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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도 '오빠부대'도 변함이 없었다
조용필 서울콘서트 감상기... '가왕'과 함께 떠난 추억으로의 여행


ⓒ 천호영

12월 8일, 그날은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올 봄부터 지역을 돌아온 'Phil & Passion' 콘서트의 서울 입성 첫날.
공연장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새삼 3년 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2003년 8월 30일 서울 잠실 주경기장.
'조용필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 현장에는 공연 내내 거센 빗줄기가 퍼부었습니다.
그럼에도 4만5천여명 관객은 폭우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필,
그가 있었기에 비에 젖고,
노래에 젖고,
추억에 젖어들 수 있었던 그날….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다보니 어느새 올림픽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저녁 7시 10분.
공연 시작까지 50분 가량 남아 있었습니다.
혹시 늦을까봐 아내와 함께 차 안에서 샌드위치로 저녁을 해결했는데,
너무 일찍 왔나?

하지만 이미 부근 주차장은 다 차 있었습니다.
공원 도로 양옆에 즐비한 자동차 틈을 비집고 주차했습니다.
차에서 내리자 아주머니 한 명이 우리를 잡습니다.
야광봉을 파는 아주머니였습니다.
"오늘의 준비물, 이건 기본이에요!" 혹시나 하는,
급한 마음에 그냥 지나쳤습니다.


▲ 공연장 앞 광장에서는 조용필 팬클럽 막사가 팬들을 맞고 있었다.  
ⓒ 천호영

'우리는 조용필 팬이다!'

체조경기장 앞 광장 역시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40대 중반인 제가 젊어 보일 정도(?)로 중장년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단체로 온 듯한 중년 여성 무리에서 소녀처럼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 중 한 여성은 팔에 깁스까지 했습니다.
손을 맞잡은 노부부, 3대가 함께 온 듯한 가족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모두 약간 상기된 모습들입니다.

광장 입구에서는 우동·김밥 등을 팔고 있었습니다.
중년의 남녀들이 마치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수다를 떨며 바삐 젓가락을 놀립니다.
저도 정말 오랜만에 핫도그를 하나 사 베어 물었습니다.
빨간 케첩까지 둘렀건만 예전 그 맛은 아니었습니다.

광장 한 쪽으로는 오프라인 티켓교환처,
그리고 '이터널리' '미지의 세계' '위대한 탄생' 등 조용필 팬클럽 막사들이 보입니다.
한 곳은 '우리는 조용필 팬이다!'라고 큼지막하게 쓴 플래카드를 내걸었습니다.
또 한 곳은 커피를 판매해 '질병에 시달리는 어린이를 위한' 후원금을 모으고 있기도 했습니다.


▲ 공연장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 천호영

공연 30분 전 체육관에 들어섰습니다.
입구를 지나는데 공연장에서 비치는 조명으로 앞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마치 제가 무대에 오를 것처럼 가슴이 벌써부터 쿵쾅거리기 시작합니다.

객석을 둘러보니 이미 절반 정도 채워져 있습니다.
그 객석을 '가자! 40주년을 항하여 팬클럽 이터널리와 함께'
'오빠~ 영원히 사랑해요♥'
'우리가 행복한 이유 조용필'
'열정의 결정체 조용필'
'대한민국 최강밴드 위대한 탄생 화이팅' 등 플래카드들이 감싸고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우리 자리 전후좌우로 모두 중년 부부 관객이었습니다.
앞 자리 부부는 공연을 온몸으로 맞을 채비를 하는 것일까요.
서로 어깨를 주물러주기까지 합니다.
또 한 중년 여성이 목소리를 높여 누군가를 찾습니다.
"미순아, 여기!" 머리가 희끗한 여성이 반갑게 동무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이 신선했습니다.

다시 '단발머리' 그 시절로 돌아간 오빠부대들

저녁 8시 10분.
갑자기 조명이 모두 꺼졌습니다.
이제 시작하나보다 생각하는 순간, "꺄악~" "오빠~".
반주가 시작되기도 전 비명에 가까운 함성들이 먼저 터져 나왔습니다.
다시 조명이 켜지고,
드디어 그가 등장했습니다.
흰색 블라우스에 검은 바지,
직접 기타 연주를 하며 첫 노래를 선사합니다.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중년의 여성들이 '단발머리' 그 소녀들로 돌아가는 데는 채 한 소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못 잊을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
('단발머리') "바보처럼 텅 빈 가슴을 그리움으로 가득 채우고"('자존심') "
허전한 마음 씻어낼 수 없어 아쉬워하면서 떠나네"('마도요'). '단발머리'를 시작으로 '자존심' '마도요'가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 원조 오빠부대들이 '영원한 오빠'의 노래에 맞춰 환호하고 있다.  
ⓒ 천호영

그리고 '여행을 떠나요'까지 4곡을 이어 부른 그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인사를 합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꺄악~. "반갑습니다." 다시 꺄악~.

"참, 여러분은 변하지도 않아요. 10년 전, 20년 전 그대로예요. 나만 변했나?"

객석에서 큰 목소리로 화답합니다. "아니요!" "오빠도 그대로세요!"

