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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글>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의 조용필에 관련한 글 1 - 중심의 변방, 혹은 변방의 중심 -한국 록음악 part II -
, 2003-04-10 09: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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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의 변방, 혹은 변방의 중심 -한국 록음악 part II
새로운 천년이 시작한 마당에 20세기를 정리하지 못한 이 자리는 여전히 지난 천년에 머물러 있다.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사 정리의 마지막 편은 세 달전호에 다루었던 6,70년대 한국 록음악- 신중현과 산울림에 이어 8,90년대 한국 록음악의 베스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첫머리에 우리 노래사의 불세출의 가왕 조용필을 호명한다.
조용필, 4집(1982) 7집(1985)
13집 <<the dreams>>(1991)
조용필은 쉽게 재능의 고갈을 노정하는 거개의 대중음악인과는 달랐다. 그는 작곡에서 연주, 그리고 보컬에 이르는 음악적인 재능 뿐만 아니라 놀라운 집중력과 경탄할 만한 지구력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을 정립시켰다. 이미 1980년의 컴백 앨범(이 앨범을 스스로 1집이라 매겼다)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에서 제시했듯이 그는 발라드와 댄스뮤직이라는 80년대 이후의 주도적인 문법을 확고히 함으로써 주류 한국 대중음악의 외연을 규정한다.
그의 야심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아이돌 스타' 조용필이 쌓은 이 외연의 진정한 내포는 다름 아닌 '록 아티스트'였다. 60년대말 '그룹사운드' 문화 속에서 음악적 이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공전절후의 백밴드 '위대한 탄생'을 결성함으로써 대형 라이브 컨서트는 물론 스튜디오 레코딩의 새로운 바람을 일구었다.
그가 이 최강의 백 밴드에게 쏟아부은 투자는 그의 명성에 가려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조용필의 위대한 공적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밴드에 대한 무제한적인 투자에 있으며 이 밴드를 기점으로 낙후한 한국의 사운드 메커니즘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다. 사랑과 평화 출신의 기타리스트 최이철이나 베이시스트 송홍섭 같은 기존의 쟁쟁한 인물들 말고도 키보드의 이호준과 최태완, 하몬드 오르간의 김효국, 드럼의 배수연이나 김희연 같은 맹장들이 이 밴드의 신화를 굳건하게 구축했다.
조용필은 이 전사들의 열띤 어시스트에 힙입어 한국 대중음악사의 1차 종합을 시도한다. 그는 앞서 언급한 주류 장르 이외에도 그의 음악적 출발점이기도 했던 록을 그다운 방식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 놓는다. 3집의 진성과 가성을 오르내리며 드라마틱한 구조를 일군 <고추 잠자리>, 그리고 4집의 첫머리를 여는 <못찾겠다 꾀꼬리>와 흑인 휭크 리듬과 우리의 전통 장단을 득음의 경지로 오버랩시킨 <자존심>을 지나 십대 여고생들에게 로큰롤을 연찬륙시킨 5집의 <나는 너 좋아>, 7집의 <어제 오늘 그리고>와 <여행을 떠나요>, <미지의 시계>에 이르는 혁혁한 리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대중음악사를 아로새긴 조용필의 공적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의 시대를 열어가는 이행기의 한 복판에서 세대와 장르의 균열을 지치지 않고 일관되게 봉합해낸 단 한명의 대중음악가이며 한국대중음악사로 하여금 70년대말과 90년대 초반의 암울한 매너리즘의 늪을 단숨에 건너게 한 철의 수문장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8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평정했던 조용필은 1991년에 이르러 마침내 불혹의 음률을 완성한다. 열세번째 정규 앨범이 되는 이 <<THE DREAMS>>는 그가 그저 명성의 바람을 몰고 다니는 한 명의 풍운아가 아니라 완벽주의를 꿈꾸는 위대한 음악감독임을 여실하게 증명시켰다.
90년대의 새로운 수용자들은 이미 조용필이라는 거인의 영지를 서서히 벗어나 새로운 세대의 우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거역할 수 없는 시장의 풍속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조용필은 트로트가 아닌 이 땅의 진정한 성인음악의 문법을 수립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음악 역량을 털어 넣는다.
