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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의 후광, 그로 인해 불운했던 제 2의 Beatles, Badfinger

애플, 2004-05-11 01:4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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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경 Beatles는 자신들의 개인 스튜디오인 Abbey Road와 독자적인 레이블인 Apple을 설립하고 간헐적으로 후진 양성을 하기 시작합니다.

Beatles의 음반회사 Apple을 통해 가장 성공한 케이스는 "Those Were The Days"를 노래한 Mary Hopkins일 것이고, Beatles가 발굴해 낸 최고의 신인은 아마도 불운의 밴드 Badfinger가 아닐까 싶네요.

Mary Hopkins는 음악적으로도 잔잔한 트래디셔널 포크를 구사했고 또한, Beatles와 비슷한 연배의 가수였기에 Apple사를 통해 음반을 발표한 것이 특별히 주목받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Beatles의 두 기둥 중 한 사람인 Paul McCartney가 발탁하고, George Harrison과 Ringo Star가 관계한 영화 [The Magic Christian]의 음악을 담당하고, 밴드의 이름마저 Beatles로 부터 하사받은 Badfinger는 데뷔와 동시에 찬사와 혹평을 한 몸에 받게 됩니다.

Badfinger라는 그룹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68년 경입니다.
1968년 여름 영국의 리버풀에서 Peter Ham과 Tom Evans를 주축으로 다섯명의 젊은이가 모여 Iveys라는 밴드를 조직하고 소녀 취향의 "Maybe Tomorrow"를 발표한 것이 Badfinger의 출발입니다. 아마도, 초기 Beatles에 관한 영화인 [Back Beat]에서 보았던 것 처럼 Badfinger는 시작부터가 Beatles와 너무 닮아 있습니다. Beatles에 의해 발탁된 후 한명의 멤버가 탈퇴를 하고, 한명의 멤버가 교체된 것도 우연치고는 특이한 이력입니다.

Badfinger가 팝계에서 처음 주목받은 것은 데뷔음반 [Magic Christian Music]을 통해 소개 된 싱글 "Come And Get It"을 통해서 입니다. 이 곡은 Paul McCartney가 작곡을 한 것으로 챠트 상위권에는 쉽게 진입하였고, 경제적으로도 상당한 여유를 가져다 주었지만 같은 음반에 소개된 모든 곡들을 Beatles의 아류작으로 폄하받는 계기가 됩니다.

"Come And Get It"은 분명 Beatles의 노래입니다.
전형적인 Beatles 사운드를 담고 있고, 편곡이나 연주 심지어는 보컬까지도 Beatles의 것을 철저히 따르고 있습니다. Paul McCartney가 저지른 최대의 실수인 셈입니다.
또 다른 노래 "Walk Out In The Rain"은 Badfinger가 저지른 최대의 실수입니다.
자신들의 자작곡임에도 불구하고 Beatles의 것을 철저히 따르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곡의 분위기가 Beatles의 초기 작품들과 유사하고
Peter Ham의 보컬은 Paul McCartney의 것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자승자박이라고 해야 할까요?
은인에 대한 오마쥬가 그들에게 전형적인 Beatles 카피밴드라는 오명을 얻게 했으니까요.
그러나, 이 음반의 백미인 "Carry On Till Tomorrow"는 Beatles의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여지껏 Beatles가 시도하지 않은 Folk Rock이라는 점도 그렇고, 후반부 강렬한 기타 리프로의 전환도 분명 Beatles의 것과는 차이가 납니다.
Beatles의 명곡 "Let It Be"의 구성을 들어 이 작품을 폄하할려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 비교 때문에 더더욱이 이 작품의 가치는 배가됩니다.
구태여 유사한 점을 찾아 낸다면 보컬하모니의 구사가 Beatles의 것과 유사하다는 점 정도이겠지요.

