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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이 만난 사람] 대중음악계 거목 김희갑·양인자 작곡·작사가 부부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빛바랜 시집 안에 갇혀 있던 정지용의 주옥 같은 시 `향수`는

동원ㆍ박인수의 노래로 대중의 가슴에 다시 살아났다. `향수`를 노래로 재탄생시킨 주인공이 바로 김희갑(74)이다. 어디 `향수`뿐이랴. 눈동자, 하얀목련, 킬리만자로의 표범, 사랑의 미로, 립스틱 짙게 바르고, 알고 싶어요, 그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등 히트곡만 열거하기에도 한참이다. 그가 작곡한 곡이 얼추 3000곡이 넘다 보니 그 이름 석 자를 빼고는 한국 가요계 역사를 논할 수 없을 정도다. 그가 `한국 대중음악계 거목`으로, `국민작곡가`로 불리는 이유다. 2006년에는 고희를 맞아 국내음악계에서는 처음으로 오로지 그가 작곡한 곡으로만 채운 헌정 공연이 열리기도 했다. 고교 재학 시절 짧은 머리를 감추려고 모자를 쓴 채 미8군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했다는 김희갑 씨에게 모자는 이제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지난 10일 인터뷰 때도 모자를 쓰고 청년 같은 모습으로 부인인 작사가 양인자 씨(64)와 함께 나타났다. 그 옆에 선 양씨도 투명한 피부에 맑은 미소를 머금은 소녀였다.

◆ 다시 만날 조영남, 김추자

= 김희갑 씨는 얼마 전까지 1960~1970년대 톱가수였던 김추자 씨에게 줄 곡을 쓰는 데 몰두했다. 2주 전에야 작곡이 끝나 지금 양씨가 바통을 이어받아 작사를 하고 있다.

양씨는 "지난 3월 초에 만나 같이 작업하기로 하고 얼마 전에야 곡을 완성했는데 곡이 아주 좋아요. 김추자 씨도 목소리가 아직 그대로 살아있더군요. 좋은 곡에 버금가게 가사를 써야 하는데 힘이 달려서 어려워요"라며 엄살을 부린다.

김추자 씨의 새 음반은 내년 봄께 선보일 예정이다.


"김추자 씨는 10년 전에 음반을 내려 했는데 못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작업하게 됐어요. 조영남 씨도 오래전 같이 작업했던 노래들을 이제 내놓고요. 그런 거 보면 모든 게 다 때가 있는 거 같아요."(양인자 씨)

가수 조영남 씨는 6~7년 전에 김희갑 작곡, 양인자 작사로 만들었다가 출시도 하지 않고 접었던 음반을 최근 다시 내기로 해서 화제가 됐다.

양씨는 "제작 과정에서 의견이 달라 녹음 끝내고 바로 접었던 음반이에요. 그런데 조씨가 얼마 전에 쓰러졌다가 회복된 후에 갑자기 음반을 다시 내자고 제안해왔어요. 아마도 새 음반 노래 중 가사에 `신의 뜻을 알고 싶다. 나는 이 세상을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는 가사가 있는데 삶의 문턱을 넘어서 보고 생각이 바뀌지 않았나 싶어요. 조씨가 녹음된 음반을 다시 듣고 "내가 이렇게 노래를 잘 불렀나?"고 했다더군요. 하하."

김희갑 씨는 가요 작곡에서 시작해 영화음악, 뮤지컬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아직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기타 연주에서 시작해 악단을 운영했던 그는 당대 유행곡을 전부 섭렵하고 세션맨(음반 녹음 때 연주자)까지 두루 거친 연주자 출신이다. 하지만 거기에 안주하지 않았다. 편곡, 작곡으로 당대 최고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면서도 그는 항상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가요와 가곡의 경계를 허문 `향수`, 국악과 가요를 접목한 `에루화` `겨울이야기` `피막` 등 영화음악에 `명성황후` `몽유도원도` 등 뮤지컬까지 대중음악 장르를 전방위로 넘나들었다.

양인자 씨도 그에 못지않다. 처음 소설로 시작해 드라마, 가요 작사, 뮤지컬 작사까지 끊임없이 도전해왔다.

김씨는 "작곡, 편곡에 영화음악까지 모든 장르를 해봤던 경험이 있어서 종합예술인 뮤지컬을 할 수 있었다"며 "항상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번은 가수 조용필 씨와 작업할 때 일이다. 1차 녹음 후 뒤풀이 술좌석에서 `노래는 왜 꼭 아름다워야만 하냐`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렇게 의기투합해 만들어진 것이 바로 조용필 8집에 수록된 곡 `말하라 그대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를`이다. 이 곡은 길이가 19분으로 우리나라 대중가요 발표곡 중에 제일 길다. 중간에 조용필이 악을 쓰는 대목도 있다.

