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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음악이 다양하다는 것은 필팬들 사이에선 상식이다. 조용필은 록만을 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트롯이나 발라드, 성인가요( 80년대엔 아니었지만, 지금에와서는 그렇게 인식되버리는 80년대의 곡들까지 포함해서)를 하는 대중음악인도 아님은 필팬들 사이에선 상식이다.
하지만 팬들을 떠나면, 조용필은
<허공> <그 겨울의 찻집> <돌부항>으로 대표되는 트롯가수, 성인가요의 가수로 더 많이 인식되어있다. 뮤지션 조용필을 어느정도 인식해주는건, 서태지 팬덤처럼 서태지를 중심으로 한국 뮤지션을 깊이있게 탐구하는 대중음악팬들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더해서 라디오 음악프로를 진행하는 몇몇 뮤지션들 정도이다.
분명히 80년대 <모나리자>가 힛트하던 시점, 아니 더 길게 잡아서 92년의 <슬픈 베아트리체>가 어느정도 불려지던 시점까지의 조용필은 다양한 음악을 하는 가수였다.( 이 무렵엔 가수와 뮤지션의 구별이 지금처럼 명확하지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80년대 인기 정상을 달리던 전성기의 조용필의 최대강점중 하나는 다양한 음악을 훌륭히 소화해낸다는 데 있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장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락,트롯,발라드로 구별지어 조용필음악을 거론하는 대중은 별로 없었지만.........)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조용필의 이미지는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PC통신,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부터 조용필은 넷상에서 트롯가수가 되어있었다. 이른바 대중음악에 관한 담론이 인터넷상에서 보편화되는 시점부터 조용필의 이미지는 트롯가수로 변질되었다.
조용필의 이미지가 왜곡된 원인을 찾아보아야 그걸 깨뜨리는 해결책도 나온다. 그래서 소설쓰는 기분으로 그 원인을 막연하게라도( 터무니 없다 하더라도) 찾아보려고 한다.
첫째, 조용필음악의 내부에서 찾아보면,
97년 5월에 발표된 16집에서 <바람의 노래>의 힛트이다. 92년 <슬픈 베아뜨리체>이후 무려 5년만의 힛트곡인 <바람의 노래>는 조용필의 이미지를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받아 부르는 가수, 성인 취향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고정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16집에 실린 다른 수록곡들 역시 성인 취향에 기울어있다. 98년 10월에 발표된 17집에서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던 <기다리는 아픔>은 크게 힛트하진 못했지만 노래방에서 불러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성인취향의 가수 이미지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기다리는 아픔 >역시 조용필 작곡이 아니다.
둘째, 외부에서 찾아보면
대중음악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진 90년대 중반부터 그런 논의를 주도해간 사람들이 록매니아층이 많았다는 점에 있다. 록매니아( 록씬이라 칭해지는)들에게 있어 조용필음악은 인정하기 떨떠름한 대상이다. 기타리스트로 출발한 조용필이 오랜 수련으로 갈고 다듬은 절창의 보컬실력으로 어필한 록이 아닌 수많은 힛트곡은 그들에겐 절대로 곱게 보아줄 수 없는 음악들이다. 80년대의 시대상황에서 주류에서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대중스타였던 조용필에게 한국적인 록을 했다는( 정말 그러한지는 진지한 논의가 앞으로 팬덤내에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론 설득력이 떨어진다.) 평가를 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록을 저항정신이 깃든 신성한 음악으로 추앙하고 싶은 이들에겐 조용필록은 입맛에 맞는 대상이 아니었다. 80년대 신중현의 재기를 막아선것처럼 보이는 슈퍼스타 조용필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작년 여름 EBS 강헌씨의 <시대로 보는 대중음악>특강에서 강헌씨는 80년대를 발라드의 시기로 규정하고 3대 발라드 스타로 조용필- 이문세-변진섭을 소개했다. 강의 서두엔 < 기도하는~~ 꺅>으로 조용필을 규정짓는 비련을 소개했다. 강헌씨의 기본설정은 80년대는, 70년대의 청년문화( 포크와 신중현 락)가 박정희의 군홧발에 짓밟힌 이후, 80년대 조용필은 10대 소녀의 여린 감수성에 어필하는 발라드로 화려한 시대를 열었고, 그 주류 감수성을 뚫고 10대 소년들과 20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들국화의 언더가 공존한 시기였다는 것이었다.
