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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조용필(53)이 한줌 재가 된 아내를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조용필이 10일 오후 5시 20분 대한항공 094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지난 4일 (이하 한국 시간) 아내의 수술 경과가 좋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국했던 조용필은 화장한 아내 안진현 씨의 유골을 들고 엿새 만에 귀국했다.
아내와 함께 손 잡고 귀국하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된 채 침통한 표정으로 입국한 조용필은 아내의 유해를 안고 입국 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유골과 영정은 젊은 날을 함께 했던 그룹 ‘위대한 탄생’의 멤버들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준비된 차량을 타고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 성모병원으로 향한 조용필은 활짝 웃고 있는 아내의 영정 사진을 보며 눈물만 하염없이 쏟았다.
조용필은 오후 8시 15분께 빈소에 도착, 곧바로 기자회견을 했다. 이 날 빈소는 1000여 명의 조문객들로 붐볐다. 고인의 뜻을 기려 조의금은 받지 않았다.
11일 오전 발인해 경기도 화성군 가족묘지에 안 씨의 유골을 안치할 예정이다.
이경란 기자 ran@dailysports.co.kr
[연예뉴스]
입력시간 2003/01/11 00:03
[관련기사]
"아내 이상의 존재였다"
조용필 일문일답
조용필은 미국에서의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처제 등을 이끌고 근처 노래방에 갔다.
그리고 통곡하며 <그 겨울의 찻집> <산장의 여인> 등을 불렀다.
상 중인데도 불구하고 조용필이 노래방을 간 이유는 “아내와 살던 집에 도저히 못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탈날 정도로 조용필의 슬픔은 컸다.
”아내 이상의 존재”였다고 스스로 밝힌 그 아내를 조용필은 “함께 성묘 다니며 ‘여기가 당신 자리이고 여기는 내 자리’라고 했던 곳인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의 가족묘지”에 묻기로 했다. 아니 가슴에 묻기로 했다.
_심경은?
▲장래식 끝나고 안정을 되찾아야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현실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_새 앨범에 아내를 추모하기 위한 노래를 담을 것인가.
▲옛날부터 아내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세계 유명 가수들이 아내를 잃었을 때 불렀던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노래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올해가 아내와 만난 지 만 10년이 되는 해, 만 10년을 기념하는 노래를 지난 해부터 만들려 했다. 어떤 노래이건 아내를 기리는 노래가 들어 갈 것 같다.
_임종을 지켰나?
▲너무 심하게 울다 마지막 순간을 못 봤다.
_아내와 수술 후 죽기 전까지 나눴던 이야기는.
▲수술 직전까지 난 한국에서 공연 준비하면서 하루에 20번씩 전화를 했다. 수술이 잘 됐다는 얘기를 들어서 완쾌되면 둘이 2월에 여행을 가자고도 했다.
_안진현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처음 만났을 때 결혼 상대자라는 것을 서로 느꼈을 만큼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나와 너무 잘 맞았다. 나의 모든 걸 아내에게 맡겼다. 아내 이상의 존재였다.
_병은 얼마나 앓았나.
▲3년 조금 넘게 앓아왔고, 이번 수술 이전에도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그 때는 간단한 수술이었다. 그래서 이번 수술도 그다지 염려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를 죽음이 갈라 놓는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 생각했다.(조용필은 아내의 정확한 병명을 밝히길 꺼렸다.)
_앞으로 계획은.
▲2주일 뒤에 미국에 가서 아내의 사업을 정리할 것이다.
_아내와의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어려울 때 대해줬던 모습들이 모두 기억에 남는다.(이 대답을 하면서 눈물을 흘려 말을 잇지 못했다.)
이영준 redeye@dailysports.co.kr
입력시간 2003/01/11 00:01
조용필이 10일 오후 5시 20분 대한항공 094편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지난 4일 (이하 한국 시간) 아내의 수술 경과가 좋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출국했던 조용필은 화장한 아내 안진현 씨의 유골을 들고 엿새 만에 귀국했다.