◆ 새로운 도전 `나도아리랑`

= 우리 나이로 올해 일흔다섯. 김씨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대표곡인 `아리랑`을 새로운 곡으로 만든 것이다. 이른바 `아리랑 프로젝트`다. 사실 그는 지난 6~7년 전부터 아리랑에 천착해왔다.

"한 성악가가 찾아와 `아리랑`을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 해서 그때부터 아리랑에 대해 연구했어요. 공부하다보니 아리랑 법인 모임도 있고 책을 7권이나 쓴 사람도 있더군요."

그때 아리랑에 대한 공부는 충분히 했지만 제작비, 연출 등 문제로 결국 접었다. 그에게는 못내 아쉬운 작업이었다. 그런데 기회가 다시 왔다. 지인의 소개로 아리랑만으로 공연을 준비하는 판소리 가수 유지나를 만나 아리랑 공연에 부를 새로운 아리랑을 만들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우리나라에 아리랑이 몇 곡이나 있을 거 같아요? 40~50곡 정도나 돼요. 그런데 아리랑 하면 한(恨)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서 경쾌하고 신명 나는 아리랑을 만들고 싶었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발음의 3음행, 즉 아리 아리 아라리처럼 똑같은 단어를 반복하다 세 번째 변형을 주는 방식으로 판소리 장타령 가락을 넣어 노래로 만든 곡이에요."

옆에서 지그시 바라보고 있던 양씨가 끼어든다. "역사가 있는 많은 아리랑 중에 하나를 더 보태는 것이라 감히 기존의 아리랑들과 나란히 서는 것도 주제넘게 생각되더군요. 꼭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대표들이 모여 사진 찍는데 그냥 옆에 끼어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새 아리랑 곡 제목을 `나도아리랑`이라 붙였다. 전라도, 경상도, 그 옆에 나도가 아니라 `나도 아리랑이에요`라는 의미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한 맺힌 사랑의 아리랑이 아닌 약간의 엄살도, 애교도 있는 아리랑이다. 그는 "사실 판소리꾼이 부르는 대중가요는 어떤 색깔로 나올지 궁금했는데 답을 찾았다"며 "다양한 장르와 통섭한 경험이 토대가 되고, 유지나 씨도 곡을 잘 이해해줘 원하는 소리가 나와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나도아리랑`은 이달 23일 오로지 아리랑만을 테마로 한 `유지나 아리랑 공연`으로 첫 무대에 오른다. 내년에는 해외 공연도 하고 `아리랑` 상설 공연장도 선보일 예정이다.

김씨는 "(아리랑 프로젝트가) 재미나 미치겠다"고 했다. 그의 눈에서 광채가 났다.

"전통음악과 서양음악이 각각 온전히 기초가 만들어져 있어야 서로 연결이 가능한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게 가능하더라. 하지만 전통에만 매몰돼 있으면 그걸 못한다. 그 점에서 황병기 씨는 우리 관악기를 서양화하는 것에 있어서 선구자라고 생각한다. 서양음악을 잘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10곡 중 1곡 정도는 우리 것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

◆ 대중의 가슴까지 닿는 곡 만들어야

= 그의 곡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은 아내 양인자 씨의 가사를 만날 때다. 1980년대 이들의 작품은 히트곡 보증수표였다. 이들이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드라마 `우기의 연인`. 이 드라마를 쓸 때 김씨가 주제곡을 맡았고, 드라마 대본을 쓴 양씨에게 작사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다. 이때 나온 두사람의 첫 작품이 혜은이가 부른 `열정`이다.

이들 부부는 많은 가수들과 작업했지만 조용필을 단연 최고의 파트너로 꼽는다. 그의 프로 근성 때문이다.

"조씨는 몇 줄 안 되는 가사를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뚫어져라 보면서 음미하고 고민한 다음 얘기를 해요. 그러니 작품 해석도 아주 신중하죠."(양인자 씨)

많은 사람이 정확히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모르면서 무조건 `사랑의 미로` `그 겨울의 찻집` 같은 가사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지만 조용필은 정확히 자기 스타일이 있었다. 높은 음에서는 받침 없는 가사가 부를 때 부드럽게 넘어가기 때문에 받침 있는 가사는 싫어했다.

수십 년을 정상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들 부부에게 비결을 묻자 양인자 씨는 "불가에서 삼생(三生)쯤 하면 뛰어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천재라고 한다. 교육 받아 잘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배워서 쓰면 완성도가 70~80% 정도까지는 될 수 있지만, 조용필 씨 같이 객석을 휘어잡는 `신기`는 타고나는 거다. 현생에 안 돼도 열심히 하다 보면 내생에서는 조용필 씨처럼 될 수 있지 않겠나."

부부는 "인터넷으로 움직이는 세상은 잘 모른다. 음반 시장이 죽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저 하고 싶은 음악만 할 뿐이다. 중요한 것은 대중의 가슴까지 닿아야 한다는 것"이라며 나름의 음악 철학을 말했다. 김씨는 이어 "대중음악에서 비어 있는 자리를 메워주고 싶은 것이 제 욕심이에요. 그래서 좋은 음악인데 남이 안 하는 것을 살리고 싶다"고 했다.


