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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천의 왕팬인 김미영님의 고딩시절의 추억이랍니다..
감동받아서 퍼다 올립니다!!
[추억속의 재회]93년 세종문화회관 공연....^-^
◎◎
계절도 바뀌고.... 옷 정리도 하면서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글 하나를 봤다..
25주년 기념... 93년 세종문화회관 공연...
10월 5일, 6일 이틀이었는데, 이때 표 값이 5만원이었다. 당시 정말 상당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허허.
하기사... 요즘 가수들은 이제 5만원이니까...
난 6일...그것도 운이 좋아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라서 빨리 학교가 끝나서 그나마 그 공연을 볼 수 있었다.(이땐 난 고딩이었당...곱드랬쥐여~연변버전임다...크하하하)
<90 추억속의 재회> 공연하고 같이 내가 절대 못 잊는 공연 중에 하나고, 못 봤더라면 두고 두고 후회했을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그때의 잔잔한 그 감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크크... 정말 그땐 공연이 말 그대로 감동적이었다. ^^
대중 가수들한테 담이 넘 높았던 세종문화회관에서 오케 반주가 아니라, 자신의 밴드 데리고 무대선 것도 그랬고, 25주년이라는 숫자가 그랬고, 오빠 노래가 그랬고, 오빠의 눈물이 그랬다.
그 전에 이미자, 패티김이 공연을 했지만, 다 점잖은 분들 공연이었는지라... 오빠가 공연을 하고, 우리가 거기서 뒤집음으로 인해서 안 그래도 문 잘 안 열어주는 세종이 아예 세콤^^까지 걸어버릴까...크하하하...오빠나 우리 팬들이나 공연 전부터 참 많이도 조심스러워 했고, 공연 당일 세종 직원들의 그 딱딱했던 태도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그에 비하면 예전 직원들은 양반에 양반이다. 이번에 가문 손이나 함 꼬오옥~ 잡아주고 와야겠당. 으하하^^)
그래서 공연 초반엔 팬들이 다 경직되어서 박수만 치는...완죤 가요무대-,- 분위기로 갔었는데, <모나리자>에서 희선이 아저씨, 태윤이 아저씨와 함께 갑자기 동시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는 당시엔 정말 쇼킹하고, 파격적인-,- 연출에 다들 술렁이기 시작했고(다들 오빠 멋지다고 자지러지던 이때도 선화언니는 간 크게도 멋있긴 한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고...까르르...그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숨이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이 웃었다-.-;; 언젠간 <선화언니의 간 큰 팬 시리즈>를 함 올려봐야 겠당...크하하하)... <비련>에서 완죤히 뒤집어 버렸다.
<비련> 반주가 나오는데...이때까지만도 아직 경직된 분위기가 완전히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의 그 팬들의 <오빠~~!!!> 하는 소리를 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우린 그 반주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도 술렁술렁, 갈팡질팡 거렸는데....흐흐....<기도하는~!>...이 부분이 나오자, 그냥 자동...오도매릭^^으로 <오빠~!!!> 하는 소리가 나와버렸고....이왕 지른 거 에라 모르겠다....싶어 무너지기 시작....오빠도 은근히 우리 그러기를 기대^^했던건지....아무 제지도 않고, 가끔 은근히 충동질도 함서....게다가 레파토리도 하나 같이 우릴 충동질^^ 시키는 것만 부르고 그러셨다.
언젠간 오빠한테 함 물어보리라.... 그때 정말 우리가 소리 지르지 않고 조용히 노래 듣기를... 진정 그리 원하셨던건지....(허준 라스트신 버전....크하하하)
지금 들으면 공연 하나에 몬 첩보전도 아니고, 왠 오버냐...할지도 몰겠지만....당시 사회 분위기^^라는 게 정말 이랬다.
마지막 <꿈> 과 함께 오빠 눈물에 팬들도 다 엉엉 울고....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 다 나가고, 무대엔 커튼이 쳐지고, 스포트 라이트 하나가 커튼 밖으로 나와 서 있던 마이크 대를 비추고 있었는데.... 팬들 하나 같이 나갈 생각은 안하고 여기 한웅큼^^ 저기 한 웅큼... 그 주위에 모여 서서.... <그대여> 부르고, <서울 서울 서울>...부르면서....<오빠~~!!> 하고 소리 지르던 모습도 또 하나의 감동이었다.
아...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갑자기 왜 이렇게 나나. 그 공연이 이 맘때였기 때문에 그런가. 캬캬
그때 나이가 고딩 2였다.
아~~~~~~~~~~~~~~증말 증말 곱디 고운 나이였당....허허..-,-
그땐 정말 오빠 그 <음....> 하는 소리 하나 안 놓치고 싶을 때라서(크크...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상상이 어렵겠지만....나도 내가 그랬나 싶다...크하하하....^0^;;;) 그때 현장에서 녹음한 걸 듣고 또 듣는 것만도 모자라, 그대로 토하나 빠뜨리지 않고 받아 적어 놨었다. 햐햐. (이건 살랑이 아니라 집착인디...크하하하^--^;;)
그 귀한 테잎...어디 뒀는지....고마 잃어뿌고...흐흐...오늘 우연히 그걸 받아 적어 놓은 걸 발견했다.
그 공연 못 보신 분들은 그때 공연이 이러했다는 걸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갔던 사람들은 나처럼 쭉 읽어감서 그때 공연 되씹어 감서 추억이라는 거에 함 젖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들어 올림다.
저 이뿐 짓^^한 거 맞쑴까? 크하하^^
이건 일탄이구여...나머지는 쫌 있다 다시 올릴게염...
말 그래도 있는 그대로 받아 적은 거기 땜에... 동문서답에 조사 안 맞고....하는 내용이 있기도 할검다. 울 오빠 그 동문서답은 옛날부터 유명했잖아염...크하하".";]
그래도 그땐 그것도 그렇게 이뿝띠다..
으하하하하하*_*'
궁시렁,,,> 요즘 내가 왜 이러쥐....크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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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여자>
<돌아와요 부산항에>
건(김동건): 오륙도를 돌아 연락선을 타고 부산항에 상륙한 나이가 19세, 그후 허공을 찌르는 듯한 인기는 가히 국민 가수에 이르렀습니다. 이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떻게 저렇게 몸 전체로 노래할 수 있을까,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조용필입니다. 우리 나라에 여동생을 가장 많이 가진 남자, 수많은 여성의 오빠, 그렇기에 절대 늙을 수 없는 남자, 국민의 가수, 언제 들어도 가까운 이름, 여러분의 가수 조용필입니다(앞부분이 녹음이 안돼서 잡지에 실렸던 거 요약부분만..)
<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전하는 말>
<꽃바람>
<어제 오늘 그리고>
<모나리자>
필: 대단히 감사합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항상 느끼지만 어제와 오늘처럼 이렇게 빨리... 빠르다는 것을 느낀 것은 아마 지금까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사회를 맡으신 김동건씨께서 꽃피는 동백섬에 제가 와서 허공을 찌르는 듯한 인기를 얻었다는 대목을 제가 들었습니다만, 순간적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너무 과분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오늘 저의 25주년을 기념하는 이 콘서트에 여러분 찾아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에 다시, 제가 평소에 가장 존경하고 형님 같고, 또 형 같고 때로는 친구 같은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김동건씨~!
