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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35주년, 천하지 않은 '성인음악'의 가능성
'국민가수' 조용필은 줄곧 일반 대중과는 다른 동네에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네 민중과는 같은 편이 아니었단 이야기다. 여기서 ‘편’이란 단어가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자칫하면 대중음악인을 이데올로기로 재단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용필이 5공과 6공 시기에 정상의 인기를 누리다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정상에서 물러났다는 점이 단순한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만 해 두자. 조용필의 정치적 공정성에 하자가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의도는 아니다. 단지 앞서 제시한 ‘우연’이 워낙에 흥미로운 것이라서 해본 소리다.
그 시절 대중 음악인들이 대개 그랬듯, 조용필은 본인이 수없이 밝혔듯이 정치적으로 ‘나이브’한 인물이며, 또한 일단 만들어진 질서에 순응하고 쉽게 편입되는 스타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이전과 너무도 달라진 환경에 채 적응하지 못한 몇몇 아티스트들과 대조되는 부면이다. 이러한 체제 순응과 정치적 천진함은 1980년대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대중음악인들의 전반적인 경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방송 활동 같은 것은 꿈꾸지도 못할 시기이며, 비판적이거나 체제 저항적인 음악은 극렬한 탄압을 각오해야 했던 시기였다. 때문에 이해한다. 그의 음악이 유년 시절의 기행과 남녀상열지사, 우정에 대한 메시지만을 이야기해야 했던 것을. ("생명"이 광주학살을 노래한 것이라는 얘기는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시대와 아무런 마찰 없이 순탄한 여정을 걸어온 것 또한... 되려 그의 기계적 정치 중립성보다 아쉽게 여겨지는 것은, 조용필이 1960년대에 보여준 록 음악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너무도 쉽게 대중 친화적인 방향으로 소진했다는 점이다. 전성기인 1980년대 조용필이 보여준 음악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호화롭다. 노인 세대를 겨냥한 민요부터, 중년을 노린 트로트, 젊은이들을 겨냥한 발라드, 그리고 “나는 너 좋아”로 대표되는 10대 취향의 음악들까지. 여기에 본인의 숨겨진 음악적 욕심을 담아내는 것 또한 빠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음악적 능력을 과시했다는 것은 호의적인 평가일 것이고, 보다 도끼눈을 뜨고 평하자면 이것저것 다 해보느라고 스타일을 정립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아니, 그러려고 애쓰다보면 자기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 아닌가?
정리하자면 이렇다. 조용필은 음반도 많이 팔고, 방송도 많이 타고, 다양한 팬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한 뮤지션이다. 한편으로 그는 록 음악인의 피를 내재하고 있는 인물이었고, 더욱이 뛰어난 보컬 능력과 작곡 역량을 갖춘 인물이기도 했다. 음악적 욕심도 능력만큼이나 컸다. 문제는 여기가 한국이란 이상한 동네라는 데에 기인한다. 인기 스타와 뛰어난 아티스트는 적어도 이 동네에서는 대립적인 개념이다. 인기 스타는 단지 딴따라일 뿐이며, 아티스트는 배고프고 외로운 명예직이다. 이 두 가지 (어찌보면) 대립적인 양면을 절충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 온 것이 지난 조용필의 35년 음악 인생이라 하면 될 것 같다. 물론 그 절충이 완전한 균형을 이루었는가는 논외의 문제이겠지만.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필자에게 조용필은 ‘얄미운’ 인물에 속했다. 원망도 했다.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뭔가 ‘다른’ 방법으로 인기와 음악을 동시에 획득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든 세대를 겨냥해 이것저것 다 해보기보다는 진득하게 한 우물을 파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한마디로 '애증'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필자의 이런 생각에 약간의 조정이 이루어진 것은, 바로 얼마전 벌어진 조용필의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 [The History] 때문이다. 직접 가서 본 공연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러 다녀왔고, 많은 후일담을 들려 주었다. 후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 40대 초반 ‘언니’의 이야기였다. 자신은 이제껏 한번도 공연장 같은 곳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록 공연장 같은 곳에서 온 관객이 하나가 되어 환장하는 풍경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런 자신이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서 3시간 여를 서 있었다고 한다. 