약간 쉰 듯한 그의 보컬이 오히려 원숙한 미의식을 분만하는 가운데, 다양한 장르를 연금하는 그의 용광로는 단단한 결정(結晶)들을 쉴새 없이 형상해 낸다. 그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이 앨범의 머리곡 <꿈>에 이르면 우리는 단순함과 복잡함이 어떻게 하나의 악보 위에서 만나는가를 관람하게 된다.
그는 톰 킨(키보드)을 위시한 외국인 주자들로만 연주 팀을 구성하여 자유로운 장르 문법의 실험과 다채로운 음향 효과들을 창출해 낸다. <기다림> 같은 발라드로부터 그가 최초로 시도한 살사 리듬의 라틴 퓨젼 <장미곷 불을 켜요>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은 다양한 격조를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그 모든 것의 근간을 이루는 숨결은 바로 록이다.
조용필은 거칠고 충동적인 록의 호흡을 말끔하게 제련시켜 중용적이며 어떤 순간에는 노회하기까지한 원숙한 모습으로 탈바꿈 시켜 놓는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사상 AC(성인 취향의 대중음악)의 최대 걸작인 이 앨범의 운명은 그 이후에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이 땅의 성인 수용자들은 십대 음악의 일방통행에 밀려 노래방과 단란주점으로 퇴각해 버렸고 시장에서의 자신의 음악적 권리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필은 지천명이 넘어선 이 순간에도 여전히 현역 로커이다. 그것도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오페라 홀의 삼일 간의 컨서트를 단숨에 매진시키는. 아니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젊은 로커에 못지 않은 무대 위에서의 에너지를 분만하며 격렬한 앙코르 넘버를 열곡이고 스무곡이고 쉬지 않고 토해내는 진정한 가객의 혼을 잃지 않은, 아니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맹장이다.
이제 조용필에 대한 한국 록씬의 일각이 가지고 있는 삐딱한 편견은 극복되어야 한다. 즉 그는 발라드를 통해 아이돌 스타가 되었다고. 맞다. 그러나 발라드를 부르지 않는 로커는 거의 없다. 나아가 그는 '뽕짝'을 부르는 '쌈마이'라고. 아니다. 그는 '뽕짝'도 훌륭하게, 독창적으로 소화했다. 85년 상반기에 7집이라는 걸작을 발표하고 곧이어 하반기에 <허공>과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그 겨울의 찻집>을 담은 성인 취향의 8집을 발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 무엇보다도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가장 당혹스러운 편견 중의 하나는 조용필의 록 넘버가 '정통적인' 록의 문법이 아나라 '뽕'에 기반하고 있는 허접쓰레기라는 이상한 논리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관점이야말로 서구 맹종주의의 작태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의 록 스타일은 서구의 록과 리듬앤블루스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자칭타칭 로커라고 긴 머리를 휘날리는 이 땅의 젊은 뮤지션들의 십중팔구처럼 모방과 답습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만의 독자적인 텍스트와 보컬 미학으로 제련시킨 것들이다. 비틀스나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이나 딥퍼플, U2나 너바나, 혹은 큐어나 소닉 유쓰를 그대로 베껴낸 이들이 입을 삐죽거릴 권리가 없다. 이들의 텍스트와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뽕'으로 몰아붙이는 후안부치한 무지에 대해선 그저 아연할 뿐이다.
그러나 다음의 진술, 즉 조용필의 록 텍스트가 진화하는 사회적 열망을 지성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반영해 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의미 있다고 본다. 아무리 4집의 <생명>과 9집의 <서울 1987>이 광주의 비극과 87년 시민항쟁을 묘사하려다 검열당국의 처절한 가위질로 걸레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조용필을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두 장성 친구에 의해서 지배되는 시기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즉 이 비판은 조용필 뿐만 아니라 침묵을 강요당한 80년대 뮤지션 모두에게 적용되어야할 사항이다. 정태춘과 대학가 노래운동 출신의 음악적 전위들을 제외하고는선 말이다. 하지만 비판적 관심을 적극적으로 추동하지 않았다고 해서 조용필은 물론 다음에 소개할 80년대 지하의 또 다른 맹장들의 가치가 감쇄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한 마당에 20세기를 정리하지 못한 이 자리는 여전히 지난 천년에 머물러 있다.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사 정리의 마지막 편은 세 달전호에 다루었던 6,70년대 한국 록음악- 신중현과 산울림에 이어 8,90년대 한국 록음악의 베스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첫머리에 우리 노래사의 불세출의 가왕 조용필을 호명한다.