강헌씨는 2003년 5월 출판된 지승호의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는 " 어쩌면 그 당시에 ( 공중파 방송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밖에는 없었다."로 언급하긴 했지만, 강헌씨 역시 전체적으로 볼때 조용필음악을 여린 감수성의 발라드로 보는 조용필관이 있는 듯 하다.
강헌씨가 이정도인데, 다른 강경한 록매니아 성향의 평론가들이나 평론에 관심을 지니고 글을 쓰는 사람들( 비를범같은 사람들)이 조용필을 보는 시선은 짐작이 간다. 이 사람들에게 조용필이 슈퍼스타의 지위를 누리던 시기, 특히 85년 들국화 등장 이전의 시기는 한국대중음악엔 발라드와 트롯, 캬바레 댄스 음악만이 있던 암흑기로 규정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도 들국화로 검색해서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면 들국화 등장 이전을 이렇게 규정짓는 글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5공과 관련지어 폄하하는 시각도 한국에서의 록을 저항정신이 깃든 신성한 음악으로 규정지으면서 의식없이 흐느적거리는 사랑타령의 음악만을 해온 조용필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사람들로 인해, 막연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확고하게 자리잡는 이미지로 굳어지면서 형성되어 온 듯 하다.
이제 록매니아층이 아닌 보수,수구 성향의 정치색을 지닌 조선과 같은 언론에서 바라는 조용필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그 사람들은 조용필이 4,50대의 팬층을 지닌 성인취향의 음악을 하는 보수성향의 가수로 인식되기를 바랄 수 있다. 국민가수라는 10대,20대의 젊은이들도 쉽게 무시하긴 어려운 무게감이 실린 조용필이 보수성향을 은근히 내비칠 때 그들이 얻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의 득은 크다. 조선일보 모기자가 16,17집을 두고 조용필이 " 이제 음악의 제 방향을 찾았다. 대중들이 조용필에게 듣고 싶어하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라고 언급한 것은 일회성 우연만은 아니라고 본다.
여기에서 조용필을 성인취향의 가수로 규정짓고 싶어하는 록매니아층의 바램과 보수,수구층의 정치색을 지닌 언론의 바램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조용필음악은 한쪽으로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글은 계속 그 쪽으로 쓰여지고 사람들은 자꾸 그렇게 떠들고 라디오에선 <허공> <그 겨울의 찻집>이 흘러나오면서 지난 10년간 조용필의 이미지는 대중들 마음에서 그렇게 굳어져 온 것 아닐까?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조용필 내부에서, 조용필님은 균형을 잡는 음악행보를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지난 잠실 콘서트의 오프닝 곡은 <기도하는~ 꺅>이었다. <오빠부대의 원조>는 뮤지션 조용필이 추구할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이미 그쪽은 굳어져 있다. 균형을 맞추어 바로잡으려면 다른 쪽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 물론, 여기엔 조용필님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 당연히 그렇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희생해가면서 이미지를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 굳어진 이미지 때문에 발목잡혀서 어정쩡하게 남은 음악인생을 채워나가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이다. 관객수가 줄더라도 90년대 수록곡들을 적극 선곡하고, 18집 수록곡의 선곡은 비중을 줄이면 안된다. 19집이 나오기전까지 18집 수록곡을 계속 부르고, 19집이 발표되어 19집 수록곡을 더해 7~8곡 정도의 18,19집 수록곡이 콘서트에서 라이브로 불려질 때 조용필은 진정한 현재진행형이 된다. 거기에 더해 그 곡들이 조용필 작곡의 곡들이면 더욱 더 좋다. <진>이 아니면 얼마나 더 좋을까?
