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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오월과 조용필의 관계
작성자 임시현 날짜 2003-05-21 06:28
조회수 186 추천수 17
작성자 IP 220.72.205.180
80년 오월과 조용필의 관계
임시현(시인)
80년은 한 독재자가 심복에게 총맞아죽고 한 독재자가 총을 들고 장고처럼 나타난다. 그러면서 백성에게 정의사회구현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나 오월에 이르러서는 기어이 몽둥이로 총으로 그 백성들을 쳐죽인다 그 와중에 조용필은 또 다른 왕국에 황제로 등극한다 암울한 시대 조용필은 여리고 슬픈 백성을 노래로 상처를 치유해준다 그리하여 그시대 대머리 독재자와는 달리 요순시대의 왕처럼 노래의 선정을 베푼다
관계 [關係, relation] 는 어떠한 현상이 다른 현상에 미치는 영향 또는 교섭하는 것을 말한다. 넓은 뜻으로는 둘 이상의 현상을 어떤 점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경우, 이 대상들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간상에 병존하는 대상, 유사점이 있는 대상, 상호 모순되는 대상은 각각 공존·유사·모순이라는 점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각각 공존관계·유사관계·모순관계에 있다.
또한 관계에는 개념이나 판단 상호간의 논리적 관계, 시간·공간상의 관계, 인과관계와 같은 사실상의 관계 등이 있다. 특수한 용법으로서, 칸트는 실체와 우유선(偶有性), 원인과 결과, 교호작용(交互作用)을 관계의 테두리라고 하였다.
이처럼 조용 필은 80년의 공간에서 시대적 상황과 병존하며, 또한 시대적 상황과 유사하면서, 모순된 듯이 보여지는 관계가 교호한다.
80년대 조용필 그에게는 ‘가왕(歌王)’이란 영예로운 별칭이 붙는다. 아니 ‘가왕’만으로는 모자라니 ‘가황(歌皇)’이라 해야될지도 모르겠다. 80년 대이후 한국의 가요사는 그대로 조용필의 역사다. 그만큼 그는 넓고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히트곡 수를 센다는 것 자체가 ‘가왕’에게는 결례가 되고 콘서트나 앨범에서 지향하는 완벽을 찬양하는 것도 시답잖은 아부가 된다. 그냥 그는 가장 뛰어났던 가수로 기억한다는 것은 세종대왕을 깎아 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80년대는 단연 조용필 황제의 아름다운 독재시대였다. 80년 <창밖의 여자>로 되돌아온 조용필은 <비련> <촛불> <고추잠자리>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한국 최고의 슈퍼스타’로 위대한 탄생을 한다. 그는 로큰롤, 트로트, 댄스음악, 발라드, 퓨전 등에서부터 창과 민요라는 한국적 창 법까지 모든 음악 장르를 숙명인 양 다 받아들였다. ‘오빠부대’가 이때부터 가요한국왕국을 세운다.
사실상 그의 데뷔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인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던 조용필에게 그의 실질적인 데뷔라고 할 수 있는 80년의 활동재계는 그가 스스로에게 자신의 음악이 어때야하는지를 자각하게된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아무리 큰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의 음악을 하나의 일직선상에 놓고 본다고 하면 상당히 많이 벗어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그의 재등장은 한국음악사에 있어서 음악의 정리와 락음악의 전면에로의 부상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동년배의 뮤지션들 대부분이 무대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적인 경력을 쌓으면서 오버그라운드로 나오게 되었지만 당시의 대중음악의 풍토였는지 아니면 한국 대중음악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일단 오버그라운드로 나서게 되면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60-70년대의 락음악과는 동떨어진 음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락음악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재등장과 더불어 락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적인 인기를 확보함으로써 반대의 경로를 통해 락음악을 대중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미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은 당시에 락음악의 전성기를 보내고 뉴웨이브 음악이 주도하려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의 존 레넌의 사망으로 인해 그들은 다시금 락음악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게 되었으며 그러한 대중의 복고적인 취향은 1982년에 다시금 락음악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의 한국에서의 상황은 조용필의 승승장구로 인해 락음악이 비로소 오버그라운드에 등장하게되었고 비로서 한국의 대중들은 매니아의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으로서의 락음악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점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인해서 해외의 대중음악과 한국의 대중음악간의 시간적인 격차가 비로소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상당히 좁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조용필의 등장으로 한국에서의 락음악이 그 위치를 오버그라운드내에서 확보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나라의 대중음악과의 격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의 한국의 대중음악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행동들을 거듭했나를 생각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0년 5월로 다시 가보자 이때는 군홧발에 모든 것이 통제된 파시스트 통제 하에서 조용필의 노래는 시대적 상황과 모순, 유사 공존하면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순수한 백성에게는 공장에서 힘든 노동과 일상의 압박, 그리고 총과 몽둥이에 맞아죽은 형제자매을 묻고오는 그밤 조용필의노래를 들으며 분노에서 탈출하게끔 도와준 훌륭한 관계 기재로서 자리매김 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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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오월과 조용필의 관계
작성자 임시현 날짜 2003-05-21 06:28
조회수 186 추천수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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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오월과 조용필의 관계
임시현(시인)
80년은 한 독재자가 심복에게 총맞아죽고 한 독재자가 총을 들고 장고처럼 나타난다. 그러면서 백성에게 정의사회구현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나 오월에 이르러서는 기어이 몽둥이로 총으로 그 백성들을 쳐죽인다 그 와중에 조용필은 또 다른 왕국에 황제로 등극한다 암울한 시대 조용필은 여리고 슬픈 백성을 노래로 상처를 치유해준다 그리하여 그시대 대머리 독재자와는 달리 요순시대의 왕처럼 노래의 선정을 베푼다
관계 [關係, relation] 는 어떠한 현상이 다른 현상에 미치는 영향 또는 교섭하는 것을 말한다. 넓은 뜻으로는 둘 이상의 현상을 어떤 점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경우, 이 대상들은 서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공간상에 병존하는 대상, 유사점이 있는 대상, 상호 모순되는 대상은 각각 공존·유사·모순이라는 점에서 통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각각 공존관계·유사관계·모순관계에 있다.
