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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씨 홈피에 직접올린 에세이 ..>>

푸름누리, 2000-09-26 0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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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몇 마디의 인터뷰 후…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관객들은 지쳐 있었지만, 체육관 전체는 완전히 우리
것이 되었다. 200명쯤 으로 추산되는 우리 친구들이 폭죽을 터뜨리며 바람을
잡았고 첫 공연 이후 결성되어 있었던 수십명의 소녀 팬 클럽도 가세 했으며,
또한 운이 엄청 따랐던 게 당일 날 체육관에는 88올림픽때 사용했던 조명
시스템이 아직 렌탈 기간이 남아 있어 그대로 배치 되어 있었는데 앞서 말했듯이
15명의 발라드 엔트리 들이 노래를 하는동안 심심해서 하품을 하고 있던 조명
기사가 옳다꾸나~~전부 돌려부러~~ 로 모든 조명 시스템을 풀로 올려 버린거다.

마치, 이 행사의 메인 밴드이자 엔딩인듯 한 분위기가 자동빵으로 연출 되었음을
나중에 화면을 보고 알았다.(후일담인데 당시의 심사위원장은 조용필 전하였다.
게다가, 쟁쟁한 프로듀서들이 포진해 있었는데 이 양반들이 모두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출신이었던 거다. 조용필 사단으로 도배된 심사위원석에서 전하께
옵서는 거의 꾸벅꾸벅 조시다가 그대에게의 인트로를 알람시계로 착각,
깨어났는데 나중에 보니 기억나는 게 우리밖에 없더라는 거다.

채점지를 걷는 순간, S모 편곡자 왈, 형..어떡하지?? 전하 왈, 야..우리가 보컬인데…
보컬 줘라..보컬…L모 편곡자 왈, 그래..그래..그 새끼들이 좀 시원했어…
이리하여, 강력한 대상 후보 주병선을 정말 간발의 차이로 돌리고 대상이
우리에게…하늘에서 떨어졌다.)

후주가 끝나고 얼떨떨한 기분으로 대기석으로 돌아가는데 관객석에서 흥분한
사람들이 체육관 바닥 쪽으로 넘어 들어오며 사인을 받는다..사진을 찍는다..
소동을 부렸고 경비원과 경찰들이 우리쪽으로 뛰어 오는것이 보였다.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예전에 한번 겪은 일을 다시 재현하는
듯한 확실한 기분으로 대상이로구나…해냈다…라는 것이었다.
강변 가요제 출전 당시 이상은이 대상을 타는 것을 지켜본 적이 있었는데
결선까지는 거의 구색용 노래의 분위기였던 것이 당일 날 관객들이 열광하고
이상은에게 소녀들이 몰려들어 난리를 치자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이상우가
금상으로 떨어지고 이상은이 냉큼 대상을 집어가는 것이 아닌가.

대기석에 앉아서 은상을 발표할 때까지 우리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떨어지던가, 대상이던가 둘중의 하나인 분위기였던 거다.
대상 무한궤도 라는 이택림씨의 외침 순간 껑충껑충 뛰었던 사람은 내가
아니고 베이스 조형곤이다. 머리 스타일과 복장이 거의 유사해 그게 나였던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나는 매우 거만하게 터벅터벅 무대위로
밴드의 맨 뒤에 서서 의당 받을 걸 받는 다는 표정으로 걸어 나갔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대학가요제의 대상쯤으로 내 기뻐하는 얼굴을 남에게
보일 순 없다는 엄청난 교만감도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대학 가요제는
끝이 났고 기뻐할 힘도 없이 완전히 지친 우리는 체육관 밖에서 서로를
황당한 표정으로 잠시 바라보다가…내일 보자…하고는 해산했다.

전원 귀가 후 시체처럼 잠들었는데, 아침에 현찬에게 전화가
왔다. 어제 일이 꿈이 아니고 사실인 게 맞냐는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우리는 서로 볼을 꼬집으며 지냈다.
대학가요제 에피소드의 엔딩은 이렇다. 난 트로피를 들고 집으로 귀가했다.

집은 온통 불이 꺼져 있었고, 초상집 분위기였다.
아부지 왈, "……우짜면 좋노…
" 어머니 왈, "그러게요…(침울)…대상씩이나 타버렸으니…"
"이제는 더더욱 말려지지도 않을테고…"
두 분은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고 내가 상을 탄 것이 내 인생 말아먹을 흉사의
조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삐거덕~) 저..왔어요..
"그래…"
"저..대상 탔어요.."
"그래… 티비 봤다…(마지못해) 수고했더구나…자라…"
"…네…"


이것이 88년 MBC대학 가요제 대상 수상 및 대학가요제 1회 이래 십 수년 만의
밴드 그랑프리 탈환에 대한 울 엄마 아빠의 공식반응이다. 젠장…
다른 집은 엄마 아빠가 이쁘다고 뽀뽀도 해주고 맛있는 것도 사줬단다…젠장….

