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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헌이 만난 우리시대 가수] <1> 조용필 <상>
                  
                   시대·세대·장르를 넘어…그가 부르면 역사가 된다 

대중음악은 시대 정서의 투영이다.
대중음악인들은 그 정서의 속 페이지를 써나가는 이들이다.
196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사의 큰 획을 그은 싱어송라이터들의 열전을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씨의 글로 싣는다.
우리시대 진정한 대중가수는 누구인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화두로 들어보길 권한다.

미증유의 화제를 분만하며 지난 8월 30일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렸던
조용필의 35주년 기념 콘서트는 조용필 그 자신과 그의 열광적인 팬들에겐  
공연 타이틀(The History)처럼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역사'였다.
우리들의 가왕(歌王)은 이렇게 한국 대중음악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지치지도 않고 기술하고 있었다.

과연 어느 누가 그에게서 왕좌의 위용을 빼앗아 올 수 있겠는가?
그의 황혼은 처량하지 않고 아름답다.

지천명의 고개를 넘긴지 오래이면서도 그 어떤 젊은 주자보다도 더 정열적으로
자신의 음악에 몰입해가는 모습은 정말이지 아름답다.
그의 제국은 석양 아래 더욱 짙은 음영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유료 콘서트로서는 마이클 잭슨도 서태지도 채우지 못했던
잠실 주경기장-  
그 역사적인 콘서트를 지켜보면서 저 가왕이 권좌로부터 밀려나는 것으로 보였던
6년 전 나에게 했던 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역사는 지나고 나서야 역사다.
조용필이,서태지가,신해철이 어떤 평가를 받을지 지금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나는 끝까지 도전하고자 했고 앞으로도 도전할 것이다.
그것이 역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쓴 소주를 털어넣으며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밀릴 때는 철저히 밀려야 한다.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해 버티다간 앞으로 고꾸라진다.
아예 내 손으로 내 구덩이를 파겠다는 생각으로,그리고 모든 폭풍이 지나가고 난 뒤
그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각오가 중요하다.
자신만만하게 쓰러져야만 자신감 있게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

조용필이 가왕인 것은 그가 언제나 정상에 있어서가 아니다.
그에겐 오랜 무명의 시간이 있었고 정상에 잠깐 올라선 뒤엔
혹독한 권력의 보복이 3년 동안 그의 입을 막았았고,
10년 전성기를 지내고 난 뒤엔 새로운 세대의 등장 앞에 쓸쓸히 무대 뒤로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를 한국 대중음악사의 영웅으로 만든 거름이 됐다.

노래를 향한 이 경탄할 만한 집념의 원천은 과연 무엇인가?
바로 그의 일상은 노래로 시작하여 노래로 끝이 난다.
그는 노래부르는 것 자체를 어느 순간에도 언제나 너무나 좋아한다.
그가 평범한 가수와 다른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그런 그를 그저 '오빠부대의 원조'로 파악하는 것은 너무나 어설픈 일이다.

이 시점에서 그가 추억삼아 한 말이 귓전을 울린다.
'3집의 '고추잠자리'를 만들 때 나는 이미 산전수전을 겪을 만큼 겪은 서른 한 살이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물었다.
가장 평온했을 때가 언제인지?
그것은 수수깡 꺾고 굴렁쇠 굴리고 고추잠자리를 보았을 때가 아니었을까?  
내가 엄마를 그리고 고추잠자리를 부르는 것은 하나의 절규였다.
내가 노래하겠다고 하자 호적에서 지워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던
우리 집안이나 독재로 얼룩졌던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보수적이었나?
이 속에 나의 자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을 것인가?
엄마와 고추잠자리를 찾았을 때 나는 나의 자유를 만끽했고,
그 힘이 4집의 '못 찾겠다 꾀꼬리'로 이어졌다.'

처럼 조용필 노래인생의 가장 끈질긴 밑천은 바로 순수함에 대한 끝없는 동경이었다.
그리고 그 동경은 철저한,그와 동시에 시대를 앞서갔던 프로페셔널리즘의 도움을 받아
거대한 디스코그래피(음반 리스트)의 목록을 완성한다.

