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Cho Yongpil Fanclub Mi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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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소개ㅣ김용길 기자는


넘쳐나는 뉴스를 다 볼 수는 없습니다. 많이 아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것만 못합니다.

정보의 홍수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으려면 자기만의 고집과 '개똥철학'이 필요합니다.

'뉴스공장'신문사 편집국엔 수십 명의 편집자들이 버티고 있습니다. 요리사마냥 도마 칼 양념통을 들고 펄펄 살아 숨쉬는 뉴스들을 맛있게 멋지게 요리하고 있습니다. 쇄도하는 기사들을 저울에 달아 무게를 잽니다. 뉴스가치에 맞는 제목을 뽑고 레이아웃을 합니다. 마감시간은 저승사자처럼 뒤통수를 툭 건드립니다. 편집자는 뉴스요리를 마감한 후 벤치에 앉아 한 호흡을 길게 가다듬습니다.

여유를 찾고 싶습니다. 여러분을 '편집자의 벤치' 로 잠시 초대합니다.


              
              
                
                                












* 환 절 기



제 몸에 남겨진 엽록소를 다 태워서 한껏 붉어진 이파리는 조락을 준비합니다. 건듯 바람불면 쏟아져 내리는 낙엽은 빗줄기처럼 가슴을 적십니다. 다가오는 겨울을 미리 알아챈 산하는 비울 건 다 비우고 가라앉힐 건 다 내려놓고 있습니다. 늦가을이 환절기와 버무려져 스산할 때 독자님 귓전에 어떤 노래가 스쳐지나 가세요?



제겐 해마다 조용필입니다. 조용필을 건너야 겨울로 들어섭니다. 한국인에게 조용필의 노래는 과거를 비추는 등대이며 신호등입니다. 그의 노래는 추억을 되살리는 녹음장치고 옛 기억이 갈피갈피 끼워진 사진첩입니다. 운전 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노래 한 곡에 가슴이 부르르 떨립니다. 그 시절 그 사람 그 추억이 파문처럼 번져옵니다.



80년대를 청춘의 江으로 건넜던 사람들은 압니다. 조용필의 노래는 한국인을 위로하고 감동시키는 문학이었음을. 단순한 유행가요가 아니라 지친 가슴을 어루만지고 처진 맥박을 뛰게 했습니다. 스쳐가는 대중가요 가사가 아니라 한국어의 찰진 맛을 절감하는 메타포였습니다. 누구나 굴려야하는 실존의 쳇바퀴. 生의 수레바퀴를 끄는 우리 모두에게 그의 절창은 격려의 다독임이었습니다.



* 조용필 가요문학



1950~60년대에 태어난 한국의 전후세대는 대부분 '조용필 가요문학'의 수혜자가 됩니다. 그의 정련된 노래 가사 하나 하나에 포섭되고 맙니다. 유행처럼 휩쓸었던 라디오 FM 팝송의 파도에도 ‘조용필 문학’의 정서적 울림은 굳건했습니다. 기성세대들은 혼이 내뿜어지던 '창밖의 여자'에게 위로 받고 술 한 잔을 기울였습니다.



청춘들에게 '작은 거인' 조용필의 도전적 음악성은 충격이었습니다. 기존 트로트나 포크송 위주 한국 가요지형을 뒤흔든 혁명성의 요람이었고 최초로 오빠부대가 태어났습니다. 바야흐로 스타와 팬이 서로 조응하는 공식적 대중문화가 태동했습니다. 조용필 팬클럽은 한국 팬클럽의 원조이며 팬덤 현상의 첫 씨앗이었습니다.



조용필은 1980년대 후반부터 TV 방송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오직 라이브 무대로만 팬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인터뷰 토크쇼 광고 책 영화 등 일체의 별도 채널을 만들지 않고 노래로만 우리들에게 다가옵니다. 정교하게 준비된 무대 예술로만 그의 발걸음은 드러납니다.



