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Cho Yongpil Fanclub Mizi

뉴스

신문사  
기사 날짜  





2003년 1월부터 10월까지 나는 가끔씩 서울 서초동 국립국악원안의 악기박물관을 기웃거리며 소일하였다.
나는 오랫동안 악기를 들여다보며 혼자서 밥을 사먹곤 했다.
악기는 인간의 몸의 연장(延長)이었으며 꿈의 도구였다.
이제는 아무도 연주할 수 없는 옛 악기들의 잠은 혼곤했고
아무도 그 잠을 깨울 수 없었다.
잠든 악기 앞에서,
그 악기가 통과해온 살육과 유혈의 시대를 생각하는 것은 참담했다.
악기가 홀로 아름다울 수 없고 악기는 그 시대의 고난과 더불어 비로소 아름다울 수 있을 뿐이었다.

< 김훈 소설 '현의 노래' 작가의 말 중에서 >



1. 조용필 가요 문학


출퇴근길에 건너는 한강은 바짝 말라 있습니다.
가을 가뭄탓 가로수는 물기가 없어 푸석거립니다.
이파리는 촉촉함을 상실해 단풍은 곱지도 않습니다.
강의 물줄기는 바닥을 드러내 전전긍긍하고 남녘 한낮은 이상고온입니다.
어서 가을비 내려 촉촉한 만추의 서정이 우리 주변에 가득했으면 합니다.

때로는 노래가 한 시절을 추억케 합니다.
운전중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한 곡에 가슴이 부르르 떨립니다.
그 때 그 사람 그 추억이 파문처럼 번져올 때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오늘은 '가객(歌客)' 조용필 이야기입니다.
노래방에만 가면 저의 유일무이한 레퍼토리 주인공입니다.
해마다 그를 통해 가을을 관통하고 겨울로 건너 갑니다.

80년대를 청춘의 강으로 건넜던 사람들은 압니다.
조용필의 노래는 하나의 문학이었습니다.
단순한 유행가요가 아니었고 스쳐가는 대중가요 가사가 아니었습니다.
딴에는 힘겨운 生의 수레바퀴 소리였습니다.
1950~60년대에 태어난 한국의 전후세대는
대부분 '조용필 가요문학'의 수혜자가 됩니다.
그의 정련된 노래 가사 하나 하나에 우리는 포섭되고 맙니다.
유행처럼 휩쓸었던 FM 팝송의 파도에도
조용필문학의 정서적 울림은 굳건했습니다.

당시 기성세대들은 혼이 내뿜어지던 '창밖의 여자'에게
위로 받고 술 한 잔을 기울였습니다.
10대 20대 청춘들에게
'작은 거인' 조용필의 도전적 음악성은 충격이었습니다.
기존 한국 가요지형을 뒤흔든 혁명성의 요람이었고
최초로 오빠부대가 태어났습니다.
바야흐로 제대로 구색을 갖춘 한국의 첫 '대중문화'가 태동한 것입니다.
조용필 팬클럽은 한국의 모든 스타 팬클럽의 원조이며
'스타덤'과 '팬덤[fandom]'으로 상호 조응하는
팬 문화현상의 첫 씨앗이었습니다.



2. 세라복 소녀


하얀 세라복을 입은 여고생이 책상에서 일어나 창문을 엽니다
기지개를 활짝 켠 소녀는 LP 자켓서 검은색 레코드를 꺼냅니다.
빙글빙글 도는 턴테이블에 조심스레 바늘을 얹습니다.
이윽고 시대는 휘오리 바람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어느덧 세라복 소녀는 베이지색 코트 성숙한 여인으로 차창에 기대고 있네요.
열차는 ‘내마음 속의 사평역’ 그 시골 역에 정차합니다.
승강장에 발을 내딛는 그녀는 하얀 세라복 소녀의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몇걸음 옮긴 그녀 앞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움의 간이역에 미리 와서,
한 시절을 아름답게 살아낸 그녀를 기다리는 얼굴.
안경을 걸친 그 얼굴에도 세월의 잔주름이 곱게 앉아 있습니다.
조 용 필.
우리의 가슴을 38년 째 대신해 울어주는 시대의 가객.
지친 한국인들에게 한줄기 휘파람으로 다가오는 형형색색의 소리.

