마음에 든다. 하지만 그도 한때 ‘대마초 가수’라는 운명의 굴레에 빠져 사회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던 시절이 있다. 조용필은 당시를 회상하며 “남산의 지하 취조실에 끌려가 주전자 고문 등 갖은 고문을 당하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한 절망감에 이 땅을 뜨고 싶었다”면서 인터뷰에서 밝힌 적이 있다. 유신 독재시절이라 누구나 그런 비극적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이런 와중에 1975년 11월 영화감독,배우,가수 등 연예인 70명이 대마초 흡입 혐의로 족쇄가 채워지는 일이 벌어졌다. 불구속 된 연예인조차 모두 무기한 방송출연이 정지되는 바람에 연예인 생활의 종말을 고하게 만든 사건이다.

 “날개를 잃어버린 용필이를 구제하는 길은 대통령 밖에 없었어요. 문공장관이 있었지만 박대통령이 대마초 흡입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조치를 내린 거라. 그러니 용필이 구명 운동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다름없었어요” 고양이 목이라니? 박정희 대통령을 비유해 말하는 건가. 직설적으로 물으니 최성근 국장(인터뷰365 2007.11.29일자 기사 <영화배우 조용필을 아시나요> 참조 : http://tvnews.interview365.com)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로지 박 대통령만이 연예인들의 족쇄를 풀어줄 권한을 쥐고 있었다. 그럼 누가 그(박정희) 앞에 나가 머리를 조아릴 건가.
 
 1974년 박정희 지시로 경향신문과 MBC의 통폐합이 이루어졌을 때라 최 국장이 먼저 나서 청와대 출입기자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는 것. 경향신문 이형균차장이 청와대 기자단의 간사였다. 한 가족(통폐합)이란 개념에 의해 둘은 쉽게 연결되어 자주 만나면서 친해졌고 조용필 구하기의 총대 매는 일에 의기투합 하였다.
 
 “이차장은 박대통령처럼 작달막한 키에 호인이라 선뜻 나선 것이죠. 출입기자단 간사는 대통령과 독대하는 적이 있어 시도 해보겠다는 약속을 받았어요. 하지만 박대통령이 ‘이차장의 민원을 나한테 청탁하는 것 아니오?’하고 물을 수 있어 대비를 철저히 했어요” 당시 대마초 연예인들이 겪는 실상을 체크하고 동정을 조사, 마치 이조시대 상소문 준비하듯 해 박대통령에게 설명해줬다는 최국장은 “이차장의 뜻은 알겠어. 하지만 (박)지만이 때문에 여기(청와대)가 시끄러워요. 지만이 어미(육영수여사)도 대마초 풀어주는 건 반대할 거야”하는 대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기회를 보아 처리해 줄게”하는 긍정적 반응은 수확이나 다름없었다. 그 후 1978년 2월 대마초 가수들의 밤무대 활동 완화 조치가 내려졌기 때문이다.

 며칠 후 조용필이 정동 MBC 앞에 있던 정의 집으로 달려왔다. 그곳은 스타들이 즐겨 찾는 커피 집이다. 단골은 2층 한적한 룸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어 즐겨 찾았다. 이형균 차장이 후지TV 서울지사장을 초대, 이날 조용필과 최성근PD(당시 라디오 <싱글벙글쇼> 연출) 등이 어울렸다. ‘나비소녀’ 김세화, ‘잊지는 말아야지’의 백영규 등 스타 가수를 키운 매니저 김태완씨가 합석했다.

 “이차장은 자기 목을 내걸고 박통한테 조용필을 살려달라고 애원한 거예요. 혹시 박통한테 오해 받아 찍히면 기자를 그만 둬야---” 당시를 떠올리며 최국장은 “이날 용필이가 고마움의 표시로 정의 집에서 히트송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3곡을 열창했다”며 털어놓았다. 조용필이 가수 생활을 하며 처음 다방에서 무반주 라이브 공연을 한 것이다. 훗날 후지TV 서울지사장은 조용필의 일본 진출과 원조 한류 스타로 부상하는데 일조한 후원자가 되었다.

 “그날은 용필이 생애에 최초 커피 숍 라이브 쇼이기도 해요. 스타의 자존심을 버리고 재능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였지만 79년의 1026 사건이 없었더라면 용필이도 박통의 만찬회에 초대된 스타 명단에 들어갔을지 몰라요” 비록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는 미수에 그쳤지만 의미 없는 촌극은 아니었다. 기자가 유신 독재자 앞에 나서 구명운동을 펴다니. 그건 민원이 아닌 도발로 비쳐질 수 있다. 독재에 의해 빚어낸 희생자가 헤아릴 수 없어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는 속담처럼 무모한 행위가 될 번했었다며 그때 일을 회고한 최국장은 “오로지 용필이를 대마초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자는 명분이 그런 용기를 만들어낸 것 같다”며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신일하 편집국장(대우) ilha_shin@tvreport.co.kr

출처:http://www.tvreport.co.kr/?c=news&m=newsview&idx=9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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