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팬클럽 미지의 세계 Cho Yongpil Fanclub Mizi

열린 게시판

6

★ 경인방송 조용필특집 둘째날 2집 3.4부 방송분 ★

지오스님, 2008-06-01 22:16:28

조회 수
1840
추천 수
31
***** 경인방송 써니FM ‘ 백영규의 가고 싶은 마을 ’ 2집 앨범 1 부 방송분 *****

★ DJ : 백영규 (가수)
★ 조용필 2집 노래 + 게스트 : 임석호(전 지구레코드사 문예부장), 성우진 (평론가)
                
★ 특집 방송 제작진 : PD - 임지성, 김경은,  작가 : 김희진, 김형민
★ 나레이션 : 김지수 아나운서
----------------------------------------------------------------

--- 3부 ---

백영규: 조용필 데뷔40주년을 맞이해서 특집을 마련했습니다. 오늘 이틀째, 그래서 그 당시에 우리나라 최고의 레코드회사였던 지구레코드회사 문예부장을 역임하셨던 임석호씨 나오셨구요, 그리고 가요평론가 성우진씨 나오셔서 얘기나누고 있습니다.
첫곡은 [오빠생각]으로 출발했습니다. 지금 조용필씨에 대한 문자가 평일과는 많이 틀립니다. 정말 진심으로 알고싶어하고, 일일이 열거 못하는 점, 이해를 부탁드리구요...
그리고 시간되는대로 조금조금씩 소개를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2부에서 임석호 기획자 그리고 가수 조용필, 그 관계가 만만치 않았을것 같아요. 지금 조용필씨는 우리 가요계의 가왕, 그리고 영웅... 이런 낱말들이 붙어가고 있는데, 과연 영웅이 되기까지는 어떤 성격이었는지... 또 가까이서 본 임석호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했는지...
예를 들어서 녹음실에 들어가면 " 야~ 우리 이렇게 가자" 는 어떤 방향설정을 하게되는데 어떻게 말은 잘 들었던가요? 아니면 정말 황소고집이었었는지...

임석호: 1집 [창밖의 여자]나 [촛불]... 1,2집은 백영규씨도 얘기하셨지만 당시 기획하는대로 따라가고  자기의도도 많이 반영되고 그랬는데, 3집정도 가니까 3집 [미워 미워 미워]죠?   아~ 처음에는 안 부르겠다 그러더라구요. 부르지않겠다 그러니 상당히 설득을 했죠.

백영규: 왜 안 부른다고 했을까요?

임석호: 두 가지 이윤데, 하나는 3집에 자기나름대로의 가고싶은 어떤 모델이 있었겠죠. 그래서 그랬고, 또 한 가지는 우리는 1집보다는 2집 음반이 안 나갔기때문에, 3집은 조금 트롯트 냄새가 나는 곡으로 가면 어떻겠나 생각했는데, 자기의도는 그렇지 않았겠지.

백영규: 조금 pop쪽으로 가고 싶었겠죠?

임석호: 좀 그랬겠죠. 그리고 이 가사가 [미워 미워 미워]는 왈츠3/4박자니까 전형적인, 통속적인 냄새가 나고, 그 다음에는 자기 스스로가 그 1,2집이 성공했기 때문에 3집에 대해서는 자기 나름대로의 음악을 하고싶어서 고집을 피우더라구요. 매니저 유재학씨가 계셨는데 우리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세월이 10년, 20년이 지나면 너의 대표곡은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될거다" 그렇게 우리도 고집을 피우고 그랬는데...
3집부터는 여러가지로 자기 음악적인 고집, 색깔... 이런걸 나타내고 싶어하질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백영규: 3집때는 본인의 색깔을 표현하는 음반이 되었네요?  성우진씨는 조용필씨 음악을 들은 세대인가요?

성우진: 학창시절에 들었죠. 그러니까 초등학교 지나서 고등학교 들어갈때 정식 앨범들이, 지금 말하는 2집도 나오기 시작했고, 중학교시절에는 지금 팬클럽이나 여러 수집가들 사이에서 전설로 떠도는 [lead me on]이 들어있고, 여러분들이 찾으시는 [마리아] 등등 여러가지 앨범들이 여러 레이블로 나왔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더블렛기타를 들고있는 그런 앨범도 있었고, 얼굴만 조그맣게 사진이 들어있었던 그런 앨범들...
사실 2집에도 보면 사진이 굉장히 증명사진 같아요 뒤에 들어있는 조용필씨 얼굴은요. 그 당시에는 디자인 개념이라는게 없었기때문에 지금보면 좀 그렇죠.

백영규: 오늘 2집에 대해서, 앞서 총칭을 해 주셨잖아요?  2집에 대해서 당시 평론가들이 점수를 좀 덜 줬다고...

