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게시판
http://m.news.naver.com/special/read.nhn?mode=LSD&sid1=106&oid=423&aid=0000000018
당신께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침에, 비 오 는 서울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생각지 않았던 일입니 다. 대구로 운전하면서 내내 'hello' 들었는데 그 길 이 이렇게도 이어지고 있네요. 하루가 제법 길어집니 다.
그래서 들으며 어땠느냐면, 좋았습니다. 무던히도 좋았 고 실은 좀 시큰해졌달지 울컥했달지 풍경이 멀어지기 도 했습니다. "조용필이구나." 그렇게, 못내 복잡했 던 마음이 이제는 가지런해졌습니다.
'못내 복잡했던 마음' 이라고 쓰고 나니 멋쩍기도 합니 다만, 말씀드릴게요. 일주일 전 앨범보다 먼저 '바운 스'가 공개되었을 때, 저는 그걸 듣고 즉각 낙심하고 말 았습니다. "바, 바, 바운스라고?" 누구에게 물을 것도 없 었지요. 단어 하나 때문만도 아니었고요. 말하자면 저 는 그 노래를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이건 보톡스 가 아닐까? 주름이 아니라 표정을 지우는, 젊음을 되돌 리는 게 아니라 억지로 '동안'을 제조하는, 설마 조용필 도 ‘빵빵한’ 얼굴로 나타날 텐가?
탄식, 그리고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이 노래가 과연 내 가 알고 있는 어떤 조용필의 노래보다 좋은가? 일제 히 터진 세간의 환호성과 사뭇 다른 방향이었습니 다. 사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어요. 이 노래가 좋다 고? 정말? 마침내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까지 내 가 좋아했던 조용필은 뭐였을까? 난 대체 뭘 좋아했 던 거지?
조용필의 새 노래라면 누구보다, 정말 그 누구보다 뜨 겁게 맞을 모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던 제게 '바 운스'는 젊음이 아니라 ‘젊음’을 앞세우려는 마케팅으 로 들렸습니다. 노래를 듣지 않았습니다. 들을 수 없었 습니다. 그런 채로 기자회견에 갔어요. 묻고 싶기도 했 습니다. 이 노래가 정말 마음에 드세요? 젊음이나 새로 움 같은 말이 어떤 강박이 되었던 건 아닌가요? 혼자 서 질문을 중얼거려보는데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습 니다.
"안녕하십니까.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번 앨범이 저 는... 그냥 음악인으로서 어떤 곡을 타이틀로 만들자 는 것 없이, 한 곡 한 곡 이것이 타이틀곡이다라고 편하 게 시작했던 것이,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 때문에 이렇 게 좋은 반응을 얻게 됐습니다. 정말 여러분 감사하고 요. 가사에 넣었듯이... 심장이 바운스바운스됩니다. 여 러분 고맙습니다."
당신의 첫 인사였습니다. 어눌하고 느렸지요. 근데 이 상한 건 그 말에 뭔가 풀려버렸다는 겁니다. 글자에 는 없는 떨림이 말에는 있는 법이라서 일까요? 한껏 각 을 세워 뾰루퉁했던 마음조차 어느새 둥글어지려 했습 니다. 당신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 요. 전혀 거짓없이 말씀드릴게요. 저는 음악을 되게 사 랑합니다. 그리고 이게 평생 팔자려니 운명이려니 사 는 사람이거든요.” 그 말을 들으며 확신했습니다.“되게 사랑합니다”라 는 그 다듬어지지 않은 말. 뭔가를 표방하며 내세우 진 않았구나.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구나. 저토록 무구 한 음악가의 순정이라니,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구나.
