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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조용필처럼 되고 싶었어요"

[내 인생의 사춘기] 47세 이때까지 두번 가출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쑥맥이었습니다. 집이 가난하여 항상 가난하다고 생각하며 살았고 공부도 못하여 기죽어 지내는 어린 시절을 보냈고 못생겼다고 항상 고개 숙이고 다녔으며 성이 변가라고 똥씨라는 놀림 속에 언제나 마음을 숨기며 살아 왔습니다.

저는 산동네 포장집이 싫었습니다. 겨울엔 얼음장 같은 방, 여름엔 찜통 같은 방, 산 속에 집터가 있어 날이 더워지면 모기에 파리에 지네에 쥐까지. 온갖 버러지들이 기어다녀 잠도 못 자고 학교가기가 일쑤였고 장마철에 비가 오면 방에 떨어지는 비를 피해 새우잠을 자느라 학교가서 졸기 일쑤였습니다. 게다가 문맹인 부모 밑에서 자라 어느 것 하나 내세울 거라고는 없는 처지라 여겼고, 그래서 저는 무기력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습니다.

조용필처럼 되고 싶었던 나의 청춘

  
▲ 조용필의 노래 하나하나는 혼신의 힘을 다한 절창이었다. 조용필의 노래 하나하나는 혼신의 힘을 다한 절창이었다.
ⓒ 천호영

고등학교 시절이었던 거 같네요. 사실 중학교 마치고 고등학교 입시에 응해 보았으나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현대중공업 사환으로 들어갔지요. 1년 후 현대공고란 곳에 야간 특별학급이란 게 있어 무시험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침 7시에 출근하여 오후 4시 30분경에 마치면 오후 6시부터 수업을 받으러 야간 고등학교로 갑니다. 그렇게 3년을 다니니 졸업장이란 걸 주더군요. 그래서 제 학력이 중졸이 아닌 고졸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뜨겁게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에 열창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으면서 들뜬말로 '뿅' 가버렸습니다. 그렇게 조용필에 미쳐서 음악 공부란 걸 하기 시작 했습니다. 조용필 같은 가수가 되어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조용필에 대한 모든 것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조용필 테이프가 나오기 무섭게 사서 들었고 따라 부르기 시작 했습니다. 조용필씨가 목에서 피가 나오게 연습 했다기에 저도 산 속에 들어가 목에서 피가 나오도록 높은 음으로 조용필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조용필씨가 작곡도 하고 작사도 하기에 저도 작곡 공부도 하고 작사 공부도 했습니다. 피아노도 배우고 키타도 배웠습니다. 어느덧 조용필씨는 가수왕을 연속으로 했고 가요계의 우상이 되어 갔습니다. 저는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방위병을 마쳤습니다. 일체 공부는 하지 않았고 음악에만 심취해 있었습니다.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해보고 싶어서 나이트클럽 심부름꾼으로 취직도 해보았습니다. 가끔 손님이 뜸할 때 2000원 돈을 주고 조용필 노래를 불렀습니다. 하두 조용필 노래를 따라 불렀더니 창법도 같고 목소리도 비슷해 졌습니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니 단기병으로 들어와 훈련 받으라 했습니다. 1년 6개월 단기병 소집해제 후 바로 서울로 가출 했습니다. 가난이 싫었고 가수가 되어 부자가 되어보고 싶었습니다. 20대 초반이었고 서울은 생전 처음이라 어디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할지 난감했습니다. 단지 어려서부터 들어온 이야기. 말은 제주도에 가서 키워야 하고 사람은 서울서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에 출세 하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서울로 가출한 것입니다.

가출한 지 1년 만에 컴백홈

밤에 서울에 도착해서 잠잘 곳도 몰라 무작정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지금 생각 나는 곳이 영등포역 쪽 어느 골목에 청아집이라는 간판이 었던 거 같습니다. 직원을 모집 하기에 무작정 들어 갔습니다. 2층까지 있는 그 식당은 전골요리 전문이었습니다. 저는 식당 2층에서 손님이 오면 신발을 정리하고 내어주는 일을 했습니다. 밤 10시가 넘게 일하였고 2층에서 종업원끼리 잠을 잤습니다. 식당이 커서 종원원도 10여 명이나 되었던 거 같습니다.

쉬는 날 돌아다니다 주성민이라는 작곡 사무실이 근처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찾아가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더니 한 달 배우는데 8만원이라더군요. 당시 식당 월급이 한 달에 12만원이었지만 그 비싼 수업료를 지불하며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다니다 제가 그동안 노랫말을 넣고 곡조도 붙인 자작곡 노래를 보여 주었습니다. 주성민 선생님은 저에게 노래 보단 작곡자가 돼라고 했습니다. 가수는 솔직히 되기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많아야 음반도 내고 방송도 탄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작곡 하다보면 음반도 취입할 수 있고 방송도 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 저는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접해보는 피아노였고 바이엘로 기본을 뚱땅 거리며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습니다. 밤 10시 마치고 가서 1시간 정도 피아노만 뚱땅 거리다 왔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울산 집에서 피아노 배우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집 나간 지 1년 만에 저는 울산 집으로 들어 갔습니다.

먹고 살 걱정 없을 그날, 철들겠지요

그후 이런 일 저런 일 하며 가정도 꾸렸지만, 다시 가출을 했습니다. 부모 밑에서 가출한 게 아니라 자식이 둘이나 둔 가장으로서 가출을 한 것입니다. 현대차 울산공장에 10여 년간 비정규직으로 일 다니다가 지난 4월 중순 정리해고 되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돈벌이가 강제로 차단된 저는 백수로 놀고 있을수만은 없었습니다.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나서야 했습니다. 그러나 울산에서 다시 돌파구를 찾기 싫었습니다. 날 버린 울산에서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느 제주 농부를 알게 되었고 제주 귀농 한다는 말 한마디 남기고 옷보따리만 싸들고 무작정 제주도로 와버린 것입니다.

처음 엄마에게 훌륭한 가수되어 돌아 오겠다고 했을 때 엄마는 얼마나 황당했을까요? 울산에서 다른 직장 구해도 될 텐데 갑자기 제주 귀농 한답시고 옷가방 하나 달랑 들고 온다간다 말도 없이 가출해 버린 남편을 두고 아내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요? 25년 전 다시 집에 들어 갔을 때 엄마는 저에게 "너 언제 철들래?"라고  말했습니다. 47년이나 살아온 저에게 아내와 그리고 저를 아는 사람들이 똑 같은 말을 합니다.

"너 언제 철들래?"

역마살이 끼어 그럴까요? 방랑기가 있어 그럴까요? 저는 언제 철이 들까요? 저는 언제쯤 저의 사춘기가 끝이 날 수 있을까요? 아마도 저와 제 가족이 먹고 살 걱정이 끝나야 제 역마살도 방랑기도 사춘기도 끝나겠지요. 그때 가서야 철이 들어도 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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