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365 김두호] 예나 지금이나 연예계에는 슈퍼스타 또는 톱스타로 일컫는 인기 연예인들이 있다. 지금은 기자들이 그들 이름 앞에 ‘국민’이라는 칭호를 올려 준다. 1970년대부터 연예인과 관련된 기사를 써 온 필자는 시대와 언어의 변화에 둔감한 탓인지 아직도 ‘국민’이라는 칭호를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해 쩔쩔 맨다. 그렇지만 영화배우 안성기와 가수 조용필 정도라면 각각 ‘국민배우’, ‘국민가수’로 불러도 흠이 잡히지 않을 것 같다.
영화와 가요무대의 정상으로 오랫동안 부동의 인기를 누려온 양대 국민스타가 서울 경동중학교 동기 동창인 것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이제 50대 중반을 넘어섰지만 그들의 인연은 중학교 졸업반 때 클래스메이트로 한 교실에서 공부하며 우정을 나누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용필은 기억을 못하지만 안성기는 조용필의 집에 놀러 갔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우선 두 사람에게 들어 본 어깨동무 친구 시절의 추억 이야기는 그들에게 눈물이 나도록 정겹고 그리운 것들이다.
▲조용필이 기억하는 안성기
성기는 3학년 때 한반이라고 한 모양인데 내 기억은 2학년 때 한 반이었다. 나는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그 친구가 정말 부러웠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인기 있는 배우로 성공할 것으로 믿었다. 어린 나이에도 영화에 깊이 빠져 있었다고 느껴졌다. 1984년 다 같이 바쁘게 활동할 때 일본에서 온 TV 취재진이 요청해 성기와 함께 모교를 방문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내가 가수가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특기나 장기도 없었지만 성기는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다.
▲안성기가 기억하는 조용필
경동중학 3학년 때 우린 함께 놀러 다니기도 하며 제법 친하게 지냈다. 용필이는 그 때도 키가 작았다. 성격은 성실하면서 고집이 강했고, 외로움을 잘 타 친한 친구가 별로 없었다. 그의 집에도 놀러갔는데 그 때 기타를 배운다고 손마디가 시퍼렇게 멍이 든 것도 기억난다. 그래도 가수가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 그의 대성은 행운보다 집념의 결실이라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중학시절, 조용필은 아역스타 배우 안성기를 부러워했다.
둘은 같은 중학교를 졸업했으나 조용필은 경동고에 그대로 진학하고 안성기는 경동고 입시에 실패해 동성고를 다녔다. 중학시절까지 영화촬영장에서 살다시피 해 제대로 공부를 하지 못했던 탓. 고교 진학 후 기초실력이 없었던 그는 수학시험 때 백지를 낼 정도였고 그로 인해 한 때 실어증 증세까지 나올 정도로 우울한 사춘기를 보낸 경험이 있다.
조용필은 고향인 경기도 화성군에서 초등학교를 나와 서울의 명문중학교에 진학할 정도의 모범생이었으나 고교 진학 후 기타를 메고 가수 지망생의 꿈을 찾아 방황을 시작했다. 가족에게는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음악학원을 찾아 다녔고 “아들을 딴따라(가수를 비하한 말)로 보낼 수 없다”는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쳐 가출도 하게 된다. 그의 사춘기는 자살 기도, 무단가출, 기지촌의 떠돌이 생활 등으로 참담했던 기억들이 수북하다.
연예계의 두 그루 큰 나무 안성기와 조용필. 조용필과 안성기는 그렇게 우울한 성장기를 건너 어른이 된 후 나란히 인생 최고의 순간들을 함께 엮어 가고 있다. 그들은 자랑스러운 경동중학의 선배들이다. 그럼에도 후배들이 그들을 초청해 한번쯤 화려한 축제를 열어줄 만도 한데 아직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성공한 두 선배가 어린 후배들을 만나 꿈과 용기를 심어주는 격려의 시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보람 있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