(김동건 등장)
건: 여러분 다시 한번 많은 박수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 - -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지금 조용필군이 저를 존경한다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 조용필군, 이 콘서트에 와주신 여러분들은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여기 오시기를 참 잘했다는 느낌을 받고 돌아 가실겁니다.
제가 지금부터 조용필군의 노래 이외의 모든 것을 짧은 시간에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제가 조용필군과 약속을 하나 하겠습니다.
평소에 방송이라던가 신문지상, 또 잡지를 통해서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는 어디까지나 인기 스타 조용필, 노래하는 가수 조용필의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근데 오늘은 25주년이고, 콘서트고, 독무대니까 노래는 말할 것도 없지만은 얘기라도 평소에 못들은 얘기, 정말 조용필이 어떤 인간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가수인가를 알 수 있는 얘기를 나눴으면 싶은데, 뭘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필: 근데요, 전 좀 더듬는 편이거든요. 잘 전달될지... 뭘 물어 보시면 대답할게요.
건: 말까지 잘하면 안되죠. 말을 좀 더듬는 듯 해야 진실성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 같이 이렇게 막 줄줄줄 하면은요, 아주 진실성이 없어 보일 수가 있어요. 근깐 좀 계속 더듬으세요.
필: 예.(웃음)
건: 지금 몇살이십니까?
필: 뭐,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요.
건: 노래한지 25년이 되었죠?
필: 예. 아주 일찍 시작했습니다.
건: 10살에 시작했다 그러면...
필: 뭐 그 정도....녜? (웃음)...글쎄요...마흔이 넘었습니다.
건: 마흔 몇 살?
필: 만으로 얘기할게요. 우리 나이는 한 살 더 먹었으니까(웃음)...셋입니다.
건: 마흔 셋! 서른 세 살을 거꾸로 잘 못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조용필씨가 마흔 셋이라고 지금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면 딸처럼 되겠죠? 근데 중학생이 오빠라는데 있어 할말이 없잖습니까! 영원한 오빱니다. 정말
그리고 수많은 여학생들, 여성들이 말이죠, "오빠~!오빠~!" 그럴 때 기분이 어때요?
필: 한 5년, 6년까지만 해도 그냥 항상 그렇게 부르니까 별 느낌이 없었는데, 마흔이라는 나이가 딱 들어서면서 오빠라고 그러니까, 저쪽에서 "오빠~!"그러면 쳐다보게 되요.
건: 주위 사람 없는가 해서?
필: 괜히 창피하기도 하고... 야.. 내가 지금 아저씨인데... 그렇다고 "아저씨~!"그러면 "응?..."...(웃음)
건: 기분 나쁘죠?
필: 아니, 기분이 나쁜 거보다 좀 생소해요.
건: 내가 보기엔 조용필씨는 70이라도 오빠라고 그럴 겁니다. 이거 믿어주세요.
근데 혼자 살잖아요?
필: 둘이 살죠.
건: 누구랑?
필: 제 동생이랑.
건: 동생이?
필: 여동생요.
건: 여동생말고. 여동생은 몇 백만명 있잖아요. 그거 말고, 장가를 안 갔단 말이에요.
필: 갔다왔죠.
건: 갔다 온 후에 안 갔다 이거에요.
필: 돌아온 총각이라고 그래요(웃음) 저는 이런 질문... 이거 방송에서 안 한다 했던 거 아니에요?
건: 그럼 이 자리에선 해도 괜찮단 말이에요.
필: 저는 반반인 것 같아요.
건: 반반이라는 건.. 가고 싶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필: 예.
건: 어떤 때 가고 싶어요? 그럼?
필: 꼭 가고 싶다고 그러면은... 일 늦게 끝나고... 제 동생이 뭐 볼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갈 때도 있기 때문에, 어디 갔다 저녁 늦게 들어갈 때 아무도 없을 때....
건: 집안이 비었을 때?
필: 예. 그럴 때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건: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죠?
필: 예. (웃음)
건: 그리고 또 어떤 때 장가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필: 그러니까 그럴 때...
건: 그리고 친구들, 예를 들어서 만나 보면 부인 있고 애기들 있고, 그런 거 보면 어때요?
필: 좀 부족하죠... 그러니까 저는 자꾸 팔자로 돌리거든요.(웃음) 너는 그냥 음악만 하고 딴 건 다 집어 쳐라, 이런... 자꾸 생각을 하기 때문에 친구들 보면 너무 너무 좀 부럽고...
또 옛날에 제가 많은 고무신을 외국에서 사온 적이 있어요. 제가 쇼핑 나갔다가 너무 너무 이쁜 게 있어 가지고 그걸 사가지고 와서는... 요즘은 없앴습니다.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요.
건: 그러면 장가를 가고 싶지 않을 떄는 어떤 때에요? 장가를 가서 뭐하냐, 안 가겠다고 그럴 때...
필: 글쎄요, 여러분이 들으시면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근데 저는 음악을 10대서부터 40대까지 하고 있는데... 사실 제가 너무 편안하고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지금까지 살아온 음악의 길이 너무 파괴될 것 같다, 또는 행복해졌기 때문에 그 음악이 심취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불안감이 있어요. 저는. 근깐 난 그냥 음악이나 하고 사는 것이... 또 외로운 것도 멋이지 않겠는가, 외우려면 철저하게 외롭고, 고독하면 철저하게 고독하게 지내자는...
건: 근데 집에 들어가면 철저하게 외로울 때 어떻게 해요? 그러면 계속 더 외로워 지려고 그래요? 아니면 외로움을 뭘로 달래요?
필: 그럴 때는요... 술을 한잔 먹고 들어가서... 제 악기 세트가 있고, 저쪽에 자는 데고, 근데... 그냥... 술 안 먹고 들어 갈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문 잠그고 제가 평소에 안 듣던 제가 작곡한 노래, 또 마음에 드는 가사가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뭐... 소주 좀 갖다 놓고 마시면서 계속 들어요.
건: 여러 곡을 계속?
필: 아니, 한 곡만...
건: 한 곡만 계속, 밤새도록 그 한 곡만 들어요?
필: 그렇죠.
건: 왜 그렇게 들어요? 그 한 곡을?
필: 그러니까 아까 전에도 얘기했듯이 가사가 내가 주인공 같은 그런.... 근깐 좀 외로우면 야~ 외롭다 할 필요 없이 그냥 철저하게 외롭고 싶고... 뭐... 그러고 싶어요.
건: 좀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 이렇기 때문에 이런 노래가 나오지 않나 싶어요. 그렇죠?
자신이 부른 노래를, 오래전 것을 밤새도록 한 곡을 계속해서 듣노라니, 그거 웬만한 사람이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가수가 그러겠습니까? 여러분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술 먹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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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시간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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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고독을 철저히 즐기겠단 오빠가 4개월 뒤 결혼을 발표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분해지지? 크하하하...
지금 오빠 옆에 진현 아줌마가 있어서 넘 다행이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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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 술 먹잖아요...
필: 옛날에는 제가 최고 기록이... 저희 선배님하고 둘이서 좀 따질 게 있어 가지고 먹었는데... 어렸을 때 먹었는데, 소주 12병에다가 맥주 12병을 먹었는 적이 있어요.
