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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2005-08-0 [한국사회 100대 드라마 ③문화] 21. 대중문화 전성시대
2005.08.05 08:29
신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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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필 가수 이번엔 관객 30만 투어 도전
조용필 가수
고교를 졸업한 1968년,
음악이 좋아 기타 하나 달랑 들고 가출했다. 미8군 클럽 작은 무대에서 거인 조용필(55)의 꿈은 싹을 틔웠다.
40년에서 딱 3년이 모자란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민 가수’가 됐다.
그에게는 ‘국내 가수 최초’라는 수식어가 훈장처럼 줄줄이 따라붙는다.
80년 발매한 공식 1집 ‘창밖의 여자’는 독집 음반 국내 최초로 100만 장(골든 디스크)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81년 7월 미국 카네기홀에서 단독 공연을 했고, 이듬해엔 일본 NHK 리사이틀홀 무대에 섰다.
83년에는 일본 NHK 등 4개 방송사에서 조용필 특집을 마련했다. 88년엔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중국에서 공연했고,
89년에는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99년에는 교수·평론가 등 10여 명이 모여 ‘조용필학’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접근이었다.
데뷔 31주년이었던 그 해,
대중 가수로는 처음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무대에 섰다.
그리고 2005년, 국내 최대 규모인 총 관객 30만 명 동원을 목표로 전국 월드컵 경기장 투어를 하고 있다.
고비도 물론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대마초 사건’에 묶여 3년간 활동 금지를 당했고
94년에는 대형 뮤지컬을 올리겠다며 벼르다 돌연 취소해 3억여 원을 날렸다.
와신상담이란 말은 그를 위해 있었다.
대마초 사건으로 쉬는 동안 창법을 갈고 닦았고,
뮤지컬 실패 후 꾸준히 준비해 3년 뒤쯤이면 작품을 완성할 예정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지켜온 원동력은 뭘까.
“저는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냥 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조용필 가수
고교를 졸업한 1968년,
음악이 좋아 기타 하나 달랑 들고 가출했다. 미8군 클럽 작은 무대에서 거인 조용필(55)의 꿈은 싹을 틔웠다.
40년에서 딱 3년이 모자란 세월이 지난 지금, 그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국민 가수’가 됐다.
그에게는 ‘국내 가수 최초’라는 수식어가 훈장처럼 줄줄이 따라붙는다.
80년 발매한 공식 1집 ‘창밖의 여자’는 독집 음반 국내 최초로 100만 장(골든 디스크)을 판매하는 기록을 세웠다.
81년 7월 미국 카네기홀에서 단독 공연을 했고, 이듬해엔 일본 NHK 리사이틀홀 무대에 섰다.
83년에는 일본 NHK 등 4개 방송사에서 조용필 특집을 마련했다. 88년엔 한국 가수로는 최초로 중국에서 공연했고,
89년에는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다.
99년에는 교수·평론가 등 10여 명이 모여 ‘조용필학’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접근이었다.
데뷔 31주년이었던 그 해,
대중 가수로는 처음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 극장 무대에 섰다.
그리고 2005년, 국내 최대 규모인 총 관객 30만 명 동원을 목표로 전국 월드컵 경기장 투어를 하고 있다.
고비도 물론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대마초 사건’에 묶여 3년간 활동 금지를 당했고
94년에는 대형 뮤지컬을 올리겠다며 벼르다 돌연 취소해 3억여 원을 날렸다.
와신상담이란 말은 그를 위해 있었다.
대마초 사건으로 쉬는 동안 창법을 갈고 닦았고,
뮤지컬 실패 후 꾸준히 준비해 3년 뒤쯤이면 작품을 완성할 예정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지켜온 원동력은 뭘까.
“저는 꿈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냥 음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 외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