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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조용필은 일반인들에게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무명이었습니다.
김트리오라는 이름으로 전국 보컬그룹
경연대회에 참가해서 가수왕을
차지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최이철,이남이(사랑과 평화에서 활동)
등과 함께 촉망받는 기타리스트였습니다.
당시 타악기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던
김대환씨가 결성한 김트리오는
김대환씨의 외사촌동생인 강태환 그리고
조용필과 함께 다운타운에서
눈부신(?)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다할 음반이 발매되지 못했기에
오늘날 전해지는 노래들은 없습니다만
얼마전에 조용필이 김트리오 결성이전에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던 시절에
김대환씨가 기념앨범으로 만든 앨범은
일부 매니어들에 의해 공개된적이 있었고
대중들에게도 관심을 불러일으켰지요.
조용필을 가수로 성공시키게 된 뒤에는
김대환씨의 숨은 공(?)도 있었다고 합니다.
조용필씨가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을
우연히 김대환씨가 보게 되었는데
(Bobby Blandy의 Lead me on) 당시
솔 풍이 유행을 하는 시기라 김대환씨의
귀에도 조용필의 목소리가 어필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얼마있지 않아서 조용필은
김트리오의 보컬로서 활동을 하게 되지만
그다지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김트리오가 해체가 되고 난후
그는 자신의 그룹 "조용필과 그림자" 를
이끌고 부산으로 내려오게 됩니다.
그리고는 부산에서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벌이게 되는데 그때 그의 모습을 저는
처음 대할수 있었습니다.
낮에는 통기타 가수로서
사랑의 자장가와 하얀 모래의 꿈,
케사라,오버앤 오버,Once there was love,
세월이 가면...등 포크송을 불렀었고
밤에는 당시 서면대한극장옆의
에뜨랑제라는 클럽에서 그림자의
리드 보컬로 소올과 락을 노래했지요.
그때가 1971년이 거의 지나는
겨울 무렵이었습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도 역시 그 무렵
많이 들을수 있었는데
정작 이 곡이 힛트를 하게 된것은
75년 재일동포 모국 방문단이
부산을 찾을 무렵이었지요.
이 노래 한곡이 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거라고 저는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기에 가사도 바뀌어 졌지요.
보곺은 님이 그리운 내 형제로
바뀌게 되었던 겁니다.
저는 그때 군대 있던 시절이라
그가 크게 뜨는 과정을 제대로 못느꼈지만
군대에서 그 노래를 듣고 있으려니
정말 집에가고 싶은 생각이
어찌나 많이 들던지..^^**
정확히 32년만에 다시한번 그의 노래를 들어봅니다.
그때 그 목소리,그 작은무대위에서
땀흘리며 열창하던 작은 체구의 더벅머리.
그때 이미....
그는 작은 거인이었습니다.
http://www.mylovechung.pe.kr/cgi/board/board.cgi?id=chung&page=1&action=view&number=821.cgi&img=no&category=sub_cmt&keyword=조용필&start_num=
☜ 클릭 하면 < 돌아와요 해운대 > 를 들으실수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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