성우진: 그러니까... 저런거죠. 당시에 이 앨범이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앨범자체의 어떤 대중적인 인기라든지, 판매량은 그럭저럭 이어져갔습니다. 왜냐면 거의 이제는 늦깍이 신인의 대접을 받으면서 워낙 1집이 폭발적으로 성공을 거뒀고, 눈코 뜰새없는 그런 기간이었기 때문에, 그런 조용필이라고하는 이름의 기본적인 가창력을 갖고있는 그런 가수였기때문에, 여러 곡이 힛트하면서 판매가 이어지고 쭈~욱 어떤 기본적인 성공은 했지만, 레코드회사나 본인이 생각하기엔 워낙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식적으로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던 앨범이었고,워낙 대성공이었기때문에 그거에 조금 못 미치는 것이었구요. 제가 말씀드린 어떤 여러가지 면은 평론가들의 예리한 시각에서 봤을때 '이게 좀 성의가 없는게 아니냐'는 판단을 가진거죠.  1집의 곡이 두 곡이 들어가 있고, 그냥 전체적으로 조금 급하게 급조된듯한 그러한 느낌에서의 그런것이지 힛트곡들은 나름 굉장히 많았었는데요.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81년 초까지 사실은 [촛불]이라는 곡이 12월에 나왔기때문에 당시의 tv 가요순위프로같은데서 1,2월까지는 [촛불]이라는 곡이 1위까지 올라가는 기록을 올리게 되구요, 그 다음에 대중적으로 챠트에 올라갔던 곡은 (인기투표에서 1위를했던 곡) 굉장히 좀 차분하게, 소박하게... 마치 동요처럼 불렀던 [잊기로 했네], 이 곡이 2월~5월사이에 쭈~욱 힛트를 기록하면서 챠트에 올라갔다가 1위까지 기록을 했구요. 그런 와중에 CD로 만들어지면서 굉장히 애매한 곡이 방금 들으셨던 [오빠 생각]이란 곡, 여러분들이 너무나 잘 아시는 동요를 다시 부른것인데  이런것들이 사실은 [잊기로 했네]가 순수한 동요적인 창법, 그리고 소박한, 기교가 없는, 다른 곡들을 들어보면 굉장히 절창에, 탁음을 쓰고... 이런 곡이었는데 요런 곡에서는 나중에 발표되는 [난 아니야] 같은 등등의 곡들이 동요적인 그런 흐름을 이어가거든요.그런 곡들의 일환이라고 볼수 있겠죠.

백영규: 아까 2부에서 조용필 최초의 자작곡인 [창 밖의 여자], 이렇게 얘기하니까 수정해 달라고 바로 문자가 올라오네요. 76년 발표한 [너무 짧아요]가 필님 첫 작곡 아닌가요?  [너무 짧아요]가 첫 작품이라는 문자가 많이 올라왔어요.  아~ 맞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런 얘기 많이들었는데, 아까 [창 밖의 여자] 얘기 나오다가 또 그런 얘기가 좀 나왔습니다.

성우진: 그런 말씀은 공식 1집부터의 기준인거 같구요.그 이전에 여러 흩어졌던 그 당시의 곡들이 분명 있겠습니다만, 지금 올려주신 분이 시기상으론 맞는 문제가 되겠죠.

백영규: 청취자 질문--- 동요+케롤송들은 기획사의 의도였는지?    이거는 임 선생님한테 하는 질문인거 같은데요?  동요+케롤송은 제가 알기론 기냥 '연말에 판 팔아먹자' 이러한 의미가 많은것 같아요.

임석호: 그렇죠. 그 해 최고의 인기가수에게...

백영규: 캐롤은 그럴것이고, 동요는 조용필씨가 그런...

임석호: 조용필씨가 동요는 별도로 만든게 없어요.아마 [오빠 생각]은 국민학생부터 60대 팬까지 있으니까 팬서비스차원에서 동요를 넣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래된 일이지만...

백영규: 그렇겠죠. 제가 같은 음악을하는 입장에서보면 열 곡이나 열 두곡이 수록될때, 가수들이나 작곡가들은 부상해서 장르를 좀 확보해 두고싶은 마음이 솔직히 있거든요. 그래서 동요를 좀 리메이크하자 그런 마음에서...

임석호: 아! 그렇습니다.

백영규: 지금 밖에서 드디어 일반대중이 궁금해하는것들이 하나하나 올라오고 있는데요. 아마 저도 궁금해할것이고 그리고 일반대중들도 궁금해할것인데, 조용필씨가 판매량이란건 이루 말할수없이 올렸지만 그 전에 조용필씨는 밴드음악을 했잖아요?  밴드랑 여의도에 있는 맨하탄에 출연... 가수들한테는 그게 수입이잖아요. 그러면서 레코드회사에서 받아가는 인세라든지, 어떤 명분이 있는 수입이 있었을것 같은데...

임석호: 조용필씨의 참 좋은점 중에 하나가 그런면인데, 한때 일본에 진출했을 그 무렵에는 자기 스탶들, 밴드들... 월급도 줘야되고하니까 돈이 많이 필요했을거에요. 근데 사실 그때 나이트크럽에 일을 하게되면 일본가고, 지방공연가고하면, 나이트크럽이라는데가 30분 출연해줘야 되는거니까 한 달에 얼마가 아니잖아요? 그러면 그만큼 스케줄이 빠지니까 한 달 계약을해도 그게 두 달도가고, 석 달도 가고 하니까...

백영규: 그렇죠. 하루하루 도장을 찍어야 되니까요.
임석호: 돈을 벌겠다는 이런 생각에있어서는 다른 가수하고 좀 다르죠. '내가 열심히 좋은음악 하겠다'는 그런 욕심때문에 돈에 대한 생각은 그렇게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실 조용필이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도 save되는 돈이 없지않았나하는 생각이에요. 자기음악을 위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되겠다는 생각을 안 가졌고, 또 자기 음악적인 고집... 이런 것들이 조용필을 큰 가수로 만들었는데 당시 상당히... 내가 옆에서 봐도 넉넉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음반사에서 돈을 가져다 쓰고 그랬죠. 그런게 이제 말하자면 보너스로 나가기도하고, 돈을 미리 갖다쓰기도하고, 본인으로서는 좋은음악을 만들기위해서 움직이니까, 나는 사실 굉장히 좋은점으로 생각했고, 그 다음에 10년 가까이, 80년도부터 7집, 8집까지... 그러니까 회사에서 많은 돈을 좀 가져갔죠. 가져갔는데 그런게 나중에 서로간에 회사와 약간의...