쇼케이스에서 이번 노래들을 당신의 목소리로 처음 들 었고, 그 후로 계속 듣고만 있습니다. 여전히 모르겠습 니다. 가장 좋아하는 조용필 노래를 말 할 때 'hello'에 수록된 노래를 말할 수 있을지는요. 그 런 채 '서툰 바람'을 반복해서 듣습니다.“눈이 오던 겨 울밤에”를 발음하는 당신의 다부진 강약에 움찔하 고 맙니다. '걷고 싶다'에서“네가 나의 빛이구나"할 때 면 어깨가 떨립니다. 잔치판 같은 하우스 리듬이 가득 한‘그리운 것은’에서 “매화꽃이 만발한 그 곳에”라 고 터뜨려버릴 때면 눈에 보일 듯 환희가 충만합니 다. 남자가 쓴 가사라는 걸 대번 알겠는 ‘어느 날 귀로 에서’를 들으며 어느새 눈을 감습니다.
그 모든 것의 중심은 당신의 목소리입니다. 장르도 콘 셉트도 모두 조용필의 목소리로 모입니다. 모여서 흐 릅니다. 흐느끼는가 하면 저리도 분명할까 싶게 또박 또박 말하고, 나직하게 읊조리는가 하면 맵게도 밀어붙 입니다. 어느 판소리 완창에서나 들었던 것 같은 기이 한 떨림은 요즘 ‘노래 잘한다’는 판에 박힌 설정을 송두 리째 뒤흔듭니다. 조용필이구나, 하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
가수 박정현이 언젠가‘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두 고 말했었죠.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조용필이라는 가 수가 어떻게 한 글자 한 글자를 부르는지 알 수 있다 고, 그걸 느낀다고요. 입에서 나왔다고 다 말이 아니듯 이, 가사라고 모두 아름답진 않지요. 한글로 쓰였 을 뿐 한국말이 아닌 노래도 넘치는 세상이고요. 거기 서 당신의 노래를 듣습니다. 한국적이라 말하고 만다 면 정확하지도 멋지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수사 가 아니라 세상일 테니까요.
조용필의 노래를 듣는다는 사실이 그저 그 자체로 이렇 게 자연스러울 수 있네요. 좋아서 웃습니다.뭇 가수들 에게는 자신들이 딛고 서있는 무대가 한낱 모래성이 아 님을 벅차게 확인시켜주었고, 그런가 하면 한 개그맨 이 "바운스바운스" 당신의 성대모사를 하는 걸 보면 서 맘놓고 웃기도 합니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평화입니다.
서울은 뿌옇게 빗속일 텐데 대구엔 보름달이 떴습니 다. 동성로에 즐비한 화장품가게에서 '바운스'가 거리 로 튕겨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거리에서 들리는 음악 은 레코드가게가 아니라 화장품가게에서 나오기 십상 이지요. 골목에 있는 작은 바의 문을 열었다가 '걷고 싶 다'가 흐르는데 중년 서넛이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있 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대전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 었다가 "조용필 이번 거 들어봤냐?" 묻기도 했네요. 모 두 각자의 시간을 따로따로 운전하는 것일 텐데도 대한 민국 전체가 잠시 조용필로 젖은 듯했다면, 공연히 부 끄러우실까요?
내일 아침이면 저는 부산으로 갑니다. 꽃피는 동백 섬 때문에라도 왠지 당신과 가까워 보이는 도시지 요. 가면서 '눈물의 파티' '아이 러브 수지' '서울 서울 서 울'을 들을 겁니다. 웬일인지 저는 이 세 곡을 묶어 '서 울 3부작'이라 칭하며 여행길마다 듣곤 합니다. 또 한 '추억 속의 재회' '꿈' '바람의 노래'를 들을 겁니 다. (이 세 곡을 묶는 이름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 다.) 그리고 사이 사이 'hello'를 섞어볼까 합니다. 그렇 게 또 다른 조용필이라는 길이 열어가겠지요.
당신께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살면서, 그렇 게 오래 조용필 노래를 들으면서도 생각지 못했습니 다. 앞으로는 또한 어떨는지요. 5월에 공연장에서 뵙겠 습니다.
당신께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침에, 비 오 는 서울을 떠날 때까지만 해도 생각지 않았던 일입니 다. 대구로 운전하면서 내내 'hello' 들었는데 그 길 이 이렇게도 이어지고 있네요. 하루가 제법 길어집니 다.