실제 그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3년 전,
아니 20년 전 그대로였습니다.
아내 역시 "나이가 먹는 데도 어떻게 목소리가 그대로지?"라고 감탄합니다.
관객들도 오빠부대 시절 그대로였습니다.
아니 '대한민국 아줌마 파워'까지 보태져 더 극성스러워진 듯(?)했습니다.

"오늘은 저의 노래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그때 그 시절,
그 추억을 생각해보세요.
오늘 32곡을 부르는데…."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소리가 쏟아집니다.
"많은 곡 해도 왜 그 노래는 안 하냐고 그러실 수 있는데,
만약 그렇다면… 내년에 또 오세요." 웃음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공연 제목 역시 '여행을 떠나요'라 붙였다.
그는 이번 공연을 앞두고 기자회견에서
"정말 '콘서트' 공연을 하고 싶다"면서
"무대는 심플하게 하고 히트 곡으로만 무진장 내달리려고 한다,
공연을 오려면 단단히 뛸 준비를 하고 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습니다.
정말 그랬습니다.

32곡을 내달리다

그는 앙코르 곡을 포함 32곡('여행을 떠나요' 2번)을 내달렸습니다.
1집 음반에서 16집까지 골고루 편성했지만 주로 80년대 히트 곡들이었습니다.
특히 85년에 발매된 7집과 8집에서는 각각 6곡, 4곡을 들려줬습니다.
당연히 그 시절의 정서가 공연장을 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무대는 35주년 공연에 비해 단출했습니다.
효과ㆍ이벤트보다는 노래에 충실하려는 그의 의도가 반영된 까닭입니다.
효과라고는 무대 뒷면과 좌우 양쪽의 액정 화면,
그리고 조명과 종이 꽃가루 정도였습니다. 또 공연이 끝날 때까지
초대가수 한 명 없이 그와 '위대한 탄생',
그리고 여성 코러스 2명만이 무대를 지켰습니다.


▲ 조용필의 폭발적 가창력은 세월의 흐름과 무관했다.  
ⓒ 천호영

하지만 그때 그 시절로,
추억의 여행을 떠나는 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체육관 공연이라서 그런지 음향이 때때로 뭉개져 들렸습니다.
그도 방음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했는데,
체육관의 한계를 완전히 뛰어넘을 수는 없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곳 무대에 섰던 사람은 다름 아닌 '가왕(歌王)' 조용필이었습니다.
때로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다가,
때로는 봄바람처럼 어루만지는 그의 노랫소리에 객석은 그때마다 파도와 같이 출렁였습니다.
열창은 열광을 불러오고,
열광은 광란과의 경계를 넘나들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그가 '꿈'을 부릅니다.
"저기 저 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저도 그의 노래를 부르면 괴로움을 견뎌온 시절이 있었습니다.
조명이 별빛처럼 점점이 박힙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나는 너 좋아', 그리고 그는 '바람이 전하는 말'을 빌어
"작은 일에 행복하고 괴로워하며 고독한 순간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착한 당신 속상해도 인생이란 따뜻한 거야"라고 속삭입니다.
또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 없는 '바람의 노래'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 했던 친구들은 어디에?

'못찾겠다 꾀꼬리'가 울려 퍼지자 분위기가 순간 바뀌었습니다.
"나는야 오늘도 술래."
갑자기 앞자리 원조 오빠부대 몇 명이 벌떡 일어나 야광봉을 흔들며 춤추기 시작합니다.
"나는야 언제나 술래."
야광봉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한 여성은 생수병을 마구 흔들어댑니다.
"얘들야 얘들아."
넥타이를 맨 중년 남성도 막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들 모두 지금 순간만은 '술래잡기'를 하던 그 시절 그 '애들'입니다.

'그대여'를 부른 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위대한 탄생' 멤버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했습니다.
음악동지로서 그와 고락을 함께해온 그들에게 박수가 쏟아집니다.
무대가 돌출되며 그가 객석 사이로 들어왔습니다.


▲ 조용필이 돌출무대로 나오자 객석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 천호영

'친구여'를 모두 합창했습니다.
노랫말을 따라 "슬픔도 기쁨도 외로움도 함께"했던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그런데 "부푼 꿈을 안고 내일을 다짐하던 우리 굳센 약속"은 어디에 있는 걸까요.
1절이 끝나자 누군가 꽃다발을 건네주고,
그를 지켜보던 한 중년 여성은 팔짝 팔짝 뜁니다.

피아노 반주에 '창밖의 여자'가 실렸습니다.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피를 토하는 듯한 그의 창법에 전율이 느껴집니다.
'허공'이 그 뒤를 받았습니다.
"잊어야 할 그 약속 / 허공 속에 묻힐 그 약속"('허공'). '허공'을 즐겨 부르는 정치인들이 많다던데….
'Q'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를 부른 그가 무대에서 잠시 사라졌습니다.

'위대한 탄생'이 '고추잠자리'를 부릅니다.
그가 검은 에나멜 재킷으로 갈아입고 다시 나타났습니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봐." 관객들이 어린아이처럼 깡충깡충 뛰기 시작합니다.
이는 '모나리자'까지 계속됐습니다.