건: 열 둘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요?(웃음)
필: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건: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데요? 괜찮았어요?
필: 저희 선배는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고, 전 도망갔거든요.(웃음) 그때 통행 금지가 있어 가지고...
건: 그리고 그동안 25년동안 정말... 참... 동백섬 이후로 허공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히트곡을 냈단 말이에요. 수입도 굉장히 많았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들이 어떻게 얘기하기를 "조용필이는 빈털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필: 맞습니다.
건: 그렇다면 씀씀이가 그렇게 헤퍼요?
필: 전 씀씀이가 무지하게 헤픕니다. 저는 연예인 가운데서도 아마 액수로 따지면 저 이상 버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웃음) 왜냐면 여기뿐만 아니라 외국서도 전부가 노래 한번 하면 그게 다 돈이기 때문에... (웃음) 또 무대도 제일 많이 했고... 근데 그 돈을 거의 삼분에 이 정도를 전부 음악에다 투자하고, 무대에다 투자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공연을 해도 제가 직접 프로모터까지 다해서 완벽이 될 때까지 노력하기 때문에 음악에 다 투자합니다. 그 나머지는 뭐, 솔직히 집도 있고, 차도 좋은 차 타고 다니고... 또 저는 누구한테 얻어먹는 걸 참 싫어해요. 그래서 꼭 사주는 편인데...
건: 근데 왜 나한테는...
필: 제가 술 사가지고 집에 들어갔잖아요.
건: 나만 만나면 사달라고 그러잖아요.
필: ... 그래서... 저는 제가 음악을 뭐 돈 벌려고, 못 먹어서 제가 이쪽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집에서 쫓겨나면서까지 음악이 좋아서 나왔기 때문에 그런 거 하고는 연관을 안 시키고... 저는 누구보다도 버는 돈 다 쓰고 싶어하고, 이렇게 건전하게 살고 싶어요. 뭐 이렇게 째째하게 뭐... 근데 땅은 몇 개 샀거든요.(웃음) 아이 안 걸리려나 모르겠네.
건: 그럼 조세에 많이 나왔겠네.
필: 아니... 뭐... 근데 땅 얘기는... (웃으며 얼버무림)
건: 그럼 세무서에서 노래로 때워요. (웃음) ... 저... 나이트 클럽 웨이터 이름 중에 조용필이가 제일 많다는 거 알아요?
필: 많죠.(웃음)
건: 조용필이라는 웨이터를 만나본 적이 있어요?
필: 많이 만났죠.
건: 뭐라 그래요? 그 사람들이 만나 이름값을 받아본 적이 있어요? 이름을 빌려줬으니까...
필: 없죠. 이름값 먹는 사람, 엉뚱하게 딴 사람이 먹더라구요. 그게요, 제가 알아보니까 나이트 클럽 웨이타가 조용필을 쓰는 조건으로 무슨 금이래나.... 무슨 보증금인가, 이름 사용하는 금을, 그걸 지배인을 줘야 된대요. 그걸 날 줘야 되는데... (윳음)
건: 그게 다 고통 분담이고, 부의 재분배니까 너무 그렇게 그런 것까지 챙겨서야 되겠어요? 근데 그 조용필이라는 웨이타를 만났을 때 뭐라 그래요?
필: 제가 만난 것도 이상하게 만났는데, 화장실을 가가지고요... 남자들은 서서 하지 않습니까? (웃음)
건: 아~! 남자던가? (웃음)
필: 예. (웃음) ... 이렇게 절차가 있지 않습니까? 그걸 끝내놓고...
건: 절차라니, 무슨 절차?
필:.... 내리고, 꺼내고... (웃음)... 그거하고, 앞을 보니까요...
건: 잠깐만요, (앞쪽으로 끌어 당기며) 지금 한번 해봐요.
필: (뒤로 물러서 버림)... 앞에 제 이름이 딱 나와요. 그래서 어, 공연도 안 하는데 이런 게 붙었냐 그랬는데, 딱 보니까 모 나이트 클럽 16번 웨이타 조용필, 오면 끝내 줍니다... 이렇게 써 있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웃음)... 뭐 많다고 방송하니까... 그 옆에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전화를 받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툭툭 치면서 껌하고 명함을 하나 주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봤더니 또 내 이름이에요. 보니까 그 사람이 웨이타에요. 그래서 놀래 가지도 도망가더라구요. 그래서 껌 하나 얻어먹었어요.
건: 앞으로 이 가수 생활은 내가 보기에는 조선일보사와 인터뷰를 한 기사를 봤습니다만, 70이 되도록 노래를 하겠다, 그랬단 말이에요.
필: 예. 저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죠.
건: 불란서의 유명한 모리스 슈발리에라는 대중 가요를 부르는 국민적인 가수가 이른 두 살에 은퇴 공연을 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조용필군은 90살까지는 노래를 하고, 그때까지도 오빠 소리를 들을 거에요.
그럼 끝으로 한가지만 더 물어 봅시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큰 소원이 있다면 어떤 거에요?
필: 저는 가수의 마지막은 조금 전에 형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가수는 무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그래서 장기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건: 장기 공연요? 언제 부터요?
필: 내년부터요. 꼭 할 예정입니다.
건: 그거는 음악이고, 음악적인 소원 말고, 그냥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원은?
필: 요즘 연습하고, 여러 가지 준비 때문에 운동도 못하고 그랬는데, 전번에 갔다 오니까 엉망이더라구요. 볼이나 잘 맞았으면 좋겠어요.
건: 무슨 볼? 무슨 운동해요?
필: 골프 치거든요. 그거나 잘 맞았으면 좋겠어요.
건: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가수도 꿈이라던가, 소원이라던가... 이렇게 소박합니다. 내가 잘 맞게 가르쳐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싱글 만들어 드릴게요. 여러분, 조용필군의 장기 공연도, 또 그 소박한 꿈, 골프도 잘 맞도록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용필군과 보신 것처럼 언제나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오늘도 이 자리에 나와서 정말 한 몸이 되어 가지고 연주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탄생'을 제가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오른 쪽에 있는 키보드에 김영길군을 소개합니다.
그 옆에 아주 귀공자입니다. 역시 키보드에 한정호군입니다.
리드 기타를 지금 연주하고 있는 최희선군을 소개합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이 보시기에 왼쪽 첫 번째 베이스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이태윤군을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최태완군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드럼을 치는 소년, 임꺽정같이 생긴 김희현입니다.
(어깨 동무를 해서 趙容弼을 감싸 안고서) 용필아, 제 드러머 있잖아.
필: 예.
건: 내일부터 잘라버려. 용필이하고 맞먹을려고 막 이러면서, 박수를 너무 많이 받고 말이지...
필: 아니, 근데 제가 시킨거에요.
건: 그렇게 하라고 시킨거랍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위대한 탄생'에게 많은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웃음) 가수, 그리고 아주 헛점이 많고 허술하게 보이고, 그리고 약하게 보이지만은 마이크만 잡으면 그 누구도 대결할 수 없는 가수입니다. 우리 조용필군이 오늘은 특별히 이 자리에 각계 원로 분들이 많이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황성옛터'와 '대전 블루스'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박수로 맞아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황성옛터, 대전 블루스,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단발머리>
<여행을 떠나요>
건: 매년 연말이면 우라 나라 텔레비젼 방송이 그해 가장 활동적이었고, 히트곡을 많이 낸 가수에게 상을 줍니다. 그 상을 너무나 많이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그 상을 받지 않겠다고 겸손해야 했던 가수 조용필.