그래서 들으며 어땠느냐면, 좋았습니다. 무던히도 좋았 고 실은 좀 시큰해졌달지 울컥했달지 풍경이 멀어지기 도 했습니다. "조용필이구나." 그렇게, 못내 복잡했 던 마음이 이제는 가지런해졌습니다.
'못내 복잡했던 마음' 이라고 쓰고 나니 멋쩍기도 합니 다만, 말씀드릴게요. 일주일 전 앨범보다 먼저 '바운 스'가 공개되었을 때, 저는 그걸 듣고 즉각 낙심하고 말 았습니다. "바, 바, 바운스라고?" 누구에게 물을 것도 없 었지요. 단어 하나 때문만도 아니었고요. 말하자면 저 는 그 노래를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이건 보톡스 가 아닐까? 주름이 아니라 표정을 지우는, 젊음을 되돌 리는 게 아니라 억지로 '동안'을 제조하는, 설마 조용필 도 ‘빵빵한’ 얼굴로 나타날 텐가?
탄식, 그리고 질문은 단순했습니다. 이 노래가 과연 내 가 알고 있는 어떤 조용필의 노래보다 좋은가? 일제 히 터진 세간의 환호성과 사뭇 다른 방향이었습니 다. 사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어요. 이 노래가 좋다 고? 정말? 마침내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이제까지 내 가 좋아했던 조용필은 뭐였을까? 난 대체 뭘 좋아했 던 거지?
조용필의 새 노래라면 누구보다, 정말 그 누구보다 뜨 겁게 맞을 모든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했던 제게 '바 운스'는 젊음이 아니라 ‘젊음’을 앞세우려는 마케팅으 로 들렸습니다. 노래를 듣지 않았습니다. 들을 수 없었 습니다. 그런 채로 기자회견에 갔어요. 묻고 싶기도 했 습니다. 이 노래가 정말 마음에 드세요? 젊음이나 새로 움 같은 말이 어떤 강박이 되었던 건 아닌가요? 혼자 서 질문을 중얼거려보는데도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습 니다.
"안녕하십니까.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번 앨범이 저 는... 그냥 음악인으로서 어떤 곡을 타이틀로 만들자 는 것 없이, 한 곡 한 곡 이것이 타이틀곡이다라고 편하 게 시작했던 것이,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 때문에 이렇 게 좋은 반응을 얻게 됐습니다. 정말 여러분 감사하고 요. 가사에 넣었듯이... 심장이 바운스바운스됩니다. 여 러분 고맙습니다."
당신의 첫 인사였습니다. 어눌하고 느렸지요. 근데 이 상한 건 그 말에 뭔가 풀려버렸다는 겁니다. 글자에 는 없는 떨림이 말에는 있는 법이라서 일까요? 한껏 각 을 세워 뾰루퉁했던 마음조차 어느새 둥글어지려 했습 니다. 당신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릴게 요. 전혀 거짓없이 말씀드릴게요. 저는 음악을 되게 사 랑합니다. 그리고 이게 평생 팔자려니 운명이려니 사 는 사람이거든요.” 그 말을 들으며 확신했습니다.“되게 사랑합니다”라 는 그 다듬어지지 않은 말. 뭔가를 표방하며 내세우 진 않았구나.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구나. 저토록 무구 한 음악가의 순정이라니, 숨길래야 숨길 수가 없구나.
쇼케이스에서 이번 노래들을 당신의 목소리로 처음 들 었고, 그 후로 계속 듣고만 있습니다. 여전히 모르겠습 니다. 가장 좋아하는 조용필 노래를 말 할 때 'hello'에 수록된 노래를 말할 수 있을지는요. 그 런 채 '서툰 바람'을 반복해서 듣습니다.“눈이 오던 겨 울밤에”를 발음하는 당신의 다부진 강약에 움찔하 고 맙니다. '걷고 싶다'에서“네가 나의 빛이구나"할 때 면 어깨가 떨립니다. 잔치판 같은 하우스 리듬이 가득 한‘그리운 것은’에서 “매화꽃이 만발한 그 곳에”라 고 터뜨려버릴 때면 눈에 보일 듯 환희가 충만합니 다. 남자가 쓴 가사라는 걸 대번 알겠는 ‘어느 날 귀로 에서’를 들으며 어느새 눈을 감습니다.