조용필, 4집(1982) 7집(1985)
13집 <<the dreams>>(1991)
조용필은 쉽게 재능의 고갈을 노정하는 거개의 대중음악인과는 달랐다. 그는 작곡에서 연주, 그리고 보컬에 이르는 음악적인 재능 뿐만 아니라 놀라운 집중력과 경탄할 만한 지구력으로 한국의 대중음악을 정립시켰다. 이미 1980년의 컴백 앨범(이 앨범을 스스로 1집이라 매겼다) <창밖의 여자>와 <단발머리>에서 제시했듯이 그는 발라드와 댄스뮤직이라는 80년대 이후의 주도적인 문법을 확고히 함으로써 주류 한국 대중음악의 외연을 규정한다.
그의 야심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아이돌 스타' 조용필이 쌓은 이 외연의 진정한 내포는 다름 아닌 '록 아티스트'였다. 60년대말 '그룹사운드' 문화 속에서 음악적 이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공전절후의 백밴드 '위대한 탄생'을 결성함으로써 대형 라이브 컨서트는 물론 스튜디오 레코딩의 새로운 바람을 일구었다.
그가 이 최강의 백 밴드에게 쏟아부은 투자는 그의 명성에 가려 그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조용필의 위대한 공적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밴드에 대한 무제한적인 투자에 있으며 이 밴드를 기점으로 낙후한 한국의 사운드 메커니즘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고 해도 그리 과언이 아니다. 사랑과 평화 출신의 기타리스트 최이철이나 베이시스트 송홍섭 같은 기존의 쟁쟁한 인물들 말고도 키보드의 이호준과 최태완, 하몬드 오르간의 김효국, 드럼의 배수연이나 김희연 같은 맹장들이 이 밴드의 신화를 굳건하게 구축했다.
조용필은 이 전사들의 열띤 어시스트에 힙입어 한국 대중음악사의 1차 종합을 시도한다. 그는 앞서 언급한 주류 장르 이외에도 그의 음악적 출발점이기도 했던 록을 그다운 방식으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려 놓는다. 3집의 진성과 가성을 오르내리며 드라마틱한 구조를 일군 <고추 잠자리>, 그리고 4집의 첫머리를 여는 <못찾겠다 꾀꼬리>와 흑인 휭크 리듬과 우리의 전통 장단을 득음의 경지로 오버랩시킨 <자존심>을 지나 십대 여고생들에게 로큰롤을 연찬륙시킨 5집의 <나는 너 좋아>, 7집의 <어제 오늘 그리고>와 <여행을 떠나요>, <미지의 시계>에 이르는 혁혁한 리스트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대중음악사를 아로새긴 조용필의 공적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그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의 시대를 열어가는 이행기의 한 복판에서 세대와 장르의 균열을 지치지 않고 일관되게 봉합해낸 단 한명의 대중음악가이며 한국대중음악사로 하여금 70년대말과 90년대 초반의 암울한 매너리즘의 늪을 단숨에 건너게 한 철의 수문장이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8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평정했던 조용필은 1991년에 이르러 마침내 불혹의 음률을 완성한다. 열세번째 정규 앨범이 되는 이 <<THE DREAMS>>는 그가 그저 명성의 바람을 몰고 다니는 한 명의 풍운아가 아니라 완벽주의를 꿈꾸는 위대한 음악감독임을 여실하게 증명시켰다.
90년대의 새로운 수용자들은 이미 조용필이라는 거인의 영지를 서서히 벗어나 새로운 세대의 우상을 찾아가고 있었다. 거역할 수 없는 시장의 풍속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조용필은 트로트가 아닌 이 땅의 진정한 성인음악의 문법을 수립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음악 역량을 털어 넣는다.
약간 쉰 듯한 그의 보컬이 오히려 원숙한 미의식을 분만하는 가운데, 다양한 장르를 연금하는 그의 용광로는 단단한 결정(結晶)들을 쉴새 없이 형상해 낸다. 그의 최고 걸작 중의 하나로 꼽히는데 주저함이 없는 이 앨범의 머리곡 <꿈>에 이르면 우리는 단순함과 복잡함이 어떻게 하나의 악보 위에서 만나는가를 관람하게 된다.