백영규: 서약이라든지, 어떤 명분이... 적어도 이랬을것 같아요. 그 당시 그림을 굳이 그린다면 '아! 그래 판 많이 팔렸으니까 용필아~' 하고 사장님이 보너스를 주는 형식도 있었을거고, 아니면 어제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저도 그렇고 일반인들도 그렇고, 그때 당시에 그런 돈을 가져감으로인해서 어떤 저작권을 지구에다 넘기지 않았느냐, 이런점에서 어떤 팬들은 굉장히 가슴아파하고 이제 세월도 흘렀으니까 회사입장에서 볼때는 이제는 좀 넘겨줘야되지않냐, 뭐 이런것도 있었는데 그 당시에 또 계셨을때는...

임석호: 그 저작권문제는...
저작권이 여러가지 형태의 권리와 수입이 있잖아요?  그 중에서 지그레코드가 갖고있는것은 복제권, 다시 말해서 레코드를 만드는데 쓰는 그 저작권, 그러니까 나머지 공연이라든지 노래방... 이런 수입은 다 조용필씨 것이고, 단지 복제권, 출판권... 예를 들어서 책에 조용필씨 노래가 실렸다든지 이런것은 출판권에 관한것인데, 실지로는 정확하게 통계를 내지않았지만 그 복제권만 가지고있는건 큰 저작권은 아니에요. 저작권은 다 조용필씨가 가지고있고, 부분적으로 지구레코드는 그 음반을 최초로 음반제작자로 음을 고정시켰기때문에 그 고정한 권리에대한 것만 가지고 있죠 복제권만.

백영규: 지금 우리 <가고싶은 마을> 애청자 여러분들은 일단 저작권에 대한 의미를 아직까지 모르는 분들이 계신것 같아서 제가 설명을 드리자면 복제권이랑 출판권은 그 저작권에 속한 일부인데, 그 일부를 지구레코드회사가 두가지 권리를 가지고있는거죠. 그런데 보통 일반인들은 복제권이나 출판권이나, 저작권의미로 볼때 '아직까지도 회사에서 가지고 있네' 이렇게 생각하니까 서로가 오해감이 나오는것 같아요.

임석호: 오해할수 있죠. 저작권에 대한 권리가 여러가지니까.

백영규: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이 약자편이랄까? 그 당시에 레코드회사는 富의 상징, 가수는 그에 소속감이 있으니까 그래서 이런 말들이 더 와전이 되지않았나하는 생각이 드네요.

임석호: 그렇죠. 그리고 내가 객관적으로 누가 잘했니, 못했니 할순없고, 그 문제는 당시에 조용필씨는 워낙 바쁘고하니까 원래 저작권에 대해 법률적으로 따지고 그런 분이 못 되죠. 그러니까 자기회사 프로덕션에서 한거니까 조용필씨 스스로도 그걸 깨달았어야 될 부분도있고, 왜냐면 저작권을 양도한 그런 계약이니까 서로간에 주장하는거고, 그런거니까 지금 뭐 굳이 방송에서 이야기할 성격은 아니고, 더러는 많이 오해하는 분들도 계신데 지구레코드가 갖고있는 저작권은, 자기들이 음반,출판에 관한것만 가지고있기 때문에 작은 부분이에요.

백영규: 그런데 이제 어떤 대중들은 복제권이나 출판권도 저작권이니까 어쨌든간에 액수를 떠나서 우리나라 최고영웅인데 그런 값진권리는 본인한테 돌려줘야되는게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었어요.

임석호: 그런거는 어차피 바람직하게 얘기되는건 당연하죠. 당연한데 나도 지금 회사를 그만 둔 상태라... 상당한 댓가는 조용필씨가 가져갔는데 조용필씨 자체가 돈을 잘 모르니까 그때 매니저시스템 그런 문제...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죠.

백영규: 하여간 음악에 빠지는 사람들이 사회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임석호: 그래요. 매사를 음악쪽으로만 생각하거든요. '이게 듣기 좋으냐, 감각적이냐, 아니냐' 이런것만 생각하지 돈에 대해서 '많이 들오느냐, 적게 들어오느냐' 하는것과는 차이가 있죠.

백영규: 하물며 조용필씨는 영웅의 탄생이기때문에 그런 감각이 탄생했을수야 없겠죠.

임석호: 굳이 얘기한다면 지금은 뭐 우리나라에 조용필씨만한 가수가 없지만 당시는 무명이잖아요?  그 무명이 자라오는 과정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면 그런데, 사실 나도 음악을하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좀 마음은 안 좋죠. 그러나 또 그게 현실은 현실이니까.

백영규: 하여간 싱어송라이터들은 문제가 많습니다. (웃음)
조용필씨의 본명이 조영필이라는 이런 문자가 왔는데 이거 맞습니까?

임석호: 맞을거에요. 옛날에 외국다닐때 여권같은건 본명으로 가지고 다녀야하잖아요.