홍대 앞 어느 카페에서,
가장 적극적인 도전 정신으로 충만한 90년대 아티스트로 꼽히는 신해철을 만났을 때,
그는 조용필이 분만한 지대한 영향력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

'용필 형 없이 한국대중음악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그는 트로트에서 로큰롤,발라드는 말할 것도 없고 첨단적인 전자음향에 이르기까지
한국대중음악에 주어진 모든 길을 섭렵했습니다.

어떤 새로운 테크닉,새로운 효과를 쫓아 올라가다 보면
거기엔 언제나 용필 형이 '씨~익' 웃으며 서 있었지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위대함은 성공과 상관없이 언제나 성실했다는 점입니다.
그는 단 한번도 멈추어 서 본 적이 없습니다.'

조용필은 쉽게 재능의 고갈을 노정하는 거개의 대중음악인과는 달랐다.
그는 작곡에서 연주,그리고 보컬에 이르는 음악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놀라운 집중력과 경탄할 만한 지구력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을 정립시켰다.

이미 1980년의 컴백 앨범에서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로 보여줬듯이
그는 발라드와 댄스뮤직이라는 80년대 이후의 주도적인 문법을 확고히 함으로써
주류 한국 대중음악의 외연을 규정했다.

'1980년 그때,나 자신을 포함해 당시 대중들의 깊은 마음 속엔 형언하지 못할 숱한 갈망들이 있었다.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모두 80년대의 막바지에 만든 곡이다.
전자가 과거와 기존 세대들의 갈망을 대변한다면
후자는 이제부터 시작하는 미래와 다음 세대의 갈망을 담으려고 했다.
내 노래에 대한 대중의 열광의 이면엔 음악까지 장악하고 있는 통행금지 시대에 대한
분노가 암묵적으로 들어있다고 본다.
모든 것이 갇혀 있었다.
로큰롤도 몰래 듣다시피 했던 그때….'

가 80년대의 벽두에서 득의만만하게 우리에게 제시한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는 긴급조치의 암흑기 아래
또 다시 통속의 동어반복으로 몰락해 가던 한국 대중음악을 기사회생시킴과 동시에
'발라드 vs 댄스뮤직'이라는 80년대 이후의 지형도를 단번에 구축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그는 이 성공에 머무르지 않고 이후의 일련의 앨범들을 통해
트로트와 로큰롤,블루스,동요,민요에 이르기까지 왕성하게 섭렵해 냄으로써
십대 취향과 성인 취향의 대중음악의 질서를 집대성한다.

그의 위대한 음악사적 공로는 1981년에서 83년까지 연속으로 발매된
그의 3,4,5집의 노래들이 가감없이 증명하고 있다.

80년대 전반에 급격히 퇴조한 트로트의 줄기에 긴급 수혈한
'미워 미워 미워'와 '일편단심 민들레야',
서구 대중음악의 문법과 테크닉을 이 땅의 정서로 제련한 '여와 남'과 '고추잠자리'가
앞 뒤면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세 번째 앨범,
그리고 '못찾겠다 꾀꼬리'와 '비련'같은 노래 사이로 더 없이 맑은
동요 '난 아니야'와 '새타령''성주풀이'를 위시한 민요들을 메들리로 엮는 맵시를 공존시키는
네 번째 앨범은 균열과 분화의 이행기를 시작하던 한국대중음악의 지형도의 기반을 조성한 성과들이다.

80년대 전 시기를 걸쳐 단 한번도 상업적인 실패를 맛보지 않은
그 이면에는 이와 같은 장르와 세대 취향에 대한 완벽한 포섭력이 복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도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는 바다와 같다.
그의 연대기는 곧 한국의 주류 대중음악사인 것이다.

대중음악평론가


*** '강헌'은 누구

△1962년 부산 출생 △서울대 국문과 졸업 및 동 음악대학원 석사 △독립영화집단 '장산곶매'의 대표로 '파업전야' 제작 △포크 30주년 기념 페스티벌,들국화 헌정 앨범 및 공연 등에서 프로듀서 총감독 활동 △십수 년간 대중음악평론 각종 매체 연재 △현 ㈔한국대중음악연구소 소장,단국대 대중예술대학원 겸임교수,인터넷방송 라디오21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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