그리고 '들꽃'. "돌 틈 사이 이름도 없는 들꽃처럼 핀다 해도 내 진정 그대를 위해서 살아가리라".
앞서 어깨를 주무르던 부부가 다시 눈에 들어왔습니다.
노래에 빠져든 듯 어느새 아내가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있습니다.

공연 수익금 일부 '국제백신연구소'에 후원

'비련'의 익숙한 전주가 펼쳐집니다.
그런데 이번엔 노래보다 '꺄악~'하는 효과음(?)이 좀더 빨랐습니다.
그가 "도움이 안돼"라고 불평(?)합니다.
그리고는 "기도하는…."
그 뒤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대로입니다.

'서울 서울 서울'을 부르는 동안 객석의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이 거리… 아름다운 얼굴들." 모두 추억에 젖어든 얼굴들입니다.
그리고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한목소리로 따라 부릅니다.
뒷자리의 한 아빠는 아이를 등에 업은 채 몸을 마구 흔들어댑니다.
'잊혀진 사랑' '강원도 아리랑'에서도 그의 춤은 멈출 줄 모릅니다.


▲ 무대 영상에 조용필의 기타 연주 모습이 비쳐지고 있다.  
ⓒ 천호영

무대 영상에 두 개의 창이 떠오르고, 눈이 내립니다.
'그 겨울의 찻집'입니다.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 아아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사랑 때문이 아니더라도 살다 보면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나는 경우가 많지 않나요?

그가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독백을 쏟아냅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그렇죠,
그렇게 갈 수는 없는 거죠.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든 안 원했든 지금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후렴구 때 영상에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얼굴 옆으로 'IVI의 친구가 되어주세요'라는 글자가 비쳐집니다.
그리고 백신, 생명, 희망, 미래… 단어가 하나씩 새겨집니다.
그리고 보니 의자 뒷편 좌석표에도 'IVI와 함께하는 조용필 콘서트'라고 써 있습니다.

그는 이번 공연 수익금의 일부를 IVI(국제백신연구소)에 후원한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실상을 전해 듣고 그 자신이 직접 IVI에게 공연 '주최'로 참가하라고 권유했다고 합니다.
공연장 로비에서도 후원자들을 모집하고,
팬클럽 회원들이 커피를 팔아 마련한 후원금도 어린이들에게 백신을 제공하는 데 쓰일 예정입니다.

노래는 '물망초'를 넘어 '미지의 세계'로 달려갑니다.
"이 순간을 영원히 / 아름다운 마음으로 미래를 만드는 우리들의 푸른 꿈… 하고 싶은 이야기 노래로 만들어요… 우리는 노래를 사랑하는 친구들".
이 순간, 그의 노래를 누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이 시간이 지나면 추억의 서러움만?

그는 공연의 마지막 곡으로 '청춘시대'를 선택했습니다.
"그래 바람이 될 순 없어 / 그래 낙엽이 될 순 없어 / 저 하늘의 태양처럼 우리들만의 청춘시대."
그는 자신의 노래를 통해 추억을 일깨워,
잠시나마 청춘을 돌려주고 싶었나 봅니다.
그날 그 현장에 있던 사람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청춘'이었습니다.

밤 10시 5분. 2시간을 숨 가쁘게 달려왔습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가 무대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물러날 관객들이 아닙니다.
목청껏 "앙코르!" "앙코르!"를 외칩니다.
그가 다시 무대에 등장해 '추억속의 재회'를 부릅니다.

"이 시간이 지나면 이제는 잊혀져간 꿈으로 남으리 / 영원히 기약없는 이별 뒤에 찾아와 추억의 서러움만 남기네."
정말 '이 시간이 지나면' '추억의 서러움만' 남을까 두렵습니다.
그같은 두려움을 '아시아의 불꽃'을 달래려 했을까요.

  
▲ 피날레. 조용필과 함께한 추억으로의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 천호영

"사랑도 하나 마음도 하나 우리의 숨결도 하나 / 여기 모여서 같이 가리라 / 우리의 노래를 부르리라."
그의 뒤에서 흰색 조명이 부챗살처럼 펼쳐집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여행을 떠나요'를 합창합니다.
모두 일어섰습니다.
무대도 객석도 하나입니다.
그 위를 하얀 종이꽃이 뒤덮습니다.

밤 10시 20분,
그렇게 아쉬움을 남긴 채 공연이,
조용필과 함께한 '추억으로의 여행'이 모두 끝났습니다.
영상으로 엔딩크레딧이 올라갑니다.
'위대한 탄생' 멤버 이름과 스태프 이름들이 올라갑니다.
이제 현실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한 중년 여성이 남편에게 얘기합니다.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거야? 오빠가 저 사람들 다 먹여 살리는 거잖아?".

공연장을 나오니 겨울비가 촉촉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내도 3년 전 그날이 기억났나 봅니다.
"어, 오늘도 비가 오네."
일회용 비옷을 팔고 있었지만,
왠지 비옷을 걸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종이박스 조각을 찾아 머리 위로 치켜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내와 함께 다시 겨울비 내리는 현실로 뛰어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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