어떤 신문에서 제가 우리 나라 권투 선수가 세계를 재패했을 때 쓴 기사를 봤습니다. 일컬어서 작은 거인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권투 선수의 몸의 크기가 아마도 조용필큼만 했을까요?
그 작은 몸으로 세계를 정복하니까 작은 거인 소리를 듣더라구요.
근데 조용필은 작은 거인이 아닙니다. 진짜 거인입니다. 몸의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앞으로 뭘 더 줄 것인가, 이것이 결정을 하는 일이라면 조용필은 분명히 거인입니다. 가수 조용필이 그동안 취입한 이름 있는 노래만 130여곡이 됩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아! 이 노래는 조용필이다'이렇게 느낄 수 있는 히트한 노래가 30여곡이 됩니다.
근데 오늘 여러분은 15곡을 들으시게 됩니다. 그런데 앞으로 두 곡이 더 남았습니다만은, 이 노래를 들으시고 여러분들은 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안돼요~!" 라고 관중석에서 소리 지름) 그러니깐... 안돼요?... 그러면 더 듣고 싶으시면은 인정사정없이 박수를 치십시오... 용필이 오빠! 몇 곡 더 하세요.
오늘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민족지 조선일보가 이미자 노래 30년에 이어서 남자 가수로써 조용필의 노래 25년을 샀습니다.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25주년 콘서트를 이곳에서 가졌습니다.
어제와 오늘, 양일간 조용필을 정말 아끼고 사랑해 주신 손님 여러분, 팬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앞으로 조용필이 25년 후에 50주년이 되었을 때 어떤 노래를 우리에게 줄 것인가, 자못 궁금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여기서 작별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물러갑니다. 여러분 계속해서 조용필의 노래를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슬픈 베아트리체>
<친구여>
<한오백년/간양록>
<언체인드 멜로디>
<비련>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정>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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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30주년이라는 걸 생각했다.
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들 솔직히 참 많이 불안해 했었다. 몇 년 안으로 오빠가 몬 용단^^을 내릴 것만 같아서, 그래서 한 공연, 한 공연이 너무 소중해서 그땐 그렇게 악착같이 보러 다녔다. 오빠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오빠같은 예가 없었기 때문에 오는 불안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가끔 선화언니나 혜진이 언니하고 오빠 환갑잔치 얘기를 하곤 한다. 한복 입고 오빠 앞에서 재롱잔치 벌이는 우리 모습을 상상하면서 참 많이 웃곤 한다.
이젠 더 이상 그런 예가 없었기 때문에... 라는 말로 불안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겁없이 울 오빠 언제 은퇴하지?... 그런 말도 함서 까르르... 실없이 함 웃어본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는 오빠 팬인 언니 하나는 요즘 나만 보면, 너 오빠 안 좋아하잖아... 하고, 잔소리처럼 말한다.
하기사, 난 요즘 계상이의 귀여움에 티비 앞에 붙어 있고, 유승준의 섹쉬함^--^에 정신을 잃우며, 키무라 타꾸야라는 일본 배우가 너무 보고 잡아서 일본쪽 하늘을 바라봄서 눈물 짓는다. 크하하... 그래 놓고는 얄밉게도 오빠 얘기 할땐 오빨 씹기만^--^ 한다.
어떤 언니가 저번에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 오빠를 좋아했던 맘을 색깔로 말하자면 핑크빛 동화속 왕자님에 대한 동경같은 거 였다고.
근데 요즘 오빠에 대한 맘을 색깔로 말하자면 물색같다고.
아무 색 없는 것 같지만 어느 색 못지 않게 맑고 투명한 그 색깔...
난 그 말이 넘 공감되고, 좋아서 함씩 요즘도 되새겨 보고, 말해보곤 한다.
난 내 식의 그 물색 사랑을 하고 있다.
그냥 가수, 연예인에 이 무슨 사치에 오버냐고 그렇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거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냥...같이 한 세월이라는 게, 시간이라는 게 이런 맘을 만들기도 하더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것에 대해 오빠가 친정집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 또한 시집은 안 가봐서 친정집이라는 느낌이 어떤건지는 잘은 몰겠지만^^ 막연하게 내가 오빠에 대해 느끼는 그 느낌이 그 친정집이라는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옛날엔 오빠 팬들끼리는 팬들을 <우리 팬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애들>이라고 그랬다.
오빠부터가 그랬다.
우리 애들이 어쩌고... 우리 애들 어디 갔냐... 우리 애들...
팬 여러분들... 하면서, 손 곱게 흔들어 주는 게 아니라, 이 자식들... 이쌔 끼들... 집에 안가?... 밥 먹었어?... 여름에도 안 추워?... 하고 소리 지르기 바빴던 오빠였다.
난 그게 참말로 정말로 좋았다.
내가 다정한 말 한마디보다 욕 들으면 더 좋아하는 건(위에 말도 엄연히 욕이니까..^^) 이때부터 생긴 빙(병의 경사도 버전^^)이지 싶당...크하하..
참 좋다...
참 좋은 거다. 이런 건.
그땐 찌지고, 뽁고.... 참 많이도 싸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것도 웃기고 재밌고 좋아진다.
그 사람들...참 그립기도 하고, 좀 더 잘 지낼걸... 후회라는 걸 하면서 아쉬워 하기도 한다.
그람서...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겠다... 그런 기특한^^ 생각도 해본다.
나중에 후회말고, 다들 잘해 주세염. 쪽지 하나씩이라도 더 날리주고^^
나중엔 다들 분명 그리워질테니까.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난 <바람의 노래> 중에서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하고, 아직도 들을 때마다 뭔가 징~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이런 류의 얘기들 할 때마다 그 노래가 그렇게 듣고 싶어진다.
앙~ <바람의 노래>나 들으러 가야쥣..쥣..쥣...
^^
◎◎
감동받아서 퍼다 올립니다!!
[추억속의 재회]93년 세종문화회관 공연....^-^
◎◎
계절도 바뀌고.... 옷 정리도 하면서 이것저것 뒤적거리다가 글 하나를 봤다..
25주년 기념... 93년 세종문화회관 공연...
10월 5일, 6일 이틀이었는데, 이때 표 값이 5만원이었다. 당시 정말 상당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허허.
하기사... 요즘 가수들은 이제 5만원이니까...
난 6일...그것도 운이 좋아 중간고사 마지막 날이라서 빨리 학교가 끝나서 그나마 그 공연을 볼 수 있었다.(이땐 난 고딩이었당...곱드랬쥐여~연변버전임다...크하하하)
<90 추억속의 재회> 공연하고 같이 내가 절대 못 잊는 공연 중에 하나고, 못 봤더라면 두고 두고 후회했을 공연이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그때의 잔잔한 그 감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다... 크크... 정말 그땐 공연이 말 그대로 감동적이었다. ^^
대중 가수들한테 담이 넘 높았던 세종문화회관에서 오케 반주가 아니라, 자신의 밴드 데리고 무대선 것도 그랬고, 25주년이라는 숫자가 그랬고, 오빠 노래가 그랬고, 오빠의 눈물이 그랬다.
