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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2005-10-26] [이윤정의 패션 엿보기-매스미디어와 패션]서태지 힙합
2005.10.2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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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의 패션 엿보기-매스미디어와 패션]서태지 힙합 패션 도발적 문화 대변
매스미디어시대 대중은 그들이 우상시하는 연예인 패션에 대한 모방욕구가 강하다.
이런 경향은 빠른 속도로 새로운 유행을 만든다.
특히 대중가요와 가수들의 복식은 젊은이들의 패션에 결정적인 영향을 줬다.
대중가요는 어디서나 쉽게 듣고 부르는 보편적인 문화인 만큼 노래가사나 가수의 복식형태는 사회적 반향이 클 수밖에 없다.
지난 1960년대 발표된 ‘노란 샤쓰 입은 사나이’가 대표적이다.
당시 일반인은 물론 택시기사들까지 노란셔츠는 대유행이었다.
경제건설에 진력하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단벌 옷’, ‘넥타이’, ‘빨간 마후라’ 등의 의복 아이템이 대중가요에 사용됐고
60년대 말에는 가수 윤복희에 의해 미니스커트가 소개됐다.
70년대는 청년문화의 태동기로 장발과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 등으로 상징되던 포크음악이 인기였다.
포크 가수들은 화장을 하지 않았고 의상도 평상복이나 청바지 차림이었다.
가사 속에 표현된 ‘긴머리’, ‘짧은 치마’ 등은 이를 퇴폐풍조라 하여 단속한 시대상을 풍자했다.
70년대는 그외 핫팬츠, 히피족이 출현했으며 서구풍조의 무비판적 수용, 획일적인 패션, 음악을 추종하던 시기였다.
80년대엔 컬러TV가 등장하면서 가요의 개념이 보고 듣는 것으로 변했다.
대형스타 조용필이 등장했고 대중문화의 주요 수용층이 10대로 바뀌었다.
조용필의 머플러, 가는 넥타이, 풍성한 의상에 핑컬 파마 헤어스타일은 유니섹스의 패션을 낳았다.
가수들의 화려한 춤과 의상은 즉각 청소년 패션에 크게 영향을 줬다.
반면 록가수들의 긴 머리카락, 가죽 의상, 금속 액세서리, 찢어진 청바지 등 펑크 스타일은 일시적인 것으로
우리 문화에는 수용되지 않았다.
이 시기 노래가사에는 ‘배낭’, ‘낡거나 찢어진 청바지’, ‘가죽점퍼’ 등이 등장했는데
이는 거대한 도시화와 산업화의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 자연과 가족으로 돌아가려는 회귀현상과 그리움의 표현이었다.
지난 92년 ‘서태지’의 등장은 신세대 문화의 중심부가 됐다.
이들의 자유분방함과 도발성은 문화계의 다방면에 새롭고 진보적인 영향을 줬다.
‘서태지 패션’으로 불렸던 힙합스타일은 청소년에서 대학생까지 널리 유행했다.
소매 없는 헐렁한 웃옷과 칠부 길이의 폭 넓은 반바지나 찢어진 청바지, 운동화와 운동모자, 목걸이, 팔찌 등이
서태지 패션이었다.
90년대 가사에 자주 등장한 ‘빨강’은 섹시한 이미지의 여성을, ‘까만 긴 생머리’는 남성이 선호하는
청순하고 사랑스러운 여성상으로 묘사됐다.
반면 ‘성형미인’이란 노래를 통해 가공된 미인이 비판되기도 했다.
‘DOC와 함께 춤을’에서 ‘청바지 입고 회사에 가도’, ‘여름 교복이 반바지라면’ 등은 출근복과 교복에서의 탈출 욕구를 표현했다.
실제로 당시 남성 출근복의 형태가 획일적인 슈트의 형태에서 벗어나는 추세였다.
넥타이는 전형적인 남성을 상징하는 액세서리로 바깥일을 의미하는데
소방차의 ‘넥타이 부대’는 비뚤어진 넥타이도 고쳐 맬 시간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직장인들의 고달픔의 상징으로 사용됐다.
결국 대중가수의 의상이나 가사 속에 나타나는 복식은 시대적 배경과 대중들이 선호하는 스타일,
현대 복식의 변천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최근 뉴욕 타임스가 발표한 ‘세계에 영향을 미친 100대 인물’ 중 1위는 영국의 ‘비틀스’였다.
비틀스는 노래뿐 아니라 남성 패션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인물들이다.
/경원교육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