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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도하는~" "악!"... 마법 걸린 원조 오빠부대


              한 중년팬의 조용필 35주년 기념 콘서트 감상기



▲ 조용필의 노래 하나하나는 혼신의 힘을 다한 절창이었다.  

ⓒ2003 천호영

먼저 고백해야겠습니다.

저는 그 날 그 자리에서 벌어졌던 일을 냉정하게 기록할 자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함께했다면 누구라도 저처럼 그 때 받은 감동을 제대로 추스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은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 감정 그대로 따라가려 합니다.

비가 내렸습니다. 궂은 날씨 탓이었을까요?
오후 7시. 잠실 메인스타디움 주차장은 이미 만원이었습니다.
보도 위에까지 차량들이 빼곡히 들어찼습니다.
교통 안내를 하던 경찰은
"차라리 한강 고수부지에 차를 대시는 게 더 빠를 겁니다"라고 충고해주더군요.
하지만 다행히(?) 도로변 빈자리가 눈에 띄어 '불법주차'에 성공했습니다.

메인스타디움 밖에는 우산을 받쳐든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 듯했습니다.
어느 분께 물었습니다.
티켓을 구매하기 위한 줄이라고 했습니다.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왜냐구요?
제 왼쪽 가슴 주머니에는 티켓이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중년 여성분은 행사 진행요원을 붙잡고
"공연 전까지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입장할 수 있을까요?"라며
발을 동동 구르셨습니다.
발걸음을 더욱 재촉했습니다.

이미 게이트 앞도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습니다.
줄의 뒤를 찾아 섰습니다.
불혹을 전후한 나이로 보이는 중년 여성들, 어색하게 우산을 함께 받쳐 든 반백의 부부….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의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다른 콘서트장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인사들도 들려왔습니다.
"아니 김 사장, 자네가 여기 웬일이야?"
제 뒤에 서 계셨던 아주머니분들은 단체로 오셨나 봅니다.

"우리 입장료 모두 얼마야?"
"72만원."
"그 돈으로 계모임 때 식사를 하면 다 먹을 수나 있을까?"
"꺄르륵~~."

▲ '비련'을 부르며 '가왕' 조용필이 등장하고 있다.  

ⓒ2003 천호영


종합운동장으로 들어가는 중년 여성들, 반백의 부부, 지팡이 할머니...

비는 계속 내리고 공연 예정 시각인 저녁 7시30분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조바심이 났습니다.
제 뒤로도 줄은 계속 불어나고….
결국 저녁 7시45분에야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진행측에서 나눠주는 흰 비옷을 바삐 차려입고,
서둘러 자리를 찾아 앉았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기도하는~" "아~악!"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어도 그대로였습니다.
조용필 35주년 기념 콘서트 'The History'. 2003년 8월 30일 7시50분,
공연제목처럼 또하나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을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한 신문의 공연평에서 이렇게 표현했더군요.
"82년 전국의 십대 소녀들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했던 '비련'의 전주와 익숙한 도발적인
첫 주제가 터져 나왔을 때 잠실벌은 순식간에 가왕 조용필의 마법에 걸려 들었다."

대형무대가 좌우로 갈라지며 '가왕'은 10미터 상공에서 리프트를 탄 채 등장했습니다.
푸른색 조명이 신비감을 더했습니다.
그가 노래를 부르며 천천히 내려오는 동안 대형 스크린에는 우량아 선발대회,
미니 스커트, 월드컵 등 추억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습니다.
추억으로의 노래 여행이 시작된 것입니다.

▲ 원조 오빠부대. 이들은 150분 공연 내내 자리에 잠시도 자리에 앉지 않았다.  