함께 갔던 여인네들과 함께 환호하고,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 아해들이 공연 따위를 즐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다고도 했다. 좋은 대중음악 공연이 있으면 자주 가야겠다는 이야기마저도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조용필이 존재해야만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얄밉고 자시고를 떠난 문제다. 1990년대를 거치며 이상하게 뒤틀려 버린 한국 동네의 대중음악은, 어찌된 노릇인지 3-40대 이상의 수용층을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따금 포크 리이슈나 월드뮤직, 재즈 거품 등이 일어날 때 3-40대 계층이 주목받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버블 이상은 아니었다. 미사리에서 흘러간 퇴물의 연주를 들으며 스테이크 써는 것 역시도 정상적인 대중 음악의 향유로 보이지는 않는다. 트로트와 같은 듣는 사람 스스로도 ‘천’하게 여기는 음악 역시 성인을 위한 음악의 주류로 여기기에는 영 머뜩찮다. 그렇다면 대체 송골매 오빠들에 열광하던 언니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김인순의 노래를 다소곳이 따라 부르던 단발머리 소녀들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쯤 헤드폰 끼고 집을 나서는 아들래미를 닦달하는 궂은 부모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미장원에서 파마를 말며 자식새끼 담임에게 찾아갈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제 맸던 넥타이를 또다시 매고 만원 전철 안에서 스포츠 신문이나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이런 왜곡된 상태를 바로잡는 키워드가 조용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필 콘서트에서 그랬듯,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아줌마들이, 회사와 집을 오가며 찌든 아저씨들이 함께 열광할 수 있는 대상. 그렇다면 조용필이라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물론 이는 조용필이란 인물 하나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막 시작된 주5일 근무제와 같은 ‘여가’의 문제가 있고(여가시간이 없다면 문화를 즐길 여유도 없다), 그 여가라는 것이 고작 노래방과 비디오, 인터넷에 불과한 한국의 낙후된 문화적 인프라라는 난제가 또 도사리고 있다. 결정적인 것은 조용필 만큼의 노릇을 해줄 그 세대 음악인이 절대적으로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 나이대 오빠들은 다 트로트를 부르고 있다!) 해서, 조용필은 일종의 키워드일 뿐이다. 흘러간 세대들에게 공연에서 그렇게 열광할 수 있는 정열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족하다고나 할까.
마침 조용필의 18집 음반 발매와 데뷔 35주년을 기념하여, 이매진에서도 그의 음반 몇 장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음반은 4집 음반과 7집, 그리고 신보를 선정했다. 그리고 여기에 전에 썼던 김대환과 김트리오의 음반을 더했다. 정규음반 가운데 4집과 7집을 선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비교적 록 음악인에 가까운 조용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더 범위를 넓혔다가는 25장에 이르는 디스코그라피에 압사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세 장만 선정했으니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아울러 영향력 1위의 웹진(!) [weiv]에서 준비한 조용필 특집을 거들며 많은 도움을 얻었음 또한 밝히는 바이다.
http://imazine.hihome.com/talk82.htm
<우리나라 음악평론 수준이 얼마나 낮았으면 이런 얼토당토 않은 자칭 음악평론가가 인터넷을 통해 약간이지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이런 소설가가 기성이 되어 있을 20년후의 우리나라 음악계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퍼왔습니다.>
'국민가수' 조용필은 줄곧 일반 대중과는 다른 동네에 있었다. 말하자면, 우리네 민중과는 같은 편이 아니었단 이야기다. 여기서 ‘편’이란 단어가 갖는 함의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자칫하면 대중음악인을 이데올로기로 재단한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조용필이 5공과 6공 시기에 정상의 인기를 누리다 문민정부의 등장과 함께 정상에서 물러났다는 점이 단순한 ‘우연’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만 해 두자. 조용필의 정치적 공정성에 하자가 있다는 이야기인가? 그런 의도는 아니다. 단지 앞서 제시한 ‘우연’이 워낙에 흥미로운 것이라서 해본 소리다.