2003년 8월 30일 토요일 밤.
비가 쏟아지는 여름의 끝자락 서울 잠실 메인스타디움.
드넓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5천명은
거센 빗줄기에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한 마음으로 한 시대 가객을 맞이합니다.
"내 나이 서른 다섯,
18세 소녀로 돌아갑니다.
내게 허락된 단 하루"
조용필 데뷔 35주년 기념공연‘The History'의 멋진 포스터 카피입니다.
국내 가수 단독공연 사상 최대규모 4만5천석 완전 매진.

저녁 7시 50분에 시작한 공연이 9시를 지날 즈음.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돌아와요 부산항에~ ”
4만 관객 모두가 한 목소리로 부르는 감동의 절창을 이뤄냅니다.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은 끝이 났다...
~나도 술잔도 함께 울었다~ 나의 용서는 너를 잊는 것...”
지나간 청춘의 혼돈과 가슴 한켠에 묻어두기만 했던 못다한 사랑이
되살아 나는지 Q를 합창할 때 관객 모두는
눈시울이 시큰하고 목젖이 울컥하는 분위기입니다.

“꿈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저는 이것이 아니면 안 되겠다고 느껴서 열심히 하다보니
이렇게 세월이 지나고 35년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지켜주셨기에 가능했습니다.”
서울 경동고 졸업 이듬해
1969년 미8군무대 록그룹 활동으로 음악인생 출발.
그는 30대 40대 50대 아니 세대를 초월,
한국의 가요역사를 개척하고 관장했습니다.





~ 바람소리처럼 멀리 사라져갈 인생길
우린 무슨 사랑 어떤 사랑 했나
텅 빈 가슴속에 가득 채울 것을 찾아서
우린 정처 없이 떠나가고 있네 ~
(어제 오늘 그리고)

물망초... 그대여... 촛불... 창밖의 여자... 그 겨울의 찻집...모나리자...
허공...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난 아니야...고추잠자리...한오백년...
간양록... 킬리만자로의 표범... 못찾겠다 꾀꼬리... 여행을 떠나요...
그의 노래는 끝이 없습니다.

그가 불렀던 180여 곡들은 단순한 가요가 아닙니다.
고달픈 현대사 속 휘청거렸던 우리의 삶을 대변한 대서사시입니다.
황금빛 노을 속에서 뚜벅 뚜벅 걸어나온 거인이
시대의 고비와 힘겨운 심정을 어루만져 주었기에
우리는 술 한잔 속에 다 녹이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청춘의 꿈을 노래하고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했습니다.

~ 외로워 마세요 그대 곁에 내가 있어요
물밀 듯 다가오는 지난 추억이 지금도 아름다워요
이 밤이 새고 나면 가야하지만 그것을 이별이라 하지 말아요
언제 어느 곳에 가더라도 우리 마음 함께 있으니
그대 그대 정말 외로워 마세요 ~
(외로워 마세요)

~ 지나치는 어둠 속에서 긴 머리 낯선 그 모습
파도처럼 일렁이며 창가를 스쳐가는 젖은 눈의 그댈 보았네
입 맞추면 고운 그 입술 울먹이는 슬픈 그대여
바람 속에 지는 그대의 만남 순간에 머물렀을 뿐
떠나버린 날들을 이제는 사랑이라 부르지 않으리...
영원히~ 기약없는 이별뒤에 찾아와 추억의 서러움만 남기네
미워할 수 없는 그댈 지우며 눈감은 내가슴엔 눈물이 ~
(추억속의 재회)

우리가 듣고 싶었던 것은 가객의 목소리만이 아니었습니다.
한 시절을 살아냈지만 아직 못 다한 아쉬움, 회한의 추억,
붙잡고만 싶은 그리움 조각들을 되살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지켜고 싶은 오늘의 낭만 내일의 꿈을
조 - 용 - 필을 통해 확인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3. 위대한 가객


국민가수 대형가수의 시대가 점차 저물고 있습니다.
특정 세대만을 위한 맞춤식 대중가요만 횡행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만을 위한 댄스 가요가 수요공급 방식에 따라 공산품처럼 급조됩니다.
한두달 이리저리 얼굴을 들이민 젊은 가수들은 어느덧 사라지고 맙니다.
뜻모를 랩에 한국어의 향기는 온데간데 없습니다.