그는 톰 킨(키보드)을 위시한 외국인 주자들로만 연주 팀을 구성하여 자유로운 장르 문법의 실험과 다채로운 음향 효과들을 창출해 낸다. <기다림> 같은 발라드로부터 그가 최초로 시도한 살사 리듬의 라틴 퓨젼 <장미곷 불을 켜요>에 이르기까지 이 앨범은 다양한 격조를 우리에게 보여주지만 그 모든 것의 근간을 이루는 숨결은 바로 록이다.
조용필은 거칠고 충동적인 록의 호흡을 말끔하게 제련시켜 중용적이며 어떤 순간에는 노회하기까지한 원숙한 모습으로 탈바꿈 시켜 놓는다. 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사상 AC(성인 취향의 대중음악)의 최대 걸작인 이 앨범의 운명은 그 이후에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이 땅의 성인 수용자들은 십대 음악의 일방통행에 밀려 노래방과 단란주점으로 퇴각해 버렸고 시장에서의 자신의 음악적 권리를 포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용필은 지천명이 넘어선 이 순간에도 여전히 현역 로커이다. 그것도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 오페라 홀의 삼일 간의 컨서트를 단숨에 매진시키는. 아니 그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젊은 로커에 못지 않은 무대 위에서의 에너지를 분만하며 격렬한 앙코르 넘버를 열곡이고 스무곡이고 쉬지 않고 토해내는 진정한 가객의 혼을 잃지 않은, 아니 유일하게 보유하고 있는 맹장이다.
이제 조용필에 대한 한국 록씬의 일각이 가지고 있는 삐딱한 편견은 극복되어야 한다. 즉 그는 발라드를 통해 아이돌 스타가 되었다고. 맞다. 그러나 발라드를 부르지 않는 로커는 거의 없다. 나아가 그는 '뽕짝'을 부르는 '쌈마이'라고. 아니다. 그는 '뽕짝'도 훌륭하게, 독창적으로 소화했다. 85년 상반기에 7집이라는 걸작을 발표하고 곧이어 하반기에 <허공>과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그 겨울의 찻집>을 담은 성인 취향의 8집을 발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 무엇보다도 애정이 있었을 뿐이다.
가장 당혹스러운 편견 중의 하나는 조용필의 록 넘버가 '정통적인' 록의 문법이 아나라 '뽕'에 기반하고 있는 허접쓰레기라는 이상한 논리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관점이야말로 서구 맹종주의의 작태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의 록 스타일은 서구의 록과 리듬앤블루스에 근원을 두고 있지만, 자칭타칭 로커라고 긴 머리를 휘날리는 이 땅의 젊은 뮤지션들의 십중팔구처럼 모방과 답습에 그친 것이 아니라 그만의 독자적인 텍스트와 보컬 미학으로 제련시킨 것들이다. 비틀스나 지미 헨드릭스, 레드 제플린이나 딥퍼플, U2나 너바나, 혹은 큐어나 소닉 유쓰를 그대로 베껴낸 이들이 입을 삐죽거릴 권리가 없다. 이들의 텍스트와 아귀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뽕'으로 몰아붙이는 후안부치한 무지에 대해선 그저 아연할 뿐이다.
그러나 다음의 진술, 즉 조용필의 록 텍스트가 진화하는 사회적 열망을 지성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 반영해 내지 못했다는 비판에 대해선 의미 있다고 본다. 아무리 4집의 <생명>과 9집의 <서울 1987>이 광주의 비극과 87년 시민항쟁을 묘사하려다 검열당국의 처절한 가위질로 걸레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조용필을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대는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두 장성 친구에 의해서 지배되는 시기였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즉 이 비판은 조용필 뿐만 아니라 침묵을 강요당한 80년대 뮤지션 모두에게 적용되어야할 사항이다. 정태춘과 대학가 노래운동 출신의 음악적 전위들을 제외하고는선 말이다. 하지만 비판적 관심을 적극적으로 추동하지 않았다고 해서 조용필은 물론 다음에 소개할 80년대 지하의 또 다른 맹장들의 가치가 감쇄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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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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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나는
2003-04-10 09:57:21
아마나는
2003-04-10 09:57:44
무정님팬
2003-04-10 1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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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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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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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
2003-04-10 21:07:25
짹짹이⊙⊙♪
2003-04-11 19:4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