백영규: 아! 그래요? 모창가수 주영필, 조영필도 있고...
3부가 이제 거의 끝나가는 시간인데요. [뜻밖의 이별]을 준비했어요. 4부에서는 임석호 선생님이 가장 측근에서 봤으니까 그 당시 조용필씨는 술, 담배하면은 또 빼놓을수없는 기호품였죠?  [뜻밖의 이별] 듣고 4부에서 뵙겠습니다.



   --- 4부 ---


백영규: 오늘은 두번째 날입니다. 조용필 데뷔40주년을 맞이해서 특집 두번째 날인데요, 바로 앞에 계신 그 당시에 지구레코드회사 문예부장을 맡으셨던 임석호선생님 그리고, 가요 평론가 성우진씨랑 함께하고 있습니다.
지금 ****님이요, - 어제,오늘 저작권얘기는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오빠에게 꼭 돌려주시기를...- 이렇게 문자를 주셨구요.
- 작은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권리는 조용필님에게 양보해야 됩니다 -
- 모든것들은 당사자들만 알고있을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작권 생각만하면 가슴이 아파요. 꼭 돌려주세요. -    ****님이 주셨는데...
제가 볼때는 이분들은 <가고싶은 마을> 애청자를 떠나서 조용필씨의 열성적인 팬이신것 같습니다. 거의 평론가 수준을 넘었습니다.
그리고 ****님은 - 조용필씨야말로 100년에 한번 나오기 힘든 가수입니다. 이런 특집방송을 만드신 경인방송에 감사드립니다.- 하셨구요.
****님은 - 용필오빠외에는 절대 오빠라고 안 하는데 영규오빠라고 불러드립니다.-    아! 이건 저한테 주신거에요.
이 선생님~  지금은 조용필씨가 이제 담배나 이런 기호품에서는 많이 물러나있는걸로 알고있거든요. 그 당시에는 [줄담배] [말술] 이런게 있었는데 술버릇은 어땠어요?

임석호: 술은 소주를 좋아하고 그랬어요. 저하고 여의도에서 같이 먹기도하고 그랬는데 소주먹는데가면 매운걸 잘 못먹고그래서 낙지볶음같은걸 시키면 물에 씻어먹고 그랬어요. 술버릇이라기보다는 술은 아주 점잖게 먹죠. 먹고 술이 취하면 그 자리에 앉아서 자니까.

백영규: 아! 그 자리에서요?

임석호: 남처럼 고함지르는 그런것도 없고, 아주 얌전하죠. 녹음하면서 점심을 시켜먹으면 반 공기, 그 대신 한 세시간있으면 다시 시켜서 반 공기...  한꺼번에 많이 먹지못하고 조금씩, 조금씩... 이런 스타일이죠. 근데 내가 이야기하는건 20년 전쯤이니까 지금은 많이 바뀌었겠죠. 어떻게 바뀌었는지 근래엔 잘 모르니까.

백영규: 요즘에는 대형공연을 많이하니까 아무래도 많이 자제를 하겠죠.

임석호: 그래요, 이젠 나이도 있으니까.

백영규: 성우진씨~ 올해 조용필씨 계획이 대형공연을 준비하고있다고...

성우진: 예, 투어는 계속해서 성공하고있기때문에 지금 2008년의 계획은 전국투어를 다시금 대형... 그리고 워낙 꼼꼼하시잖아요.
직접 공연장의 기록필름같은것, 또 방송사, 그리고 여러분들이 잘 확인할수 있었던 평양공연같은 경우에도 직접 그렇게 나서서 일일이 사운드 체킹하고 굉장히 꼼꼼한, 예전에 위태한 탄생 멤버들도 연주자입장에서 간섭이 심했기때문에 무서워하고, 멤버들의 기량같은것도 항상 체크하는 그런걸로 유명했고, 사실 80년이 중요한 시기라고 볼수있는데, 10개월 사이죠? 3월달에 1집이 나왔고 12월에 급하게 앨범이 나오긴했는데, 아주 재미있었던건 80년에 [그 사랑 한이 되어]라는 영화를 했죠. 이 당시엔 굉장히 유명해지면, 나중에 보면 신중현선생님이나 송골매, 당시 이런 분들이 다 영화에 출연하게되는데 당시 3대 여성 트로이카라했던 유지인씨가 주연했던 [그 사랑 한이 되어]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자체는 그렇게 힛트하지 못했지만 다음해에 보면 <한국영화 대상> 에서 주제가로는 수상을 하게되죠.

백영규: 주제가는 어떤 노래로 됐죠?

성우진: <그 사랑 한이 되어>라는 이 영화의 주제가가 81년에 다시 한 해를 보내고나서 그 음악자체는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인데, 당시에도 스타가되면 여러군데서 눈독을 들여서 출연시키는 일이 있었구요. 좀 정리를하자면 80년에 조용필씨가 얼마나 바빴는지 잠깐 소개를 해 드릴께요. 6월엔 여러분이 너무나 잘 아시는 당시에 크게 보도됐던 카네기홀, 미국으로가서 공연을 했구요.

백영규: 2집의 쟈켓사진이요?

