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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에 있는 신중현 CD에 있는 내용은 정말 황당하군요. 물론 신중현씨의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양반 너무 자아도취, 자기과시에 빠져 있네요. 유신 시절의 장발단속등이 모두 자기때문이라니... 만일 신중현씨가 그렇게 박정권에 미움을 받았었다면 어떻게 몇년후에 미인이 히트할 수 있었겠습니까.
신중현씨가 지나치게 개인 우상화에 나섰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신중현씨 노래중에 체제 저항적인 것은 전혀 없습니다.
>'서울 서울 서울'이 올림픽 찬가라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시네요. 생각님의 평가이신지 아니면 다른 평론가의 평가인지.. 누리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88년 서울올림픽 즈음에 나온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가사를 올림픽 찬가라고 보는건 쫌 무리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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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름다운 강산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이 곡을 국민가요라고 하기엔 곡의 스케일이 너무 큰 것 같네요;; 아무튼 신중현씨는 박정희정권의 탄압대상 연예인 제1호였으니까요(김민기씨와 함께..)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신다고 하네요.
>
>물론 조용필님이 불멸의 명곡들과 기록들을 남긴 절대지존의 뮤지션이신 것은 확실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사를 대표할만한 곡'이라는 타이틀은 이 곡에 붙여야하지 않을런지.. 조용필 팬클럽에서 괜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제 생각입니다 ㅎㅎ 여러 녹음을 들어보았는데 작년에 CD로 복각된 '신중현과 더 맨' 앨범에 수록된 72년 최초 녹음 버전, 그리고 2002년 스페셜 Studio-Live 앨범에 수록된 가장 최근 버전이 추천할만합니다^^
>
>그런데 한가지... <70년대 초에 조용필은 내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이거 정확한 발언인가요? 그렇다면 상당히 껄쩍찌근해지는;; 신중현씨가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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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CD로 복각됐다는 '신중현과 더 맨' 부클릿에 적혀있는 내용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도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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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경에 신중현과 더 맨이라는 팀을 결성하였다. 그 당시 명동의 모 호텔에서 연주 계약을 제의 받게되어 새로이 결성을 한 팀이였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오보에, 노래 등 6인조로 구성되었다. 오보에는 좀 색다른 클래식 악기이지만 색스폰 연주자를 쓰는 과정에서 그 연주자는 오보에를 함께하고 있었기에 좀 색다른 면을 보이기 위하여 그런 구성을 하게된 것이다.
> 계약을 끝마치고 연주를 하는 곳은 나이트 클럽이 아닌 지하에 있는 고고 클럽이었다. 음악 역시 강렬한 하드록 위주였고 그 당시로서는 새로운 형태의 분위기로 조명이나 음향 등이 매우 강렬하였고 또 대중들고 새로운 클럽 문화를 접하게 되어 좋은 호응을 이루고 있었다. 하드락이 대중 가까이서 연주되고 있기는 그 때가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점점 그 음악성에 이해를 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집으로 걸려왔는데 청와대라고 하며 나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노래, 즉 대통령 찬가를 작곡해내라고 주문했다. 나는 조금 머뭇하다 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것은 나의 소관이 아니었다. 즉 그런 곡은 나의 음악성과는 거리가 있었고 또한 나는 나대로의 음악성을 갖고 대중음악의 방향을 우리만의 음악으로 새로이 장을 만들어가는 시기였으며 그런 관계로 다른 어떤 음악성에도 관심을 가질 생각이 없었다.
> 전화를 끊고 5분 내지 10분 정도 되었을 무렵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때는 공화당이라고 하며 다시 대통령 찬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나는 거절했다.
> 그 후 나는 바로 사무실로 나가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것은 무엇인가 써야되겠다는 생각 뿐 정확한 곡목도 없었다. 단지 내가 어떠한 생각을 하는 음악인인가 하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그 곡은 어느 개인을 위한 곡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곡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어 다른 곡을 생각할 마음 없이 어떤 곡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 날도 다음 날도 쓰고 하다보니 일주일 정도 밤에만 집에 가고 사무실에 앉아 쓰게 되었는데 그 것이 바로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곡이다.
> 그리고 바로 녹음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더 맨 멤버들에게 통보하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더 맨 멤버들은 영문 모르고 스튜디오에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편곡을 시작했다. 물론 녹음 기사 등 모든 분들이 준비에 착수하는 과정도 진행되고 있었고 악보는 편곡이 될 때마다 사보에 들어가 결국 녹음을 시작했는데 그 곡 길이가 당시 18분 정도가 되고 있었다. 그 녹음은 신중현과 더 맨을 창단한 이후 첫 녹음이었고 그러다보니 모든 멤버들이 초긴장한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 그렇게해서 탄생한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곡은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는데 그 프로는 당시 일급 연예프로였고 화면은 내가 요구한대로 당시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깨우치기 위한 민주적인 면과 자유적인 면, 그리고 아름다운 것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 그 후 나의 곡들은 금지 조치가 되기 시작했으며 길거리의 젊은이들은 장발단속에 잡혀 각 파출소나 경찰서로 연행되어 강제삭발을 당하고 있었다. 그 후 더 맨도 해산 단계에 이르러 녹음실에 녹음이 있을 때만 가끔 얼굴을 마주칠 수 있었다.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양반 너무 자아도취, 자기과시에 빠져 있네요. 유신 시절의 장발단속등이 모두 자기때문이라니... 만일 신중현씨가 그렇게 박정권에 미움을 받았었다면 어떻게 몇년후에 미인이 히트할 수 있었겠습니까.
