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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은 공연 때면 무대에서 객석에 앉아있는 부인 안진현씨를 찾는다. 지난 연말 디너쇼에서 기자가 본 일화. 테이블에 앉아 남편의 공연을 보던 안씨가 옆자리 친구에게 뭔가를 보여주는 듯해 곁눈질했다. 조용필이 부인에게 보낸 연서(戀書)였다.
◇ 아내에게 유독 따뜻한 남자
‘사랑하는 진현에게’로 시작된 이 연애편지에는 대충 ‘사랑한다’는 말이 여러번 들어있었다. 안씨가 얼른 감춰버려 자세히 보기 어려웠다. 그 내용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보다는 ‘유치’했다. ‘절절한 연애편지란 아무리 대가가 쓴 것이라도 자세히 읽어보면 유치하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보다 앞서 조용필은 미국 플로리다 골프장 소유자지만 골프문외한인 아내에게 골프를 가르쳤고 안씨가 필드에서 공을 잘치지 못하자 ‘성질’을 부리기도 했다. 골프에 취미를 붙인 안씨가 ‘무리’해 발목을 다치자 조용필은 집에서 아내를 화장실로 업고 다녔다
“가수 만나게 해주마”/귀가여고생 둘 유인/술집주인등 셋 검거
중앙일보 1990-09-09 15면 (사회) 판 뉴스 389자
8일 오후5시30분쯤 서울 오류동 25 삼익쇼핑 앞길에서 박동균씨(43ㆍ스탠드바주인ㆍ서울 행촌동) 등 40대 남자3명이 귀가하기위해 버스를 기다리던 정모양(16ㆍ서울 D여상1년) 등 여고생 2명을 유명연예인을 만나게 해주겠다고 유인,강남의 여관으로 데려갔다가 뒤쫓아간 경찰에 붙잡혔다.
박씨 등은 이날 버스정류장에서 빵ㆍ음료수를 먹으며 버스를 기다리는 정양 등에게 접근,『가수 조용필과 이승철을 만나게 해주겠다』며 박씨의 그랜저승용차에 태워 서울 서초동 P여관으로 유인,이 여관지하 레스토랑에 들어갔으나 정류장에서부터 이상하게 여기고 뒤쫓아간 서울시경 특수대 형사2명에게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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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설밑 죽음(행간)
경향신문 1990-01-26 14면 (사회) 판 칼럼.논단 1070자
『3일전에 집에 오겠다고 전화를 했는데…』
딸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광주에서 밤차를 타고 26일 새벽 서울에 도착한 김봉남씨(57·농업·광주시 광산구 지죽동 102)는 서울 용산구 순천향병원 영안실에서 딸의 시신을 앞에놓고 넋두리처럼 똑같은 말만 되풀이 했다.
방벽에는 김양이 좋아했던 인기가수 조용필의 사진이 여러장 붙어있었다.
조용필 모친 빈소서 여성팬 백여명 밤샘(표주박)
한국일보 1991-08-07 22면 (사회) 판 가십 253자
○…가수 조용필의 모친빈소가 차려진 서울 송파구 석촌동 남서울병원 영안실 주변에는 6일 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조씨의 극성여성팬 1백여명이 집에 돌아가지 않고 이틀째 밤을 새우며 서성대 눈길.
대부분 10∼20대인 이들은 『상중에 이렇게 찾아오는게 예의가 아닌줄 알지만 오빠와 슬픔을 함께 나누고 싶어 찾아왔다』고 말했다.
이날 빈소에는 문화부장관과 동료 연예인들이 화환 1백여개를 보냈고 이주일·박상규·배철수 등 동료연예인 2백여명이 찾아와 조문.
「뉴키즈」모임/전국에 대소 100여개(화제추적)
한국일보 1992-03-04 04면 () 판 3052자
◎대중스타 「팬클럽」국내실태 알아보면/조용필·이선희 각 1만명규모/국교생서 60대까지 회원
팬클럽중에는 회원수가 1만명을 넘어선 맘모스급도 있으며 회지발간·무료콘서트·음반 및 뮤직비디오 감상회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회갑잔치에 꼭 참석해 달라는 할아버지 할머니에서부터 잘못된 무대매너와 창법을 지적하는 주부·대학생·직장인,그리고 국민학교 어린이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직업이 천차만별이다. 물론 주력은 어느 팬클럽할 것 없이 10대소녀들인데 콘서트장에 집단으로 참석,박수를 쳐대며 객석분위기를 휘어잡고 방송국에 무더기 음악신청엽서를 보내는가하면 팬레터외에도 종이학·일기장·스킬자수같은 선물까지 보내는 극성파다.