그 모든 것의 중심은 당신의 목소리입니다. 장르도 콘 셉트도 모두 조용필의 목소리로 모입니다. 모여서 흐 릅니다. 흐느끼는가 하면 저리도 분명할까 싶게 또박 또박 말하고, 나직하게 읊조리는가 하면 맵게도 밀어붙 입니다. 어느 판소리 완창에서나 들었던 것 같은 기이 한 떨림은 요즘 ‘노래 잘한다’는 판에 박힌 설정을 송두 리째 뒤흔듭니다. 조용필이구나, 하지 않을 수 없었습 니다.
가수 박정현이 언젠가‘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를 두 고 말했었죠. 이 노래를 부르다 보면 조용필이라는 가 수가 어떻게 한 글자 한 글자를 부르는지 알 수 있다 고, 그걸 느낀다고요. 입에서 나왔다고 다 말이 아니듯 이, 가사라고 모두 아름답진 않지요. 한글로 쓰였 을 뿐 한국말이 아닌 노래도 넘치는 세상이고요. 거기 서 당신의 노래를 듣습니다. 한국적이라 말하고 만다 면 정확하지도 멋지지도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수사 가 아니라 세상일 테니까요.
조용필의 노래를 듣는다는 사실이 그저 그 자체로 이렇 게 자연스러울 수 있네요. 좋아서 웃습니다.뭇 가수들 에게는 자신들이 딛고 서있는 무대가 한낱 모래성이 아 님을 벅차게 확인시켜주었고, 그런가 하면 한 개그맨 이 "바운스바운스" 당신의 성대모사를 하는 걸 보면 서 맘놓고 웃기도 합니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평화입니다.
서울은 뿌옇게 빗속일 텐데 대구엔 보름달이 떴습니 다. 동성로에 즐비한 화장품가게에서 '바운스'가 거리 로 튕겨지고 있었습니다. 요즘 거리에서 들리는 음악 은 레코드가게가 아니라 화장품가게에서 나오기 십상 이지요. 골목에 있는 작은 바의 문을 열었다가 '걷고 싶 다'가 흐르는데 중년 서넛이 높은 의자에 걸터앉아 있 는 걸 보기도 했습니다. 대전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 었다가 "조용필 이번 거 들어봤냐?" 묻기도 했네요. 모 두 각자의 시간을 따로따로 운전하는 것일 텐데도 대한 민국 전체가 잠시 조용필로 젖은 듯했다면, 공연히 부 끄러우실까요?
내일 아침이면 저는 부산으로 갑니다. 꽃피는 동백 섬 때문에라도 왠지 당신과 가까워 보이는 도시지 요. 가면서 '눈물의 파티' '아이 러브 수지' '서울 서울 서 울'을 들을 겁니다. 웬일인지 저는 이 세 곡을 묶어 '서 울 3부작'이라 칭하며 여행길마다 듣곤 합니다. 또 한 '추억 속의 재회' '꿈' '바람의 노래'를 들을 겁니 다. (이 세 곡을 묶는 이름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 다.) 그리고 사이 사이 'hello'를 섞어볼까 합니다. 그렇 게 또 다른 조용필이라는 길이 열어가겠지요.
당신께 편지를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살면서, 그렇 게 오래 조용필 노래를 들으면서도 생각지 못했습니 다. 앞으로는 또한 어떨는지요. 5월에 공연장에서 뵙겠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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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10-24 | 7992 |
3 댓글
꿈이좋아
2013-04-27 05:33:38
와~~~ 가슴이 뿌듯합니다..
은솔
2013-04-27 18:50:11
오늘 퇴근후에 해운대에 있는 돌부항 노래비에 앉아 노래를 흥얼거려야겠네요^^
◎aromi◎
2013-04-28 00:17:13
오빠를 향한 애정이 듬뿍 담긴 편지네요.
읽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는 그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