외부적으론, 록매니아층에겐 더 기대할 것이 많지 않다. 신현준이 웨이브에서 조용필음악을 다루며 서두에서 한국적인 록이라는 이상에 부합하는 곡들이 새삼 발견된다는 정도의 언급을 하긴 했지만, 그 이상은 더 기대하긴 무리다. 조용필음악에서 록만을 다루어선 조용필음악은 제대로 조명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4~50대 이상의 성인들은 조용필이 트롯가수이든, 아니든, 뮤지션이든 그냥 가수이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 80년대의 음악을 듣는 것에서 만족해버린다. 90년대 조용필이 지구로부터 나와서 어떤 음악을 했는지 관심도 없다. 레코드점에 가서 한번에 다 모아논 지구 편집 앨범을 아무 고민없이 구매한다. 뮤지션 조용필의 음악행보에 대해서도 관심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음악성을 놓고 관심과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쪽은 10대, 20대들이다. 대중음악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진 90년대 중반부터 대중음악에 관심을 지녀온 네티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도 조용필을 높이 평가하는 쪽은 막연히 위대한 뮤지션( 대표곡은 폭넓게 모르면서도....)정도이고 대부분은 별 관심이 없다.
80년대의 조용필음악이 사실에 가깝게 탐구되어 규정되지 않고서는 조용필음악 바로 세우기는 불가능하다. 과연 발라드 가수였는지? 10대 소녀의 여린 감성을 자극한 슈퍼스타만이었는지? 지금의 10대,20대가 알고 있는 것처럼 트롯,성인 취향으로 인기를 모은 가수였는지?는 팬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논의를 뜨겁게 해줄 팬들을 확보해내는 건 조용필님의 몫이다.
또한 기대하긴 어렵지만, 조용필음악을 아낀다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지난 힛트곡을 틀때, <허공>, <그 겨울의 찻집>,<Q >등만을 줄기차게 틀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팬들을 떠나면, 조용필은
<허공> <그 겨울의 찻집> <돌부항>으로 대표되는 트롯가수, 성인가요의 가수로 더 많이 인식되어있다. 뮤지션 조용필을 어느정도 인식해주는건, 서태지 팬덤처럼 서태지를 중심으로 한국 뮤지션을 깊이있게 탐구하는 대중음악팬들 정도에 불과하다. 그리고 더해서 라디오 음악프로를 진행하는 몇몇 뮤지션들 정도이다.
분명히 80년대 <모나리자>가 힛트하던 시점, 아니 더 길게 잡아서 92년의 <슬픈 베아트리체>가 어느정도 불려지던 시점까지의 조용필은 다양한 음악을 하는 가수였다.( 이 무렵엔 가수와 뮤지션의 구별이 지금처럼 명확하지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80년대 인기 정상을 달리던 전성기의 조용필의 최대강점중 하나는 다양한 음악을 훌륭히 소화해낸다는 데 있었다.( 당시엔 지금처럼 장르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서 락,트롯,발라드로 구별지어 조용필음악을 거론하는 대중은 별로 없었지만.........)
그런데, 90년대 중반부터 조용필의 이미지는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PC통신, 인터넷이 보편화되면서부터 조용필은 넷상에서 트롯가수가 되어있었다. 이른바 대중음악에 관한 담론이 인터넷상에서 보편화되는 시점부터 조용필의 이미지는 트롯가수로 변질되었다.
조용필의 이미지가 왜곡된 원인을 찾아보아야 그걸 깨뜨리는 해결책도 나온다. 그래서 소설쓰는 기분으로 그 원인을 막연하게라도( 터무니 없다 하더라도) 찾아보려고 한다.