그 시절 대중 음악인들이 대개 그랬듯, 조용필은 본인이 수없이 밝혔듯이 정치적으로 ‘나이브’한 인물이며, 또한 일단 만들어진 질서에 순응하고 쉽게 편입되는 스타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이전과 너무도 달라진 환경에 채 적응하지 못한 몇몇 아티스트들과 대조되는 부면이다. 이러한 체제 순응과 정치적 천진함은 1980년대 정상의 인기를 누렸던 대중음악인들의 전반적인 경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방송 활동 같은 것은 꿈꾸지도 못할 시기이며, 비판적이거나 체제 저항적인 음악은 극렬한 탄압을 각오해야 했던 시기였다. 때문에 이해한다. 그의 음악이 유년 시절의 기행과 남녀상열지사, 우정에 대한 메시지만을 이야기해야 했던 것을. ("생명"이 광주학살을 노래한 것이라는 얘기는 솔직히 믿음이 가지 않는다) 시대와 아무런 마찰 없이 순탄한 여정을 걸어온 것 또한... 되려 그의 기계적 정치 중립성보다 아쉽게 여겨지는 것은, 조용필이 1960년대에 보여준 록 음악인으로서의 가능성을 너무도 쉽게 대중 친화적인 방향으로 소진했다는 점이다. 전성기인 1980년대 조용필이 보여준 음악의 스펙트럼은 넓고도 호화롭다. 노인 세대를 겨냥한 민요부터, 중년을 노린 트로트, 젊은이들을 겨냥한 발라드, 그리고 “나는 너 좋아”로 대표되는 10대 취향의 음악들까지. 여기에 본인의 숨겨진 음악적 욕심을 담아내는 것 또한 빠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음악적 능력을 과시했다는 것은 호의적인 평가일 것이고, 보다 도끼눈을 뜨고 평하자면 이것저것 다 해보느라고 스타일을 정립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것이 가능하기는 한가? 아니, 그러려고 애쓰다보면 자기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없는 것 아닌가?
정리하자면 이렇다. 조용필은 음반도 많이 팔고, 방송도 많이 타고, 다양한 팬들에게 사랑받기를 원한 뮤지션이다. 한편으로 그는 록 음악인의 피를 내재하고 있는 인물이었고, 더욱이 뛰어난 보컬 능력과 작곡 역량을 갖춘 인물이기도 했다. 음악적 욕심도 능력만큼이나 컸다. 문제는 여기가 한국이란 이상한 동네라는 데에 기인한다. 인기 스타와 뛰어난 아티스트는 적어도 이 동네에서는 대립적인 개념이다. 인기 스타는 단지 딴따라일 뿐이며, 아티스트는 배고프고 외로운 명예직이다. 이 두 가지 (어찌보면) 대립적인 양면을 절충하기 위해 안간힘을 써 온 것이 지난 조용필의 35년 음악 인생이라 하면 될 것 같다. 물론 그 절충이 완전한 균형을 이루었는가는 논외의 문제이겠지만.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필자에게 조용필은 ‘얄미운’ 인물에 속했다. 원망도 했다.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뭔가 ‘다른’ 방법으로 인기와 음악을 동시에 획득하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든 세대를 겨냥해 이것저것 다 해보기보다는 진득하게 한 우물을 파는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한마디로 '애증'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최근 필자의 이런 생각에 약간의 조정이 이루어진 것은, 바로 얼마전 벌어진 조용필의 데뷔 35주년 기념 콘서트, [The History] 때문이다. 직접 가서 본 공연은 아니었지만 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이 이 공연을 보러 다녀왔고, 많은 후일담을 들려 주었다. 후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한 40대 초반 ‘언니’의 이야기였다. 자신은 이제껏 한번도 공연장 같은 곳에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록 공연장 같은 곳에서 온 관객이 하나가 되어 환장하는 풍경이 도통 이해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런 자신이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서 3시간 여를 서 있었다고 한다. 함께 갔던 여인네들과 함께 환호하고, 몸을 흔들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젊은 아해들이 공연 따위를 즐기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겠다고도 했다. 좋은 대중음악 공연이 있으면 자주 가야겠다는 이야기마저도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조용필이 존재해야만 할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얄밉고 자시고를 떠난 문제다. 1990년대를 거치며 이상하게 뒤틀려 버린 한국 동네의 대중음악은, 어찌된 노릇인지 3-40대 이상의 수용층을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이따금 포크 리이슈나 월드뮤직, 재즈 거품 등이 일어날 때 3-40대 계층이 주목받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버블 이상은 아니었다. 