말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줍니다. 함께 가슴을 저미게 해줍니다.
가객의 노래에는 말이 살아있고 의미가 숨쉬고 있습니다.
인간은 말과 글과 노래를 통해 존재와 관계를 깨닫습니다.
시는 언어로 언어 밖의 세계를 노크하고
소설은 긴절한 희노애락을 긴장감있게 스토리로 풀어냅니다.
조용필은 굽이치는 한국인의 정서를
유장한 가사와 살가운 리듬으로 담아냈습니다.
저는 '조용필'을 마지막으로 더이상의 애창곡을 갖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먼저 노래의 장인[Master] 이었습니다.
세상 속에서 노래가 어떻게 태어나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노래의 거장은 인간을 위무할 정서의 線을 제대로 뽑아낼 줄 알았습니다.
자신이 펼칠 무대의 종합 구성을 간파할 수 있기에
노래만 부르는 가수가 아니라
총지휘자 총연출자로서 콘서트의 레이아웃까지 해냅니다.
한국의 가요 역사는 '위대한 가객' 이전과 이후로 획을 긋습니다.
그는 중단없이 창조적인 무대에 만들어 낼 것입니다.
해마다 업데이트되는 그의 레퍼토리 패키지는
한국 최고의 '문화상품'입니다.
그가 있어 25년 전에도 행복했고
그가 있어 올 가을에도 위로 받습니다.


harrison@donga.com


http://www.donga.com/e-county/sssboard/board.php?tcode=02049&s_work=view&no=5324&p_page=1&p_choice=&p_item=&p_category=
번호 제목 신문사 기사 날짜 조회 수
2393 [대전일보 2005-09-08] 10일 공연 앞둔 조용필씨 인터뷰     4766
2392 [중부일보 2005-09-24] 최영근 화성시장의 이유 있는 조용필 사랑 file     4766
2391 [이데일리 2008-04-16] '데뷔 40주년' 조용필 "팬 없었다면 20년도 못 버텼을 것"     4766
2390 [헤럴드경제 2006-12-09] 관객과 하나되는 진정한 콘서트 여행     4767
2389 [연합뉴스 2005-05-02] 이명박 시장과 조용필 file     4770
» [동아일보 2006-10-16] 조용필을 건너야 겨울로 간다     4770
2387 [마이데일리 2006-11-15] 조용필 "상 쫓다보면 음악활동 지장"     4771
2386 [경남신문 2007-06-04] 공연티켓 2천500매 창원시에 기증 file     4774
2385 [뉴스엔 2007-10-01] MBC SBS ‘2007 남북정상회담 특집방송’ 이렇다     4774
2384 [대전일보 2005-09-13] 야외 음악회 file     4775
2383 [데일리 서프라이즈 2008-04-16] ‘국민가수’ 조용필, ‘오빠부대’ 위한 공연 준비완료     4775
2382 [스타뉴스 2005-08-22] [포토]북한에 도착한 조용필     4780
2381 [뉴스 엔 2007-06-18] 김종서 VS 탁재훈, 조용필 모창 불꽃 대결     4780
2380 [스타뉴스 2006-11-15] 조용필 "새앨범 지연, 히트에 대한 두려움도 한 원인"     4782
2379 [주간동아 2005-09-13 502 호] 노래도 골프도 … 실력 짱, 매너 굿     4783
2378 [중부일보 2007-09-18] 미숙함 엿보인 대형 콘서트     4784
2377 [중앙일보 2005-08-24] 북 7000여 관객 울린 "그리운 내 형제여~"     4785
2376 [뉴시스 2005-08-24] 대형스크린과 어울린 가수 조용필     4785
2375 [교원 캠퍼스 2005-09-01] 조용필의 평양 空襲     4785
2374 [뉴스엔 2008-04-16] 조용필 데뷔 40주년 소감 “50주년 패티김에 비하면 난 어린애”     4788

공식 미지 트위터

뉴스 - News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메달 수익 음악 영재 발굴에 기부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메달 수익 음악 영재 발굴에 기부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수익금 '음악역 1939' 전달식 (왼쪽부터 조폐공사 류진열 사업 이사, 김성기 가평군수, 음악역 1939 송홍섭 대표) [음악역 1939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국조폐공사가 제작한 '가왕'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판...

뉴스 - News

조폐공사, 조용필 메달 수익금 일부 음악영재 '후원'

조폐공사, 조용필 메달 수익금 일부 음악영재 '후원' 한국조폐공사(사장 조용만)가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음악영재 지원 사업에 후원한다.   공사는 11일 경기도 가평 뮤질빌리지 '음악역 1939'에서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가운데 2500만원을 가평군과 함께 가평뮤직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