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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는 내 가슴 속 ‘오빠’ 였다
"이 나이에 내가 미칠 수 있다니"
김강임(kki0421) 기자






ⓒ2005 김강임

이 나이에 '사람'에게 미쳐 본다는 것은 참 우스운 일이다.

그 사람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나를 버리고 떠난 사람이든 말이다.

가끔 언론 매체를 통해 연예인들에게 미쳐 있는 극성팬들을 보면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했다.

" 재들 뭐 하는 거야? 미쳤군 미쳤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이것이 내 상식의 잣대였다.

한번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애는 가수 이승환을 무척 좋아 한다.

아마 딸애는 이승환 콘서트에는 한 번도 빠져 본적이 없을 것이다.

그날도 서울의 어느 대학교에서 이승환의 콘서트가 있었던 날이었다.

그리고 그때 딸애는 학교 시험 기간이었다.

물론 딸애는 그날 이승환의 콘서트 장에 있었다.

그때 내가 딸애에게 한 말은 “너 미쳤구나! 너 시험 망칠래?”라는 말이었다.

그때 내가 딸애의 기분을 어찌 알았을까.

그러나 미친다는 것은 열정을 말하는 것 같다.

열정이 없으면 미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2005 김강임

지난 5월 8일 서귀포월드컵 경기장,

조용필의 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사실 나 역시 웬만한 콘서트에는 빠짐없이 참석을 하지만 그리 발광을 하는 타입은 아니다.





ⓒ2005 김강임

물론 입장요금도 무시를 하지 못한다.

그날 조용필 콘서트의 입장료는 거금 8만원.

그것도 남편과 둘이니까 거금 16만원이다.





ⓒ2005 김강임

5월의 해가 서쪽으로 기울자 조용필 콘서트장인 서귀포월드컵 경기장은 관광객과 제주도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모여든 관객은 대부분이 40대와 50대의 나이 지긋한 팬들이었다.

가수 조용필.

1970년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으로 통한다.

그때 그 노래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지금 내 나이처럼 지긋한 향수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내가 좋아했던 조용필의 노래는 ‘단발머리’와 ‘못찾겠다 꾀꼬리’ 정도.

그 시절엔 뭐 콘서트가 유행했을까, 언론과 가까이 접할 수 있었을까.

그저 좋아 하는 가수의 얼굴 한번 보려면 하늘에서 별 따기 정도. 미쳐 보고 싶어도 미칠 수도 없는 암울한 상황이었다.

알 속에서 신화가 탄생하듯 콘서트 장의 무대 한가운데에서는 하얀 옷을 입은 ‘오빠가 서서히 내려오고 있었다.

관객들은 발광을 했다.





ⓒ2005 김강임

오빠! 오빠!를 부르짖는 관중석의 나이든 오빠들, 그리고 40대의 언니들은 열정으로 가득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같이 살아왔던 사람들의 감흥은 조용필이라는 가수를 통해 그 시대의 감흥을 함께 나누었다.





ⓒ2005 김강임

그의 노래는 초여름의 하늘을 수놓았다.

그리고 때로는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때로는 장난꾸러기 선머슴아이처럼,

때로는 중년의 아픔을 노래하듯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어느새 나도 따라 관중석의 분위기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리프트에 탄 그는 관중석으로 다가와 손을 내민다.

집안에서 가장으로써 거만함을 떨었던 사람들도 서로가 그의 손을 잡기 위해 아귀다툼을 한다.

모두가 한때는 오빠의 신드롬을 거부했던 중년들이다.





ⓒ2005 김강임

혼신, 열정,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

나는 혼신을 다 바쳐 노래를 부르는 그 모습을 보면서 그의 노래에 서서히 미쳐가고 있었다.

손을 흔드는 관중들은 모두가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다.

대중매체의 맛이 이런 것일까? 서로의 생각과 상상이 다른데도 어떤 매체 앞에서 하나가 되는 위력.

태극기의 물결은 밤바다를 연상케 했다.




ⓒ2005 김강임

그리고 나 역시 고정된 상식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그가 발을 구를 땐 나도 발을 구르고 그가 춤을 출 땐 나도 덩달아 춤을 추고,

그가 혼신을 다해 노래를 부를 땐 나도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다.

한 순간이나마 미쳐 볼 수 있는 내 자신에 대해 나도 놀랐다.

그리고 딸애가 시험을 잊고 가수 이승환에게 미쳐 있듯이,

나 또한 일상에서 멀리 도피하여 그에게 미쳐 있었다.

http://life.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61121%26ar_se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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