국내가수의 경우 팬들의 자발적인 모임외에 가수가 팬클럽 회원을 공모하고 관리전담직원까지 두는등 인기관리차원에서 팬클럽을 이용하기도 한다.
「조용필 음악가족」은 여러면에서 국내가수중 대표적인 팬클럽이다. 82년과 85년 두차례 회원을 모집했으며 회원수는 1만8천명 정도. 최근 3차 회원모집에 들어갔다. 전체모임보다는 지역활동이 활발해 서울회원들은 조용필의 이름 끝자리를 딴 「필의 평화」「필무리」「필애호인」 부산은 「일편단심」「욕심장이」같은 회지를 내고 있다.
이선희의 팬클럽인 「참사랑 홍당무」역시 막강하다. 87년 조직,꾸준히 활동하고 있는데 회원은 약 1만5천명.
지난 1월에는 버스 12대를 전세내 회원 5백여명이 설악산에서 1박2일 동계캠프행사를 가졌다. 결혼후에도 인기를 그대로 유지해 요즘에도 하루 15∼20명정도 새회원이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의원선거때 팬클럽회원들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수 심신의 팬클럽은 열기가 높기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해 봄 그의 인기가 급상승하면서 전국 여기저기서 결성되기 시작,현재 서울을 비롯해 부산·광주등 7개도시에 독자적인 클럽이 있고,회장은 여고재학중인 10대소녀들이 맡고 있다.
지난 1월에는 각지역회장단회의를 소집,『다음 콘서트부터 전국의 팬클럽회원들이 같은 T셔츠와 모자를 착용,단결심을 높이자』고 깜찍한 결의를 하기도 했는데,회원들은 콘서트가 있을때 마다 그의 사진과 이름이 들어있는 피켓을 미리 준비해 지방원정까지 가는등 열의를 보이고 있다.<김경철기자>
.조용필 신승훈 심신 등의 공연장에서 여중고생들이 괴성을 연발하다 옷을 벗어던지고 2층에서 뛰 어내려 부상한 학생도 있다. 인기가수들의 공연장에서 보통 한두명씩 기절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조용필 「서울…」의 승리/이낙연 기획특집부(오늘과 내일)
동아일보 1993-11-03 05면 (해설) 판 칼럼.논단 1522자
조용필은 만만찮은 예술가다. 이렇게 말하는 까닭이 있다.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당시 정부는 조국과 서울을 예찬,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밝은 노래들을 만들고 방송토록 권장했다. 자연히 그런 노래가 수없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 유행어를 빌리자면 「신바람운동」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조용필만은 쓸쓸한 노래 「서울 서울 서울」을 내놓았다. 「해질무렵 거리에 나가… 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었구나…」. 그 애조때문에 이 노래는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방송전파를 별로 타지 못했다. 방송들이 이 노래를 내놓고 들려준 것은 올림픽 폐막연때가 처음이었다.
○올림픽이후 인기
그러나 「서울 서울 서울」은 올림픽이후 가장 인기있는 노래가 됐다. 그때 나온 노래들 가운데서 지금도 기억되고 사랑받는 것은 이 노래가 거의 유일하다. 한 TV방송국은 올해 서울정도 6백년에 관한 연중 프로그램의 주제음악으로 이 노래를 선택했다. 이 노래의 생명력이 거듭 입증된 셈이다.
사람들이 온통 올림픽으로 신바람나 있을 때 조용필은 왜 이런 노래를 만들었을까. 그는 『올림픽이 끝나면 우리 사회가 우울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세상은 그의 예상대로 돼갔다. 갈채가 들리던 자리에는 낙엽이 뒹굴었다. 사람들은 「신바람의 후유증」 같은 정서적 슬럼프에 빠졌다. 생산성은 떨어졌고,3년연속 구가되던 무역흑자는 적자로 돌아섰다. 경제의 거품은 꺼졌다.
