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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데뷔 35주년 조용필과 평론가의 대담

2003.07.2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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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인생 35년‥다음 꿈은 오페라"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조용필은 대중성과 작가적 전문성을 동시에 갖춘 가장 개성적인 뮤지션으로 인식된다. 그로 인해 한국 대중음악이 영미 팝 음악의 그늘에서 벗어났고, 라이브 콘서트의 개념이 확립되었다. 그래서 그에게는 최상의 극존칭인 ‘국민가수’라는 칭호가 어색하지 않게 따라 다닌다.

데뷔 35주년을 맞아 다음달 30일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기념콘서트 준비에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그를 대중음악평론가 신현준씨가 만났다.


신현준(이하 신) 35주년의 기점은 정확히 언제인가?

조용필(이하 조) 68년 고3때 ‘앳킨스(Atkins)’라는 그룹을 만들어 서울 영등포에 있는 미군 헌병대의 클럽에 선 것이 본격적 데뷔다.

신 음악인이 되겠다고 마음먹은 결정적인 동기가 있다면?

조 그룹 ‘벤처스’의 영향이 컸다. 이들의 ‘파이프 라인’, ‘불독’등을 기타로 치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다.

신 초창기 음반에는 록보다는 소울의 성향이 강해 보인다.

조 당시 미군 무대에 서면 백인과 흑인, 라틴계는 물론 소수민족까지 신청곡이 아주 다양했다. 소울은 물론이고 모든 장르를 다 연주할 줄 알아야 했다. 제일 신나는 음악은 비틀스와 롤링 스톤스였다. 비틀스의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 롤링 스톤스의 ‘새티스팩션’ 정도는 기본으로 연주해야 했다.

신 일전에 첫 녹음이라고 말한 바 있는 <앰프 키타 고고! 고고! 고고! 고고!>를 최근 한 음악 애호가가 찾아냈다.(관련기고 29면) 녹음 당시를 회상해달라.



조 (놀라운 표정을 지으며) 김대환과 김트리오 시절 아세아 레코드에서 녹음한 음반이다. 그 무렵 <사랑의 자장가> 등이 들어간 음반의 녹음도 했었는데 어떤 게 먼저인지 확실한 기억이 나지 않는다. 70년대 초반, 김대환 씨의 부인이었던 작사가 김미성씨의 주선으로 음반을 냈다. 당시에는 로열티도 없었고 자꾸 노래를 해 보라고 해서 녹음했다. 70년대에 낸 음반은 지금 들으면 부끄럽다. 그때는 아티스트의 자율성은 뒷전이었고 떠밀려서 했을 뿐이다. 내가 직접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80년대부터다.

신 록 그룹 출신이 트로트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른 데 대해 평가가 엇갈린다. 일본의 엔카 가수인 모리 신이치를 좋아했다는데.

조 몇몇 선배들이 당시 내가 부르면 괜찮겠다고 해서 모리 신이치 곡을 몇 곡 부른 일이 있다. 하지만 당시 나이트클럽에서 연주하던 유명 악단들은 일본 노래(엔카)를 굉장히 많이 불렀다. 우리는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았다. 나이든 손님들 앞에서는 일본 노래를 불러야 했다.

신 음악공부를 정식으로 하지 않았는데 작곡이나 편곡은 어떻게 배웠나?

조 하숙집에서 도화지에 건반을 그려놓고 음감을 읽혔다. 이게 효과를 보았던지 그후에는 라디오나 음반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직접 악보로 적을 수 있었다.

신 1980년대 지구레코드 전속 시절의 녹음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들려 달라.

조 당시 작곡가들이 ‘내 곡을 조용필이 부르게 해 달라’고 지구레코드 쪽에 부탁을 많이 했다. 선배들이었기 때문에 부탁을 모두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시간적인 이유로 모든 앨범에 총력을 기울이지는 못했다. 하나의 앨범을 내 뜻대로 하면 다음 앨범은 회사 쪽에 맡겨 버리는 식이었다.

신 호흡이 가장 잘 맞은 작곡가는 누구인가?