그 전에 이미자, 패티김이 공연을 했지만, 다 점잖은 분들 공연이었는지라... 오빠가 공연을 하고, 우리가 거기서 뒤집음으로 인해서 안 그래도 문 잘 안 열어주는 세종이 아예 세콤^^까지 걸어버릴까...크하하하...오빠나 우리 팬들이나 공연 전부터 참 많이도 조심스러워 했고, 공연 당일 세종 직원들의 그 딱딱했던 태도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그에 비하면 예전 직원들은 양반에 양반이다. 이번에 가문 손이나 함 꼬오옥~ 잡아주고 와야겠당. 으하하^^)
그래서 공연 초반엔 팬들이 다 경직되어서 박수만 치는...완죤 가요무대-,- 분위기로 갔었는데, <모나리자>에서 희선이 아저씨, 태윤이 아저씨와 함께 갑자기 동시에 쓰러졌다 다시 일어서는 당시엔 정말 쇼킹하고, 파격적인-,- 연출에 다들 술렁이기 시작했고(다들 오빠 멋지다고 자지러지던 이때도 선화언니는 간 크게도 멋있긴 한데 왜 이렇게 웃음이 나는지 모르겠다고...까르르...그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면서 숨이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이 웃었다-.-;; 언젠간 <선화언니의 간 큰 팬 시리즈>를 함 올려봐야 겠당...크하하하)... <비련>에서 완죤히 뒤집어 버렸다.
<비련> 반주가 나오는데...이때까지만도 아직 경직된 분위기가 완전히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예의 그 팬들의 <오빠~~!!!> 하는 소리를 질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우린 그 반주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도 술렁술렁, 갈팡질팡 거렸는데....흐흐....<기도하는~!>...이 부분이 나오자, 그냥 자동...오도매릭^^으로 <오빠~!!!> 하는 소리가 나와버렸고....이왕 지른 거 에라 모르겠다....싶어 무너지기 시작....오빠도 은근히 우리 그러기를 기대^^했던건지....아무 제지도 않고, 가끔 은근히 충동질도 함서....게다가 레파토리도 하나 같이 우릴 충동질^^ 시키는 것만 부르고 그러셨다.
언젠간 오빠한테 함 물어보리라.... 그때 정말 우리가 소리 지르지 않고 조용히 노래 듣기를... 진정 그리 원하셨던건지....(허준 라스트신 버전....크하하하)
지금 들으면 공연 하나에 몬 첩보전도 아니고, 왠 오버냐...할지도 몰겠지만....당시 사회 분위기^^라는 게 정말 이랬다.
마지막 <꿈> 과 함께 오빠 눈물에 팬들도 다 엉엉 울고....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 다 나가고, 무대엔 커튼이 쳐지고, 스포트 라이트 하나가 커튼 밖으로 나와 서 있던 마이크 대를 비추고 있었는데.... 팬들 하나 같이 나갈 생각은 안하고 여기 한웅큼^^ 저기 한 웅큼... 그 주위에 모여 서서.... <그대여> 부르고, <서울 서울 서울>...부르면서....<오빠~~!!> 하고 소리 지르던 모습도 또 하나의 감동이었다.
아...그때 생각이 새록새록 갑자기 왜 이렇게 나나. 그 공연이 이 맘때였기 때문에 그런가. 캬캬
그때 나이가 고딩 2였다.
아~~~~~~~~~~~~~~증말 증말 곱디 고운 나이였당....허허..-,-
그땐 정말 오빠 그 <음....> 하는 소리 하나 안 놓치고 싶을 때라서(크크...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상상이 어렵겠지만....나도 내가 그랬나 싶다...크하하하....^0^;;;) 그때 현장에서 녹음한 걸 듣고 또 듣는 것만도 모자라, 그대로 토하나 빠뜨리지 않고 받아 적어 놨었다. 햐햐. (이건 살랑이 아니라 집착인디...크하하하^--^;;)
그 귀한 테잎...어디 뒀는지....고마 잃어뿌고...흐흐...오늘 우연히 그걸 받아 적어 놓은 걸 발견했다.
그 공연 못 보신 분들은 그때 공연이 이러했다는 걸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갔던 사람들은 나처럼 쭉 읽어감서 그때 공연 되씹어 감서 추억이라는 거에 함 젖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 들어 올림다.
저 이뿐 짓^^한 거 맞쑴까? 크하하^^
이건 일탄이구여...나머지는 쫌 있다 다시 올릴게염...
말 그래도 있는 그대로 받아 적은 거기 땜에... 동문서답에 조사 안 맞고....하는 내용이 있기도 할검다. 울 오빠 그 동문서답은 옛날부터 유명했잖아염...크하하".";]
그래도 그땐 그것도 그렇게 이뿝띠다..
으하하하하하*_*'
궁시렁,,,> 요즘 내가 왜 이러쥐....크하하하^--^;;;;
◎◎
●●
<창밖의 여자>
<돌아와요 부산항에>
건(김동건): 오륙도를 돌아 연락선을 타고 부산항에 상륙한 나이가 19세, 그후 허공을 찌르는 듯한 인기는 가히 국민 가수에 이르렀습니다. 이 가수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어떻게 저렇게 몸 전체로 노래할 수 있을까, 저러다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그것이 바로 조용필입니다. 우리 나라에 여동생을 가장 많이 가진 남자, 수많은 여성의 오빠, 그렇기에 절대 늙을 수 없는 남자, 국민의 가수, 언제 들어도 가까운 이름, 여러분의 가수 조용필입니다(앞부분이 녹음이 안돼서 잡지에 실렸던 거 요약부분만..)
<그 겨울의 찻집>
<바람이 전하는 말>
<꽃바람>
<어제 오늘 그리고>
<모나리자>
필: 대단히 감사합니다.
세월이 참 빠르다는 걸 항상 느끼지만 어제와 오늘처럼 이렇게 빨리... 빠르다는 것을 느낀 것은 아마 지금까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전에 사회를 맡으신 김동건씨께서 꽃피는 동백섬에 제가 와서 허공을 찌르는 듯한 인기를 얻었다는 대목을 제가 들었습니다만, 순간적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너무 과분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오늘 저의 25주년을 기념하는 이 콘서트에 여러분 찾아 주신 것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에 다시, 제가 평소에 가장 존경하고 형님 같고, 또 형 같고 때로는 친구 같은 분을 소개하겠습니다. 김동건씨~!
(김동건 등장)
건: 여러분 다시 한번 많은 박수를 부탁 드리겠습니다. - - -
여러분 들으셨습니까? 지금 조용필군이 저를 존경한다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오늘 조용필군, 이 콘서트에 와주신 여러분들은 정말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여기 오시기를 참 잘했다는 느낌을 받고 돌아 가실겁니다.
제가 지금부터 조용필군의 노래 이외의 모든 것을 짧은 시간에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제가 조용필군과 약속을 하나 하겠습니다.
