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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람의 뒷모습 (고독한 영웅 趙容弼)  


(2002년 12월 어느날 조선일보 노보--노동조합이

매주 발행하는 신문--에 '잊지 못할 취재원'이란 제목으로 실었던 글입니다.

이 글을 쓴 뒤 가요를 담당하는 재주 많은 동기생 기자 덕에 두차례 더

'위대한 가인'과 만날 수 있었는데,

만날 때마다 그의 열정을 거듭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천진한 대스타와 두차례 밤샘 ‘음주취재’

그는 최근 자신의 사랑을 떠나 보냈다. 그의 절창(絶唱)에 더욱 짙게 사무칠 우수(憂愁)가 안타깝기만 하다.

망각의 힘을 빌어 허투루 술을 마시는 이는 많을지언정,

밤을 새워 천 잔의 술이 모자란 말벗은 지극히 드물다.

하물며 ‘가왕(歌王)’에다 ‘주당’ 칭호가 따라 붙는 이가 아니던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라는 절규를 꼭 두 번씩 복창했던 그였다.

그 간절한 서정과 사랑의 말로(末路)에 대한 통찰은, 까까머리 중1 소년의 심금을 속절없이 울려댔었다.

그 분야가 내 담당이 아니기에 그를 ‘공식’ 취재원이라 할 수는 없다.

어쨌든 기사와 관련해 그를 두 번 만났고,

예외 없이 철야주(徹夜酒)로 이어졌다.

만복(滿腹)의 기쁨 때문이라면 몹시 알량하겠고,

단지 명장(名匠)이라 해서 마음을 내맡길 이유는 못 된다.

정상에 서 본 이로선 흔치 않은 소탈·천진함이며,

음악에 대한 열정이 굳이 들라면 잊지 못할 까닭이다.

첫 만남은 97년 부산 근무 때다.

‘동란(動亂)둥이’인 그를 조용필 ‘씨’라고 해야 할지,‘선생님’이라 해야 할지 아득했다.

(술김에 ‘형님’이란 헤픈 넉살을 몇 번 풀긴 했다.)

그 역시 내게 말을 높일지 낮출지 조금 심란해 보였다.

술은 이런 교착상태를 푸는 데 특별한 괴력을 낸다.

“노래는 호흡의 5분의 4만 곱고 가지런하게 뽑는 거에요.

100을 갖고 있다고 다 내뱉는 게 아니라, 80만 내는 거야.”

“요즘 가요는 가사(랩)나 리듬에만 치중해 갖고, 원.

노래는 멜로디에 달린 건데 좋은 성량(聲量) 갖고 왜 그렇게 꺾어들 대는지...”

나직한 목소리가 음악 얘기에 탄력을 받았다.

그는 말하지 않는 동안은 대부분 술잔을 기울이거나 담배를 태웠고,

동석한 사람들의 얘기를 경청했다.

폼 나는 술자리였을 것이란 오해를 살 법하지만,

그곳은 호텔 방바닥이었다.

외출도 마음 풀어 못 하는 ‘고독한 제왕’이 측은했다.

그가 한번 뜨면 온동네 술집들이 홍보성 파격 접대를 하는 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업소들이 ‘얼굴값’을 속셈하고 갖은 수법으로 바가지를 씌운다고 한다.

방 안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않은 채 냉장고와 그 주변 술을 다 비우고,

룸 서비스를 몇차례 더 받았다.

“혹시 남이 자기 노래 부르는 거 들어 보셨어요?”

015B의 리메이크곡 ‘단발머리’를 화제로 삼았다.

“그걸 그렇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재미있더라고요.

(하지만) 나는 항상 당대 최고 사운드를 쓰기 때문에...”

지존(至尊)은 ‘나를 따라 잡을 순 없다’는 문장 매듭을 생략한 듯 했다.

두번째 만남은 그로부터 5년이 흘러 대구에서였다.

“저, 혹시 기억하시겠어요. 예전에 부산에서...”

“그럼, 왜 모르겠어. 어휴, 다음날 아주 혼 났다고.”

그는 월드컵 개막 축하 콘서트를 막 끝낸 참이었고,

서울로 가는 그의 승합차 안에서 소주를 담아 종이잔을 돌렸다.

흰색 양복 무대의상이 불편하다며 어느새 면바지에 슬리퍼,

이웃 아저씨 차림새였다.

이번엔 고속도로 휴게소의 어둑한 원두막만 찾아 다니면서 맥주·소주를 번갈았다.

“후배들이 헌정 앨범 낸다는 계획 어떻게 됐죠?”

“헌정은 무슨, 아무한테나 하나. 나 아직 멀었는데.”

“정치하는 연예계 선후배들 어때요?”

“난 음악밖에 몰라요. 여기서 할 일도 아직 많고.”

“내 노래지만 ‘킬리만자로의 표범’ 하고 ‘슬픈 베아트리체’는 부르기 힘들어. 하나는 가사가 길고, 하나는 음이 높아.”

우리는 취기가 올랐다.

그가 “무슨 노래 들려줄까? 이건 완전히 내 얘기거든” 하더니 승합차 뒤에서 꺼낸 통기타를 퉁겼다.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 왔네...’

21곡을 내리 부르고 무대를 갓 내려온 사람답지 않게,

특유의 탁한 육성(肉聲)이 건재했다.

세월의 시계추가 그의 눈 밑을 무겁게 했어도,

노래를 부르는 그는 여전히 홍안(紅顔)의 소년이었다.

새벽녘에 서울에 도착했고,

그는 나와 후배를 자신의 집으로 잡아 끌었다.

“내 인터넷 초기화면 볼래? 앞으로 무슨 기사 쓰는지 눈 여겨 볼 거야.”

모니터에 ‘chosun.com’이 떴다.

“노래는 여러번 불러도 ‘앵콜’ 소리 듣지만, 기사는 재탕을 못 한다”거나

“21세기가 간절히 원하는 진짜 대곡(大曲)을 만들어 달라”는 가당찮은 나의 얘기에 그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는 추억이다.

훗날 그의 노래를 듣자면, 진솔한 그의 말투며 ‘음주 취재’의 잔상이 새록새록할 것 같다.

입반주를 “쓩쓩쓩” 맞춰가며 ‘단발머리’를 부르던 빡빡머리 동창들도 떠오를 테다.

그와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던 마음씨 좋은 한 선배도 그리울 것 같다.

/박영석·사회부

http://blog.chosun.com/blog.screen?blogId=2665&menuId=10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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