ⓒ2003 천호영


"기도하는~" "악악~!" 가왕 조용필의 마법에 걸리다

그의 노래는 '단발머리'(80)로 넘어갔습니다. 예의 그 뿅망치 효과음에 맞춰
여고생 복장의 여성 무용단이 그와 어우려져 돌아갑니다.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들은 이제 파마머리 중년의 여성들이 되었습니다.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하지만 가왕의 마법은 이내 그들을 세월을 거슬러 '그 소녀'들로 되돌려놓았습니다.
여기저기서 "오빠!"하는 외침들이 터져 나왔습니다.
오빠부대의 원조, 그들은 다음 노래 '촛불'(80)이 끝난 뒤 잠시 환호를 멈췄습니다.
숨을 고른 '영원한 오빠'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오늘은 저의 음악생활 35년을 맞는 날로, 여러분께 바치는 무대입니다.
그런데 야속하게 이렇게 비가 와서 준비한 것을 다 못보여드려 습픕니다.  
그리고 저는 비 맞아도 괜찮지만,
여러분들께서 비를 맞으시니… 정말 죄송합니다."

하나로 합쳐진 목소리가 화답합니다. "오빠,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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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쯤에야 전체 무대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길이 110 미터,
높이 30 미터, 폭 43 미터의 초대형 무대. 무대 양측으로 트윈타워를 연상시키는 구조물이 서 있고,
중앙 윗쪽의 대형 액정 화면은 70대의 ENG카메라가 잡는 영상들을 계속 담아내고 있습니다.
검은 복장의 관현악단과 합창단이 무대 좌우측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탄생' 밴드. 빗물을 막기 위해 그들 위로 흰 장막이 둘러쳐져 있습니다.

주위를 둘러봤습니다.
어느새 4만5000명의 흰 비옷차림 관객들이 운동장과 스탠드를 꽉 메우고 있었습니다.
뒤편 스탠드에는 플래카드들이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왼쪽부터 읽어봅니다.
'다시 태어나도 조용필' '한국대중음악의 역사' '대한민국 자존심' '당신의 35년을 사랑합니다'
'오빠♥사랑' '영원한 벗 위대한 탄생'. 제 마음으로 하나를 덧붙입니다.
'불멸의 가수.'

"이슬에 맺혔네 두 눈에 맺혔네 / 눈물인가 빗물인가."
빗물이 비옷을 타고 흘렀습니다.
'물망초'(81)로 다시 시작한 그의 노래는 '꽃바람'(82)으로 이어졌다가,
'어제 오늘 그리고'(85)로 넘어갔습니다.
그는 묻습니다.
"바람소리처럼 멀리 사라져갈 인생길… 오늘 우리가 찾은 것은 무엇인가 /
잃은 것은 무엇인가 / 남은 것은 무엇인가."

후배가수 신승훈이 '창밖의 여자'(80)를 부르며 등장했습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어깨를 감싸안고,
다시한번 함께 부릅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80년대가 그의 시대가 될 것임을 예고하는 노래였습니다.
또 암울했던 시대, 술기운을 빌어 가슴 속 울분을 토해내게 만드는 노래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한 TV 인터뷰에서 80년대를 상징하는
2명의 인물을 꼽으며 "정치적으로 세종로의 주인이 전두환이었다면,
문화적으로 여의도의 주인은 조용필이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신승훈은 노래를 마친 뒤 "제가 노래할 수 있는 이유를 마련해주신
조용필 선배님께 감사드린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날 신승훈 외에도 여러 후배들이 '영광스런 무대'에 함께 섰습니다.
신해철(아시아의 불꽃. 85), 유열, 이은미,
그리고 GOD(나는 너 좋아. 83), 장나라까지.
그를 우상으로 삼고 가수의 꿈을 키워온 후배들이 어디 이들 뿐이겠습니까.
트롯은 물론 발라드, 록에서 댄스뮤직까지 그가 한국가요에 내린 뿌리는 그토록 넓고 깊었습니다.

▲ 앞자리의 두 중년 여성 관객이 마치 학창시절 구호를 외치듯 환호하고 있다.  

