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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을 보면 조용필이 보인다?
2007-08-09 08:26:45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8일 우리 안방에는 큰 의미를 찍는 하나의 역사가 이뤄졌다. 바로 합작 형태로 5년동안 남북한 방송인들이 준비한 북한제작의 드라마가 한국방송사상 최초로 우리 시청자와 만났다.
바로 KBS에서 방송한 북한 드라마 ‘사육신’이었다. 세조의 야망을 드러낸 첫회에 대한 시청자들은 반응은 신선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루하고 답답함을 느끼는 시청자가 많았다. 이는 세련되고 화려한 영상, 빠른 템포, 남한 연기자와의 다른 북한 연기자의 연기 스타일 등 남북한 드라마 트루기나 전개 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첫회 ‘사육신’과 우리 시청자의 반응을 보면서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른 것은 정확히 2년전인 2005년 8월 23일 평양 류경체육관의 조용필이었다. 그토록 갈망했던 조용필의 음악이 북한에 울려 퍼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북측의 초청을 받은 지 1년, 일곱 차례나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끝에 성사된 이날 공연은 남북한 모두에게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조용필의 평양 무대의 막이 오르고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다. 조용필 특유의 열창이 시작됐지만 막 저 너머의 관중들은 표정의 변화가 없는 적막 그 자체였다. “얼음같았어요. 각오는 했지만 당황했지요”당시 37년동안 숱한 무대를 소화했던 조용필마저 숨을 멎게 할 정도로 관객은 차가웠다.
분명 관객들의 차가운 반응은 오랫동안 단절된 상황 속에서 초래된 남북한의 음악적 스타일의 차이와 접하지 않는 생소한 음악 장르와 창법 등 복합적 원인이 있었다.
8일 남한의 시청자는 북한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사육신’을 통해 처음 접했다. 수십년동안 단절돼 접하지 못한 북한 드라마를 접했기에 생소하고 낯선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생소함으로 인해 재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반응이 차가울 수 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 차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드라마를 통한 남북한의 교류는 활성화되고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다. 조용필의 공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조용필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으로 첫곡을 불렀지만 차갑기만 한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절망할 수도 실망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용필은 최선을 다했다. 한곡 두곡 부르면서 북한 관객 7,000여명은 조용필의 음악 앞에 그들의 마음을 서서히 열었다. 의례적 박수에서 ‘여행을 떠나요’를 부를 땐 발로 장단을 맞추고 더 나아가 ‘꿈’이라는 노래에서는 따라 부르는 친밀감의 감정의 상승을 보여줬다. 그리고 끝내 일부 관객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노래가 연출할 수 있는 최대의 감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들은 조용필이 37년 음악을 했고 지금 나이가 마흔이라는 농담에 박장대소하며 “그럼 세살 때 음악을 했단 말이야”라는 반응으로 맞장구까지 치는 호응을 보였다.
조용필은 공연후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북한에 친숙한 노래로 분위기를 이끌지 다소 생소한 조용필의 노래로 공연의 대부분을 이끌어간 이유에 대해. “색깔을 넣기 싫었어요. 다들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했는데 제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음악은 모든 것을 초월하잖아요.”
우리 시청자도 북한 관객처럼 생소함에 차가운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분단으로 ‘사육신’의 연기자와 드라마의 스타일에서 드라마트루기에 이르기까지 낯설어 이질감을 느낄수 있다. 하지만 “별볼일 없다”는 냉소적 태도는 유보하고 마음을 열고 ‘사육신’을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북한 관객들이 처음 싸늘한 시선을 보냈던 조용필의 음악이 관객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하고 이를 통해 오랜 분단으로 올 수 있는, 그리고 적대적 대치에서 초래될 수 있는 단절의 벽을 조금씩 허무는 것을 보여줬다. 조용필의 음악은 남북한의 분단과 이질감을 극복하는 대중음악의 위력의 첫걸음이었다. 조용필 평양공연이 남과 북을 하나로 잇는 작업을 계속해야하는 시대적 소명을 깨닫게 하는 의미있는 공연이었다면 ‘사육신’역시 그러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와 만난 ‘사육신’은 협의에서 제작까지 5년간의 산고 끝에 나온 결과물로 남북방송사상 처음으로 북한에 외주 주문 형태로 조선중앙TV가 제작한 70분물 24부작 사극으로 방송 제작은 이미 마쳤지만 유동적인 남북한 정치상황 때문에 8일에야 첫선을 보였다.
분명 ‘사육신’은 우리 드라마와의 차이로 인해 낯설고 기대치에 못미칠 수 있다. 하지만 냉소적 반응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차이에 대한 비난보다는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어떨까. 북한 관객들이 조용필의 음악에 마음을 열었듯이 우리 시청자도 ‘사육신’에 열린 마음을 보이면 어떨까.
우리 시청자와 만나기 시작한‘사육신’은 어쩌면 북한에서의 조용필 공연의 쌍생아의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사육신'(왼쪽)과 조용필 평양공연. 사진 = KBS SBS 방송 화면]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knbae@mydaily.co.kr
2007-08-09 08:26:45
[마이데일리 =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8일 우리 안방에는 큰 의미를 찍는 하나의 역사가 이뤄졌다. 바로 합작 형태로 5년동안 남북한 방송인들이 준비한 북한제작의 드라마가 한국방송사상 최초로 우리 시청자와 만났다.