첫째, 조용필음악의 내부에서 찾아보면,
97년 5월에 발표된 16집에서 <바람의 노래>의 힛트이다. 92년 <슬픈 베아뜨리체>이후 무려 5년만의 힛트곡인 <바람의 노래>는 조용필의 이미지를 다른 작곡가의 노래를 받아 부르는 가수, 성인 취향의 노래를 부르는 가수로 고정시키는데 크게 일조했다. 16집에 실린 다른 수록곡들 역시 성인 취향에 기울어있다. 98년 10월에 발표된 17집에서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왔던 <기다리는 아픔>은 크게 힛트하진 못했지만 노래방에서 불러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성인취향의 가수 이미지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기다리는 아픔 >역시 조용필 작곡이 아니다.
둘째, 외부에서 찾아보면
대중음악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진 90년대 중반부터 그런 논의를 주도해간 사람들이 록매니아층이 많았다는 점에 있다. 록매니아( 록씬이라 칭해지는)들에게 있어 조용필음악은 인정하기 떨떠름한 대상이다. 기타리스트로 출발한 조용필이 오랜 수련으로 갈고 다듬은 절창의 보컬실력으로 어필한 록이 아닌 수많은 힛트곡은 그들에겐 절대로 곱게 보아줄 수 없는 음악들이다. 80년대의 시대상황에서 주류에서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은 대중스타였던 조용필에게 한국적인 록을 했다는( 정말 그러한지는 진지한 논의가 앞으로 팬덤내에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론 설득력이 떨어진다.) 평가를 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록을 저항정신이 깃든 신성한 음악으로 추앙하고 싶은 이들에겐 조용필록은 입맛에 맞는 대상이 아니었다. 80년대 신중현의 재기를 막아선것처럼 보이는 슈퍼스타 조용필도 곱게 보이지 않았다.
작년 여름 EBS 강헌씨의 <시대로 보는 대중음악>특강에서 강헌씨는 80년대를 발라드의 시기로 규정하고 3대 발라드 스타로 조용필- 이문세-변진섭을 소개했다. 강의 서두엔 < 기도하는~~ 꺅>으로 조용필을 규정짓는 비련을 소개했다. 강헌씨의 기본설정은 80년대는, 70년대의 청년문화( 포크와 신중현 락)가 박정희의 군홧발에 짓밟힌 이후, 80년대 조용필은 10대 소녀의 여린 감수성에 어필하는 발라드로 화려한 시대를 열었고, 그 주류 감수성을 뚫고 10대 소년들과 20대 사이에서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들국화의 언더가 공존한 시기였다는 것이었다.
강헌씨는 2003년 5월 출판된 지승호의 책에 실린 인터뷰에서는 " 어쩌면 그 당시에 ( 공중파 방송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밖에는 없었다."로 언급하긴 했지만, 강헌씨 역시 전체적으로 볼때 조용필음악을 여린 감수성의 발라드로 보는 조용필관이 있는 듯 하다.
강헌씨가 이정도인데, 다른 강경한 록매니아 성향의 평론가들이나 평론에 관심을 지니고 글을 쓰는 사람들( 비를범같은 사람들)이 조용필을 보는 시선은 짐작이 간다. 이 사람들에게 조용필이 슈퍼스타의 지위를 누리던 시기, 특히 85년 들국화 등장 이전의 시기는 한국대중음악엔 발라드와 트롯, 캬바레 댄스 음악만이 있던 암흑기로 규정되어 버린 것이다. 지금도 들국화로 검색해서 관련 사이트에 들어가면 들국화 등장 이전을 이렇게 규정짓는 글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5공과 관련지어 폄하하는 시각도 한국에서의 록을 저항정신이 깃든 신성한 음악으로 규정지으면서 의식없이 흐느적거리는 사랑타령의 음악만을 해온 조용필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사람들로 인해, 막연하면서도 마음 한편에 확고하게 자리잡는 이미지로 굳어지면서 형성되어 온 듯 하다.
