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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11월호] 조용필 콘서트 2005

2005.11.03 19:01

ypc스타 조회 수:4724 추천: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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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그대는 과연 명품입니다


1999 밀레니엄 콘서트- 세기를 넘어서
3부로 구성된 이 콘서트는 특이하게도 그 구분점을 사운드에 두었다. 1부는 ‘돌아와요 부산항에’와 ‘한오백년’으로 시작되는 70년대의 모노 사운드 무대. 무대는 이승만 시대부터 박정희 정권말기까지의 흑백 영상필름과 함께 다섯 방의 총성으로 끝난다. 그 총성은 1970년대와 그 이후의 시대를 가르는 것이기도 했고, 대중음악, 대중문화에 대한 편견의 벽을 깨는 것이기도 했으며, 21세기에 대한 희망의 축포이기도 했다.
2부는 ‘단발머리’의 경쾌한 스트레오 사운드로 시작되며 주옥같은 음악들을 쉴 새 없이 들려준다. ‘못찾겠다 꾀꼬리’ ‘여와 남’‘비련’‘물망초’ ‘친구여’ 등 끊임없는 히트곡 퍼레이드만으로도 8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3부가 시작되면서 또 한번 사운드의 변화가 오는데 그것은 그가 결코 80년대 최고의 가수로서 안주해 있는 것이 아니라 90년대, 나아가 21세기에도 여전히 발전하는 뮤지션임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마치 새로운 시대를 항해라도 하듯 앞으로 전진 해 나오는 배를 연상케 하는 무대 장치와 함께 오페라극장 전층, 구석구석을 감싸 안으며 돌아 들어오고 돌아 나가는 ‘추억 속의 재회’의 환상적인 서라운드 음향. 그것이 1999년 12월에 만난 진정한 조용필이었다. 대중 음악사에 또 하나의 기록으로 남게 된 이 공연은 수많은 화제와 의미를 품은 채 매년 말 볼 수 있게 된 ‘명품 공연’으로서의 서막을 열게 된다.

“가수 조용필이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각종 기록을 갱신했다.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 첫 대중가수, 공연 20일 전 관람권 매진, 관람권 유료 판매율 87%25, 공연의 열기 등 그가 10일부터 3일간 총 네 차례에 걸쳐 가진 콘서트에서 세운 신기록들이다. 예술의전당 측은 ‘불가피한 초대권만 아니었다면 거의 전부가 유료였을 것’이라며 ‘조용필의 기록은 93년 오페라극장 개관이래 최고’라고 말했다.” (동아일보 1999년 12월 13일)

“순수문화 공연이 주로 열리는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대중가수가 오른다는 점에서 한 때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던 조용필 공연은 웬만한 뮤지컬보다 내용이 낫다는 평을 얻고 있다.”
(매일경제 2002년 12월 19일)

21세기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 그리고 약간의 긴장감으로 들떠 있던 1999년의 마지막 달 12월, 문화계에서는 격렬한 찬반론이 일고 있었다. 가수 조용필에게 순수예술 최고의 무대이자 최후의 보루라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을 내어주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이었다. 대중음악가 최초로 조용필의 오페라극장 공연이 공식 발표되자 적지 않은 순수예술 지지자들은 순수예술의 마지막 보루까지 무너뜨리려는 사건으로 판단, 예술의전당 측에 거센 항의를 하였다. 예술의전당 인터넷 홈페이지에서는 조용필 공연을 지지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으로 나뉜 열띤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으나, 그 모든 설전은 조용필의 첫 번째 공연 이후 수그러들었다. 조용필은 1999년부터 시작된 예술의전당 공연에 지난 시절 자신이 쌓아 온 모든 무대 역량을 한데 집결, 하나의 종합예술 작품으로 완성해 올려놓는다. 조용필은 예술의전당 공연에 임하면서 자신의 음악 세계를 하나의 주제로 새롭게 엮어 내고자 하였으며, 차별화된 무대를 통해 그것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조용필에게 있어 예술의전당 공연은 곧 음반 창작과도 같은 또 하나의 야심찬 창작 활동이었다.

2000 고독한 러너
‘고독한 러너’는 1992년 발표된 14집의 세 번째 트랙이다. 5분 51초의 대곡이기도 한 이 곡의 제목이 공연 부제로 선정되어 이후 공연에서도 공연의 의미를 함축한 곡명이 부제가 될 것임을 시사한다. 2000년 고독한 러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로 구분되어 연출되었다. 누구보다도 많은 히트곡을 보유한 그이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조용필의 목소리가 흐르는 두 시간 동안 관객들은 곡의 주제와 사운드, 무대 연출 등이 한데 어우러지며 그려내는 각 계절의 이미지를 통해 사계절의 흐름 속으로 빠져들어 갈 수 있었다.

이 공연의 오프닝은 ‘작은 천국’이었다. 객석에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의 공연들이 주로 잘 알려진 히트곡들로 이루어진 것이었던 데에 비해 ‘작은 천국’은 17집 수록곡으로 오랜 팬들조차 라이브 무대에선 처음 듣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뿐 아니라 ‘장꽃 불을 켜요’ ‘하얀 모래의 꿈’ ‘ 정글시티’ ‘ 고독한 러너’ 등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생소한 곡들을 라이브 무대를 통해 선보인다. 이것은 조용필의 또다른 도전의 시작에 불과했다. 그의 머릿속엔 이미 대한민국 최고의 공연장인 오페라극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향후 수년의 기획이 이미 그려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공연 막바지에 한자로 된 거대한 ‘필弼’자가 조명을 받고 회전하며 무대 앞으로 서서히 나오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그 글자와 함께 1층 객석의 절반이 하얀 연기에 휩싸인다. “지쳐 쓰러져도 달려가리라 푸른 바다에 파도가 되어 우리 인생이란 머나먼 길을 나는 고독한 러너가 되어…” 음악을 시작하고서 30번도 넘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넘긴 조용필. 그는 어쩌면 외로울 수도 있는 그 음악 외길을 여전히 달리고 있었다.