ⓒ2003 천호영


쉰셋 나이의 끝없은 음악적 실험

그의 나이 쉰셋. 그러나 그의 음악적 실험은 끝이 없는 듯보입니다.
'그 겨울의 찻집'(85) '모나리자'(88)에 이어진
신곡 '태양의 눈'은 바로 그같은 그의 음악적 지향을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 합창단 코러스와 어우러진 그의 신곡은 한편의 오페라였습니다.
절대음감을 바탕으로한 반음계의 드라마틱한 그의 절창에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정신이 아뜩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잠시 숨돌릴 틈이 주어졌습니다.
유명인들의 축하메시지가 영상으로 비쳐집니다.
소설가 최인호, 탤런트 김혜자, 영화배우 안성기, 아나운서 이금희.
그리고 경찰, 스님, 일본팬들의 축하 메시지도 담겼습니다.
화면 속의 여고생들은 "조용필 짱!"을 외치고,
어린아이들은 "조용필 아저씨 사랑해요~"라며 작은 목소리를 돋웁니다.

저녁 8시55분. 공연을 시작한 지 1시간이 흘렀습니다.
비는 더욱 거세져 갑니다. 빨간 셔츠로 갈아 입은 그가 '돌아와요 부산항에'(76)를 부르면서
객석 부근으로 다가갔습니다.

조명을 받은 꽃가루가 날리고, 객석 앞자리를 차지한 오빠부대원들은 더욱 열광하며,
노래를 따라 부릅니다.
'허공'(85)을 부를 때는 이미 운동장 전체가 합창 소리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리고'Q'(89).

후배가수 유열이 'Happy Birthday'를 부르며 어린이와 함께 무대에 나타났습니다.
"오늘은 조용필 선배님의 생일입니다.
음악과 함께 태어나 이제 서른다섯 생일을 맞으셨습니다."
흥분한 듯 유열의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무대 옆 조명은 '35'라는 숫자를 그려 보여줍니다.

그의 목소리도 가볍게 떨립니다.

"어렸을 때 꿈은 이어지기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
음악도 처음엔 그저 좋아서 취미로 했죠.
하다보니 매력에 끌려서, 그렇게 음악해오던 것이
세월이 흘러 벌써 35년이 됐습니다.
이토록 오랜 세월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러분이 지켜주셨기 때문입니다.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후배와 함께 자신의 하모니카 연주를 곁들여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87)를 부릅니다.

다시 그 홀로 무대에 남았습니다. 비에 젖은 슬픈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신곡 '진'(珍). 올 초 세상을 떠난 아내 고 안진현씨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합니다.

"가슴 깊이 저리는 밤 눈을 감네 /  그대 모습 더 가까이 하기 위해."
노래가 끝날 무렵 그의 모습이 클로즈업되어 영상에 비쳐집니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혀 있습니다.
객석 여기저기서 "아…" 하는 탄식음이 터져나왔습니다.

뒤돌아서 눈물을 훔친 그는 이제 분위기를 바꿔,
어린이 합창단들과 함께 '난 아니야'(82), '못 찾겠다 꾀꼬리'(82) '고추잠자리'(81) 등을
잇달아 부르며 중년의 관객들을 동심의 세계로 데려갑니다.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슬퍼지지" 무대 오른쪽으로 달려 갔다가, "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다시 무대 왼쪽으로 달려 갑니다.
비교적 점잔케 앉아있던 옆자리 신사분도 어린아이처럼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장나라가 어린이들과 함께 '작은 천국'을 불렀습니다.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 차림에 찬비를 맞은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아버지뻘 되는 대선배의 무대에 섰다는 떨림 때문이었을까요,
제대로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안타까웠습니다.


▲ 여고생 복장의 무용단과 함께 '단발머리'를 부르고 있다.  

ⓒ2003 천호영


공연 시작 한시간,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눈물인가 빗물인가

그동안 그는 두루마기 모양의 개량 한복으로 갈아입었습니다.
"한 많은 이 세상 / 야속한 님아."(한오백년) 무대 왼쪽에선 여성 무용인이 '살풀이'를 추고,
오른쪽에선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국악인이 '대금'을 젖헙니다.
그리고 '간양록'(80)을 부른 뒤 두루마기를 벗었습니다.

