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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퍼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그러나 가보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갈 수는 없는 안양의 모골프장. 시내 한복판에 이렇게 훌륭한 코스가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게다가 동양화에나 나올 법한 진기한 나무들 하며 앞뒤 팀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여유있는 티오프 간격, 코스 관리 상태, 캐디 언니들의 수준… 어느 것 하나 명문이라는 칭찬을 듣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밤 잠을 설쳤던 이유는 골프장에 대한 기대뿐만은 아니었다. 60~7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오빠 부대를 이끌며 전국의 모든 여성들을 단발머리로 만들어 버린,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도 아저씨가 아닌 오빠로 불려야만 할 것 같은, 아직도 대형 콘서트장의 맨구석 자리까지 매진시키며 건재함을 자랑하는 조용필 오빠(왠지 오빠라고 불러야 할 것 같아서)와 처음 라운드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클럽하우스에서의 첫 대면은 어색함 그 자체였다. 물론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대스타와의 라운드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는 척 ‘설정된 무관심’이 공기 중에 흘렀다. 다들 그저 묵묵히 식사에만 몰두하는 가운데 어색함과 긴장감, 무안함만 테이블에 가득 쌓이고 있었다.
드디어 티오프 시간, 가까스로 오빠의 얼굴을 정면에서 차근차근 뜯어볼 수 있었다.
그리고 첫티샷 연습 스윙을 왜 그렇게 해댔나 싶을 정도로 공은 커다란 슬라이스 포물선을 그리며 나무가 빽빽한 우측 낮은 언덕 방향으로 사라졌다. 물론 OB는 없었지만 내 자존심엔 커다란 OB가 나버렸다.
호쾌한 첫 티샷으로 오빠의 뇌리에 재치있고 볼 잘 치는 ‘서길자’의 이미지를 선명하게 심어주고 싶었건만 어색하고 힘만 잔뜩 들어간 스윙을 해버렸으니 이 일을 어째~.
조용필 오빠 역시 긴장한 탓인지 어색함이 배인 스윙으로 볼을 제대로 띄워 보내질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골프장에서 여자와의 동반 라운드는 내가 처음이었다고.
용필 오빠의 최초 여성 동반자라는 영예에 걸맞지 않게 무너지는 샷으로 그날 난 완전히 스타일을 구겼다. 또 라운드 내내 실수를 보아도 시원하고 장난스럽게 비웃어주질 못했고, 프로다운 샷이 나와도 진심으로 축하해 주질 못했다. 뭔가 조심스럽고 경계심이 앞서 서로의 감정을 진실되게 드러내 보이지 못했던 것. 절제된 분위기 속에 어색한 라운드가 이어졌다.
그러다 자리를 주선하신 회장님께서 나름대로 뜻을 품고 느즈막히 골프를 시작한 나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꺼내자 조용필 오빠가 넌지시 한마디하셨다.
“시기가 뭐 그렇게 중요한가요? 하고 싶으면 주위에서 뭐라 하든 추진해야죠.” 소신을 가지고 지금껏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대스타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이 있는가~”
'절대 고독'을 노래했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용필 오빠의 노래 중 하나다. 노래 한 곡에 인생의 모든 진리가 담겨 있다.
가수의 운명은 그가 부른 노랫말처럼 되어버린다고 했던가? 정말 그랬다. 마지막 퍼팅을 홀인시키고 “오늘 골프 정말 안된다”며 돌아서는 용필 오빠의 뒷모습에 외로움이 스쳤다. 공인으로서 자신의 감정보다 주위의 시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항상 주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지만 때론 그 관심이 더욱 그를 외롭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꿈이었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도 아쉬움이 남는 라운드. 혹 다시 한번 동반 라운드의 영광이 주어진다면 이렇게 시시한 라운드로 끝내 버리진 않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환갑이 지나서도 우리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이름 조용필. 영원한 젊은 오빠, 굿샷하세요.
기사 게재 일자 2004/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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