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게시판
너무 겸손하고 가슴찡한 필님의 속마음을 비친 기사라서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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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생략...)
가수로서 최고의 명성을 얻은 지난 30년에 대해 그는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 않
았다. 누구보다 화려한 무대인생을 산 그가 지난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으려는데
에는 이유가 있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중요한 것은 지금하고 미래라고 생각해요. 왕년에
내가 가수왕을 열 한번 했다든지, 그때 우리 집 앞에는 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었다고 한들 그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런 생각 오래할수록 병만 들어요
오래전. 그러니까 처음 인기라는 걸 얻을때부터 독하게 마음먹었어요. 언제가는
반드시 미끄러질 때가 올 거라고.. '가요무대' 에 쟁쟁했던 선배들이 나오는 걸
보면 내 미래가 바로 저런 것이라고 나 자신속에 있는 자만심을 죽였어요. 그리
고 오직 음악 한가지만 생각하자고 다짐했죠 지금까지 그 생각으로 온 거예요."
가수가 아닌 자연이 조용필의 30년 역시 그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당대 최고 스
타와 염문, 첫 결혼의 실패등 결코 순탄치 않았던 생활이었지만 그는 '생각해보
면 모든것이 다 팔자였던 것 같다' 는 말로 정리했다. 모든 일은 억지로 되지않
고 순리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는 깃이다.
"가수가 된 것도 그래요. 난 한번도 가수가 되겠다는 꿈을 꾸지 않았거든. 누구
나 그랬지만 나도 미래 희망이 뭐냐고하면 대통령, 조금 커서는 장군 뭐 이런식
이었지. 더구나 가수에 대한 인식이 '딴따라' 였으니 되겠다는 생각을 할 수도
없었죠. 그냥 운명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어쩌다 보니 가수가 되어 있더라는 식으로 가수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는 그이
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가수라는 직업에 대해 후회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가수
로서 나아갈 방향이 보이지 않을 때 힘들어 한 적은 있어도 그만 두겠다는 생각
은 하지 않았다는 그이다.
"대마초 파동으로 3년간 활동을 정지당했을 때예요. 그때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
었는데 그때는 참 미치겠더라구. 그래서 밀항할 생각을 했어요. 부산으로, 어디
로 다니면서 일본이나 미국으로 건너갈 방도를 찾기도 했죠. 그땐 이 나라를 떠
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만약 그때 밀항을 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 모르겠어요. 그대로 음악을 했을지, 아니면 다른 직업을 가졌을지는."
조용필은 가수라는 직업을 '문화 권력' 으로 까지 끌어올린 대표적인 인물이다.
요즘의 10대들이 가장 되고 싶어하는 직업 중 늘 1,2위를 다투는것이 가수인 것
은 바로 젊은 시절 조용필의 오빠부대였던 소녀들이 지금 10대들의 부모인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변화도, 그는 자신이 직접 해낸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은
그저 음악으로만 묵묵히 밀어붙였을 뿐이라는 것. 그더다보니 인기도 얻게 되고
사회적인 지위나 평가 등이 따라오더라는 것이다.
"공연을 하면 아직도 외국까지 따라오는 팬들이 있어요 얼마전에 대전에서 공연
할 때인데 어떤 관객이 쪽지를 건넸더군요 내용이 '오빠 따라다니다 내 청춘 다
갔다'는 거였어요 (웃음) 내가 그랬지, "이 편지 이거 누가 쓴 거야!" 그랬더니
맨 앞에 앉은 한 여자 관객이 손을 들더군요. 사실 전 가수가 관객에게 끌려 다
녀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무대에서 당당할 수 가
없어요. 그래서 난 좀 팬들에게 일부러 무뚝뚝하다 싶을 정도로 대해요 사실 속
마음으로야 고맙죠."
조용필에게는 요즘 팬클럽의 원조격인 '이터널리'라는 팬클럽이 있다 영원한 오
빠의 팬으로 남겠다는 뜻을 가진 이 클럽은, 따로 회보를 발간할 정도로 열성적
인 팬들의 모임이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조용필은 '고맙다'거나, 지나가는 안부
조차도 잘 묻지 않는다 대신 그는 자신을 향한 이들의 관심과 염려에 대해 나름
대로 애정을 담아 이렇게 말한다.
"늦었으니 빨리 집으로 가!"
맨 앞에서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 사람의 고독을 누가 알까. 그는 그렇게 지난
30년을 달려왔다. 설사 대중가요의 중소비자인 10대들의 환호는 멀어졌지만, 그
는 애초 자신에게 환호했던 이전 세대들에 대해서는 마음속으로 일정 거리를 유
지했던 까닭에 지금까지 당당할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외로웠다고 한다. 속
내를 선뜻 드러내지 않는 그이기 때문 '그래서 더욱 요즈음 마누라 없이 지내지
못하는 모양이야'이라면 쓰게 웃는다.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한다는 자체가 저한테는 그리 큰 의미로 다가오지는 않아
요. 오히려 공연내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한 거죠. 뭔가 정리하는 무대이
기 때문에 좀 더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아요. 내용은 음악사를 정리하는 형식으로
1부 ,2부, 3부로 나눌 생각이에요. 1부는 80년 이전 흑백시대를, 2부는 이후 컬
러시대를 담고, 3부는 미래를 주재로 담을 예정이죠."
요즘도 그는 매일 같이 노래 연습을 한다. 당대 최고의 가객이라는 칭송을 받는
그이지만 노래 연습만큼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는 '목소리를 최상으로 유지하
는 비결은 노래를 부르는 것 밖에 없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디오에서 할 때를 제외하고 평소에도 집에서 노래방 기계로 해요. 미국 매
릴랜드 집에도 있는데, 남의 노래는 잘 부르지 않고 내 노래만 불러요. 노래 목
록 책에 나와 있는 내 노래들을 빨간 볼펜으로 밑줄을 쳐 놓고 부르죠. 목을 푸
는 데는 '꿈'을 가장 많이 부르는 데 제일 무난한 것 같아요."
그는 자신의 노래 실력이 최고라는 식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저 최선
을 다할 뿐이라는 것이다. 평가는 순전히 대중의 몫인 셈인데 설사 자신을 최고
라고 한다 해도 그건 그들의 평가이지 자신의 평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해까지도 늘 음반을 내야한다는 강박관념 같은게 있었어요. 해가 바뀌었으
니까 당연히 내야 한다고 까지 생각했죠.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을 작정이에요.
정말 마음에 들 때 까지, 언제 끝나든 그렇게 작업할 생각입니다 지금도 느끼는
것이지만 음악은 하면 할수록 힘든것 같아요 따로 끝이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어느새 밤이 이슥해졌다 처음엔 담배와 술을 멀리하던 그가 담배와 맥주를 조금
입에 댔다. 모처럼의 인터뷰로 많은 이야기를 한 탓이었으리라. 언뜻 그의 얼굴
에서도 세월이 느껴졌다. 과거를 돌이키기 보다는 현재와 미래를 더 중요시하는
그에게도 세월은 어김없었다는 증거였다.
"나이가 들면 살이 좀 쩌야 한다더니 그렇더라구요. 지금은 체중이 조금 늘었는
데 전보다 낫다는 소리를 들어요. 아무래도 살이 찌니까 주름이 펴져서 그런 모
양이야. 하하하."
털털한 웃음으로 자신의 30주년을 갈음하는 인터뷰를 마친 가수 조용필 그가 지
난 30 년 동안 모든 세대를 통틀어 최고의 가수로 불리는 이유가 조금은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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