영상에는 황량한 도시의 야경이 비쳐지고.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킬리만자로의 표범. 85)는 노랫말이
독백처럼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한줄기 연기처럼 가뭇없이 사라져도 /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정말 요란한 폭죽 소리와 함께 불꽃이 쏘아올려졌습니다.
잠실의 밤하늘에 별빛들이 쏟아져 내립니다.
이날 공연에 쓰인 폭죽 비용만 2억5000만원이라고 합니다.

"이 순간을 영원히 / 아름다운 마음으로."
맨발의 가수 이은미가 '미지의 세계'(85) 첫소절을 불렀습니다.
어느새 그의 손엔 키타가 들려 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찾아서 떠나요 / 사랑의 노래를 멈추지 말아요."

둘의 가창력이 합쳐져 엄청난 폭발력을 내뿜습니다.
열창, 열광입니다.
다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화려한 무대 조명과 형광 손막대가 서로 엇갈리고, 세찬 빗줄기조차 준비된 특수효과인 듯합니다.
이 순간을 영원히, 노래가 멈추지 않기를….

출연진이 모두 무대로 나왔습니다. 아쉽게도 공연이 끝나가나 봅니다.
'여행을 떠나요'를 모두 합창합니다.
무대가 따로 없고, 객석이 따로 없습니다.

"메아리 소리가 들려오는 계곡 속의 흐르는 물 찾아,
그 곳으로 여행을 떠나요."

후렴구가 몇 번씩 반복됐습니다. 종이 꽃가루가 눈송이처럼 날립니다.
그가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밤 10시 5분. 스타디움 가득히 "앵콜" "앵콜" 소리가 메아리칩니다.
2~3분 정도 흘렀을까요? 팡파레와 함께 다시 그가 나타났습니다.
신곡 '내일을 위해', 그리고 '꿈'(91)과 '자존심'(82)을 앵콜곡으로 불렀습니다.

마지막 곡은 '친구여'(83)였습니다.
"꿈은 하늘에서 잠자고 / 추억은 구름 따라 흐리고."
그의 노래 따라 흘러온 추억에 젖어들었던 날이었습니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지." 무대와 객석이 함께 '친구여'를 부르는 동안
그는 팬들 품으로 내려섰습니다.

"부픈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 우리 굳센 약속 어디에."
그가 객석 중앙을 가로 질러 스탠드 앞까지 뛰어간 뒤 트랙을 한바퀴 돌며
  팬들에게 마지막 작별 인사를 보냅니다.
스탠드에서 "조용필" "조용필" 연호합니다.
"친구여 모습은 어디를 갔나 / 그리운 친구여~."

▲ '역사'의 피날레. 열광, 열광이었다.  

ⓒ2003 천호영


마지막 곡 '친구여'

밤 10시25분. 2시간30분간의 축제가 모두 끝났습니다.
'젊음' '사랑' '열정' '동행' '동심' '영원' 등
여섯 부문으로 이뤄진 '역사'는 그렇게 이룩됐습니다.

35주년을 기념해 35곡이 불려졌습니다.
하나하나 말 그대로 '주옥같은 명곡'들이었습니다.
또 노래 하나하나를 따라 추억에 젖어들 수 있었습니다.

그는 "비가 와서 아쉽다"고 했지만,
팬들은 그와의 헤어짐이, 추억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쉴 뿐이었습니다.
위로라면, 역사의 현장에 함께했고,
새로운 추억을 품은 채 돌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추억에 덧붙여 또하나를 확실히 챙겼습니다.
드디어 노래방에서 신곡 레퍼토리를 선보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나홀로 당분간 연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날 공연은 SBS-TV를 통해 9월 12일 저녁 8시 30분부터 방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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