이제 록매니아층이 아닌 보수,수구 성향의 정치색을 지닌 조선과 같은 언론에서 바라는 조용필의 이미지를 생각해보자. 그 사람들은 조용필이 4,50대의 팬층을 지닌 성인취향의 음악을 하는 보수성향의 가수로 인식되기를 바랄 수 있다. 국민가수라는 10대,20대의 젊은이들도 쉽게 무시하긴 어려운 무게감이 실린 조용필이 보수성향을 은근히 내비칠 때 그들이 얻는 정치적인 이해관계에서의 득은 크다. 조선일보 모기자가 16,17집을 두고 조용필이 " 이제 음악의 제 방향을 찾았다. 대중들이 조용필에게 듣고 싶어하는 음악에 대한 자신의 조언이 큰 영향을 미쳤다."라고 언급한 것은 일회성 우연만은 아니라고 본다.
여기에서 조용필을 성인취향의 가수로 규정짓고 싶어하는 록매니아층의 바램과 보수,수구층의 정치색을 지닌 언론의 바램이 교묘하게 맞아떨어진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조용필음악은 한쪽으로 왜곡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글은 계속 그 쪽으로 쓰여지고 사람들은 자꾸 그렇게 떠들고 라디오에선 <허공> <그 겨울의 찻집>이 흘러나오면서 지난 10년간 조용필의 이미지는 대중들 마음에서 그렇게 굳어져 온 것 아닐까?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
조용필 내부에서, 조용필님은 균형을 잡는 음악행보를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지난 잠실 콘서트의 오프닝 곡은 <기도하는~ 꺅>이었다. <오빠부대의 원조>는 뮤지션 조용필이 추구할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이미 그쪽은 굳어져 있다. 균형을 맞추어 바로잡으려면 다른 쪽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 물론, 여기엔 조용필님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 당연히 그렇다.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희생해가면서 이미지를 바로잡아야만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이 굳어진 이미지 때문에 발목잡혀서 어정쩡하게 남은 음악인생을 채워나가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하는 이야기이다. 관객수가 줄더라도 90년대 수록곡들을 적극 선곡하고, 18집 수록곡의 선곡은 비중을 줄이면 안된다. 19집이 나오기전까지 18집 수록곡을 계속 부르고, 19집이 발표되어 19집 수록곡을 더해 7~8곡 정도의 18,19집 수록곡이 콘서트에서 라이브로 불려질 때 조용필은 진정한 현재진행형이 된다. 거기에 더해 그 곡들이 조용필 작곡의 곡들이면 더욱 더 좋다. <진>이 아니면 얼마나 더 좋을까?
외부적으론, 록매니아층에겐 더 기대할 것이 많지 않다. 신현준이 웨이브에서 조용필음악을 다루며 서두에서 한국적인 록이라는 이상에 부합하는 곡들이 새삼 발견된다는 정도의 언급을 하긴 했지만, 그 이상은 더 기대하긴 무리다. 조용필음악에서 록만을 다루어선 조용필음악은 제대로 조명될 수 없다.
일반적으로 4~50대 이상의 성인들은 조용필이 트롯가수이든, 아니든, 뮤지션이든 그냥 가수이든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전 80년대의 음악을 듣는 것에서 만족해버린다. 90년대 조용필이 지구로부터 나와서 어떤 음악을 했는지 관심도 없다. 레코드점에 가서 한번에 다 모아논 지구 편집 앨범을 아무 고민없이 구매한다. 뮤지션 조용필의 음악행보에 대해서도 관심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음악성을 놓고 관심과 뜨거운 논쟁을 벌이는 쪽은 10대, 20대들이다. 대중음악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진 90년대 중반부터 대중음악에 관심을 지녀온 네티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인 것이다. 그들 사이에서도 조용필을 높이 평가하는 쪽은 막연히 위대한 뮤지션( 대표곡은 폭넓게 모르면서도....)정도이고 대부분은 별 관심이 없다.