계속..........>>>>>


대학가요제가 끝나고 한달간은 골 때리는 경험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주관 방송사인 MBC의 티비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몇 개 출현 했으며,
특히 잡지사 등에는 우리와의 취재를 요청하는 엽서가 쇄도해 상당히 많은 분량의
인터뷰를 소화해 내야 했다. 그것은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은 재미도 없지 않았으나,
곧 짜증과 염증으로 바뀌었고 여전히 제작자들은 솔로 싱어라는 형태 이외에는
전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는 첫 앨범을 세상에
내 놓지 못한 채, 그저 대학 가요제의 우승자로 매스컴에 잠깐 얼굴을 비추고
그것을 추억이랍시고 회상 해야 될 처지가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첫 라디오 출현을 했던 프로그램의 프로듀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사흘쯤 뒤일 것이다.) 디제이를 교체해야겠는데,
혹시 디제이 할 생각 있냐는 거다. 나는 친구들과 전화를 한 통씩 때려 본 후
바로 예스 해 버렸다. 첫째는 공동 진행자가 미스 코리아 장윤정이고
둘째는 디제이는 내가 밴드 다음으로 좋아하는 일이었으며 셋째는 레코드 계약이
개판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뭔가 탈출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 되는 기대감 등등이었다. 프로그램 이름이 “하나 둘 셋 우리는 하이틴”
이라는 게 유일한 걸림돌이요, 하기 싫은 요인 이었지만…

지지 부진하게 몇 달을 끄는 동안 오랜만에 방송국에 행차한 조용필 선배가
라디오국으로 사람을 보내 나를 찾았다. 자신이 심사위원장으로서 뽑은 꼬마
녀석을 얼굴이나 한번 보려는 거였는데, 매니저도 없이 빌빌대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자신의 예전 매니저였던 유 재학 씨를 추천해 주었다.
그는 나도 이름을 몇 번 들은 적이 있는 전설의 매니저 등급 중 한 사람으로
조 용필의 매니저 라는 이미지로 알려진 유명한 사람이었다.

유재학씨는 다른 매니저들과는 달리 밴드를 유지 하며 첫 앨범을 내겠다는
계획에 어떠한 반대도 표시 하지 않았다. 단지, 밴드가 해산 할 경우 계약
기간의 나머지를 내가 솔로로 이행해야 하며 그 기간은 5년 임을 내세웠는데,
맴버들 사이에 논란의 소지가 될 부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것이 당시의 음악 씬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었던 그나마 최상의
컨디션이었다. 그리고 불과 얼마 후, 우리는 첫 앨범의 녹음에 들어가게 된다.

당시 나의 미래는 장미 빛이었다. 밴드랍시고 계속 까불다가는 얼마 안되어
좆 될 거라는 주위 경고는 귓등으로 넘겨 버렸고, 밴드 맴버들은 첫 레코딩으로
인해 모두 익사이팅 했으며, 나는 라디오 디제이 수입으로 사십 팔개월 할부
소형 차를 하나 사고 면허를 땄다.(그리고 삼개월 내로 앞 범퍼, 뒷 범퍼,
앞 문짝 두개, 뒷 문짝 한 개, 풀랜더 두개를 각각 다른 접촉 사고로 바꾸었다.
그래도 어쨌든 난 행복했다.)

소속사와 제작자의 문제는 해결했고 또 한가지 문제는 팀 전력의 강화 문제였는데,
우리는 트윈 키보드 시스템으로도 모자라 한명의 키보디스트를 더 영입하여
무려 세 명의 키보디스트가 있는 밴드로 방향을 정하고 인선 작업에 들어갔다.
세 명의 키보드라는 골 때리는 시스템에 대해 반대 의견도 없지 않았으나
누군가가 “레너드 스키너드는 쓰리기타로도 하던데…” 라고 말 함으로서
회의가 끝나버렸다. 제 삼의 키보디스트…그가 정석원이다.

이번에는 호텔 커피숍이 아니고 그냥 다방이었다.(당연하지) 그는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 유학을 와 있는 셈이었으므로, 부모님과 떨어져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그 자취 방은 나에게도 또한 아지트가 되었다. 그가 합류 함으로서 무한궤도에
대중적인 성격은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는 우리나이 또래에서 드물게 코드 변환,
전조, 텐션 변화에서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배킹형 키보디스트로,
견고한 팀 플레이에 주력하는 현문이나 리드 플레이를 주로 맡는 재홍과는
완전히 다른 타입의 키보디스트였다. 게다가 당시 그의 캐릭터는 사투리가
섞인 코믹 캐릭터로 훗날의 공일 오비 때와는 사뭇 이미지가 다르며,
밴드가 해산할 때까지는 맴버들과도 매우 잘 융합했다.

자, 이리하여 천신만고 끝에 녹음에 들어간 무한 궤도의 첫 앨범, 우리는 과연
무슨 짓을 했던가… 그 참상을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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