■ 틈틈이 골프…77세땐 77타 쳐야죠

이들 부부는 금실 좋기로 소문난 커플이다. 아내는 "보통 예술하는 사람을 남편으로 두면 불행하다고 해요. 자기 감정만 중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김 선생님은 참 배려심 있고 모범적이에요. 항상 인생의 좋은 선생님이 옆에 있는 것 같아요"라고 남편 칭찬을 했다.

그러자 남편이 아내에게 "그래요?"라며 되묻는다. 아내는 "들었어요?"라며 되받았다. 신혼부부처럼 살짝 닭살 돋게 하는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서로에 대해 작업 파트너로서도 최고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작품 파트너로서 김 선생님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예요. 연출가 김수동 씨를 존경하는데 그분은 드라마 대본에서 어디에 중점을 두고 찍어야 작품이 베스트가 되는지를 알아요. 그래서 습관적으로 대본을 고치는 PD들과 달리 그분은 자기 색깔을 입히기 위해 대본을 바꾸지 않죠. 그래도 나중에 작품이 나온 것을 보면 내가 이렇게 잘 썼나 싶게 연출을 잘했죠. 김 선생님도 그래요. 작사에 터치하지 않는데 그 느낌을 더 잘 살려서 곡이 만들어지니까 최고죠."(양인자 씨)

김희갑 씨는 "난 아내로서 양인자 씨에게 (100점 만점에) 120점밖에 못 주겠다"며 웃는다.

자식들은 모두 출가해서 지금은 부부만 둘이서 분당에서 살고 있다. 작업 중에는 신경이 예민해지게 마련인데 한 집안에 두 작가가 어떻게 같이 작업하는지 물었다.

양씨는 "쇼 파트와 드라마 파트는 달라서 서로 각자 영역을 간섭하지 않는다"며 "김 선생님이 하는 것에 제동을 걸지 않았던 것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아침에 자전거 타기로 하루 일과를 시작해 아침 식사 후 골프 연습, 저녁에 호수공원 걷기를 매일 빼놓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그를 양씨는 "철인 3종경기 하듯 한다"고 했다.

그는 "감기가 걸려도 운동으로 풀어야 한다고 여길 만큼 운동을 아주 중요한 것으로 생각해요. 큰 작품을 맡으면 운동량부터 늘려요. 왜냐하면 작품을 잘 해내려면 곡 전체를 한 호흡으로 볼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서 젊은 시절 그리 좋아하던 술도 줄이고 하루 4~5갑 피우던 담배를 끊은 지는 20년이나 됐다. 그와 달리 아내는 운동을 싫어한다. "골프선수인 아들을 키우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그런지 골프를 좋아하지 않아요. 여가에 따로 하는 것도 없고 그냥 가만히 있어요. 몸을 아끼는 게 건강 비결이에요."

"아내는 유럽 여행을 가서도 절경이 나올 때 꼭 자거나 책을 읽는다"며 그가 옆에서 거든다.

반면 "골프가 생업인 것 같다"는 그는 요즘 한 달에 7~8번, 안 가도 3~4번은 라운딩을 나간다. "85~90타 정도 치는데 2년 후 77세에 77타 치는 것이 목표"라며 환하게 웃었다.

■ 김희갑은…
1936년 평양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했다. 대성고를 다니던 시절 기타 연주로 미8군 무대에 입성, 밴드를 이끌며 이름을 날렸다. 5인조 김희갑악단을 결성해 가요계를 풍미하며 남진을 비롯한 당대 인기 가수들의 음반 편곡과 연주를 맡다 작곡을 시작했다. 작곡가로서의 시작은 `진정 난 몰랐네`. 이후 조용필 이선희 최진희 등 당대 최고 가수들에게 곡을 주며 작곡가로서 명성을 쌓았다.작사가 양인자 씨를 배우자로 만난 이후에는 김희갑&양인자표 히트곡을 줄줄이 내놓는다. 지금까지 3000여 곡을 작곡했다.

■ 양인자는…
1945년 함경북도 나진에서 출생했다. 부산여고,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고 `여학생`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당시 방송작가 김수현 씨가 동료였다. 1974년 한국문학에 단편소설 `외항선`을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부부만세`를 시작으로 제3교실, 혼자 사는 여자, 하얀달, 여고동창생 등 800여 편의 TV드라마 각본을 썼다. 1980년대 중반부터 작사 활동에 몰두해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서울 서울 서울,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타타타 등 300여 곡을 작사했다.

[김주영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출처:http://news.mk.co.kr/v2/view.php?sc=40200001&cm=%EA%B8%B0%ED%9A%8D%C2%B7%ED%8A%B9%EC%A7%91%20%EC%8B%A0%EB%AC%B8%EA%B8%B0%EC%82%AC&year=2010&no=701124&selFlag=&relatedcode=&wonNo=&sID=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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