성우진: 바로 그 쟈켓사진, 그래서 그 앨범이 공연기념음반으로 기록이되기도 했었구요, 9월에는 TBC, 당시 동아방송의 가요대상에 최우수 남자가수상, 최우수가요상, 주제가 작곡상, [창 밖의 여자]로 수상을하게 됩니다.
그리고 세종문화회관 별관, 당시에 기억하실거에요. 지금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세종문화회관이라는그런 이름으로 바뀌게되었는데 추석 리사이틀, 당시는 리사이틀이라고 많이 그랬죠? 당시 하춘화씨라든지 이런분들이 이 리사이틀의 흥행을 기록하는 분들이었고, 11월에는 당시엔 가요제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이 기억하실텐데 <서울 국제가요제> 라는게 있었거든요? 여기서 [창 밖의 여자]로는 금상을 수상하셨구요. 여러분들이 너무나 좋아하시는 [한오백년]은 당연한 결과겠지만 열창상을 또 수상하셨구요. 그리고 당시 기록이됐던 한 해를 정리하는 마지막 가요제가 < MBC 10대 가수가요제> 라고, 당시에 굉장히 권위가 있었죠? 거기서 가수왕, 최고 인기가요상, 작곡상, 이게 모두 [창 밖의 여자] 이 곡으로, 바로 1집으로 수상을 하게됩니다. 완전히 10개월만에 한국의 가요계를 장악하는 그런 상황이 됐죠.

백영규: 맞습니다. 저도 기억이 나는데요, 저도 얘기 좀 해도 되나요? (웃음)    80년도에 사실 많이 부딪혔어요. 저는 곡목으로 인해서 많이 부딪혔었는데 < 그 사랑 한이 되어> 영화를 하신거 제가 봤어요. 조용필씨가 가수로 등장이되는데 바로 이어서 제가 영화를 찍었어요.  <슬픈계절에 만나요>를. 그래서 감독님이 "영화배우는 누구랑 하고싶으냐?" 그래서 제가 유지인씨를 얘기했어요. 그때 유지인씨는 남성팬들을 많이 확보를했었는데 바로 앞에 조용필씨가 유지인씨랑 했었기때문에 " 장미희씨랑 했으면 어떻겠느냐?" 저는 " 그래도 해야된다"는 일화가 있었는데요. 성우진씨 덕분에 저도 옛날생각이 좀 났습니다. 밖에 또 질문이 하나 와 있는데요.  ****님께서  - 조용필씨 코러스 대부분은 본인이 하나요?- 코러스는 아까 가성적인 코러스도 있었고, - 에피소드가 있다면? -  이렇게 주셨는데...

성우진: 글쎄요? 코러스같은 경우에는 본인이 워낙 준비가 잘된 가수라고 볼수 있겠죠. 밴드활동을... 팬클럽 여러분들이야 더 잘 아시겠지만 <애드킨즈>로 부터 굉장히 많은 밴드들, 그리고 나중에는 에드포 멤버들과 여러분이 기억하시는 이남이씨 등등과도 중요한 그룹을 했었고, 한 때는 시카고같은 사운드를 내는 락 밴드를 했었구요, 굉장히 다양한 취향이었는데 특히나 요즘 들어보면 1집 [창 밖의 여자]같은 경우에도 본인이 이 당시엔 굉장히 락에 애착이 많았던 분이에요. 힛트때문에 약간은 쎄미트롯이나 트롯 분위기의 곡들로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본인은 굉장히 새로운 사운드를 하고싶었던 그런 성향이 강했기때문에 가장 영향을 많이 받았던 , 많이 들었던, 그리고 본인이 추구하고싶었던 그룹이 <핑크 프로이드> 였다고 합니다. 사실 [창 밖의 여자] 의 편곡같은걸봐도 당시의 일반적인 대중가요에서 쓰지않는 굉장히 좀 심오하면서 음산한 키보드나 신서사이즈소리가 들어가있는... 그런것들이 결국은 추구하고자하는 내용이었는데 당시의 상황이 그렇게 잘 맞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백영규: 그래도 그런 마음이 싹 텄으니까 아까 임선생님이 말씀하신것처럼 [미워 미워 미워]를... 그게 와 닿겠어요? 굉장히 가요적인 음악은 좀 이렇게 배타적으로하고 싶었겠죠.

성우진: 본인의 인터뷰로는 또 역시 [돌아와요 부산항에] 같은 곡도 사실은 부르고싶지 않았던 곡이었다고 많이 술회를 하고 있구요, 그리고 1집과 2집까지는 가장 기본적인 밴드형태로 녹음이 됐습니다. 이 당시까지 다른 여타가수는 오케스트레이션같은것을 많이 동원했는데 남의 도움없이 딱 <위대한 탄생> 멤버들, 여러분들 알다시피 기타, 베이스, 드럼, 신서사이즈, 이렇게 밴드 편성으로만 녹음했던게 1집과 2집이었습니다.

백영규: 1집과 2집이요?

성우진: 1집하고 2집까지는 밴드형태로만 했고, 그 이후에는 여러가지 다른 편곡들도 가미가 되죠.

임석호: 그게 1집, 2집, 3집도 그렇고 전체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많이했는데 지금 들을때는 왜 그렇게 전자음악을 많이 썼냐하면 그때가 세계전자음악이라는 악기시장이 새롭게 여러가지로 나왔기때문에 조용필씨도 그걸 잘 적응했지만  [단발머리] 같은데서 전자드럼 있잖아요?  그거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우리가 일본에서 나오자마자 사 왔어요 그 녹음에 연습용으로 썼으니까, 그게 [단발머리] 에서는 힛트를 했죠. 뿅뿅하는거...
그때가 말하자면 세계적으로 전자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하고, 악기사들이 새로운 어떤 전자악기를 개발해서 만들때니까 자연적으로 그렇게된거고, 3집, 4집 계속 나올때도 조용필씨가 워낙 바쁘니까 자기악단으로 넣을 시간이 별로 없었어요. 리듬은 이제 넣었지만 전체적으론 오케스트레이션을 많이하고 전자악기가 커버를 많이하고 그랬죠.