80년대의 조용필음악이 사실에 가깝게 탐구되어 규정되지 않고서는 조용필음악 바로 세우기는 불가능하다. 과연 발라드 가수였는지? 10대 소녀의 여린 감성을 자극한 슈퍼스타만이었는지? 지금의 10대,20대가 알고 있는 것처럼 트롯,성인 취향으로 인기를 모은 가수였는지?는 팬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논의를 뜨겁게 해줄 팬들을 확보해내는 건 조용필님의 몫이다.
또한 기대하긴 어렵지만, 조용필음악을 아낀다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는 지난 힛트곡을 틀때, <허공>, <그 겨울의 찻집>,<Q >등만을 줄기차게 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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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댓글
...
2003-10-22 09:50:15
꾀꼬리
2003-10-22 10:05:18
절대동감
2003-10-22 10:20:20
^^*
2003-10-22 10:21:33
굳이 삭제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창원
2003-10-22 17:53:20
필팬으로써 당신같은 분이 있다는것이 감사합니다
필매냐
2003-10-22 18:21:57
그리고 필팬덤내에서도 필님의 이미지 왜곡에 대해 바로 잡을 수 있는
방법론에 많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글 삭제보다는 합리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심이 좋을듯
단 서로간의 예의는 지켜가면서......(토론을 하다보면 생각이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는데 막말을 삼가하자는 말입니다.^^;;)
이런 토론은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래를 위해서......
글 잘 읽고 갑니다.^^
바다
2003-10-22 18:34:00
되기를 바란다. "관객수가 줄더라도 18집, 앞으로 나올 19집을 불러서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는 말 동감이다.
우리 조용필 씨도 이 글을 참고해서 콘서트를 열었으면 한다.
대안
2003-10-22 20:05:21
아주 오래된 팬이지만 이 글은 참 공감이 가는 글이다
필님은 기타리스트로 처음 출발했고
처음 하던 음악이 밴드의 락음악을 하던 필님이 35년이란 세월을 활동해오면서
여러 장르의 음악을 섭렵해 너무나 잘 소화해 내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국민가수가 되었지만
지난 35주년 잠실 공연의 35자의 도안이 우연인지 모르지만 락이라 보여지는 것으로 보아,
위대한 탄생이라는 유난히 밴드를 아끼시고 언제나 함께 하시는 것을 보아,
한두 코너는 기타를 꼭 메시는 것으로 보아,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추구하셔도 락오페라인 것으로 보아
락음악을 필님이 아끼고 사랑하시는 것이 분명하다고 보여진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그렇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또한 사실인 듯 싶다
이것든 좋고 나쁘고의 개념을 떠나 한번쯤 생각해 볼 문제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조용필이란 가수에 대한 이미지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이참에 화끈하게 스탠딩 락 콘써트를 한번 하면 어떨까라는 헛된(????) 꿈을 꾸어본다
만약 필님이 진정 락음악을 사랑하시다면 꿈이 꿈으로 끝나지만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퍼스트러브
2003-10-22 20:40:12
윤종대
2003-10-23 06:37:17
필님의 피를 토하는듯한 절창이랑 조성모식의 여린 발라드를 동격으로 놓다니 쩝...
나랑필
2003-10-24 01:54:29
가사로 필님이 사랑노래를 불렀다고 하시다니 좀 그렇군여.
전 필님이 사랑노래가 아닌, 세상노래를 불러서 더 좋아했는데.
곡으로 사랑노래를 했다는 뜻인가여?
그렇게 따지면, 신중현님도 사랑노래 엄청많이 했던데여.
하지만, 팬클럽내에서 이런 토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은 동의합니다.
희망
2003-10-24 08:13:10
앞으로 공연하실 때 90년대 이후의 곡을 위주로 레퍼토리 선정하셨으면 좋겠구요.
가급적 필님 자작곡이 많이 불려지길 희망합니다.
이런 시도를 통해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훌륭한 음악을 창조해내는 아티스트, 혹은 뮤지션으로 옳게 인식되도록 해야 된다고 봅니다.
공연하실 때 기타 연주하시는 모습도 자주 보여주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