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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터뷰] 평양공연 마친 '국민가수' 조용필

"처음엔 벽같던 북(北)청중들, 마음의 문 열더라"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일 마쳐 마냥 행복 북(北)CD 100장 들어…
다음엔 편곡해 부를것 백두산, 5·1경기장서 야외공연 했으면
최승현기자 vaidale@chosun.com


“내 얼굴, 좀 부었지? 지난밤에 아주 푹 잤어”.

26일 오전 10시, 서울 서초동 집에서 만난 ‘가왕(歌王)’ 조용필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베이지색 셔츠에 갈색 반바지를 입은 그는 방금 일어난 듯 길게 기지개를 켰고 천천히 아침식사를 했다.

처음 가 본 북한에서,

숨 막힐 듯한 절창(絶唱)으로 그곳 주민들의 눈물을 이끌어낸 ‘조용필 평양 2005’ 주인공의 또 다른 모습이다.

“9월 10일부터 시작될 ‘필 앤 피스’ 월드컵 스타디움 투어를 위해 당장 오늘부터 미팅에 들어간다”고 했다.


▲ 지난 23일 평양에서 열린 단독 콘서트 '조용필 평양2005'를 성공적으로 마친 조용필은

이번 공연을 자신의 가수 인생에서 가장 큰 일로 꼽으며

"꼭 북한 관객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이덕훈 기자leedh.chosun.com

그러나 평양 얘기가 나오자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어제 돌아왔는데,

공연한 것이 꽤 오래 전 일처럼 생각된다”며

“워낙 많은 생각과 느낌들이 스쳐갔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이번 공연은 그의 가수 인생에서

“가장 큰일”이었을 뿐 아니라,

남과 북으로 갈려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이 땅의 현대사에서도 ‘큰일’이었다.
공연장을 찾아 함께 노래하며 기립박수를 보냈던 7000여명 평양시민을 뒤로 한 채,

들뜬 표정으로 남행(南行)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에게 민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찼던 지난 며칠은 어떤 의미였을까?


―‘조용필 평양2005’가 끝난 지는 사흘, 북에서 돌아온 지는 하루가 지났다. 지금 기분은 어떤가?


“돌아오면서 마냥 행복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일을 무난하게 해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대중이 아니라 민족이라는 이름 앞에서 노래한 것이었다.

이 땅을 갈라놓은 벽을 넘어 북쪽 동포들 앞에서 노래한다는 것 자체가 큰 의미였다.”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 아·태평화위원회 등 고위관계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 ‘백두산이나 5·1경기장(15만명 관객을 수용하는 북한 최대 경기장)에서 한번 공연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

조용필 선생님은 민족가수다’라는 얘기도 있었다.

김영대 민화협 회장은 공연이 끝난 뒤 ‘이 정도까지인 줄 몰랐다.

당신이 왜 자꾸 야외를 고집했는지 알겠다’고 하더라.

리종혁 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은 공연 전날 만찬에서 ‘북측 관객은 공연 도중 떠들거나 박수를 치면 주인공과 옆 사람에게 큰 결례라고 생각한다.

그 점을 이해해달라’고 말해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럼 다시 제의가 오면 북에서 공연을 할 생각인가?


“지금 생각은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북한에 대해 막연하게 갖고 있던 긴장감이 풀어졌다.

다음에는 참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야외에서 시원하게 또는 봉화극장 같은 곳에서 장기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공연 중, 눈시울을 붉히는 관객들이 있었다.

그들이 우리 대중가요의 정서를 정말 잘 이해했을까.

관객이 눈물 흘리는 걸 직접 봤다고 했는데 어떤 심정이었나?


“음악을 듣고 눈물 흘린다는 것은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다.

노래에 대해 충분히 이해했기에, 마음이 통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음악을 통해 그들과 내가 하나가 된 것이다.

그게 이번 공연에서 가장 중요하다.

눈물 흘리는데 옆의 눈치 보겠나?

서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던 순간이다.”


―음악평론가 이영미씨는 한 인터넷 언론의 칼럼에서

“북한 주민이 아는 노래를 더 불렀어야 했다. 이번 공연은 남한 관객용이었다”고 주장했다.


“북한 노래는 ‘자장가’ ‘험난한 풍파 넘어 다시 만나리’ 2곡이면 충분했다.

평양에서의 공연이라도 내가 평상시에 하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공연’을 하지 않는다면 북한 관객을 만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상황에 따라 구색을 맞추기보다 제대로 된 조용필 공연을 북한에 선사하고 싶었다.

북한 노래는 북측 관객을 위한 서비스 차원이었다.

그리고 첫 공연이기 때문에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걸 쏟아내는 게 중요했다.

다시 공연을 한다면 조금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북측에서는 ‘다음 공연에선 1950년대 이전의 가요와 북한 가요 등을 많이 노래해 달라’고 했다.

또 북한 무대에 선다면, 이런 요청을 일부 수용하되,

내 스타일로 새롭게 편곡을 해서 들려줄 것이다.”


―공연 초반부, 육중하고 화려한 영상과 소리에 관객들이 미동도 하지 않았는데….


“지금 와서 말인데,

그때 정말 당황했다.

무대에 나가면 늘 열광하는 객석의 표정이 당연했는데,

이건 완전히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

벽에다가 노래하는 느낌이었으니까.

‘위대한 탄생’ 멤버들한테 편하게 하자고 말해놓고서는 내가 바짝 긴장해 있었다.

‘태양의 눈’은 최근 노래니까 그렇다치고 ‘단발머리’ ‘못찾겠다 꾀꼬리’에서도 조용할 때는 식은땀이 나더라.

하지만 처음이라서 그렇지 시간이 지나면 호응이 올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국 공연에서보다 영상과 조명이 더 압도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북한 주민들에게 남한에서는 이런 첨단기술을 활용한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리허설 하는데, ‘태양의 눈’ 영상을 보고 안내원이 ‘헉~’ 하며 깜짝 놀란 표정이더라.”


―공연이 성사되기까지 1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북측으로부터 어떤 연락을 받았나?


“지난 4월 공연이 거의 확정될 듯하다가 연기된 직후, 민족화해협의회 관계자가 편지를 보냈다.

‘이 공연은 어떻게든 우리가 꼭 성사시킬테니까 걱정하지 말라.

연기된 것은 정말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공연 확정된 다음에는 서울에서 리허설을 하는데 전화를 걸어 ‘평양시민이 모두 기다리고 있다’고 격려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결국 만나지 못했나?


“못 만났다. 대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게 아닐까?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결례니까.”


―북한과 북한 주민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공연 준비와 여러 행사들로 평양을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마지막 날 차로 30분 정도 돌아본 게 전부다.

대신 안내원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박하고 때가 안 묻은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경제나 문화의 차이가 크긴 컸다.

10월 10일 당 창건 60돌 행사 때문에 평양 건물들 색을 다 바꾼다고 하더라.

그리고 그곳 사람들은 통일에 대한 관념이 무척 강했다. 호텔을 떠날 때,

북측 관계자들이 함께 ‘통일의 노래를 많이 불러주세요’라고 했다.”


―음악은 남과 북의 화합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정치와 달리 문화예술의 교류는 민간에서 시작된다.

특히 대중문화는 사람이 살아가는 데 가장 기초적인 것이기 때문에 남과 북이 서로 가슴을 열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바탕이 될 수 있다.

대중문화의 활발한 교류는 남북 화합의 핵심이다.”


http://www.chosun.com/culture/news/200508/20050826036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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