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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ZM 2005-09-27] 조용필과 내 아버지

2005.09.27 18:22

ypc스타 조회 수:4573 추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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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과 내 아버지

해방 60주년을 맞은 2005년의 8월 23일, 한참을 밖에서 뛰어 놀다가 평양을 찾은 조용필의 공연을 보려고 시간에 맞춰 후딱 들어왔다. 함께 보신 엄마님은 "나훈아는 더 잘하는데...", 그리고 아버지께선 "열린 음악회보다 좀..."이라는 말씀으로 아쉬움을 토로하셨다. TV 중계의 한계인지 아니면 오케스트라가 동원되지 않아서인지 혹은 무대가 북인지라 호응도가 떨어져서인지, 그도 아니라면 류성 경기장 사운드 시스템의 결함인지, 다소 밋밋했던 초중반을 지나 '미지의 세계'와 '여행을 떠나요'가 나와서야 감탄할 수 있었고, 공연의 절정을 위해 배치해 둔 히든카드임을 알았다. 역시 무대의 사운드는 표 나게 로킹해줘야 한다. 그 장악력은 [좀 과장하자면] 언젠가 보고 기겁을 했던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의 공연 동영상과 닮아 있었다.

새삼 우리나라 음악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나만의 무지일까? 조금만 솔직해지자면, 그 또렷한 히트곡이 위치해 있는 자리가 어디인가를 [창피하게도] 나는 모른다. '모나리자'가 몇 집 수록곡인지, '허공'이 몇 년에 발표됐는지를 알려면 [부끄럽게도] 검색을 해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조용필의 '노래'만 대충 알고 있지 '음반'을 자세히 모른다.

히트 안한 곡들은 참 생소했고, 그래서 당연히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나는 가끔 크라잉 넛이 '말 달리자'를, 델리 스파이스가 '차우차우'를, 윤도현 밴드가 '먼 훗날'을, 그리고 조용필이 '단발머리'를 몇 번 불렀을까를 생각해 보곤 한다. 부르는 입장에서는 정말 지겹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그리고 수많은 청중들은 그 노래를 원한다. 듣고 들어도 질리지 않을 그 명곡들을 아주 절실하게 원한다.

보던 중 몇몇 레퍼토리들을 나도 모르게 따라 부르고 있는 게 갑자기 신기해졌다. 꽤 많았다. 조용필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절 나는 너무나 어렸으니, 굳이 외우려고 했던 것도, 아 기가 막힌다 혹은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다 싶었던 것도 딱히 없었는데 그냥 노래가 몸에 녹아 있었던 것이다. 조용필이 아니더라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내가 외우고 있는 곡들은 또 있겠지만, 이 소리 없는 강제력을 한 타스 이상으로 발휘하는 가수는 많지 않을 것이다.

국민가수는 단지 팬들의 지지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무관심한 이들에게까지 뻗쳐있는 은근한 힘을 가진 괴력의 가수여야 그 칭호가 어울리지 않을까. 여담으로 오늘 가사를 좀 깊게 음미해봤는데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그렇게 슬픈 내용인지 몰랐다. 대국민적 애환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그래서 조용필은 국민가수인 것이구나. 오늘은 없었지만 양인자가 작사한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뭐 말해야 입만 아플 것이고.

몇 살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나는 아버지와 함께 TV 속 조용필을 보고 있었다. 그때 흐르던 노래는 '꿈'. 나는 생생히 기억한다. 누워 계신 아버지의 눈 끝으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봤던, 그리고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충격적인 눈물을 곁눈질했다. 십년도 더 지난 오늘에 와서야 그때 아버지가 흘리던 눈물의 해명을 나는 들을 수 있었다.

산간벽지의 시골을 벗어나 도시에 와서 자리를 잡기까지 죽도록 고생을 한 자수성가 형 가장(家長)들 중에서, 이 노래 듣고 가슴 안 찡해지는 놈은 없었을 거라고 하신다. 환갑을 눈앞에 두고 있는 지금의 내 아버지는 눈물을 삼키는 방법을 터득하신 것인지, 아니면 말라버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표현은 못 하고 그저 둘 다 아니었으면 하는 어느 불효녀의 착잡한 마음.


조용필 '꿈'[1991]

화려한 도시를 그리며 찾아 왔네 그곳은 춥고도 험한 곳
여기저기 헤매다 초라한 문턱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
괴롭고도 험한 이 길을 왔는데
이 세상 어디가 숲인지 어디가 늪인지
그 누구도 말을 않네

사람들은 저마다 고향을 찾아가네 나는 지금 홀로 남아서
빌딩 속을 헤매다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먹는다
저기 저별은 나의 마음 알까 나의 꿈을 알까
괴로울 땐 슬픈 노래를 부른다
슬퍼질 땐 차라리 나 홀로 눈을 감고 싶어
고향의 향기 들으면서


  2005/09 이민희 [shamchi@naver.com]

http://www.izm.co.kr/spac_view.asp?key=6%26s_idx=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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