미사리에서 흘러간 퇴물의 연주를 들으며 스테이크 써는 것 역시도 정상적인 대중 음악의 향유로 보이지는 않는다. 트로트와 같은 듣는 사람 스스로도 ‘천’하게 여기는 음악 역시 성인을 위한 음악의 주류로 여기기에는 영 머뜩찮다. 그렇다면 대체 송골매 오빠들에 열광하던 언니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김인순의 노래를 다소곳이 따라 부르던 단발머리 소녀들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쯤 헤드폰 끼고 집을 나서는 아들래미를 닦달하는 궂은 부모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미장원에서 파마를 말며 자식새끼 담임에게 찾아갈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제 맸던 넥타이를 또다시 매고 만원 전철 안에서 스포츠 신문이나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이런 왜곡된 상태를 바로잡는 키워드가 조용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필 콘서트에서 그랬듯,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아줌마들이, 회사와 집을 오가며 찌든 아저씨들이 함께 열광할 수 있는 대상. 그렇다면 조용필이라는 사람은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 아닐까. 물론 이는 조용필이란 인물 하나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막 시작된 주5일 근무제와 같은 ‘여가’의 문제가 있고(여가시간이 없다면 문화를 즐길 여유도 없다), 그 여가라는 것이 고작 노래방과 비디오, 인터넷에 불과한 한국의 낙후된 문화적 인프라라는 난제가 또 도사리고 있다. 결정적인 것은 조용필 만큼의 노릇을 해줄 그 세대 음악인이 절대적으로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 나이대 오빠들은 다 트로트를 부르고 있다!) 해서, 조용필은 일종의 키워드일 뿐이다. 흘러간 세대들에게 공연에서 그렇게 열광할 수 있는 정열이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으로 족하다고나 할까.
마침 조용필의 18집 음반 발매와 데뷔 35주년을 기념하여, 이매진에서도 그의 음반 몇 장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음반은 4집 음반과 7집, 그리고 신보를 선정했다. 그리고 여기에 전에 썼던 김대환과 김트리오의 음반을 더했다. 정규음반 가운데 4집과 7집을 선정한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이 비교적 록 음악인에 가까운 조용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더 범위를 넓혔다가는 25장에 이르는 디스코그라피에 압사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세 장만 선정했으니 독자들의 양해를 바란다. 아울러 영향력 1위의 웹진(!) [weiv]에서 준비한 조용필 특집을 거들며 많은 도움을 얻었음 또한 밝히는 바이다.
http://imazine.hihome.com/talk82.htm
<우리나라 음악평론 수준이 얼마나 낮았으면 이런 얼토당토 않은 자칭 음악평론가가 인터넷을 통해 약간이지만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이런 소설가가 기성이 되어 있을 20년후의 우리나라 음악계의 모습을 상상해 보며 안타까운 마음에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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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0-24 | 1099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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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0-23 | 115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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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상원님 화이팅,조용필화이팅........... |
1999-10-23 | 93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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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1999-10-23 | 9527 |
6 댓글
그대여
2003-09-06 19:03:08
아아 자칭 평론가라고요?