신중현씨가 지나치게 개인 우상화에 나섰다는 느낌입니다. 사실 신중현씨 노래중에 체제 저항적인 것은 전혀 없습니다.
>'서울 서울 서울'이 올림픽 찬가라는 것은 굉장히 잘못된 생각이시네요. 생각님의 평가이신지 아니면 다른 평론가의 평가인지.. 누리님이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88년 서울올림픽 즈음에 나온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가사를 올림픽 찬가라고 보는건 쫌 무리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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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름다운 강산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이 곡을 국민가요라고 하기엔 곡의 스케일이 너무 큰 것 같네요;; 아무튼 신중현씨는 박정희정권의 탄압대상 연예인 제1호였으니까요(김민기씨와 함께..) 지금도 그 때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신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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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용필님이 불멸의 명곡들과 기록들을 남긴 절대지존의 뮤지션이신 것은 확실하지만 '한국 대중음악사를 대표할만한 곡'이라는 타이틀은 이 곡에 붙여야하지 않을런지.. 조용필 팬클럽에서 괜한 소리를 하는 것 같지만-.-;; 제 생각입니다 ㅎㅎ 여러 녹음을 들어보았는데 작년에 CD로 복각된 '신중현과 더 맨' 앨범에 수록된 72년 최초 녹음 버전, 그리고 2002년 스페셜 Studio-Live 앨범에 수록된 가장 최근 버전이 추천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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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가지... <70년대 초에 조용필은 내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했다.> 이거 정확한 발언인가요? 그렇다면 상당히 껄쩍찌근해지는;; 신중현씨가 이런 말을 했으리라고는 믿겨지지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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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CD로 복각됐다는 '신중현과 더 맨' 부클릿에 적혀있는 내용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도움 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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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경에 신중현과 더 맨이라는 팀을 결성하였다. 그 당시 명동의 모 호텔에서 연주 계약을 제의 받게되어 새로이 결성을 한 팀이였다.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오보에, 노래 등 6인조로 구성되었다. 오보에는 좀 색다른 클래식 악기이지만 색스폰 연주자를 쓰는 과정에서 그 연주자는 오보에를 함께하고 있었기에 좀 색다른 면을 보이기 위하여 그런 구성을 하게된 것이다.
> 계약을 끝마치고 연주를 하는 곳은 나이트 클럽이 아닌 지하에 있는 고고 클럽이었다. 음악 역시 강렬한 하드록 위주였고 그 당시로서는 새로운 형태의 분위기로 조명이나 음향 등이 매우 강렬하였고 또 대중들고 새로운 클럽 문화를 접하게 되어 좋은 호응을 이루고 있었다. 하드락이 대중 가까이서 연주되고 있기는 그 때가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점점 그 음악성에 이해를 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 그러던 어느 날 전화가 한 통 집으로 걸려왔는데 청와대라고 하며 나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노래, 즉 대통령 찬가를 작곡해내라고 주문했다. 나는 조금 머뭇하다 할 수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 것은 나의 소관이 아니었다. 즉 그런 곡은 나의 음악성과는 거리가 있었고 또한 나는 나대로의 음악성을 갖고 대중음악의 방향을 우리만의 음악으로 새로이 장을 만들어가는 시기였으며 그런 관계로 다른 어떤 음악성에도 관심을 가질 생각이 없었다.
> 전화를 끊고 5분 내지 10분 정도 되었을 무렵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 때는 공화당이라고 하며 다시 대통령 찬가를 부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역시 나는 거절했다.
> 그 후 나는 바로 사무실로 나가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것은 무엇인가 써야되겠다는 생각 뿐 정확한 곡목도 없었다. 단지 내가 어떠한 생각을 하는 음악인인가 하는 모습을 대중들에게 알리고 싶었고 그 곡은 어느 개인을 위한 곡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곡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메우고 있어 다른 곡을 생각할 마음 없이 어떤 곡을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 날도 다음 날도 쓰고 하다보니 일주일 정도 밤에만 집에 가고 사무실에 앉아 쓰게 되었는데 그 것이 바로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곡이다.
> 그리고 바로 녹음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더 맨 멤버들에게 통보하고 스튜디오로 향했다. 더 맨 멤버들은 영문 모르고 스튜디오에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편곡을 시작했다. 물론 녹음 기사 등 모든 분들이 준비에 착수하는 과정도 진행되고 있었고 악보는 편곡이 될 때마다 사보에 들어가 결국 녹음을 시작했는데 그 곡 길이가 당시 18분 정도가 되고 있었다. 그 녹음은 신중현과 더 맨을 창단한 이후 첫 녹음이었고 그러다보니 모든 멤버들이 초긴장한 상태로 진행되고 있었다.
> 그렇게해서 탄생한 아름다운 강산이라는 곡은 텔레비전에 방영되었는데 그 프로는 당시 일급 연예프로였고 화면은 내가 요구한대로 당시 박정희 정권의 독재를 깨우치기 위한 민주적인 면과 자유적인 면, 그리고 아름다운 것 등을 주제로 다루고 있었다.
> 그 후 나의 곡들은 금지 조치가 되기 시작했으며 길거리의 젊은이들은 장발단속에 잡혀 각 파출소나 경찰서로 연행되어 강제삭발을 당하고 있었다. 그 후 더 맨도 해산 단계에 이르러 녹음실에 녹음이 있을 때만 가끔 얼굴을 마주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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