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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쇼’를 워낙 좋아한 나에게 어머니는 구경을 좋아하면 가난하게 산다고 핀잔을 주곤 하셨다.
월드컵이라는 세계적 행사에 참여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쇼’에 혹해서 가게 된 전야제였다.
우리 축구팀이 유럽 강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면서 갑자기 달아오른 월드컵 열기에 휩싸이기는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첫눈에 인상적인 것은 무대 위로 옮겨놓은 숲이었다. 1
500그루의 대나무는 입체적인 조명 아래서 아름답게 변신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 앞 교향악단의 모습은 마치 녹음이 짙은 숲속에서 전원 음악회를 여는 것 같았다.
천(天) 지(地) 인(人)이 어우러지는 환희의 춤이 펼쳐질 때는 붉은 조명이 불타는 숲을 만들어 한층 역동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나뭇잎 하나하나 그 커팅을 보면 자연만큼 세련된 것은 없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 자연이 고스란히 무대 위로 옮겨져온 것이다.
5월 말의 저녁 바람에 잎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흔들리고, 그것이 조명에 따라 환상적인 나무 그림자를 드리우는 무대.
초대받은 손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니세프가 초청한 세계 각국의 소년 소녀들, 평화의 공을 던질 007 요원 로저 무어, 그리고 역대 월드컵 스타들. 베켄바우어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들의 전성기 경기를 기억하는 나에게는 짧은 감회가 왔다. 내가 젊었던 시절 월드컵은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구경거리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주최국이 되었으니 말이다.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평화의 시를 낭독했다. 남한은 북한을 가난한 친척으로 여겨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는 그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평화의 메시지가 전달된 뒤 11마리 평화의 전자 새가 날려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전야제의 총감독 표재순씨가 밝혔듯 이 축제의 테마는 ‘어깨동무’이다. 월드컵 대회를 스포츠 정신과 인류애가 넘치는 평화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무대 아래에 반대편 그라운드를 향해 뻗은 길이 생겨나면서 시작되었다. 그 길을 따라 현대적 패션쇼가 벌어지며 그 뒤를 삼국시대부터 조선 때까지의 화려한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140여명의 모델이 뒤따랐다.
그들이 남북을 상징하는 장벽 앞까지 걸어나갔을 때 갑자기 장벽이 열리면서 반대편 무대가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1002명의 합창단과 800명의 응원단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조용필과 조수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꿈의 아리랑’이 합창되는 가운데 축구공을 이용한 현란한 응원이 펼쳐지고 밤하늘로 쏘아올려지는 피날레 로켓과 분수 불꽃들….
그러나 전야제는 축제로 향하는 문을 화려하게 열어젖혔다.
1999년 마지막 날, 그날도 나는 광화문에서 ‘쇼’를 보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밀레니엄 쇼와 비교할 때 불만스러웠던 게 나뿐이었겠는가. 한데 우리 축구팀의 기량이 그렇듯이 쇼 기량도 단시일 안에 향상된 걸까.
지금의 내 느낌이 쇼 구경꾼의 전문성을 벗어난, 평소 내가 그토록 경계하던 단일민족적 애국적 소행(?)에서 나온 게 아니기를.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내 입에 멎은 한 마디는 이 말이다.
한국인은 참 재미있는 민족이야.
오, 필승 코리아!
월드컵이라는 세계적 행사에 참여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쇼’에 혹해서 가게 된 전야제였다.
우리 축구팀이 유럽 강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면서 갑자기 달아오른 월드컵 열기에 휩싸이기는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첫눈에 인상적인 것은 무대 위로 옮겨놓은 숲이었다. 1
500그루의 대나무는 입체적인 조명 아래서 아름답게 변신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 앞 교향악단의 모습은 마치 녹음이 짙은 숲속에서 전원 음악회를 여는 것 같았다.
천(天) 지(地) 인(人)이 어우러지는 환희의 춤이 펼쳐질 때는 붉은 조명이 불타는 숲을 만들어 한층 역동적인 기운을 내뿜었다.
나뭇잎 하나하나 그 커팅을 보면 자연만큼 세련된 것은 없음을 깨닫게 되는데, 그 자연이 고스란히 무대 위로 옮겨져온 것이다.
5월 말의 저녁 바람에 잎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흔들리고, 그것이 조명에 따라 환상적인 나무 그림자를 드리우는 무대.
초대받은 손님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유니세프가 초청한 세계 각국의 소년 소녀들, 평화의 공을 던질 007 요원 로저 무어, 그리고 역대 월드컵 스타들. 베켄바우어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들의 전성기 경기를 기억하는 나에게는 짧은 감회가 왔다. 내가 젊었던 시절 월드컵은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구경거리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주최국이 되었으니 말이다. ‘양철북’의 작가 귄터 그라스가 평화의 시를 낭독했다. 남한은 북한을 가난한 친척으로 여겨 마음에 상처를 주지 말고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무조건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는 그의 인터뷰 기사가 생각났다. 평화의 메시지가 전달된 뒤 11마리 평화의 전자 새가 날려져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전야제의 총감독 표재순씨가 밝혔듯 이 축제의 테마는 ‘어깨동무’이다. 월드컵 대회를 스포츠 정신과 인류애가 넘치는 평화의 장으로 만들기 위해 마련한 이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무대 아래에 반대편 그라운드를 향해 뻗은 길이 생겨나면서 시작되었다. 그 길을 따라 현대적 패션쇼가 벌어지며 그 뒤를 삼국시대부터 조선 때까지의 화려한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140여명의 모델이 뒤따랐다.
그들이 남북을 상징하는 장벽 앞까지 걸어나갔을 때 갑자기 장벽이 열리면서 반대편 무대가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1002명의 합창단과 800명의 응원단들, 국민의 사랑을 받는 조용필과 조수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꿈의 아리랑’이 합창되는 가운데 축구공을 이용한 현란한 응원이 펼쳐지고 밤하늘로 쏘아올려지는 피날레 로켓과 분수 불꽃들….
그러나 전야제는 축제로 향하는 문을 화려하게 열어젖혔다.
1999년 마지막 날, 그날도 나는 광화문에서 ‘쇼’를 보고 있었다.
세계 각국의 밀레니엄 쇼와 비교할 때 불만스러웠던 게 나뿐이었겠는가. 한데 우리 축구팀의 기량이 그렇듯이 쇼 기량도 단시일 안에 향상된 걸까.
지금의 내 느낌이 쇼 구경꾼의 전문성을 벗어난, 평소 내가 그토록 경계하던 단일민족적 애국적 소행(?)에서 나온 게 아니기를.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내 입에 멎은 한 마디는 이 말이다.
한국인은 참 재미있는 민족이야.
오, 필승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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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
2002-06-01 22:3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