바로 KBS에서 방송한 북한 드라마 ‘사육신’이었다. 세조의 야망을 드러낸 첫회에 대한 시청자들은 반응은 신선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지루하고 답답함을 느끼는 시청자가 많았다. 이는 세련되고 화려한 영상, 빠른 템포, 남한 연기자와의 다른 북한 연기자의 연기 스타일 등 남북한 드라마 트루기나 전개 스타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일 수 있다.
첫회 ‘사육신’과 우리 시청자의 반응을 보면서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른 것은 정확히 2년전인 2005년 8월 23일 평양 류경체육관의 조용필이었다. 그토록 갈망했던 조용필의 음악이 북한에 울려 퍼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북측의 초청을 받은 지 1년, 일곱 차례나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끝에 성사된 이날 공연은 남북한 모두에게 남다른 기대감을 갖게 했다. 하지만 조용필의 평양 무대의 막이 오르고 충격적인 장면이 있었다. 조용필 특유의 열창이 시작됐지만 막 저 너머의 관중들은 표정의 변화가 없는 적막 그 자체였다. “얼음같았어요. 각오는 했지만 당황했지요”당시 37년동안 숱한 무대를 소화했던 조용필마저 숨을 멎게 할 정도로 관객은 차가웠다.
분명 관객들의 차가운 반응은 오랫동안 단절된 상황 속에서 초래된 남북한의 음악적 스타일의 차이와 접하지 않는 생소한 음악 장르와 창법 등 복합적 원인이 있었다.
8일 남한의 시청자는 북한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사육신’을 통해 처음 접했다. 수십년동안 단절돼 접하지 못한 북한 드라마를 접했기에 생소하고 낯선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생소함으로 인해 재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반응이 차가울 수 있다. 하지만 첫술에 배부르지 않는다. 차이를 인정하고 다름의 의미를 알게 되고 그 차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다보면 드라마를 통한 남북한의 교류는 활성화되고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이다. 조용필의 공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조용필은 혼신의 힘을 다해 열창으로 첫곡을 불렀지만 차갑기만 한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절망할 수도 실망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용필은 최선을 다했다. 한곡 두곡 부르면서 북한 관객 7,000여명은 조용필의 음악 앞에 그들의 마음을 서서히 열었다. 의례적 박수에서 ‘여행을 떠나요’를 부를 땐 발로 장단을 맞추고 더 나아가 ‘꿈’이라는 노래에서는 따라 부르는 친밀감의 감정의 상승을 보여줬다. 그리고 끝내 일부 관객들은 눈물까지 흘렸다. 노래가 연출할 수 있는 최대의 감정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들은 조용필이 37년 음악을 했고 지금 나이가 마흔이라는 농담에 박장대소하며 “그럼 세살 때 음악을 했단 말이야”라는 반응으로 맞장구까지 치는 호응을 보였다.
조용필은 공연후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북한에 친숙한 노래로 분위기를 이끌지 다소 생소한 조용필의 노래로 공연의 대부분을 이끌어간 이유에 대해. “색깔을 넣기 싫었어요. 다들 ‘우리의 소원은 통일’로 시작했는데 제 음악을 들려주고 싶었어요. 음악은 모든 것을 초월하잖아요.”
우리 시청자도 북한 관객처럼 생소함에 차가운 반응을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오랜 분단으로 ‘사육신’의 연기자와 드라마의 스타일에서 드라마트루기에 이르기까지 낯설어 이질감을 느낄수 있다. 하지만 “별볼일 없다”는 냉소적 태도는 유보하고 마음을 열고 ‘사육신’을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북한 관객들이 처음 싸늘한 시선을 보냈던 조용필의 음악이 관객의 마음을 조금씩 열게 하고 이를 통해 오랜 분단으로 올 수 있는, 그리고 적대적 대치에서 초래될 수 있는 단절의 벽을 조금씩 허무는 것을 보여줬다. 조용필의 음악은 남북한의 분단과 이질감을 극복하는 대중음악의 위력의 첫걸음이었다. 조용필 평양공연이 남과 북을 하나로 잇는 작업을 계속해야하는 시대적 소명을 깨닫게 하는 의미있는 공연이었다면 ‘사육신’역시 그러한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와 만난 ‘사육신’은 협의에서 제작까지 5년간의 산고 끝에 나온 결과물로 남북방송사상 처음으로 북한에 외주 주문 형태로 조선중앙TV가 제작한 70분물 24부작 사극으로 방송 제작은 이미 마쳤지만 유동적인 남북한 정치상황 때문에 8일에야 첫선을 보였다.
분명 ‘사육신’은 우리 드라마와의 차이로 인해 낯설고 기대치에 못미칠 수 있다. 하지만 냉소적 반응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차이에 대한 비난보다는 이해하려는 태도를 가지는 것은 어떨까. 북한 관객들이 조용필의 음악에 마음을 열었듯이 우리 시청자도 ‘사육신’에 열린 마음을 보이면 어떨까.
우리 시청자와 만나기 시작한‘사육신’은 어쩌면 북한에서의 조용필 공연의 쌍생아의 모습으로 다가올 수 있는 것이다.
['사육신'(왼쪽)과 조용필 평양공연. 사진 = KBS SBS 방송 화면]
배국남 대중문화전문기자 knbae@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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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댓글
카리용
2007-08-09 20:17:09
평양공연은 언제 또 하실라나... ^^
필사랑♡김영미
2007-08-09 21:55:28
평양공연~!...그때가 어제의 일처럼 새록 느껴지네요.
뜻하지 않은 곳에서 오빠 사진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어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