와세다대 명박학위식 “새아시아” 역설/일 각계인사 초청 다과회서 개혁설명
▷총리주최만찬◁
○…호소카와총리가 25일 저녁 총리관저에서 김영삼대통령 내외를 위해 가진 만찬은 양측인사 70명이 참석한 가운데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진행.
실내악단의 연주속에 입장한 양국 정상은 차례로 만찬사와 답사를 통해 새로운 한일관계의 구축과 발전을 다졌으며,연설을 마친뒤 실내악단이 연주하는 조용필의 노래 「친구여」를 들으면서 환담을 계속.
▷경기◁
파주군선관위는 12일 오전11시경 민자당의 이인제지사후보의 정당연설회 직전 개그맨 최병서가 청중들을 상대로 퀴즈를 낸 후 시상금으로 1만원을 제공한 것이 공직선거및 선거부정방지법에 위반된다고 보고 도선관위에 최종 유권해석을 의뢰.
선관위에 따르면 이날 군청광장에서 최씨가 이후보도착전 30분간에 걸쳐 여흥프로그램을 진행하던중 『조용필이 부른 「고추잠자리」를 세글자로 줄이면 뭐냐』고 질문을 던진 후 『번데기』라고 답한 40대 여자청중에게 자신의 지갑에서 1만원을 꺼내 줬다는 것.
“단란주점 손님 신명난 춤판 행정력으로도 막을수 없다”(돋보기)
경향신문 1995-06-03 23면 (사회) 판 가십 652자
◎법원,영업정지 취소소 주인손 들어줘
◇…노래부르는 도중 흥에 겨워 추는 춤을 행정력으로 막을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와 주목.
서울 성동구에서 단란주점을 운영하는 최모씨(여)는 가수 조용필의 노래 「미지의 세계」에 맞춰 손님들이 춤추는 것을 제지하지 못해 지난해 7월 구청으로부터 2개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고.
조용필. 3학년때 같은 반이었다. 그때도 그는 키가 작았다. 말이 없고 고집이 셌다. 기타를 배우러 다닌다고 손마디엔 늘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그시절 이미 대성할 「싹수」를 보였던 것 같다.
영화음악도 효과적으로 사용됐다. 여러번 등장하는 애국가는 각각의 장면을 해석하는 틀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있다. 김추자의 「꽃잎」과 조용필의 노래에서는 영화의 시대분위기를 담으면서, 동시에 대중성과 서정성을 바탕으로 영화에 접근하겠다는 감독의 의지가 엿보인다.
성남 분당/충남 예산/경북 구미갑/관심지역 개인연설회
오전 10시반 야탑동 현대아파트 8단지.
『그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나필열…』
조용필의 히트곡 「단발머리」를 개사한 로고송이 끝나자 왼쪽 가슴에 장미꽃을 단 국민회의 나후보가 연단으로 올라왔다. 닫혀진 아파트 창문을 향한 연설이 시작됐다
밤무대 가수 조영필/레스토랑 오픈 ‘어엿한 사장’
조영필은 기사가 나간 후 평생동안 가장 많은 방송출연을 했다. 라디오 프로그램 출연섭외는 하도 많아 골라서 나갈 정도였다.
중학교 시절 「이미자 모창」에 빼어났다던 조영필.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연한 기회에 이미자를 만나게 돼 오랜 소원을 풀었다.
또 가수 조용필의 공연 기획사측에서는 그를 게스트로 초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때문에 거절했다. 오랜 밤무대 가수생활에서 얻은 「나도 당당한 가수」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지난 25일에는 경기 일산에 대형 레스토랑 「필」을 오픈해 어엿한 사장님으로 변신했다. 밤무대에서 번 돈을 모두 투자했다.<10월19일자>
수업에 충실 중·고 6년간 전교수석/인문계 전국수석 정용식군
한국일보 1996-12-06 38면 (사회) 판 뉴스 723자
가수 조용필을 좋아한다는 정군은 『신세대 가수나 댄스그룹들의 음악에는 별 매력을 못 느낀다』고 말했다. 3학년 주임 조욱제(43) 교사는 『정군은 성격이 밝고 명랑해 교우관계도 아주 원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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