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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2006 Pil & Passion' 투어]'영원한 오빠' 그가 온다!

 40대 아주머니의 입에서 `오빠'라는 단어가 나오게하는 남자. 요즘 너도나도 붙이고 있는 ‘국민가수’라는 호칭은 이 사람 앞에서 그만 무색해진다. 바로 진정한 가왕(歌王) 조용필. 그는 지난 16일 안양을 시작으로 `2006 Pil & Passion' 하반기 투어에 돌입했다.

 음악인생 40주년이 되는 2008년까지 매년 다른 주제를 갖고 전국 투어에 나서고 있는 그가, 이번에는 `열정(Passion)'을 들고나온 것. 열정적인 그의 무대는 `국민가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확인시켜주기에 충분하다.

가수 조용필, 이름 석자만 나와도 온 국민이 열광을 하고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거의 대다수 그를 최고의 가수라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콘서트를 보면 대번 알 수가 있다. 조용필은 누구보다도 훌륭한 가창력을 지녔을 뿐더러 노래를 부를 때 열정을 다해, 누구도 흉내 못낼 열창을 하는 것이다. 한곡 한곡 부를 때마다 신들리듯 부르는 그의 열정. 보는 모든 이도 다른 생각을 일절 하지 못할 정도로 시선 집중으로 온통 마음이 그에게 빼앗기고 만다. 안으로 삼키는듯하면서도 또다른 출구를 통해 감성을 토해내는듯한 조용필만의 고난도 창법은 실로 경이롭다. 그는 가슴을 울려 풍성한 소리를 내고, 목의 울림만이 아니라 몸 전체를 울리는 창법을 터득했다. 그래서 그가 노래하는 모습은 마치 `작은 거인'이 포효하듯 열정적이다. 저음에서 중음, 고음역 모두에서 배음의 수위가 일정하게 고루 잘 빠지는 점도 그가 가수로서 돋보이는 부분 중 하나다. 고음에서 강하게 뻗어나가면서도 깨끗한 음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조용필만의 내공이다.

조용필은 1950년 3월21일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현재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가요계의 거물, 조용필도 어린 시절에는 앞에 나서서 노래를 불러본 적이 거의 없던 평범한 소년이었다고 한다. 중학교때 비틀스와 벤처스의 음악에 심취해 자연스레 기타를 잡게 됐지만, 그의 음악인생이 처음부터 쉽게 풀리지는 않았다. ‘딴따라’를 반대하던 아버지때문에 68년 경동고를 졸업한 후 결국 집을 뛰쳐나와 친구들과 ‘애트킨즈’라는 밴드를 만들면서 음악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미8군에서 외국 음악을 접하는 등 음악활동을 하면서 실력을 키웠고, 1971년 그룹사운드 경연대회에서 가수왕상을 받는 등 촉망받는 뮤지션으로 성장했고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돌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끄덕없을 것 같던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일장춘몽처럼 대마초 문제로 발이 묶여 기약없는 암흑기를 보내야 했던 것. 그러나 1970년대의 마지막 3년의 시간이 자양분 혹은 쓰디쓴 보약이 되어 그를 단련시켰다는 점은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그가 민요와 창에 관심을 갖고 목을 수련했다는 얘기는 하나의 사족일테다. 1979년말 대마초 연예인에 대한 해금조처로 자유를 얻은 조용필은 1980년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를 담은 앨범을 지구레코드에서 내놓았다. 그후 80년대는 그야말로 조용필의 시대였다. 그는 최다 ‘최고 인기 가수상’을 수상하면서 가요계 신기록을 수립했다. MBC ‘10대 가수 가요제’ 가수왕 수상 총 6회(80·81·83·84·85·86), KBS ‘가요대상’ 최고인기가수상 수상 총 4회(81·82·83·85), TBC ‘방송대상’ 최고 가수상 총 11회 등이 그것. 하지만 그는 87년 이후 후배들을 위해 “연말결산 가수왕을 사양한다”고 선언하면서 TV 중심의 음악활동에서 콘서트 위주로 음악활동을 바꾸었다. 그런 과정들을 통해 조용필은 거의 모든 세대와 계층을 아우르는 슈퍼스타이자 지존으로 우뚝 섰으며, ‘엔터테이너로서 가수’의 역할뿐 아니라 ‘밴드의 리더로서 로커’의 길도 병행했다. 포지션별로 최고의 연주자들로 밴드 `위대한 탄생'을 결성해 방송과 라이브 공연에 섰던 점은 오늘날 그의 쉼없는 공연 활동을 예시하는 것으로 좀더 평가받을 필요가 있다.

한편 가수인생의 화려함과 달리 그의 사생활은 그리 화려하진 않았다. 한창 인기가 치솟던 80년 초반에 그는 전 국회의원의 딸과 결혼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이별했다. 한동안 혼자 살던 그는 안진현씨와 94년 재혼했다. 하지만 안씨는 지난 2003년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만다. 두 번의 결혼이 비극적 종말을 맞고 만 것이었다. 그는 아내를 그리워하며 추모곡 ‘진(珍)’을 내기도 했다.

조용필은 오는 10월 21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다시 우리를 찾아온다. 특히 이번 콘서트는 수익금 일부를 국제백신연구소(IVI) 기금으로 전달할 예정이어서 더욱 뜻이 깊다. 국제백신연구소는 한국에 본부를 둔 유일한 국제기구로 각종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전세계 빈민과 아동을 위해 백신을 개발하는 단체. 국제백신연구소의 후원금 모금에 관심이 많았던 조용필은 연구소의 대외 홍보지원 요청에 흔쾌히 승낙했다. 콘서트를 통해 사랑을 전하고 열정을 발산하는 그는, 또다른 새로운 신화창조를 향해 오늘도 계속 뛰고 있다.

http://www.kyeongin.com/news/articleView.html?idxno=30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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