백영규: 그때는 사실 전자악기 첫소리만 들어도 막 가슴이 설레던 그런 시절이었거든요. 하물며 신서사이즈 첨 들어왔을때 스팅소리 하나만 들어도 그냥 완전 흥분이 되고...

성우진: 그래서 방금 들으셨던 2집에도 굉장히 재미있는 곡들이 있는데요, 멜로디는 약간 트롯성향인데 연주나 편곡자체는 여러분들이 생각하기 편한 , 국내에서는 약간 <사랑과 평화> 같은 느낌, 약간은 펑키한 사운드, 그래서 이질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곡들이 만들어진게 바로 들으셨던 [뜻밖의 이별] 이라는 곡과, 또 있다가 듣게되실 [만나게 해 주오] 이런 곡들이 사실 80년대가 세계적으로 봐도 드디어 <뉴웨이브 사운드> 라는 밴드의 주된 악기가 기타에서 신서사이즈로 넘어가는 그런 시기였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전자적인 악기들이 전세계적으로 힛트했고 많이 시도되었기때문에 더 그런 사운드를 받아들이셨던 것도 있구요. 그리고 그런것에서 첨단적으로 어느정도 지위가 되지않으면 그런 악기나 공급도 안됐고했기 때문에 조용필씨가 참 편하게 당시는 시도할수있는 어떤 위치가 아니었나 싶기도하구요.

백영규: 그만큼 조용필씨가 음악욕심이 세다고... 그런것들이 조용필씨를 지켜주는 원동력이 됐구요. 아까 임선생님이 말씀하신것처럼 나이트크럽에서 출연료를 받아서 자기멤버들한테 나눠줄 정도로... 지켜야 되니까요, 그럴정도로 음악을 지키는 마음이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러면 성우진씨~ 노래 하나 듣고 계속하죠.

성우진: 네, 방금 말씀드렸는데요. 아까 그런 성향의 곡이었는데 [뜻밖의 이별] 이 조금은 좀 더 트롯정서가 흐른다면, 이 곡은 좀 더 펑키한 느낌이 더 많거든요. 당시에 유행조절을 따른 그런 색다른 편곡이라고 볼수있겠는데요 <만나게 해 주오>라는 곡을 들어보시죠.

백영규: [만나게 해 주오]곡을 우리 의미로 한번 들어보시죠. 특집을 꾸미면서 못 듣던 노래들을 우리가 이렇게 다 들려드리고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           나레이션        --------------------------

김지수: 대중에게 인식된 조용필의 2집은 그 이름에 묻어간 앨범이라고해도 무방할 것이다. 대중이 그를 믿었기에 [축복]과 [잊기로 했네]와 같은 노래들이 인기정상을 차지하고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 가왕의 명성에는 먹구름이 끼게하는 애물단지가 되기도하는 2집, 대중은 그래도 조용필의 모든것을 사랑한다. 그는 가왕이기에!
  --------------------------------------------------------------------

백영규: 조용필특집 이틀째입니다, 제 앞에는 그 당시 가요계를 장악했던 지구레코드회사 문예부장을 역임하셨던 임석호님, 그리고 가요평론가 성우진씨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제가 아까 개인적으로 김경호PD에게 "죄송해요, 미안합니다" 했던 이유가, 사실 전 손님이 오면 최고의 손님대접을 하고싶은 마음이거든요.앞에 계신분이 문예부장을 하면서 그 당시 문예부 이사, 그리고 저작권 문제... 우리 가요계에서 상당히 공헌을 많이하신 분이에요. 또 작곡자로서 조용필 3집인가? 4집에 [보고싶은 여인아]란 노래가 있는데 나는 " 오늘 오셨기때문에 이 노래를 들어야된다"  밖에서는 " 4집때 그 노래를 들어야된다"... 역시 특집을 앞두고서 뭔가 좀 예민해 있었나봅니다. 제가 좀 큰소리를 쳤는데 다시 방송 재밌게 합시다.
우리 선생님은 한때 보람이 상당히 있었겠어요? 기획자 임석호, 가수 조용필, 그리고 지구레코드회사...
그 내면에 우리나라 최고의 영웅이 배출됐단 말이에요? 그런 커다란 보람이 있었을텐데...

임석호: 그때 나도 기획자로서 조용필같은 아티스트가 있으니까 그랬고, 우리쪽 입장에서 얘기한다면 기획자는 가수이야기들으면 힛트 못해요. 가수는 또 기획자 얘기들으면 힛트 못한다 그러죠. 예를 들어서 이게 어떤 주어진 캔버스에 그림을 그려야되는 것이기때문에 큰 캔버스에 그리기가 쉽겠죠? 예를 들어 조용필씨 같은경우는 "바이올린을 60명 씁시다" 이랬지만 사실 우리나라 음악시스템(음향을 잡는 시스템)이 60명을 다 잡을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의욕은 60명 잡고, 100명쯤 쓰자고 그렇게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어느 스튜디오에서 어떤 사운드를... 100명의 사운드를 잡을수있는 그게 안 되죠. 그러니까 그런 문제...  그 다음에 기획자로서 보면 어떤 노래로, 가수가 하고싶은 노래 마음대로하라고 하면 절대 어떤 중심이 없으니까 굉장히 그런면에 있어서 나도, 조용필씨도 고집이 세고 열심히 그렇게했지만, 결국 조용필같은 좋은가수를 만난 나의 행운도 있고, 또 조용필씨 입장에서보면 나의 어떤 여러가지 문제, 또 잘 하려하는 의욕적이고, 나의 감각이 있으니까... 잘 만나서 한 시대를 한 10년쯤 잘하지않았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백영규: 그런 추억을 갖고계시는데 그러면 조용필씨는 지구레코드회사에서 가장 명반을 냈고, 힛트곡도 가장 많이냈어요. 총 몇장을 지구에서...

