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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신문 2007-05-28] 조용필 40년 음악인생

2007.05.28 22:18

ypc스타 조회 수:4706 추천: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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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40년 음악인생  
    

눈빛만 봐도... 숨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그는 아직도 '오빠'


내년이면 40년째를 맞는 조용필(57)의 음악인생을 되짚어 보면 결코 짧지만은 않은 세월이다.
긴 세월 잊어버릴만도 한데 잊지 않고 그의 노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은 아직도 많다.
노래에는 그의 삶이 담겨있고,
그 노래에 담긴 삶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여전하다.
굳이 그를 만나보고 만져보지 않아도 되지만 문득 만나기라도 한다면 그와 함께 한 지난 시간들이 떠오를 것이다.
그의 노래 속에서 우리의 지나간 청춘을 기억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설명]  1980년 구성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조용필의 음악인생= 음악인 조용필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힘들다.
39년 세월 동안 워낙 많은 노래를 불러서다.
조용필은 자신의 음악을 '우리 것과 외국 것을 합친 음악'이라고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그의 음악의 출발은 분명 '록'에 있다.

조용필은 1969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이브 핑거스'란 그룹의 기타리스트로 미8군 무대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가요를 하지 않을 때는 항상 외국 록을 불렀는데 특히 흑인음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시절은 그의 특유의 창법과 호소력을 다듬는 시기였다.
1970년에는 이남이와 드러머 김대환과 함께 김트리오로 활동했다.
전형적인 트로트를 록 스타일을 가미해 부르기 시작했고
그를 첫번째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이때 나왔다.
이어 1980년 작가 배명숙이 작사한 드라마 주제곡 '창 밖의 여자'가 히트하면서 본격적인 '조용필의 시대'가 열렸다.

1980년대는 조용필의 최고 전성시대였다. 그는 트로트에서 발라드, 록, 민요를 아우르며 한국 대중음악을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까지 받는다.
음악평론가 강헌씨는 "조용필이 가왕(歌王)인 것은 그가 언제나 정상에 있어서가 아니다"라고 했다.
그에겐 오랜 무명의 시간이 있었고,
정상에 선 뒤에는 혹독한 시련 속에서 무대 뒤로 밀려나야 했지만 그는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조용필의 일상은 노래로 시작해 노래로 끝이 난다.
그는 부르는 것 자체를 어느 순간에도 언제나 좋아한다.
이같은 노래를 향한 그만의 강한 집념, 이것이 조용필의 음악인생이다.




▲1970년대~2000년대 히트곡= 조용필은 1970년대를 거쳐 2000년대를 이어, 현재까지 가요계의 역사이자 서민의 삶을 노래한 '국민가수'다.
40년 가까운 그의 음악인생에서 숱한 히트곡들을 쏟아졌다.
1970년대에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해변의 연인, 일편단심 민들레야, 생각이 나네, 너무 짧아요, 정, 올라오지 않는 강 등이 있다.
1980년대는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못찾겠다 꾀꼬리, 친구여, 고추잠자리, 그 겨울의 찻집,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모나리자, 어제 오늘 그리고 등이 있다.

1990년대에는 꿈, 애상, 그리움이 불꽃, 슬픈 베아트리체, 추억속의 재회, 판도라의 상자, 나는 너 좋아, 바람의 노래 등이 있다.
2000년대는 一聲, 오늘도, 내일을 위해, 그 또한 내삶인데, 태양의 눈, 빛, 꿈의 아리랑, 도시의 OPERA, WITH, 珍, 꽃이여 등이 있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1979~2007)= 조용필은 자신의 밴드 '위대한 탄생'을 이렇게 표현한다.
"나와 위대한 탄생은 하나다. 강산 세 개가 변할 긴 시간동안 우린 함께 해왔다. 이제는 눈빛만 봐도, 숨소리만 들어도, 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그런 사이가 됐다. 가족처럼 말이다."

밴드의 기타리스트로 출발한 조용필에게 있어 '위대한 탄생'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이다.
그리고 '위대한 탄생'은 조용필의 음악을 지근에서 함께 해 온 그룹이다.
당대 최고 실력자들의 집합처였고 연주와 녹음, 편곡, 스타일 등 대중음악계를 이끌어왔다.
30년 가까이 긴 명맥을 이어온 최장수 밴드이기도 하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역사는 197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결성돼 5년 가량을 부산 등지에서 활동해 오던 그룹 '조용필과 그림자'는 1979년 밴드 이름을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으로 바꾸고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간다. 1980년 '창밖의 여자'(1집)로 재기에 성공한 조용필은 그해 9월에 곽경욱(기타), 김택환(베이스), 김청산(키보드), 이건태(드럼) 라인업을 출범시킨다.

위대한 탄생 1기 멤버들은 조용필의 초기 명반으로 손꼽히는 3집 '미워 미워 미워'(1981년)과 4집 '못찾겠다 꾀꼬리'(1982년) 앨범의 음악들을 함께 만들어냈다. 또한 객원 멤버이긴 했지만 이호준이 공연마다 함께 하면서 더욱 풍성한 음악을 선사했다.
그 이후 송홍섭, 변성룡, 백천남, 박청귀, 최진영, 유영선, 배수연, 임동신, 유재하, 김창남 등이 거쳐가며 위대한 탄생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박영록기자 pyl21c@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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