평소에 방송이라던가 신문지상, 또 잡지를 통해서 많은 인터뷰를 했는데 그때는 어디까지나 인기 스타 조용필, 노래하는 가수 조용필의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근데 오늘은 25주년이고, 콘서트고, 독무대니까 노래는 말할 것도 없지만은 얘기라도 평소에 못들은 얘기, 정말 조용필이 어떤 인간성을 가지고 있고, 어떤 가수인가를 알 수 있는 얘기를 나눴으면 싶은데, 뭘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필: 근데요, 전 좀 더듬는 편이거든요. 잘 전달될지... 뭘 물어 보시면 대답할게요.
건: 말까지 잘하면 안되죠. 말을 좀 더듬는 듯 해야 진실성이 있어 보입니다. 우리 같이 이렇게 막 줄줄줄 하면은요, 아주 진실성이 없어 보일 수가 있어요. 근깐 좀 계속 더듬으세요.
필: 예.(웃음)
건: 지금 몇살이십니까?
필: 뭐, 그렇게 많이 먹지도 않았는데요.
건: 노래한지 25년이 되었죠?
필: 예. 아주 일찍 시작했습니다.
건: 10살에 시작했다 그러면...
필: 뭐 그 정도....녜? (웃음)...글쎄요...마흔이 넘었습니다.
건: 마흔 몇 살?
필: 만으로 얘기할게요. 우리 나이는 한 살 더 먹었으니까(웃음)...셋입니다.
건: 마흔 셋! 서른 세 살을 거꾸로 잘 못 얘기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조용필씨가 마흔 셋이라고 지금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중학생이면 딸처럼 되겠죠? 근데 중학생이 오빠라는데 있어 할말이 없잖습니까! 영원한 오빱니다. 정말
그리고 수많은 여학생들, 여성들이 말이죠, "오빠~!오빠~!" 그럴 때 기분이 어때요?
필: 한 5년, 6년까지만 해도 그냥 항상 그렇게 부르니까 별 느낌이 없었는데, 마흔이라는 나이가 딱 들어서면서 오빠라고 그러니까, 저쪽에서 "오빠~!"그러면 쳐다보게 되요.
건: 주위 사람 없는가 해서?
필: 괜히 창피하기도 하고... 야.. 내가 지금 아저씨인데... 그렇다고 "아저씨~!"그러면 "응?..."...(웃음)
건: 기분 나쁘죠?
필: 아니, 기분이 나쁜 거보다 좀 생소해요.
건: 내가 보기엔 조용필씨는 70이라도 오빠라고 그럴 겁니다. 이거 믿어주세요.
근데 혼자 살잖아요?
필: 둘이 살죠.
건: 누구랑?
필: 제 동생이랑.
건: 동생이?
필: 여동생요.
건: 여동생말고. 여동생은 몇 백만명 있잖아요. 그거 말고, 장가를 안 갔단 말이에요.
필: 갔다왔죠.
건: 갔다 온 후에 안 갔다 이거에요.
필: 돌아온 총각이라고 그래요(웃음) 저는 이런 질문... 이거 방송에서 안 한다 했던 거 아니에요?
건: 그럼 이 자리에선 해도 괜찮단 말이에요.
필: 저는 반반인 것 같아요.
건: 반반이라는 건.. 가고 싶기도 하고, 가고 싶지 않기도 하고?
필: 예.
건: 어떤 때 가고 싶어요? 그럼?
필: 꼭 가고 싶다고 그러면은... 일 늦게 끝나고... 제 동생이 뭐 볼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나갈 때도 있기 때문에, 어디 갔다 저녁 늦게 들어갈 때 아무도 없을 때....
건: 집안이 비었을 때?
필: 예. 그럴 때는 그런 생각이 많이 듭니다.
건: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죠?
필: 예. (웃음)
건: 그리고 또 어떤 때 장가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합니까?
필: 그러니까 그럴 때...
건: 그리고 친구들, 예를 들어서 만나 보면 부인 있고 애기들 있고, 그런 거 보면 어때요?
필: 좀 부족하죠... 그러니까 저는 자꾸 팔자로 돌리거든요.(웃음) 너는 그냥 음악만 하고 딴 건 다 집어 쳐라, 이런... 자꾸 생각을 하기 때문에 친구들 보면 너무 너무 좀 부럽고...
또 옛날에 제가 많은 고무신을 외국에서 사온 적이 있어요. 제가 쇼핑 나갔다가 너무 너무 이쁜 게 있어 가지고 그걸 사가지고 와서는... 요즘은 없앴습니다. 자꾸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요.
건: 그러면 장가를 가고 싶지 않을 떄는 어떤 때에요? 장가를 가서 뭐하냐, 안 가겠다고 그럴 때...
필: 글쎄요, 여러분이 들으시면 오해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근데 저는 음악을 10대서부터 40대까지 하고 있는데... 사실 제가 너무 편안하고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그러면 지금까지 살아온 음악의 길이 너무 파괴될 것 같다, 또는 행복해졌기 때문에 그 음악이 심취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그런 불안감이 있어요. 저는. 근깐 난 그냥 음악이나 하고 사는 것이... 또 외로운 것도 멋이지 않겠는가, 외우려면 철저하게 외롭고, 고독하면 철저하게 고독하게 지내자는...
건: 근데 집에 들어가면 철저하게 외로울 때 어떻게 해요? 그러면 계속 더 외로워 지려고 그래요? 아니면 외로움을 뭘로 달래요?
필: 그럴 때는요... 술을 한잔 먹고 들어가서... 제 악기 세트가 있고, 저쪽에 자는 데고, 근데... 그냥... 술 안 먹고 들어 갈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문 잠그고 제가 평소에 안 듣던 제가 작곡한 노래, 또 마음에 드는 가사가 있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을 뭐... 소주 좀 갖다 놓고 마시면서 계속 들어요.
건: 여러 곡을 계속?
필: 아니, 한 곡만...
건: 한 곡만 계속, 밤새도록 그 한 곡만 들어요?
필: 그렇죠.
건: 왜 그렇게 들어요? 그 한 곡을?
필: 그러니까 아까 전에도 얘기했듯이 가사가 내가 주인공 같은 그런.... 근깐 좀 외로우면 야~ 외롭다 할 필요 없이 그냥 철저하게 외롭고 싶고... 뭐... 그러고 싶어요.
건: 좀 연구할 필요가 있어요. 이렇기 때문에 이런 노래가 나오지 않나 싶어요. 그렇죠?
자신이 부른 노래를, 오래전 것을 밤새도록 한 곡을 계속해서 듣노라니, 그거 웬만한 사람이 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가수가 그러겠습니까? 여러분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 - - 술 먹잖아요...
●●
다음 시간에 계속....-,-'
◎◎
이렇게 고독을 철저히 즐기겠단 오빠가 4개월 뒤 결혼을 발표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분해지지? 크하하하...
지금 오빠 옆에 진현 아줌마가 있어서 넘 다행이다. 새삼 그런 생각이 든다.
◎◎
●●
건: 술 먹잖아요...
필: 옛날에는 제가 최고 기록이... 저희 선배님하고 둘이서 좀 따질 게 있어 가지고 먹었는데... 어렸을 때 먹었는데, 소주 12병에다가 맥주 12병을 먹었는 적이 있어요.
건: 열 둘이라는 숫자를 좋아해요?(웃음)
필: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어요.