아내와 함께 손 잡고 귀국하겠다는 꿈은 물거품이 된 채 침통한 표정으로 입국한 조용필은 아내의 유해를 안고 입국 게이트를 빠져 나왔다. 유골과 영정은 젊은 날을 함께 했던 그룹 ‘위대한 탄생’의 멤버들이 들었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미리 준비된 차량을 타고 빈소가 차려진 서울 강남 성모병원으로 향한 조용필은 활짝 웃고 있는 아내의 영정 사진을 보며 눈물만 하염없이 쏟았다.
조용필은 오후 8시 15분께 빈소에 도착, 곧바로 기자회견을 했다. 이 날 빈소는 1000여 명의 조문객들로 붐볐다. 고인의 뜻을 기려 조의금은 받지 않았다.
11일 오전 발인해 경기도 화성군 가족묘지에 안 씨의 유골을 안치할 예정이다.
이경란 기자 ran@dailysports.co.kr
[연예뉴스]
입력시간 2003/01/11 00:03
[관련기사]
"아내 이상의 존재였다"
조용필 일문일답
조용필은 미국에서의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처제 등을 이끌고 근처 노래방에 갔다.
그리고 통곡하며 <그 겨울의 찻집> <산장의 여인> 등을 불렀다.
상 중인데도 불구하고 조용필이 노래방을 간 이유는 “아내와 살던 집에 도저히 못들어갔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탈날 정도로 조용필의 슬픔은 컸다.
”아내 이상의 존재”였다고 스스로 밝힌 그 아내를 조용필은 “함께 성묘 다니며 ‘여기가 당신 자리이고 여기는 내 자리’라고 했던 곳인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의 가족묘지”에 묻기로 했다. 아니 가슴에 묻기로 했다.
_심경은?
▲장래식 끝나고 안정을 되찾아야 생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현실을 인정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다.
_새 앨범에 아내를 추모하기 위한 노래를 담을 것인가.
▲옛날부터 아내에 대한 노래를 만들고 싶었다. 세계 유명 가수들이 아내를 잃었을 때 불렀던 노래를 들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노래는 만들고 싶지 않았다. 올해가 아내와 만난 지 만 10년이 되는 해, 만 10년을 기념하는 노래를 지난 해부터 만들려 했다. 어떤 노래이건 아내를 기리는 노래가 들어 갈 것 같다.
_임종을 지켰나?
▲너무 심하게 울다 마지막 순간을 못 봤다.
_아내와 수술 후 죽기 전까지 나눴던 이야기는.
▲수술 직전까지 난 한국에서 공연 준비하면서 하루에 20번씩 전화를 했다. 수술이 잘 됐다는 얘기를 들어서 완쾌되면 둘이 2월에 여행을 가자고도 했다.
_안진현 씨는 어떤 사람이었나.
▲처음 만났을 때 결혼 상대자라는 것을 서로 느꼈을 만큼 운명적인 만남이었다. 나와 너무 잘 맞았다. 나의 모든 걸 아내에게 맡겼다. 아내 이상의 존재였다.
_병은 얼마나 앓았나.
▲3년 조금 넘게 앓아왔고, 이번 수술 이전에도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그 때는 간단한 수술이었다. 그래서 이번 수술도 그다지 염려하지 않았다. 우리 사이를 죽음이 갈라 놓는 일은 절대로 없으리라 생각했다.(조용필은 아내의 정확한 병명을 밝히길 꺼렸다.)
_앞으로 계획은.
▲2주일 뒤에 미국에 가서 아내의 사업을 정리할 것이다.
_아내와의 추억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내가 정신적으로 너무 어려울 때 대해줬던 모습들이 모두 기억에 남는다.(이 대답을 하면서 눈물을 흘려 말을 잇지 못했다.)
이영준 redeye@dailysports.co.kr
입력시간 2003/01/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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