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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일보] [강헌이 만난 우리시대 가수] 조용필 ㉻

2003.09.2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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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영원한 신화 '위대한 탄생'과 웃고 울어  

  


'조용필하면 위대한 탄생이 떠오르는 것은 나의 음악과 밴드는 나누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삼사십년대의 남인수와 이난영,해방 직후에서 오십년대의 현인,그리고 육십년대의 이미자에 이르는 한국 대중음악사의 진정한 슈퍼 스타의 반열의 극점을 장식하는 인물이다.

군웅이 활개쳤던 80년대 전 기간을 일인제국의 시대로 규정할 만큼 그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하지만 조용필이 차지하는 의미는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성공시키면서 시작한 인기 행진에 있지 않다.

그는 자신의 곡을 자기가 장악한 최초의 슈퍼 뮤지션이며 '위대한 탄생'이라는 슈퍼 밴드의 리더였고,트로트에서 스탠더드 팝,로큰롤,댄스뮤직,민요와 동요에 이르기까지 식민지 시대 이래의 한국 대중음악의 문법을 총결산한 유일무이한 아티스트라는 데 있다.

'나는 비디오적인 요소는 거의 없는,10대의 아이들 스타가 될 만한 현대적인 카리스마와 스타로서의 끼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라는 음악적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우리는 리듬을 열어 놓았고 하나의 노래 속에 드라마를 불어 넣었다. 이것은 결코 내 개인의 성과가 아니다.'

조용필 위대함의 절반은 역설적으로 그가 그의 밴드 '위대한 탄생'에 퍼부은 집요한 애정과 투자에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는 '록은 밴드이며 밴드는 라이브이다'라는 가장 고전적인 명제를 어느 젊은 록 아티스트보다 평생을 두고 지킨 인물이다. 그에게 밴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좋으니까! 나는 젊었고 젊음은 좋아하면 하는 것이다. 60년대에 밴드라면 불량배나 양아치를 의미했다. 그래서 밴드라는 말을 그룹 사운드나 보컬 같은 말로 대신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밴드를 통해 세계적인 뮤지션이 되고 싶었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조건 연습을 많이 했다. 매일을,거르지 않고. 밴드는 끝없는 훈련이다. 그것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그가 이같은 밴드의 토대 위에서 평생을 걸고 추구했던 영원한 테마는 '순수함'으로 요약된다.

'나무,꽃,농촌,고향과 더불어 동심은 내 상상력의 원천이다. 나는 아이가 없고 또 앞으로도 없을 터이지만 어린이를 만나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80년대 초반엔 어린이 드라마까지 한 적이 있다. 나는 성격상 도시의 복잡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의 가왕에게도 가혹한 시련이 없지 않았다. 77년 2차 대마초 사냥에 격추되며 늦깎이 성공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아마도 그가 다시 스타덤에 복귀하리라고 예측한 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90년 '추억 속의 재회'로 TV 차트 1위를 마지막으로 기록한 후에 서태지를 필두로 한 새로운 세대가 대중음악의 주류를 교체하는 것과 동시에 숱한 맹장들이 쓰러져 갔을 때 이 80년대의 일인제국도 종말을 맞이하는 듯 했다.

그러나 위기 때마다 그는 불사조처럼 반격했고 새로운 세기가 시작된 후에도 여전히 진정한 왕자의 위용을 갖추고 있다.

오히려 90년대의 별들이 십 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이 황폐한 불모의 시대에. 조용필을 불멸의 지위로 끌어올린 것은 음악인으로서의 확고한 자기 관리의 정신에 기인한다.

그는 음악 이외의 과제를 자신의 삶에서 설정하지 않았다.

자고 나면 트렌드가 바뀌는 이 숨막히는 속도의 시대에서 그는 오로지 자신의 정통성,곧 라이브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수호하고자 했고,바로 그 일관된 행보가 그로 하여금 수많은 경쟁자들과 후계자들로부터 구별하게 해주는 원동력인 것이다.

'내가 오래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타이틀 곡이 뜨는 것보다 앨범 전체가 뜰 수 있게끔 했기 때문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 곡을 보고 사람들은 음반을 사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90년대는 너무 얄팍하다.

예술성과 스타성을 겸비한 일부의 아티스트만이 몇집까지 계속해서 내는 반면에 지금처럼 한번 반짝하고 소모품처럼 어린 스타들이 하루 아침에 물갈이된다면 이들의 미래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나는 무엇보다도 제작자의 임무가 막중하다고 본다.

얼굴과 춤만 볼 것이 아니라 음악성을 보고 픽업해서 지속적으로 뒷받쳐주어야 하는데 눈앞의 이익이 모두를 망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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