건: 그리고 어떤 일이 벌어졌는데요? 괜찮았어요?
필: 저희 선배는 경찰서에 잡혀 들어가고, 전 도망갔거든요.(웃음) 그때 통행 금지가 있어 가지고...
건: 그리고 그동안 25년동안 정말... 참... 동백섬 이후로 허공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히트곡을 냈단 말이에요. 수입도 굉장히 많았을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남들이 어떻게 얘기하기를 "조용필이는 빈털털이다" 이렇게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필: 맞습니다.
건: 그렇다면 씀씀이가 그렇게 헤퍼요?
필: 전 씀씀이가 무지하게 헤픕니다. 저는 연예인 가운데서도 아마 액수로 따지면 저 이상 버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실 없을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웃음) 왜냐면 여기뿐만 아니라 외국서도 전부가 노래 한번 하면 그게 다 돈이기 때문에... (웃음) 또 무대도 제일 많이 했고... 근데 그 돈을 거의 삼분에 이 정도를 전부 음악에다 투자하고, 무대에다 투자하고 그럽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공연을 해도 제가 직접 프로모터까지 다해서 완벽이 될 때까지 노력하기 때문에 음악에 다 투자합니다. 그 나머지는 뭐, 솔직히 집도 있고, 차도 좋은 차 타고 다니고... 또 저는 누구한테 얻어먹는 걸 참 싫어해요. 그래서 꼭 사주는 편인데...
건: 근데 왜 나한테는...
필: 제가 술 사가지고 집에 들어갔잖아요.
건: 나만 만나면 사달라고 그러잖아요.
필: ... 그래서... 저는 제가 음악을 뭐 돈 벌려고, 못 먹어서 제가 이쪽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집에서 쫓겨나면서까지 음악이 좋아서 나왔기 때문에 그런 거 하고는 연관을 안 시키고... 저는 누구보다도 버는 돈 다 쓰고 싶어하고, 이렇게 건전하게 살고 싶어요. 뭐 이렇게 째째하게 뭐... 근데 땅은 몇 개 샀거든요.(웃음) 아이 안 걸리려나 모르겠네.
건: 그럼 조세에 많이 나왔겠네.
필: 아니... 뭐... 근데 땅 얘기는... (웃으며 얼버무림)
건: 그럼 세무서에서 노래로 때워요. (웃음) ... 저... 나이트 클럽 웨이터 이름 중에 조용필이가 제일 많다는 거 알아요?
필: 많죠.(웃음)
건: 조용필이라는 웨이터를 만나본 적이 있어요?
필: 많이 만났죠.
건: 뭐라 그래요? 그 사람들이 만나 이름값을 받아본 적이 있어요? 이름을 빌려줬으니까...
필: 없죠. 이름값 먹는 사람, 엉뚱하게 딴 사람이 먹더라구요. 그게요, 제가 알아보니까 나이트 클럽 웨이타가 조용필을 쓰는 조건으로 무슨 금이래나.... 무슨 보증금인가, 이름 사용하는 금을, 그걸 지배인을 줘야 된대요. 그걸 날 줘야 되는데... (윳음)
건: 그게 다 고통 분담이고, 부의 재분배니까 너무 그렇게 그런 것까지 챙겨서야 되겠어요? 근데 그 조용필이라는 웨이타를 만났을 때 뭐라 그래요?
필: 제가 만난 것도 이상하게 만났는데, 화장실을 가가지고요... 남자들은 서서 하지 않습니까? (웃음)
건: 아~! 남자던가? (웃음)
필: 예. (웃음) ... 이렇게 절차가 있지 않습니까? 그걸 끝내놓고...
건: 절차라니, 무슨 절차?
필:.... 내리고, 꺼내고... (웃음)... 그거하고, 앞을 보니까요...
건: 잠깐만요, (앞쪽으로 끌어 당기며) 지금 한번 해봐요.
필: (뒤로 물러서 버림)... 앞에 제 이름이 딱 나와요. 그래서 어, 공연도 안 하는데 이런 게 붙었냐 그랬는데, 딱 보니까 모 나이트 클럽 16번 웨이타 조용필, 오면 끝내 줍니다... 이렇게 써 있더라구요.
그리고 나서... (웃음)... 뭐 많다고 방송하니까... 그 옆에 커피숍에 들어갔는데, 전화를 받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툭툭 치면서 껌하고 명함을 하나 주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봤더니 또 내 이름이에요. 보니까 그 사람이 웨이타에요. 그래서 놀래 가지도 도망가더라구요. 그래서 껌 하나 얻어먹었어요.
건: 앞으로 이 가수 생활은 내가 보기에는 조선일보사와 인터뷰를 한 기사를 봤습니다만, 70이 되도록 노래를 하겠다, 그랬단 말이에요.
필: 예. 저는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죠.
건: 불란서의 유명한 모리스 슈발리에라는 대중 가요를 부르는 국민적인 가수가 이른 두 살에 은퇴 공연을 했다고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 조용필군은 90살까지는 노래를 하고, 그때까지도 오빠 소리를 들을 거에요.
그럼 끝으로 한가지만 더 물어 봅시다. 지금 이 순간 가장 큰 소원이 있다면 어떤 거에요?
필: 저는 가수의 마지막은 조금 전에 형님께서 말씀하셨지만, 가수는 무대가 가장 중요하다고... 그래서 장기 공연을 하고 싶습니다.
건: 장기 공연요? 언제 부터요?
필: 내년부터요. 꼭 할 예정입니다.
건: 그거는 음악이고, 음악적인 소원 말고, 그냥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소원은?
필: 요즘 연습하고, 여러 가지 준비 때문에 운동도 못하고 그랬는데, 전번에 갔다 오니까 엉망이더라구요. 볼이나 잘 맞았으면 좋겠어요.
건: 무슨 볼? 무슨 운동해요?
필: 골프 치거든요. 그거나 잘 맞았으면 좋겠어요.
건: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가수도 꿈이라던가, 소원이라던가... 이렇게 소박합니다. 내가 잘 맞게 가르쳐 드릴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싱글 만들어 드릴게요. 여러분, 조용필군의 장기 공연도, 또 그 소박한 꿈, 골프도 잘 맞도록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조용필군과 보신 것처럼 언제나 같이 먹고, 같이 자고, 오늘도 이 자리에 나와서 정말 한 몸이 되어 가지고 연주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탄생'을 제가 한 사람 한 사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보시기에 오른 쪽에 있는 키보드에 김영길군을 소개합니다.
그 옆에 아주 귀공자입니다. 역시 키보드에 한정호군입니다.
리드 기타를 지금 연주하고 있는 최희선군을 소개합니다.
그 다음에 여러분이 보시기에 왼쪽 첫 번째 베이스 기타를 치고 있습니다. 이태윤군을 소개하겠습니다.
다음,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최태완군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드럼을 치는 소년, 임꺽정같이 생긴 김희현입니다.
(어깨 동무를 해서 趙容弼을 감싸 안고서) 용필아, 제 드러머 있잖아.
필: 예.
건: 내일부터 잘라버려. 용필이하고 맞먹을려고 막 이러면서, 박수를 너무 많이 받고 말이지...
필: 아니, 근데 제가 시킨거에요.