또한 관계에는 개념이나 판단 상호간의 논리적 관계, 시간·공간상의 관계, 인과관계와 같은 사실상의 관계 등이 있다. 특수한 용법으로서, 칸트는 실체와 우유선(偶有性), 원인과 결과, 교호작용(交互作用)을 관계의 테두리라고 하였다.
이처럼 조용 필은 80년의 공간에서 시대적 상황과 병존하며, 또한 시대적 상황과 유사하면서, 모순된 듯이 보여지는 관계가 교호한다.
80년대 조용필 그에게는 ‘가왕(歌王)’이란 영예로운 별칭이 붙는다. 아니 ‘가왕’만으로는 모자라니 ‘가황(歌皇)’이라 해야될지도 모르겠다. 80년 대이후 한국의 가요사는 그대로 조용필의 역사다. 그만큼 그는 넓고도 깊은 영향을 남겼다. 히트곡 수를 센다는 것 자체가 ‘가왕’에게는 결례가 되고 콘서트나 앨범에서 지향하는 완벽을 찬양하는 것도 시답잖은 아부가 된다. 그냥 그는 가장 뛰어났던 가수로 기억한다는 것은 세종대왕을 깎아 내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80년대는 단연 조용필 황제의 아름다운 독재시대였다. 80년 <창밖의 여자>로 되돌아온 조용필은 <비련> <촛불> <고추잠자리>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한국 최고의 슈퍼스타’로 위대한 탄생을 한다. 그는 로큰롤, 트로트, 댄스음악, 발라드, 퓨전 등에서부터 창과 민요라는 한국적 창 법까지 모든 음악 장르를 숙명인 양 다 받아들였다. ‘오빠부대’가 이때부터 가요한국왕국을 세운다.
사실상 그의 데뷔 앨범에서 자신의 음악적인 색깔을 찾지 못하고 있던 조용필에게 그의 실질적인 데뷔라고 할 수 있는 80년의 활동재계는 그가 스스로에게 자신의 음악이 어때야하는지를 자각하게된 기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상 아무리 큰 대중적인 호응을 얻었다고 할지라도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의 음악을 하나의 일직선상에 놓고 본다고 하면 상당히 많이 벗어나 있는 음악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론을 얘기하자면 그의 재등장은 한국음악사에 있어서 음악의 정리와 락음악의 전면에로의 부상을 이야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와 동년배의 뮤지션들 대부분이 무대에서부터 자신의 음악적인 경력을 쌓으면서 오버그라운드로 나오게 되었지만 당시의 대중음악의 풍토였는지 아니면 한국 대중음악의 한계인지는 몰라도 일단 오버그라운드로 나서게 되면 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던 60-70년대의 락음악과는 동떨어진 음악을 하게 되었다는 것은 한국에 있어서의 락음악의 발전에 질곡으로 작용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의 재등장과 더불어 락음악을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적인 인기를 확보함으로써 반대의 경로를 통해 락음악을 대중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입니다. 이미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은 당시에 락음악의 전성기를 보내고 뉴웨이브 음악이 주도하려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1980년대 말의 존 레넌의 사망으로 인해 그들은 다시금 락음악에 대한 향수에 젖어들게 되었으며 그러한 대중의 복고적인 취향은 1982년에 다시금 락음악의 전성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의 한국에서의 상황은 조용필의 승승장구로 인해 락음악이 비로소 오버그라운드에 등장하게되었고 비로서 한국의 대중들은 매니아의 음악이 아닌 대중음악으로서의 락음악에 대해 인식을 하게 된 것이다 .
그래서 가장 중요한 점은 조용필의 등장으로 인해서 해외의 대중음악과 한국의 대중음악간의 시간적인 격차가 비로소 이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상당히 좁혀지게 된다는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조용필의 등장으로 한국에서의 락음악이 그 위치를 오버그라운드내에서 확보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다른 나라의 대중음악과의 격차가 작아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 아닐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이전의 한국의 대중음악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행동들을 거듭했나를 생각한다면 이는 획기적인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80년 5월로 다시 가보자 이때는 군홧발에 모든 것이 통제된 파시스트 통제 하에서 조용필의 노래는 시대적 상황과 모순, 유사 공존하면서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순수한 백성에게는 공장에서 힘든 노동과 일상의 압박, 그리고 총과 몽둥이에 맞아죽은 형제자매을 묻고오는 그밤 조용필의노래를 들으며 분노에서 탈출하게끔 도와준 훌륭한 관계 기재로서 자리매김 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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