어떤 한 작품이 Beatles를 닮았나 그렇지 않나를 논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코메디에 가깝지만, Badfinger에게 씌워진 오명의 굴레를 벗겨 내기 위해서는 너무나 절박한 문제입니다.
만일 이들이 여타의 카피밴드들처럼 Beatles의 음악들을 복제하는데 주력했다면, 불운은 찾아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데뷔 시절보다 더한 부와 명예를 거머 쥘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의 위대한 그룹이 잠정적 활동중단을 선언하고 멤버 각자의 활동에 주력하자 그들에게서 음악의 미래를 보았던 팬들은 그들의 공백을 메꿔 줄 만한 대안을 목말라 했기 때문이죠.
그러한 면에서 보았을 때 Badfinger의 첫 싱글 "Come And Get It"은 꽃미남 시절 Beatles의 망령을 불러오기에 충분했고, 만일 "Carry On Till Tomorrow""가 조금만 더 Beatles에 근접했었다면 이들은 Beatles의 미래를 대체하는 슈퍼밴드의 입지를 구축할 수 있었을겁니다.
그러나, Beatles적이면서도 Beatles와는 차별화된 이들의 음악은 어설픈 카피 내지는 배반의 행위로 받아들여지고 제 2의 Beatles라는 별명은 그들의 음악에 대한 찬사가 아니라 오명으로 평생을 따라 다니게 됩니다.

그들의 두번째 정규음반인 [No Dice]가 발매 되었을 때 팬들의 반응은 더욱 냉정해집니다.
이 음반은 전체적으로 강한 Rock적인 성향을 띄고 있습니다. Beatles의 음악이 초기 버블검 사운드에서 아트락으로 이어진데 반해 앨범 [No Dice]는 훨씬 힘있고 강렬했으며 초기 하드락에 가까웠습니다.

Beatles의 트윈 기타 시스템 은 John Lennon이 리듬파트를 George Harrison이 멜로디 파트를 연주하는 형식으로 이분화 되었지만, 이들의 트윈기타는 전형적으로 리프와 솔로의 형식으로 나뉘어집니다. 간주 부분을 제외하고는 두 대의 기타가 모두 리프를 연주하고 간주 부분에서는 한대의 기타가 솔로를 연주하는 형식 - 헤비메탈의 전형이죠 - 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음악적 변모는 아마도 Beatles의 후광으로 부터 독립하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음반의 수록곡 중 "Without You"는 Peter Ham의 굵직하고 남성적인 매력이 물씬 풍기는 락발라드 넘버입니다. 이후 Harry Nilson, Air Supply, Mariah Carey등에 의해 다시 불려지곤 했지만 원작의 맛을 살려낸 작품은 하나도 없더군요. 오히려, Harry Nilson에 의해 그 가치가 반감이 되고 평범한 이지리스닝의 팝 넘버로 전락을 했다고도 볼 수가 있겠네요.

분명히 Beatles와는 차별화 된 이 음반에서도 팬들은 Beatles의 흔적을 찾아 내려고 광분을 합니다. 코드의 전개라던지 리듬의 구사등에 있어 작은 유사점이라도 발견이 되면 금맥이라도 찾아낸 듯 여론은 들 끓고, 그나마 소규모로 그룹을 형성하던 Badfinger마니아들의 입지는 점차 좁아지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Badfinger는 Beatles로 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보컬의 성향 자체가 Paul McCartney와 John Lennon의 특징들을 섞어 놓은 듯하고
곡의 구조적인 부분들이 Beatles의 것과 많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이 시기에 활동하던 젊은 밴드들 중 Beatles의 영향을 피할 수 있는 밴드가 있었나 하는 거죠.
심지어는 Beatles와 같은 세대이거나 선배격인 노장들도 Beatles의 영향권 안에서 창작을 했고, 그것을 독창성으로 인정을 받던지 새로운 해석으로 인정을 받곤 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이들을 힘들게 했을까요?
그것은 다름아닌 미국의 여론이었습니다.
미국은 팝의 종주국이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나라입니다.
Rock & Roll은 미국 흑인들의 음악인 Rhythm & Blues를 모태로 탄생하였고 Rock & Roll은 미국의 자존심인 것입니다. 미국의 스튜디오 시스템은 그저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미남 가수 한명을 시스템 안에서 키워내고 대중음악의 아이콘으로 내세웁니다.

