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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2011-04-26] 조용필은 조용필이다…존재 자체가 '위대한 탄생'
2011.04.26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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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은 조용필이다…존재 자체가 '위대한 탄생'
[김민성의 스타★필]
가왕(假王), 국민가수, 살아있는 전설, 영원한 오빠...
그에게 붙여진 수식어는 많다.
그런데 조용필이란 세글자보다 더 강한 임팩트가 있는 단어는 찾기 힘들다.
조용필은 그냥 조용필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최고의 수식어는 바로 그 이름인 것이다.
1968년에 밴드 ‘애드킨즈’로 데뷔,
올해로 42년차를 맞은 조용필이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과 함께 5월부터 전국 순회공연을 갖는다.
얼마 전 소록도 자선 공연으로도 화제가 됐던 그는 한국 가요사에서 비교 불가한 최고의 제왕이다.
7080세대들에게 굴곡 많은 한국사를 함께 견뎌온 든든한 동지이다.
1976년 데뷔앨범 ‘돌아와요 부산항에’ 가 공전의 히트를 치며,
인기가수로 등극한 그에게 붙여진 최초 타이틀이 많다.
1990년 ‘창밖의 여자’가 100만장 판매고를 넘기며 한국 최초의 밀리언셀러 가수가 됐고,
1994년 한국 가수 최초로 누적 음반 판매량 1,000만장을 돌파하기도 했다.
1980년 한국 가수 최초로 미국 카네기홀에 섰고,
1983년에는 또한 최초로 일본 NHK홀에서 노래를 불렀고
일본에서만 음반 판매 600만장을 넘긴 최초의 한류 가수기도 하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몇 년 전 일본의 엔카 가수 제로가 리메이크했을 정도로 영향력이 깊다.
1999년에는 대중 가수로는 처음으로 예술의전당 무대에 섰고,
2003년까지 이어진 5년 동안 전회 매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고추잠자리, 못찾겠다 꾀꼬리, 단발머리, 그대여, 허공, 친구여, 킬리만자로의 표범 등
그의 히트곡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록, 트로트, 포크, 발라드, 댄스, 퓨전, 민요 등
모든 장르를 섭렵하며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싱어송라이터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확립시킨 것도 그였다.
직접 작사, 작곡을 했으며, 비록 받은 곡일지라도 ‘위대한 탄생’과 함께 편곡하고 앨범 프로듀싱까지 했다.
‘위대한 탄생’은 그에게 분신과 같은 존재다.
1974년 결성된 ‘조용필과 그림자’가 1979년 이름이 ‘위대한 탄생’으로 바꿨는데,
당대 최고의 실력자들을 영입해, 연주, 녹음, 편곡 등 한국 대중음악계를 선도해왔다.
유재하, 김광민, 정원영, 전태관, 김종진 등이 밴드를 거쳐 갔고,
오랫동안 함께해온 멤버 김선중(드럼), 이태윤(베이스), 최태완(건반) 등이
본교 실용음악예술학부 교수진이라 더욱 관심이 간다.
1992년 정상에 있을 때 더 이상 방송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팬들과 공연장에서 생(生)목소리로 만나고 있는 그는 무대에서 단순히 서는 것 외에
공연을 진두지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대 설치, 사운드, 리허설까지 도맡아 관객들을 위한 최고의 무대를 선사한다.
항상 최고의 자리에 있었지만 항상 진보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기대 이상을 보여주었다.
직업이 가수이면서도 노래방에서 자기 노래를 반복하는 지독한 프로이자
2005년 콘서트 체력 안배를 위해 하루 서너갑 피우던 담배를 단박을 끊을 만큼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조용필은 단순히 노래 잘 하는 보컬리스트가 아닌, 노래를 직접 만들고, 프로듀스하며
자신만의 음악 색깔이 분명한 최고의 아티스트다.
데뷔 40주년을 넘겼지만 음악을 항상 곁에 둔다.
그의 차안 라디오는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항상 주파수 AFKN에 맞춰져 있다.
가수는 노래하는 사람이 아닌 만능 엔터테이너로 점철된 요즘,
가수=노래라는 등식을 제대로 실천해온 조용필.
동시대 팬부터 후배 뮤지션까지 가왕으로서의 영향력을 미쳐온 그의 존재 자체가 ‘위대한 탄생’이다.
[조영필. 사진 = 마이데일리 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