2003년 8월 30일 토요일 밤. 비가 쏟아지는 여름의 끝자락. 서울 잠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드넓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5천명은 거센 빗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마음으로 한 시대 가객을 맞이합니다.   [ 내 나이 서른다섯, 18세 소녀로 돌아갑니다. 내게 허락된 단 하루 ] . 조용필 데뷔 35주년 기념공연‘The History’의 멋진 포스터 카피입니다. 국내 가수 단독공연 사상 최대규모 4만5천석 완전 매진.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 ~ ” 4만 관객 모두가 한 목소리로 부르는 감동의 절창이 흐릅니다.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나도 술잔도 함께 울었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지나간 청춘의 혼돈과 가슴 한 켠에 묻어둔 못 다한 사랑이 되살아나는지 Q를 합창할 때 관객 모두는 눈시울이 시큰하고 목젖이 울컥하는 분위기입니다. 조용필은 말합니다. “꿈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저는 이것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느껴서 열심히 하다보니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35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지켜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 2008년 데뷔 40주년  



내년 2008년은 조용필의 데뷔 4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는 4월쯤 또다시 서울 잠실 메인스타디움에 섭니다. 기네스북에 등재될 만한 초대형무대를 펼친다고 합니다. 첨단 영상예술과 세계에 과시할만한 한국의 IT가 접목된다고 합니다. 방송에 기대는 연예인이 아니라 철저한 무대 공연만으로 승부하는 아티스트입니다. 그는 전설로 굳혀지기를 거부하고 영원한 현역으로 남고자 합니다.



경기도 화성시. 그의 고향도 거듭나고 있습니다. 화성시는 봉담읍 일대 20만평에 ‘조용필 종합예술연구소’와 대중음악당, 국악당, 오페라극장 등을 갖춘 ‘종합예술타운’을 조성하기로 했습니다. 연구소는 세계적 수준의 녹음시설과 조명 무대시설, 강의시설 등을 갖춘다고 합니다. 궁평항 일대에는 월드뮤직페스티벌을 매년 치를 수 있는 야외 음악공원을 꾸밉니다. 화성시는 ‘연쇄살인’이란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실히 지우고자 합니다. 이제 국민들은 華城하면 조용필을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그가 불렀던 180여 곡들은 단순한 가요가 아닙니다. 고달픈 현대사 속 휘청거렸던 우리 삶을 대변한 대서사시입니다. 황금빛 노을 속에서 뚜벅 뚜벅 걸어 나온 거인이 시대의 고비와 힘겨운 심정을 어루만져 주었기에 우리는 술 한 잔 속에 다 녹이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청춘의 꿈을 노래하고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했습니다.



~ 외로워 마세요 그대 곁에 내가 있어요, 물밀 듯 다가오는 지난 추억이 지금도 아름다워요. 이 밤이 새고 나면 가야하지만 그것을 이별이라 하지 말아요,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우리 마음 함께 있으니 그대, 그대, 정말 외로워 마세요 ~ (외로워 마세요)



~ 바람 속으로 걸어갔어요, 이른 아침의 그 찻집 마른 꽃 걸린 창가에 앉아 외로움을 마셔요.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뜨거운 이름 가슴에 두면 왜 한숨이 나는 걸까, 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그대 나의 사랑아...(그 겨울의 찻집)



~ 입 맞추면 고운 그 입술 울먹이는 슬픈 그대여, 바람 속에 지는 그대의 만남 순간에 머물렀을 뿐, 떠나버린 날들을 이제는 사랑이라 부르지 않으리... 영원히~ 기약 없는 이별 뒤에 찾아와 추억의 서러움만 남기네, 미워할 수 없는 그댈 지우며 눈감은 내 가슴엔 눈물이 ~ (추억속의 재회)



낭만은 복고의 얼굴로 찾아오지요. 추억은 노래 한 자락의 흥얼거림으로 스며들지요. 우리가 듣고 싶었던 것은 가객의 목소리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시절을 살아냈지만 아직 못 다한 아쉬움, 회한의 추억, 붙잡고만 싶은 그리움 조각들을 되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조 - 용 - 필을 통해 “어제 오늘 그리고 재회”를 기약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국의 가요 역사는 '위대한 가객' 이전과 이후로 획을 긋습니다. 그는 펄펄 살아 숨쉬는 무대를 중단 없이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는 한국 최고의 '문화상품'입니다.  그가 있어 20세기도 행복했고 그가 있어 21세기도 행복할 것입니다.





harrison@donga.com








출처: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s_work=view&tcode=02049&no=5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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