조 가요로서는 역시 김희갑 양인자 커플과 가장 잘 맞았다.

신 다음달 나오는 18집의 음악들을 소개해달라.

조 요 몇년 뮤지컬에 신경을 많이 썼다. 직접 연출은 하지 않지만 무대 연출에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구경 다니고 디브이디도 많이 봤다. 새 앨범에서는 느린 곡은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했는데, 발라드이면서 클래식에 가까운 곡이 될 것 같다. 빠른 곡은 중간중간에 오페라가 들어가는 록 오페라 스타일이다. 김희갑 양인자 커플의 곡도 2개가 들어간다. 5년쯤 뒤에는 내 노래만 가지고 스토리를 만들어 오페라로 꾸미고 싶다.

신 한 인간으로 개인적 삶은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런 체험이 음악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 법한데.

조 음악은 역시 아이디어다. 사적인 체험이 직접 영향을 주지 않았다. 시대를 경험하면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아이디어, 이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 속을 썩여드렸을지언정 부모님이 나를 힘겹게 하지 않았다.(웃음) 내 음악의 한이라는 것은 한국인으로서 보편적인 것일 뿐이다. 한이 서린 절창이라는 것도 내 성격이나 목소리의 톤 때문에 그럴 것이다.

신 개인적 체험이 작곡할 때 영감이 될 수 있지 않나?

조 어떤 인생이 있다고 가정해서 만들지 내 경험은 아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혹은 일본이나 미국을 자주 왔다갔다 하면서 미래의 세계를 그렸던 것들이 곡이 되었다. ‘못찾겠다 꾀꼬리’는 도시생활을 하면서 천진난만한 것을 찾자는 의도로 만들었고 중2때까지 살던 화성의 농촌시절을 생각하며 ‘난 아니야’ ‘고추잠자리’ 같은 곡을 썼다.

신 ‘친구여’라는 곡은 1980년대 운동권 대학생들도 좋아했다는 말이 있다. 또 ‘생명’은 광주민주화운동이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안다. 정치관을 듣고 싶다.

조 난 정치는 모르고 관심도 없다. 매스컴을 통해서 듣는 정치인들의 이미지가 좋지 않다.

신 1997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공연을 할 무렵 김민기씨와 만나 술도 한잔 한 것으로 아는데.

조 김민기씨의 음악은 70년대 음악의 성격이 강하다. 내가 주로 활동한 80년대와 여러모로 다르다. 흑백이 컬러로, 모노가 스테레오로 바뀌었고 통행금지도 없어졌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차이도 크다. 70년대와 80년대를 비교하면 안 된다. 70년대는 경찰을 만나면 죄도 없는데 딴 데 보고 갈 정도로 억압의 정도가 컸다. 70년대라면 중학생 소녀가 어떻게 감히 30대에게 오빠라고 불렀겠는가.

신 신중현은 록 음악의 외길을 걸은 데 반해 조용필씨는 록, 트로트, 발라드, 민요 등 음악적으로 다양한 길을 걸었다.

조 신중현씨는 연주인이자 작곡가의 인생을 살았다. 나는 연주자이자 가수의 길을 갔기 때문에 평면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가수는 엔터테이너로서 어떤 곡이라도 불러야 한다. 민요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언젠가는 내 장르를 결정해 들어갈 것이다.

신 70년대 무명시기에 대해 어떻게 기억하나.

조 참 좋은 시기였다. 너무너무 좋았다. 어떤 음악도 다 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할 것이 너무 많다.

신 음반시장의 불황이 만성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조 얼마 전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50대 중반인 스틱스의 공연을 보았는데, 주 관객이 40~50대의 남성이었다. 중년 남성들의 ‘와’하는 환호성이 너무 멋있었다. 내 공연도 최근 남성 관객들이 많아지고 있다. 물론 지금도 그들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이들이 경기장에서 소리 지르면 기막힐 것이다. 음반 구매자들도 그렇게 바뀐다면 불황타개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일본 등 전세계적으로 음반시장의 연령층이 30~40대로 올라가고 있다.

정리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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