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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2005-09-12] 새로운 세대가 보는 청계천은 어떤 모습일까
2005.09.13 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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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대가 보는 청계천은 어떤 모습일까
조선시대에 가족의 행운과 건강을 비는 다리밟기를 하던 곳으로 서울의 명물이던 광통교가 95년 만에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1910년 종로∼남대문 간 전차 선로 복선화 공사로 자취를 감췄던 광통교가 청계천 복원 공사의 일환으로 23일 제 모습을 찾았다. 현재의 복원된 위치는 서울 중구 청계천로 한국관광공사 앞이지만 본래는 약 155m 하류 쪽에 있었다. 사진은 광통교의 1958년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오늘 밤은 눈빛이 유독 밝고 밝아/사람마다 광통교에서 달을 기다린다/노래하는 아이들 한 떼가 옷깃을 연이어/함께 동방의 행락조(行樂調)를 부르네'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가 지은 한시 '상원곡'(上元曲)의 일부다. 달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청계천 광교 옆에 모여 든 사람들의 흥겨운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인왕산과 북악산 사이에서 발원해 서울 중심부를 관통하는 청계천. 조선시대는 하천을 경계로 북촌엔 문반(文班)이, 남촌엔 무반(武班)이 모여 살았다. 일제강점기엔 청계천변은 북촌과 남촌의 완충지대로 서울 보통시민이 고단한 삶을 꾸려 온 생존의 현장이었다. 조선시대 부자들도, 일제 강점기 다방골 기생들도, 다리 밑 거지들도, 산업화 시대 공장의 '시다'들도 청계천 안에 저 마다의 흔적들을 남겨 놓았다.
삶이 있으면 시가 있고 노래가 있고 그림이 있기 마련. 예로부터 청계천은 문화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보고(寶庫)였다. 길지는 않지만 다채로운 표정을 지닌 이 하천에서 소설가 시인 화가들은 예술적 영감을 얻었다.

조선시대엔 청계천의 활기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묘사한 글과 그림이 풍성했다. 겸재 정선(謙齋 鄭敾)은 1739년 현재의 종로구 청운동 52번지 일대를 중심으로 청계천 주변의 장관을 역동적으로 표현한 '청풍계'(淸風溪)를 그렸다. 그는 이 일대가 '골이 깊고 그윽하며 물 맑고 바위 좋은 경치가 있어 더울 때 소풍하기에 가장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근대 이후 청계천 문학이나 그림은 천변의 음울한 풍경에 주목했다. 청계천변을 중심으로 1930년대 서울 중산층과 하층민 삶의 애환을 다룬 박태원(朴泰遠·1909~1986)의 소설 '천변풍경'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정이월에 대독이 터진다는 말이 있다. 딴은, 간간이 부는 천변 바람이 제법 쌀쌀하기는 하다. 그래도 이곳, 빨래터에는, 대낮에 볕도 잘 들어, 물 속에 잠근 빨래꾼들의 손도 과히는 시리지 않는 모양이다.'
광복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청계천은 '난민 수용소'처럼 변했다. 6·25를 서울에서 겪은 소설가 김원일은 당시를 회고하는 칼럼에서 '그 해 여름 엄마를 따라 식용품을 구하러 수다리 부근 난전(亂廛)에 나갔다가 시체 몇 구가 쓰레기 더미 하천 바닥에 버려진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썼다.
김성환 화백이 그린 1958년 어느 날 서울 청계천의 풍경. 천변에 늘어선 위태로워 보이는 판잣집이 당시의 고단한 삶을 잘 보여 준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시사만화 '고바우'로 유명한 김성환 화백이 1958년에 그린 청계천 풍경에는 빈대떡집과 사창가, 천변 사람들과 행인들이 마치 조선시대 풍속화처럼 해학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가슴이 드러나는 저고리를 입고 빨랫감을 머리에 인채 천변으로 가는 아낙, 더러운 것도 아랑곳 없이 물 속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등이 그려진 그의 그림은 따뜻하다.
일본의 대표적 보도 사진작가인 구와바라 시세이(桑原史成·68)는 60년대 청계천의 모습을 낱낱이 앵글에 담았다. 천변의 목조 가설물 위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과 그 아래에서 물장난하는 아이들, 3층짜리 수상(水上) 판잣집 난간에 나와 가족들과 함께 웃으면서 양치질하는 사람…. 사진 속 판자촌은 가난함과 누추함으로 가득했지만 사람들의 얼굴 표정은 모두가 밝다. 그래서 정겹고 애틋하다.
청계천 복개(覆蓋)공사는 1958년부터 1977년까지 20년간 단계적으로 진행됐다. 청계피복노동자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육신을 태운 것은 1970년이었다. 소설가 박태순은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분신 사건 상황을 현장 취재해 르포를 썼다.(여성동아 70년 12월호)
시인들에게도 당시의 청계천은 허위와 위악의 공간이었다.
"시인은 절도 살인 사기 폭력/그런 것들의 범죄 틈에 끼어서/ 이 세계의 한 모퉁이에서 태어났다//시인의 말은 청계천 창신동 종삼 산동네/그런 곳의 욕지거리 쌍말의 틈에 끼어서/ 이 사회의 한 동안을 맡는다//시인의 마음은 모든 악과 허위의 틈으로 스며나온/ 이 시대의 진실 외마디를 만든다/그리고 그 마음은/다른 마음에 맞아죽는다//시인의 마음은 이윽고 불운이다.'(고은 '시인의 마음', 1983)
민주화시대가 열리고 경제적 풍요가 서울을 덮었지만 청계천은 여전히 꽉막히고 뒤틀린 대도시의 신음 소리가 묻히는 곳이었다.
'청계천 평화시장 앞,/지천으로 깔린 평화,/철지나 시세잃은 평화,/전품목 바겐세일 80%25!/아직은,/공(공)이 아니다/…/아가씨, 평화 백원어치만 줘 봐요.'(이준후 '아우라지, 추억에 대하여', 1999)

다시 숨쉬는 청계천. 동아일보 자료사진
새로운 세대가 보는 청계천은 어떤 모습일까.
2003년 7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물 위를 걷는 사람들-청계천 프로젝트' 전. 세대별로 다양한 미술인 42명의 작품이 한자리에 모였다. 허름한 판잣집이 가득했던 옛 청계천을 체험한 원로부터 고가도로만으로 청계천을 떠올리는 20대까지, 청계천에 대한 각기 다른 기억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작품들은 새로운 청계천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됐다.
'눈부신 햇살이 아름다운 거리에/오고가는 사람들 흥겹게 노래한다/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 모여 웃음꽃 피우네….'
국민가수 조용필이 작사 작곡한 '청계천'의 가사처럼 이제 청계천은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공간이 된다. 수백년간 도시생활의 찌꺼기를 실어 나르다 만신창이가 되어 끝내 콘크리트 아래로 버림받았던 청계천이 다시 생명의 숨길을 내뿜고 있다. 청계천을 사색의 공간, 발랄한 문화의 향기가 넘쳐나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허문명기자 ang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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