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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탄생’ 의 서막, 김 트리오

한국팝의사건·사고60년 (38) 김대환과 조용필


▲ 사진 ‘김 트리오’의 유일한 음반 사진

슈퍼스타 조용필의 무명 시절을 거슬러 올라가면 만나게 되는 중요한 인물이 있다.

꼭 한 달 뒤면 타계 2주기를 맞는 고 김대환(1933~2004)이 주인공이다.

한편으로 김대환은 쌀 한 톨에 반야심경 283자를 새겨 넣어 기네스북에 오르고

도올 김용옥도 찬탄한 세서미각(細書微刻)의 달인으로 기억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의 이름은 노년에도 검은 가죽옷 차림에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다닌

기인 바이커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실제 그의 장례식에 일군의 바이커들이 조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날 조문객의 주축은 음악인들이었다.

김대환은 무엇보다 한국 대중음악사에 큰 족적을 남긴 드러머이자 타악기 솔리스트였기 때문이다.

미군 클럽의 하우스 밴드 출신의 무명 뮤지션 조용필을 1971년 중앙무대로 ‘픽업’한 것도 김대환이었다.

당시 신중현이 이끌던 ‘퀘션스’가 해산한 후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나 ‘크림’ 같은 슈퍼 트리오를 구상하던 김대환은

‘리드 미 온’을 호소력 있게 부르던 조용필과 그룹 ‘아이들’에서

강렬한 기타 연주를 뿜어대던 최이철을 영입하여 ‘김 트리오’를 결성했다

(뒤에 ‘연안부두’를 부른 김 트리오와는 이름만 같을 뿐 다른 그룹이다).

1970년대 말 인기 가수와 기타리스트로 각각 가요계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되는

조용필과 최이철이 한 그룹에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거니와 이들이 한쪽엔 기타,

다른 한쪽엔 베이스를 메고 번갈아 가며 연주했다는 후일담도 전설적이다.

  

▲ 1971년 열린 ‘선데이서울컵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에 출전할 당시
‘김 트리오’의 모습. 왼쪽부터 최이철, 김대환, 조용필.

  
‘김 트리오’는 1971년 5월 제3회 그룹 사운드 경연대회에 출전했고

조용필은 가수왕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당시 그룹 사운드 협회 회장이었던 김대환은 김 트리오의 순서 때 직접 무대에 올라

드럼을 연주함으로써 조용필의 가수왕상 수상을 이끌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게

당시 현장의 논란이자 공공연한 후문이다.

어쨌든 이를 계기로 조용필은 음반을 녹음하고 가요계에 데뷔하게 되었고,

그 결과는 지난 회에 살펴본 바와 같다.

최이철은 이미 ‘아이들’ 시절 김대환의 막후 지원으로 리코딩 데뷔를 한 바 있었다.

그런데 ‘김 트리오’도 음반을 남겼을까.

1972년에 녹음한 연주 음반 <드럼! 드럼! 드럼! 앰프 기타 고고! 고고! 고고!>가

오늘날 고가의 희귀 음반으로 남아 있다.

비틀스, 호세 펠리치아노 등의 커버곡이 다수를 이루는 이 음반은

당시 ‘김 트리오’의 ‘연주 본색’의 일부만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기타리스트’ 조용필의 연주를 만끽할 수 있는 매우 드문 음원들이며,

이와 함께 김대환의 폭발적인 드럼 연주, 최이철 대신 들어온 이남이의 베이스 연주,

그리고 세션으로 참여한 강태환의 재지한 색소폰 연주를 한데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음반이기도 하다.

음반을 발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 트리오’는 해산되었고,

조용필은 군입대 했고,

이남이는 최이철의 ‘영 에이스’에 합류했다.

조용필, 최이철, 이남이 등의 가요계 데뷔를 주선했던 김대환은 ‘김 트리오’를 끝으로

그룹 사운드 활동과 멀어졌고,

몇 년 뒤 강태환, 최선배(트럼펫)와 전설적인 프리 재즈 밴드 ‘강 트리오’를 결성해 다시 등장했다.

1980년대 이후 김대환은 단순한 드럼 연주를 떠나 손가락 마디마다 북채를 쥐고

독창적인 타악 연주를 들려주는 거장 솔리스트로 해외에서 먼저 각광받게 된다.

조용필은 그룹 ‘25시’의 보컬을 거쳐 자신의 그룹 ‘그림자’를 결성해 활동했다.

1976년 트로트 고고로 재편곡해 녹음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뒤늦게 빅 히트하며

서광을 맞이하는 듯했으나 대마초 흡연 혐의로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아 여지없이

어두운 시절을 보내야 했다.

1978년 초 대마초 연예인에 대한 유흥장 출연 해제 조치로 겨우 ‘생업’에 나설 수 있게 된

그가 전면적인 음악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분’이 시해된 1979년 10.26 사태 이후였다.

이용우/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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