2001 그리움의 불꽃
뮤지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조용필에게 90년대 초반 「서울 신화」라는 창작 뮤지컬을 기획했다가 끝내 무대에 올리지 못했던 아쉬운 기억이 있다. 이루지 못한 뮤지컬에 대한 꿈이 콘서트로 이어져 새로운 형태의 공연 퍼포먼스로 승화시킨 것이 2001 그리움의 불꽃이다.
1부 오프닝. 공중으로부터 내려오는 조용필. 극장 무대 꼭대기에서 자그마한 점으로 반짝이던 조용필은 아주 천천히 ‘꿈’을 부르면서 아래로 내려온다. 동시에 무대는 카메라의 줌인 기법처럼 서서히 커져간다. 일찌기 국내 공연에서 볼 수 없었던 이러한 광경에 관객들은 숨을 죽였고, ‘난 아니야’를 부르던 아이가 ‘단발머리’ 소녀가 되어 ‘친구여’로 우정을 나누고 ‘창밖의 여자’ ‘슬픈 베아트리체’로 사랑을 알게 되고 ‘일몰’로 인생의 황혼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의 인생 모습이 곡마다 바뀌는 무대의 변화를 통해 더욱 극명하게 공감되었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와 함께 클래시컬 한 1부 무대를 끝낸 조용필은 2부에서는 가죽 바지와 가죽 재킷을 입은 완전한 로커로 등장한다. 토성 모양의 움직이는 띠를 두른 반구형 무대가 ‘그리움의 불꽃’과 함께 보이지 않던 무대 뒤에서 등장한다. 무대가 통째로 등장한다는 것. 이 역시 놀라움 자체였으며, 무대는 공연 마지막 부분에서 다시 ‘그리움의 불꽃’과 함께 서서히 안으로 사라져 들어갔다. 강렬한 록 사운드의 2부 공연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야광봉과 꽃가루, 관객의 열광적인 함성은 순수고급예술의 심장부인 오페라극장에서 대중음악 경시라는 문화적 편견을 확실하게 깨뜨리고 있었다. 음악은 음악이요, 예술은 예술이요, 그 어느 쪽도 높고 낮음은 없다. 한 명의 아티스트를 통해 전혀 다른 장르의 음악과 무대를 접한 관객들은 조용필이란 이 시대의 가황에게 감사와 경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폭발적인 관객의 성원으로 공연 일정 도중에 갑자기 하루가 연장되는 에피소드를 낳기도 했다.

2002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2001년 공연을 본 관객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도대체 내년엔 뭘 보여줄 수 있을지 상상이 안된다.”였다. 그러나 2002년이 저물어 갈 무렵 또다시 오페라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조용필의 끝없는 창작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록 오페라 곡이라 할 수 있는 ‘태양의 눈’으로 이글거리는 태양과 함께 무대 밑에서 솟아오르는 조용필. ‘그리움의 불꽃’을 부를 때는 무대를 불바다로 연출하고, 동요 같은 ‘우주여행 X’에서는 공중으로 아이들이 우주선을 타고 가버린다. 조용필은 1부 마지막 곡인 ‘생명’에서 폭풍우 바다 속에서 노래를 하다 결국 거대한 해일에 삼켜져 모습이 사라진다. 1부 후 휴식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와도 관객들은 멍하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어둠이 끝나면’으로 2부 무대가 열린다. 공연 부제처럼 여러 가지 길이 등장한다. 1부의 마지막을 통해 장엄하게 태어난 새 생명은 이제 하나씩 인생의 꿈들을 거쳐 가는 것이다. 오솔길이 나왔다가 보기에도 가슴 답답한 미로도 나온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은 ‘한강’의 도도한 물살에 밀려간다. 그는 다시 한강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정적으로 휩싸인 무대에선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의 조용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조용필의 메시지가 스크롤 되어 올라간다.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음악의 길을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어두운 밤길을 때로는 태양 가득한 길을 걸어갔습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저의 길은 여러분이 있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은 길도 여러분과 동행하는 조용필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趙容弼

3부 앙코르 무대. 최고의 예술 무대 오페라극장이 순식간에 소박한 대학로 라이브 소극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캐주얼 차림으로 언플러그드 무대를 꾸미는 조용필. 의자에 앉아서 직접 기타를 치며 ‘내 이름은 구름이여’ ‘고추잠자리’ ‘촛불’ 등을 부른다. 관객들은 뜻하지 않게 숨겨져 있던 보너스 트랙을 만난 듯했다. 2부 공연이 끝날 때까지 말 한마디 없었던 조용필은 앙코르에 와서야 비로소 입을 연다.

2002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는 전 공연을 하나의 컨셉으로 이끌고 가며 음악, 영상, 애니메이션, 무대 연출 등 모든 것이 파격적인 실험에 가까웠던 공연이었다. 선곡의 60퍼센트 가까이가 비교적 덜 알려지거나 라이브에서 처음 시도된 곡들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음악적인 것뿐 아니라 무대 연출 부분에서도 조용필의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가 있다는 것. 이제 조용필은 음악 아티스트뿐 아니라 무대 연출가로서도 재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실의 인기나 위치에 만족하지 않고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는 시대의 거장. 그 거장의 실험성 가득한 야심작에 관객은 감동하고 열광했다.


글 : 홍제미나 (조용필 팬클럽 ‘위대한 탄생’
홍보책자 『The History』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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