그러나, 60년대 중반 Beatles와 Rolling Stones를 앞세운 영국은 미국의 팝시장을 점령했고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British Invasion이라고 명명을 했습니다. 이들의 음악은 이미 익숙해진 스튜디오 작곡가들의 그저 그만한 음악들이 아니라 개성있고 특화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 여파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 갑니다. 이러한 외부의 잠식에 대항하고자 했다면 미국의 팝시장은 스타 만들기에 주력을 할 것이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양성하던지 아니면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작곡과 연주를 가르쳐야 했었던 겁니다.

1970년 Beatles가 그들의 마지막 정규음반 [Let It Be]를 마지막으로 잠정 은퇴에 들어가자 미국을 향한 영국의 지긋지긋한 지배는 끝나는 듯이 보였습니다. 영국 화이트 블루스의 자존심인 Eric Clapton마저 미국에서의 활동을 선언하자 모두들 Rolling Stones하나 정도는 막아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에 찬물을 끼얹듯 캐나다 그룹 Klaatu는 Beatles의 명반 [Sgt.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연장선을 보는 듯한 음반 [Klaatu]로 미국 시장에 모습을 드러내고, Badfinger는 Beatles의 공식적인 후광을 업고 미국시장에 등장을 한 것입니다.

미국내 음반 재벌들의 여론몰이는 전망있는 젊은 그룹을 비틀즈 카피 밴드라는 오명을 씌워 여론 몰이에 나섰고, 결국 엄청난 비극을 잉태하게 됩니다. 미국에서 치뤄진 Badfinger의 공연들은 제법 성공을 거둡니다. 그들의 공연을 찾는 관중 속에는 예전 Beatles의 팬들도 있었겠고, Badfinger의 새로운 팬들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영국의 음악인을 못마땅해 하는 안티팬들도 끼어 있었습니다. 환호 속엔 언제나 야유가 따랐고, 그 비난의 목표는 Badfinger가 아니라 Beatles를 향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즈음 Beatles는 실질적으로 해산된 상태였고, Badfinger는 Apple에서 Warner로의 이적을 준비하는 과정이라 Beatles로 부터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소속사의 이적이 개런티 문제와 연관이 있다는 소문이 돌자 영국의 팬들 마저도 이들을 외면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세번째 음반 [Straight Up]이 Warner를 통해 발표가 되고, 오히려 초기 Beatles 풍의 사운드로 퇴보를 하자 안티팬들의 극성은 극에 달하게 됩니다. 음반 [Straight Up]은 "Day After Day"라는 명곡을 발표했지만 그 곡 자체가 너무 Beatles적이었고, 주변의 여러 문제들로 인해 전혀 인정받지 못한 저주받은 걸작이 되고 맙니다. 향후에 발표된 음반 [Ass]나 마지막 음반 [Badfinger]는 음악적으로도 불완전했고, Badfinger라는 그룹의 범주에 전혀 근접하지 못한 Beatles카피 밴드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975년 미국에서 오리지날 Badfinger는 마지막 공연을 치르게 됩니다.
누구도 마지막이라고 생각지 않았고 나름대로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던 Badfinger는 불운한 사건과 함께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들의 마지막 공연은 관중 수도 그리 많지 않았고, 입장한 관중 중 절반 이상이 Badfinger의 안티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연신 야유를 보내고 심지어는 더이상 제 2의 비틀즈는 필요치 않다. 비틀즈가 직접 나서라는 발언까지 내뱉게 됩니다.

공연이 끝나고 모습을 감춘 팀의 리더 Peter Ham은 공연장의 주차장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이 됩니다. 5년여 동안 찬사보다는 혹독한 비난을 받아가면서도 팀을 이끌어 오던 심약한 Peter Ham은 자신의 삶과 밴드의 운명을 자살이라는 방법으로 마무리를 한 셈입니다.

차라리 이들이 Peter Ham의 죽음과 함께 각자의 길을 걸었다면 제 2의 비극은 찾아 오지 않았을 겁니다. 팀의 2인자였던 Tom Evans는 Peter Ham이 빠져 버린 Badfinger를 어떻게든 부활 시켜 보려 했지만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1985년 그마저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

아직도 Badfinger를 제 2의 Beatles로 못박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죽음마저도 Beatles와 연관지으려 합니다. John Lennon과 George Harrison이 각각 80년과 98년에 세상을 떠나고, Peter Ham과 Tom Evans 또한 단명한 것을 빗대어 죽음마저도 Beatles와 유사하다고 말하더군요. 그러나, Beatles의 그 누구도 Badfinger의 두 사람처럼 스스로 목숨을 버릴 만큼의 시련을 겪지 않았고, Badfinger의 그 누구도 Beatles만큼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Beatles와 Badfinger는 너무나도 판이한 운명을 타고 태어난 밴드였습니다.

