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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2010-10-22] <푸른광장> 바람이 전하는 말
2010.10.2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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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광장>
바람이 전하는 말
황주리 / 서양화가 가을이면 나는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 조용필이 부른 ‘바람이 전하는 말’을 부르고 싶어진다. 작곡과 노래도 좋지만 그 중에서도 노랫말이 일품이다. ‘바람이 불어오면 귀기울여 봐. 작은 일에 행복하고 괴로워하며- 고독한 순간들을 그렇게들 살다갔느니.’ ‘착한 당신- 외로워도 바람 소리라 생각하지 마.’ 외로운 날엔 바람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이제 가을이 깊어가는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정신 못 차리는 사이 곧 겨울이 올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탓인지 타인의 사망 소식이 다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올해는 유독 많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아니 해마다 그랬을 것이다. 단지 타인의 죽음이 해마다 조금씩 더 실감이 날 뿐일 것이다. 몇 달 전 어느 전시회 오프닝에서 앙드레 김 선생을 보았다.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했기 때문에 멀리서 바라만 보았다. 어린아이들이 어느새 우주복 비슷한 하얀 옷을 입은 선생을 둘러싸고 같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이상하게도 나는 그 속에 들어가 같이 사진을 찍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선생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마치 지인이 돌아간 것처럼 하루 종일 슬펐다. 어릴 적 어머니와 함께 그의 패션쇼를 본 뒤부터 나는 그의 팬이 됐다. 그때만 해도 이 경직된 감성의 땅에 자유로운 영혼을 싣고 착륙한 고독한 우주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며칠 뒤 천상병 시인의 아내 목순옥 여사가 돌아갔을 때도 그렇게 슬픈 기분이 하루 종일 들었다. 아주 친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는 20대부터 그녀와 안면이 있었다. 천상병 시인이 살아 계시던 시절에도, 나는 그녀가 차를 따라주는 찻집에 자주 들렀었다. 천상병 시인은 시도 때도 없이 찻집 문을 열고 들어와 백원만 달라고 아내에게 아이처럼 떼를 쓰곤 했다. 그게 백원이었는지 천원이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만원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그녀가 인사동에 자신이 경영하는 찻집 ‘귀천’을 연 뒤에는 오히려 자주 가지를 못했다. 언제나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리에서 우연히 자주 부딪쳤고, 내가 전시를 하면 꼭 찾아주셨다. 가을이면 그녀의 얼굴이 가끔 생각나곤 했다. 누군들 그렇지 않으랴마는 유난히 쓸쓸하던 20대 말, 시도 때도 없이 들르던 동숭동의 찻집 문을 열면 언제나 그녀가 있었기 때문일까? 동안(童顔)이면서도 왠지 서글픈 그림자를 지닌 그녀의 얼굴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나의 쓸쓸한 20대와 겹쳐졌다. 행복전도사 최윤희씨의 자살 소식을 들은 날도 하루 종일 기분이 우울했다. 나는 그녀를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다. 누군가의 집에 초대되어 옆자리에 앉아 밥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밥을 먹으면서 행복을 남에게 전도하다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밝게 웃으며 내 그림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순간, 아이 같은 나는 그만 그녀에 대한 비호감이 싹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며칠 전 오래된 잡지들을 정리하다가 그녀의 얼굴이 실린 인터뷰 기사를 발견했다. 꽤 오래 전 사진 속에서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었고, 그 위에는 ‘행복은 찰랑거리는 소리예요’라고 쓰여 있었다. ‘행복이란 가슴이 찰랑, 넘칠까말까 하는 상태인 것 같아요. 가난해도, 부유해도 가슴은 찰랑거릴 수 있죠. 가슴이 찰랑거리는 데는 아무런 조건도, 제약도 없어요.’ 혼자 있어도 심심할 겨를이 없는 그녀는 언제나 행복에 관한 깨달음에 마음을 열고 가슴의 창에 때와 얼룩이 끼지 않도록 자주 닦아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랬을 것이다. 그녀가 그렇게 육체의 고통에 시달리기 전에는 행복이란 그렇게 찰랑거리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렇게 찰랑거리는 소리가 바람이 전하는 말이 되어 이 깊어가는 가을 저녁을 물들이고 있다. 그 누가 타인의 행복과 불행을 논할 수 있겠는가.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오랜만에 노래방에 가서 ‘바람이 전하는 말’을 불러볼 참이다. ‘고독한 순간들을 그렇게들 살다갔느니- 착한 당신 외로워도 바람소리라 생각하지 마’. |
출처: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2101033037191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