건: 그렇게 하라고 시킨거랍니다.
여러분 다시 한번 '위대한 탄생'에게 많은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시간 약속을 잘 안 지키는(웃음) 가수, 그리고 아주 헛점이 많고 허술하게 보이고, 그리고 약하게 보이지만은 마이크만 잡으면 그 누구도 대결할 수 없는 가수입니다. 우리 조용필군이 오늘은 특별히 이 자리에 각계 원로 분들이 많이 오셨다는 얘기를 듣고, '황성옛터'와 '대전 블루스'를 보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박수로 맞아주시면 대단히 고맙겠습니다.
<황성옛터, 대전 블루스,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단발머리>
<여행을 떠나요>
건: 매년 연말이면 우라 나라 텔레비젼 방송이 그해 가장 활동적이었고, 히트곡을 많이 낸 가수에게 상을 줍니다. 그 상을 너무나 많이 받았기 때문에 스스로 그 상을 받지 않겠다고 겸손해야 했던 가수 조용필.
어떤 신문에서 제가 우리 나라 권투 선수가 세계를 재패했을 때 쓴 기사를 봤습니다. 일컬어서 작은 거인이라고 그랬습니다. 그 권투 선수의 몸의 크기가 아마도 조용필큼만 했을까요?
그 작은 몸으로 세계를 정복하니까 작은 거인 소리를 듣더라구요.
근데 조용필은 작은 거인이 아닙니다. 진짜 거인입니다. 몸의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고, 우리에게 어떻게 비추어지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었는가, 그리고 그 사람이 앞으로 뭘 더 줄 것인가, 이것이 결정을 하는 일이라면 조용필은 분명히 거인입니다. 가수 조용필이 그동안 취입한 이름 있는 노래만 130여곡이 됩니다. 그 중에서 우리가 '아! 이 노래는 조용필이다'이렇게 느낄 수 있는 히트한 노래가 30여곡이 됩니다.
근데 오늘 여러분은 15곡을 들으시게 됩니다. 그런데 앞으로 두 곡이 더 남았습니다만은, 이 노래를 들으시고 여러분들은 댁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안돼요~!" 라고 관중석에서 소리 지름) 그러니깐... 안돼요?... 그러면 더 듣고 싶으시면은 인정사정없이 박수를 치십시오... 용필이 오빠! 몇 곡 더 하세요.
오늘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민족지 조선일보가 이미자 노래 30년에 이어서 남자 가수로써 조용필의 노래 25년을 샀습니다.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25주년 콘서트를 이곳에서 가졌습니다.
어제와 오늘, 양일간 조용필을 정말 아끼고 사랑해 주신 손님 여러분, 팬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앞으로 조용필이 25년 후에 50주년이 되었을 때 어떤 노래를 우리에게 줄 것인가, 자못 궁금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여기서 작별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물러갑니다. 여러분 계속해서 조용필의 노래를 박수로 맞아 주십시오.
<슬픈 베아트리체>
<친구여>
<한오백년/간양록>
<언체인드 멜로디>
<비련>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정>
<그대 발길이 머무는 곳에>
<꿈>
●●
◎◎
이 공연이 끝나고 우리는 30주년이라는 걸 생각했다.
하겠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다들 솔직히 참 많이 불안해 했었다. 몇 년 안으로 오빠가 몬 용단^^을 내릴 것만 같아서, 그래서 한 공연, 한 공연이 너무 소중해서 그땐 그렇게 악착같이 보러 다녔다. 오빠를 못 믿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오빠같은 예가 없었기 때문에 오는 불안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가끔 선화언니나 혜진이 언니하고 오빠 환갑잔치 얘기를 하곤 한다. 한복 입고 오빠 앞에서 재롱잔치 벌이는 우리 모습을 상상하면서 참 많이 웃곤 한다.
이젠 더 이상 그런 예가 없었기 때문에... 라는 말로 불안해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겁없이 울 오빠 언제 은퇴하지?... 그런 말도 함서 까르르... 실없이 함 웃어본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는 오빠 팬인 언니 하나는 요즘 나만 보면, 너 오빠 안 좋아하잖아... 하고, 잔소리처럼 말한다.
하기사, 난 요즘 계상이의 귀여움에 티비 앞에 붙어 있고, 유승준의 섹쉬함^--^에 정신을 잃우며, 키무라 타꾸야라는 일본 배우가 너무 보고 잡아서 일본쪽 하늘을 바라봄서 눈물 짓는다. 크하하... 그래 놓고는 얄밉게도 오빠 얘기 할땐 오빨 씹기만^--^ 한다.
어떤 언니가 저번에 한번은 이런 말을 했다.
옛날에 오빠를 좋아했던 맘을 색깔로 말하자면 핑크빛 동화속 왕자님에 대한 동경같은 거 였다고.
근데 요즘 오빠에 대한 맘을 색깔로 말하자면 물색같다고.
아무 색 없는 것 같지만 어느 색 못지 않게 맑고 투명한 그 색깔...
난 그 말이 넘 공감되고, 좋아서 함씩 요즘도 되새겨 보고, 말해보곤 한다.
난 내 식의 그 물색 사랑을 하고 있다.
그냥 가수, 연예인에 이 무슨 사치에 오버냐고 그렇게 생각할 사람도 있을거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냥...같이 한 세월이라는 게, 시간이라는 게 이런 맘을 만들기도 하더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것에 대해 오빠가 친정집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 또한 시집은 안 가봐서 친정집이라는 느낌이 어떤건지는 잘은 몰겠지만^^ 막연하게 내가 오빠에 대해 느끼는 그 느낌이 그 친정집이라는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옛날엔 오빠 팬들끼리는 팬들을 <우리 팬들>이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 애들>이라고 그랬다.
오빠부터가 그랬다.
우리 애들이 어쩌고... 우리 애들 어디 갔냐... 우리 애들...
팬 여러분들... 하면서, 손 곱게 흔들어 주는 게 아니라, 이 자식들... 이쌔 끼들... 집에 안가?... 밥 먹었어?... 여름에도 안 추워?... 하고 소리 지르기 바빴던 오빠였다.
난 그게 참말로 정말로 좋았다.
내가 다정한 말 한마디보다 욕 들으면 더 좋아하는 건(위에 말도 엄연히 욕이니까..^^) 이때부터 생긴 빙(병의 경사도 버전^^)이지 싶당...크하하..
참 좋다...
참 좋은 거다. 이런 건.
그땐 찌지고, 뽁고.... 참 많이도 싸우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것도 웃기고 재밌고 좋아진다.
그 사람들...참 그립기도 하고, 좀 더 잘 지낼걸... 후회라는 걸 하면서 아쉬워 하기도 한다.
그람서...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야 겠다... 그런 기특한^^ 생각도 해본다.
나중에 후회말고, 다들 잘해 주세염. 쪽지 하나씩이라도 더 날리주고^^
나중엔 다들 분명 그리워질테니까.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난 <바람의 노래> 중에서 이 부분을 제일 좋아하고, 아직도 들을 때마다 뭔가 징~해지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이런 류의 얘기들 할 때마다 그 노래가 그렇게 듣고 싶어진다.
앙~ <바람의 노래>나 들으러 가야쥣..쥣..쥣...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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