결국 Badfinger는 Beatles의 후광으로 영광을 얻고, 그 후광 때문에 불운을 겪은 밴드라고 할 수 있겠죠. 그만큼 팝계의 시장논리는 냉정한 것이거든요. 물론 팝필드만 그런 건 아니겠지만...



                                  Badfinger - Carry On Till Tomorrow

운영자님, 요상한 글 올려서 죄송합니다. Badfinger에 대해 궁금해 하시는 분이 계서서...^^;;

4 댓글

등불

2004-05-11 03:22:10

천 명, 만 명의 팬이 있어도 한 명의 안티팬이 교묘히 문제 제기를 하면 분위기는
광풍에 휩싸이게 되더군요.

안티팬의 글을 반박하고 설명하는 동안 그 문제가 전체의 문제로 확산 되어 3자에게 각인 되죠.

님의 글을 읽으니 요즘 우리 필팬 게시판에 제기 되는 분위기을 생각하게 됩니다.

공연을 가고 싶은 분들도,기자들도, 일반의 약간 조 용필님에 궁금증을 가진 분들도 여기에 많이 들려서 글을 읽는다고 봅니다.

한 창 공연 중이거나 준비 중일 때 들리는 불만은 엄청난 결과가 나오고 파급이 있습니다.

오늘 올라 온 헤럴드 경제 리뷰와 얼마 전에 올라 온 스포츠지 기사를 일고 더 심각성을 느낍니다.

양 희은씨도 좋아합니다.그의 공연을 보고 난 후 감동 만 얘기합니다.
요즘 필팬들은 안목이 상당합니다.
그런데 요즘,
공연을 즐기고 감상하기 보다 갖게 된 안목에 치중하여 감상보다 비평가의 입장으로 관람하는 분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물론 조 용필님에 대한 기대가 많아서인 것 압니다.
우리들의 오빠는 참으로 외롭고 힘이 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 용필 오빠,화이팅!!!

조 용필 팬 여러분 ,
타 가수나 해외에서 오는 공연도 가끔씩 봐 보세요.
그리고 여유를 가집시다.

친구의아침

2004-05-11 07:16:40

등불님 글에 공감합니다...
공연이 끝나고 텅빈 객석을 보면서 제 자신이 왜 그렇게 허무하고 서글펐는지 모릅니다.
오빠의 뒷모습에서 느끼는.. 그 허전함 허무함....
오빠가 몇십년을 느꼈을 인기뒤에 고독감...
이제서야 제가 나이를 먹으면서 오빠의 뒷모습이 느껴지는건 왜일까요?
오빠가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이번 공연뒤에 이 감정이 공연을 봤던 행복보다 제 가슴에 더 물밀듯이 밀려들었습니다.....
오빠에게 힘을 주고 싶습니다...
오빠가 음악을 창조할때 많은 고통을 겪는것처럼 저희도 오빠에게 힘이 되고 싶습니다....
필팬 여러분!!!!
힘이 되어 드립시다....

송상희

2004-05-11 08:45:57

배드핑거 앨범 자켓중에 펼치면 야한 여자 사진 나오는거 있거든요. 고등학교때 호기심으로 그거 LP로 샀었는데 노래가 넘 좋아서 두번 기뻤어요. ^^;;;

흠흠...

2004-05-11 11:53:45

상당히 비극적인 스토리군요... 자살 할 정도였다니...

그러고 보면 요즘 한국은 인터넷 때문에 안티라는 말이 너무 흔하게 쓰여지는
것 같아요. 온 나라가 연예인에 관한 숭배, 시기, 질투, 험담... 일개 연예인
의 사생활을 온 나라의 10대 20대 30대 젊은이들이 함께 떠든다고 생각하니
좀 끔찍해요.

오늘밤엔 G선상의 아리아를 듣고 자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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