임석호: 정규앨범 8집외에 [해운대 실황음반], [캐롤], 그 다음 [옛노래 전집]이란게 있었어요. 또 정규적으로 소개는 안됐지만 [마리아]라든지, 그 앨범 마스타 자체가 지금 지구에 있죠.사실 그 노래를 이 특집에서 소개하면 좋겠다는, 그 당시에 우리가 한번 소개를 할까했는데 너무 음질이 차이가 나고, 그 녹음이 벌써 70년초에 했으니 지금부터 얼마에요?  삼십 몇년 전이거든요. 그게 음반으로 출시하기에 가능성이 있는 사운드인가는 해 봐야알겠지만 외국에도 그렇게 오래된 사운드를, 한 아티스트의 옛날 코렉션용으로 상당히 필요하죠.

백영규: 그렇죠. 그런거는 역사적 가치가 더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석호: 언제 한번 기회가있다면, 경인방송에서 처음 소개하신다면 녹음을해서 제가 소개를 하겠습니다.

백영규: 감사합니다(웃음)  뜻밖의 선물을 또 받을거 같구요.
성우진씨~ 오늘 2집에 대해서 얘길 나눠봤는데 우리가 사실은 방송하기전에 이런 얘기를 했어요 " 아! 1집이나 3집이나 4집이나... 할 얘기가 많은데 2집은 할 얘기가 없다" 이런 우스개소리를 하면서 들어왔어요. 그러면서 들어오자마자 평론가에서의 낮은 점수, 레코드회사의 입장, 그리고 또 얘길 들어보니까 조용필씨도 빨리 2집을 내야되는 상황에서 이런 음반이 나왔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집보다는 못했지마는 많은 힛트곡을 양산시켰구요.

성우진: 예, 기본적으로 일단은 워낙 가창력이 좋으신 분이었기때문에 어떤 곡을 부르더라도 특이화되는, 굉장히 맛깔스러운  그런 내용들이 있었죠. 그러니까 이 앨범이 좀 실망스러운것은 다른건 아니구요. 나머지 너무 좋았던 수록곡이라든지 완성도들이 뛰어났기때문에 상대적으로 좀 낮아보이는 그런 단점이 있었던거죠. 그리고 또 일반적으로 보기에 같은 해에 또 앨범이 나왔다는것도 저평가의 요인이 될수도 있구요, 나온 기간으로보면은 9개월, 10개월이 안된 그런 상황이었고, 그래서 레코드회사도 그런 기간에 하나의 앨범을 더 연말안에 내는것도 있었고, 그런 가운데 정말 수면시간도 모자랄 정도의 조용필씨 일정에 이 앨범에 대해서 완전히 투자할 그런 시간은 너무 모자랐고, 그러다보니까 이 앨범의 단점이 몇가지 생겼죠. 두 곡이나 1집 수록곡이 들어가고, 나중에 보면 더 나쁜결과가 된것은, LP수록곡과 CD수록곡이 또 달라졌다는게 또 혼동이 온다는거죠. 사실 그런면에서 더 저평가가 되지않았나하는 생각입니다.

백영규: 그렇죠. 2집도 훌륭한데 1집에 기대치가 좀 못 미쳤기때문에 그런 얘기가 나온것같습니다.

임석호: 그런것도 있구요, 3집이 또 너무 빨리 나왔어요.그러니까 그 2집을 홍보할 기간이 짧았고, 그 다음에 1집과 2집사이, 2집에서 3집사이 홍보기간이 짧기때문에... 상당히 이것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는데 결국은 후에 와서는 조용필씨가 그 앨범에 대한 자기 개인적인 매력을 못 느꼈으니까 공연할때 부르지를 않았고 그러니 이 곡 자체가 묻혀진거죠.

백영규: 틈틈히 브릿지를 해 주셨던 김지수 아나운서, 매일 딱딱한 뉴스진행만 하시다가 이렇게 연예프로그램에 나오시니까 소감이 어떠세요?

김지수: 네, 맨날 뉴스만 하다가 이렇게 연예프로그램에 나오니까 뭐랄까요? 느낌이 참 신선한것 같습니다, 딱딱한 분위기를 좀 탈출해 보고, 제자신도 좀 탈출되는 그런 느낌이 있는것 같구요. 조용필!  대가수였던 그런걸 많이 배우니까 더 좋은것 같습니다.

백영규: <가고싶은 마을>에 이렇게 자주 놀러오시구요. 가끔 뉴스 빼 먹고 종종 놀러오세요(웃음).
오늘 조용필 2집에 대해서 얘길 나누고있는데 시간이 다 지나갔어요. 오늘 두 분, 너무 감사드리구요. 우리 임선생님이랑 성우진씨, 특집21일 기간중에 꼭 다시 오셔야됩니다.