무슨말이 하고 싶은건지.. 뭘 알기나 하고 글을 쓰는지.. 쯧쯧쯧..
가만있음 중간이라도가지
코메디 글 잘~ 읽었습니다. 꾸벅~
불사조
2003-09-06 20:48:36
아무리 다양성의 시대이고 평론가로써의 주관적 판단이라 할지라도 사실에 입각치 않은 비판과 왜곡된 평론은 한 뮤지션에 대한 실례이고 모욕이며 나아가서는
조용필 음악사를 정면으로 위배하고 부정하는 처사이다.
그 범례로 먼저 조용필 전성기와 방송 중단을 군사독재와 문민 정부를 거론했다는것은 단순히 자기견해의 미학적인 발로이며,
조용필은 음반도 많이 팔고,방송도 많이 타고,다양한 팬들에게 사랑 받고 싶은 뮤지션이라고 폄훼했다.이세가지는 모든 가수의 꿈이지만 조용필은 결코 의도적이지 않다.
그게 의도적으로 한다고 해서 될일은 아니지 않는가?
순전히 조용필에 대해서 너무도 모르는 무지의 소산이다.
여르 장르를 하는라 자기 스타일을 정립하지 못했다는 악평에 대해서도,각장르에
조용필 만큼 도전하여 성공한 뮤지션이 존재하는가를 묻지 않을수 없으며 또한 웹진 운자가 걱정?하는 자기만족에 대해서도 진정한 뮤지션은 자기만족이란 없다,가수가 자기 만족에 도취되는 순간 음악은 끝이요 파멸이기 때문이다.
하나만 더 말하겠다.
``문화적으로 소외시 당하고 무시 당하는 아줌마,그리고 회사일로 찌던 아저씨들이 열광할수 밖에 없는 대상``이라고 아주 노골적으로 혹평을 가했다.
먼저 아줌마 아저씨들의 무시하고 모욕한 점은 제쳐두고.
문화적으로 소외되고 무시되고,회사일로 찌던 아저씨들이 어떻게 매년 전국튜어에 거금과 장시간을 투자 할수 있단 말인가를 묻지 않을수 없다,
주관적 개념론이나 비평은 타인을 병들게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도 거만이라는 아집에 중독된다.
푸름누리
2003-09-06 22:13:06
아무런 근거도 없는 추상적인 단어들의 짜집기.......
푸름누리
2003-09-06 22:16:11
뮤지션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일처럼 치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죠.
아트적이면서도 흥행에도 성공할수 있음은 외국에서는 쉽게 찾아 볼수 있고
대단한 일로 여기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삐딱한 시선을 보는 경향이
많더군요. 조용필님의 음악을 형식으로 평가해서는 절대
올바른 답이 나올수 없습니다.
생명
2003-09-06 22:51:18
그대를사랑해
2003-09-07 08:42:39
평론가?
평론가면 기본적인 공부는 해야 되는거 아닌가?
전혀 조용필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구만.
아는 사람의 공연 얘기 한번 듣고 뭐?
참 대한민국 수준 알만하다.
이런걸 평론가라고..
뽑아논 제목이 "천하지 않는 성인음악의가능성?'
성인음악이 천하다는거야 뭐야.
이글 강헌 평론가 한테 좀 보여 줍시다.
"시대와 아무런 마찰 없이 순탄한 여정을 걸어온 것"이라구?
그래서 니들은 말만하면 과거에 길바닥에서 목숨걸고 데모하고
감옥갔다온 얘기를 훈장처럼 얘기하면서 그자리에 없었다고
몰아세우며 뭐했냐고 적대시 하며 따지길 잘하지.
시대에 온순하게 열심히 자기 삶을 산것이 죄더냐?
편향된 의식행태 지겹다.
조용필이 민중 투사였음 좋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