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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가 교과서에 실렸습니다.
실생활과 연계를 강조하는 ‘제7차 교육과정’에 따라
교학사가 낸 고교 교과서 ‘음악과 생활’에 6곡이 실렸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꾸며’,
한국 첫 대중가요로 꼽히는 윤심덕의 ‘사死의 찬미’,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 버들피리의 ‘눈이 큰 아이’,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해바라기의 ‘사랑으로’ 등입니다.
기지촌과 밤무대를 전전하면서 7년 여의 길고 긴 무명 시절을 겪었던 조용필.
기지촌 클럽을 하루 6군데씩 옮겨다니면서 100곡 가까운 노래를 불러야 했던
무명가수 조용필. 그에게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그 지긋지긋했던 가난과 설움에서 건져준 출세작이었습니다.
작곡가 황선우 씨가 첫사랑에 상처받고 만든 노래를
조용필이 ‘리어카용(길거리 판매용)’으로 불렀던 것인데(1973),
조총련계의 ‘재일동포 고향방문단’이 쏟아져 들어온 때여서 방송국마다 방송되었고,
특히 부산지역에서는 금세 음악다방의
단골 레퍼토리로 자리잡아서 대히트를 했습니다.
젊은층은 트로트 풍을 벗어난 세련된 리듬과 멜로디에 열광했고
하루 아침에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69년 무명 밴드 시절 기지촌에서 대마초를 피웠던
사실을 누군가가 투서를 하여 벼락이 떨어집니다.
원치 않는 ‘은퇴 쇼’를 끝내고 밤새 술을 마시면서 통곡했다고 합니다.
활동은 중단됐고, 출국 금지조치까지 당했습니다.
밑바닥에 떨어져 방황하던 시절,
우연히 TV를 통해 ‘한오백년’의 처연한 가락과 만났고,
이를 계기로 그는 목에 피가 맺히는 고통을 감수하면서 판소리를 익혔습니다.
결과 ‘천의 목소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가수로서 또 한 번의 ‘득음得音의 과정’을 거친 것입니다.
그리고 속죄하는 기분으로 군 위문공연을 발이 부르트도록 열심히 쫓아다녔습니다.
80년대 벽두 한국 가요사를 뒤바꾼 조용필의 화려한 재기야말로 고통의 산물이었습니다.
오늘의 요점 : 고난을 이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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