성우진: 예, 저도 이제 다른 앨범을 갖고 돌아오게 될것같습니다.
백영규: 자~ 오늘 <가고싶은 마을>애청자 여러분들, 그리고 조용필 팬클럽 여러분들, 상당히 고맙습니다.그리고 어떤 분이 이런 문자를 주셨어요  - 지구에서 나오는 그 옛날 편집앨범, 듣고싶지 않아요 -   ****님~ 이런 생각갖지마시구요, 우리는 특집을 통해서 모든 마음의 벽을 무너뜨려야 될것같습니다. 그리고 조용필의 과거얘기는 잠깐이구요, 어떤 미래적으로 특집에서 발췌할까합니다.
어제 소개되었던 곡이었죠?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를 들으시면서... 저는 내일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2집 1,2부 방송분 글을 올리고난 후, 3, 4부를 올리지 못한채
너무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서 죄송한 맘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동안 허리치료에만 전념하느라 장시간 컴 앞에 앉아있을수가 없어서...
후기를 써야 할 이 시기에 좀은 쌩뚱맞지만 대전공연시간에 저는 열심히 이 글을 썼습니다(독수리 타법이라 이틀에 걸쳐서...) 혹여 틀린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쪽지로 알려주세요.
바로 수정들어가겠습니다.

아~~~~~~~~~~~~~ 이제사 맘이 가볍습니다!!!

6 댓글

우주꿀꿀푸름누리

2008-06-01 22:37:40

수고하셨어요. 잘 저장해 두세요. ^^

무정(當_當)

2008-06-01 22:41:12

아이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
와아.. 이걸 어떻게 일일히 다 옮겨 쓰죠? 대단합니다. 소중한 자료가 될거 같습니다.

정 비비안나

2008-06-02 00:26:53

지오스님 수고 많~~이 하셨어요!

오빠 공연 다녀와서 '읽는 라디오' 감상하는 느낌이 새롭네요!

40주년 기념 특집방송을 해주신 경인방송에 감사하는 마음이예요!

즐건아톰

2008-06-02 10:21:55

독수리타법보다 조금 더 나은 제가 도와드리겠노라 큰소리 쳐놓고.. 죄송해요
암튼 밤새워 작업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잘 읽을께요^^

필사랑♡김영미

2008-06-02 19:19:19

플레이..스톱...또 플레이..스톱...뒤로 감았다가..또 플레이..
이렇게 수도없이 많이 켰다...눌렀다...반복듣기를 했을 지오스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네요. 정말정말 수고하셨어요~!^^

1-18집 글로 보는 느낌이 새롭고 더 오래 머릿속에 각인되기에 시작한 것이지만...
전 아직 시도도 못하고 있는데...이 글을 보니 너무 미안해지고 있어요.
차차 시간을 내어서 저도 시도해봐야 하는데....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미지회원들 시간 되시는 분들 한 분 한 분의 정성이 모이면 거대한 산이 보이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나중엔 책으로 만들어 소장하면 좋잖아요..^^

시간 되시는 미지회원분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blue sky

2008-06-04 08:39:23

수고 마니 하셨어요
덕분에 정말 잘읽었어요

Board Menu

목록

Page 1680 / 1680
Statu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CHO YONGPIL-가황(歌皇), 조용필을 노래하다』 대백과사전&악보집 도서 기증

13
필사랑♡김영미 2023-07-10 3536
  공지

가황(歌皇), 조용필을 노래하다 이 책을 드리면서....

12
  • file
꿈의요정 2023-05-18 3633
  공지

[주문신청]가황,조용필을 노래하다-대백과사전/악보집

40
일편단심민들레 2022-12-13 8121
  11

--

박계완 1999-10-25 7824
  10

대화방에 참여 하고 싶었는데

권미화 1999-10-24 7993
  9

앞으로 기대가 되네요.

김학준 1999-10-24 8364
  8

약속을 지킵시다....

1
정찬우 1999-10-24 9934
  7

Re: 약속을 지킵시다....

박상준 1999-10-24 8476
  6

--

이경훈 1999-10-24 8030
  5

수정하는 과정에서

신현희 1999-10-24 8785
  4

상준님 죄송합니다..너무 기쁜 나머지.

곽수현 1999-10-24 10993
  3

상원님 화이팅,조용필화이팅...........

1
곽수현 1999-10-23 11506
  2

Re: 상원님 화이팅,조용필화이팅...........

박상준 1999-10-23 9340
  1

안녕하세요

박상준 1999-10-23 9527

공식 미지 트위터

뉴스 - News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메달 수익 음악 영재 발굴에 기부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메달 수익 음악 영재 발굴에 기부 조폐공사,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수익금 '음악역 1939' 전달식 (왼쪽부터 조폐공사 류진열 사업 이사, 김성기 가평군수, 음악역 1939 송홍섭 대표) [음악역 1939 제공]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한국조폐공사가 제작한 '가왕' 조용필 50주년 기념 메달 판...

뉴스 - News

조폐공사, 조용필 메달 수익금 일부 음악영재 '후원'

조폐공사, 조용필 메달 수익금 일부 음악영재 '후원' 한국조폐공사(사장 조용만)가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중 일부를 음악영재 지원 사업에 후원한다.   공사는 11일 경기도 가평 뮤질빌리지 '음악역 1939'에서 조용필 데뷔 50주년 기념메달 판매 수익금 가운데 2500만원을 가평군과 함께 가평뮤직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