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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 2005-08-28] "노래로 묶은 '남북은 하나' 실감"
2005.09.0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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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묶은 '남북은 하나' 실감"
조용필 평양공연 다녀온 이종원 대구문화산업포럼 대표
조용필 뮤지컬사업 대구유치 인연
변해가는 평양보며 통일물결 확인

"통일의 물꼬는 이미 터진 게 아니겠어요? 아직은 잘 못느끼고 있을 따름입니다."
지난 23일 평양에서 열린 '조용필 2005 평양공연'을 참관하고 온 이종원 대구문화산업포럼 대표(변호사)는 "평양은 분명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었으며, 북한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내부에서 진행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참관 소감을 전했다.
이 대표는 올해 초 대구공연에서 성공한 뮤지컬 '맘마미아'의 대구공연 기획자로, 조용필 캠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국민가수 조용필도 뮤지컬 '맘마미아'가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자신의 37년간 히트곡으로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보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이미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간 상태이다.
이 대표는 "조용필의 뮤지컬 사업을 대구로 유치하는 것이 대구 입장에서는 웬만한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 못지않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평양공연 참관단에 포함된 배경을 설명했다.
"버드나무가 많은 도시를 뜻하는 평양의 옛 이름 '유경'을 붙인 유경정주영체육관은 1만2천309석 규모의 최신 건물이었습니다. 평양시민 7천여 관중은 처음엔 너무 꼿꼿한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어서정말 매우 어색하였습니다. TV로 공연을 보신 분들도 '북한 사람들 정말 경색되었다'는 생각을 하였을 테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분위기로 공연이 끝나면 어떻게 하나'고 걱정될 정도였지요"
이 대표는 그런데 조용필이 민요풍의 '한오백년'과 '간양록'을 부를 때부터 서서히 경색된 분위기가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북한노래 '자장가' '험난한 풍파 넘어 다시 만나네'를 부를 때에는 드디어 관중들도 박수를 치면서, 같이 부르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앙코르곡으로 '꿈의 아리랑'이 열창될 때에는 남과 북이 정서상으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민족임을 알 수가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002년에 브라질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동안 내 마음 속에 평양은 지구 반대편 브라질보다도 더 먼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 보니까 실제로는 1시간도 채 안걸리는 곳에 있었어요"
순안공항에서 작별인사를 나눈 민화협 직원들의 악수 손아귀에는 진심으로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정이 묻어 있었다는 이씨는 "북한에서도 장사를 해 돈을 제법 모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더 중요한 사실은 북한주민들이 그런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데 있다고 본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
조용필 평양공연 다녀온 이종원 대구문화산업포럼 대표
조용필 뮤지컬사업 대구유치 인연
변해가는 평양보며 통일물결 확인

"통일의 물꼬는 이미 터진 게 아니겠어요? 아직은 잘 못느끼고 있을 따름입니다."
지난 23일 평양에서 열린 '조용필 2005 평양공연'을 참관하고 온 이종원 대구문화산업포럼 대표(변호사)는 "평양은 분명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을 타고 있었으며, 북한 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는 내부에서 진행될 때 비로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참관 소감을 전했다.
이 대표는 올해 초 대구공연에서 성공한 뮤지컬 '맘마미아'의 대구공연 기획자로, 조용필 캠프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국민가수 조용필도 뮤지컬 '맘마미아'가 팝그룹 '아바'의 히트곡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자신의 37년간 히트곡으로 창작뮤지컬을 만들어 보는 것을 필생의 과업으로 생각하고 이미 구체적인 준비에 들어간 상태이다.
이 대표는 "조용필의 뮤지컬 사업을 대구로 유치하는 것이 대구 입장에서는 웬만한 대기업을 유치하는 것 못지않게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고 계속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평양공연 참관단에 포함된 배경을 설명했다.
"버드나무가 많은 도시를 뜻하는 평양의 옛 이름 '유경'을 붙인 유경정주영체육관은 1만2천309석 규모의 최신 건물이었습니다. 평양시민 7천여 관중은 처음엔 너무 꼿꼿한 자세로 가만히 앉아 있어서정말 매우 어색하였습니다. TV로 공연을 보신 분들도 '북한 사람들 정말 경색되었다'는 생각을 하였을 테지만, 현장에서는 '이런 분위기로 공연이 끝나면 어떻게 하나'고 걱정될 정도였지요"
이 대표는 그런데 조용필이 민요풍의 '한오백년'과 '간양록'을 부를 때부터 서서히 경색된 분위기가 풀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북한노래 '자장가' '험난한 풍파 넘어 다시 만나네'를 부를 때에는 드디어 관중들도 박수를 치면서, 같이 부르는 사람들도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앙코르곡으로 '꿈의 아리랑'이 열창될 때에는 남과 북이 정서상으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민족임을 알 수가 있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2002년에 브라질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동안 내 마음 속에 평양은 지구 반대편 브라질보다도 더 먼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 보니까 실제로는 1시간도 채 안걸리는 곳에 있었어요"
순안공항에서 작별인사를 나눈 민화협 직원들의 악수 손아귀에는 진심으로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정이 묻어 있었다는 이씨는 "북한에서도 장사를 해 돈을 제법 모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더 중요한 사실은 북한주민들이 그런 사람을 부러워한다는 데 있다고 본다"고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김은경기자 enigma@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