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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한국대중음악사 조용필&서태지
가상대화로 찾아낸 두사람의 록에 대한 열정…“이제 꿈꾸는 세상을 노래하리라”
조용필(48)과 서태지(26).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인들. 열광적인 팬 군단을 등에 업고 무대와 시장을 장악했던 가요계의 우상. 살아서 벌써 전설이 돼버린 이들의 이름은 그 자체가 현대 한국대중음악사다.
이 두남자가 돌아온다. 조용필은 30년 음악인생을 돌아보는 기념공연과 음반을 내며, 서태지는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으로 돌아가련다”며 떠났던 미국에서 3년 만에 보내오는 음반 한장으로 컴백한다. 두사람의 음악은, 그들이 겪은 시절과 인생유전과 음악세계가 다른 만큼, 함께 묶어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 두 인물은 또한 하나로 묶일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녔다. 일찌감치 제도권 교육을 박차고 나와 음악에 몸을 던졌던 정열이 그렇고, 음악성과 상업성 모두에서 빼어났던 됨됨이가 닮았다. 아마도 당분간 대중음악계에서 이런 가왕(歌王)을 만나기란 어려울 것이다. 80년대와 90년대를 이으며 대중음악계의 왕위를 나눠가졌던 이들이 이제 ‘음악의 사회사’ 속에 시대를 뭉뚱그린 표상이자 그 얼굴이 됐기 때문이다.
두사람이 가상공간에서 만났다. 현실에서 나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고수는 말을 아끼는 법. 말보다는 노래로 발언했던 이들이다. 대화는 그들의 음악 속에서 우러났다. 말은 허망하다. 차라리 그들의 노래를 들어야 하리라.
조용필: 역시 넌 신출귀몰의 도사야. ‘적절한 은둔과 갑작스런 노출’이라…. 구름과 비를 함께 몰고다니는 아이, 바람처럼 떠나더니 표범처럼 돌아오는구나. 반갑다. 몸은 안 오고 앨범만 보낸다…, 너다운 발상이야.
서태지: 선배님이 그리 말씀하시니 부끄럽습니다. 제가 지금 다시 나타난 건 팬들이 간절히 저를 원했기 때문이에요. 변명이 아닙니다. 수십억원을 싸들고 미국까지 날아와 끈질기게 물고늘어지는 하이에나들 앞에서 견뎌낼 재간이 없었어요. 어쨌든 데뷔 30년 기념공연과 새 음반 내시는 것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조: 내가 살아있다는 흔적을 남기는 거지 뭐. 기도하는 마음으로 준비했는데 팬들 반응이 어떨지. 지난 30년을 돌아보면 화려하면서도 쓸쓸하고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텅 비어 있는 것 같애. 사람들이 자꾸 나더러 외로워보인다고 하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 너도 그러리라 보는데, 음악에 모든 걸 건다는 건 외로운 거지. 후회는 없어.
서: 저야 ‘서태지와 아이들’로 치면 4년쯤밖에 활동을 안 했으니까 선배님의 그 깊은 음악이데아를 헤아릴 길이 없죠. 다만 노래를 통해 또래나 동생들과 함께 한 시간이 행복했다는 건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미국을 떠돌며 그동안 제가 만들었던 음악들을 차분히 돌아봤어요. 전 사람들을 향해 제 노래를 던지고, 그 음악으로 그들과 소통하며 함께 나누는 속에서 세상을 바꿔보고 싶었어요. 함께 한다는 게 참 중요했죠. 저항정신이 충만한 록이라도 대중이 듣지 않으면 자기배설밖에 더 되겠어요. 저희 팀이 댄스그룹에서 록밴드로 변신한 건 그래야 대중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지 않겠구나 하는 감 때문이었어요.
조: 글쎄…. 옥황상제가 나더러 전생에 뭘 하던 사람이냐, 물으시면 난 쉬지 않고 노래만 하던 놈입니다, 할거야. 난 끊임없이 내 노래를 불렀어. 군사정권이 대마초 사건을 만들어내 입을 막았을 땐, 죽고 싶었지. 난 노래부르는 가수야. 가수는 노래부를 때 살아있는 거야. 30년 음악인생에 내세울 게 있다면 팬들이 봐주거나 안 봐주거나, 성공했을 때나 좌절했을 때나, 쉼없이 노래를 만들고 노래를 불렀다는 거야.
서: 고독한 선배의 불타는 영혼을 전 늘 존경해 왔습니다. 그럼에도 전 선배처럼 남들에게 휘둘리고 싶진 않았어요. 흔히 가수들을 ‘딴따라’라 부르지만, 그렇게 저희들의 활동을 저질인 양 깔보는 자들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리라 마음먹었죠. 우린 꼭두각시가 아니잖아요. 정권이 이런 노래 불러라, 방송사 PD들이 텔레비전에 나와라, 기득권층이 대중음악은 국민들을 우민으로 만드는 데 한몫하면 된다,고 조종할 때, 그걸 거슬러 우리에게도 노래로 꿈꾸는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중음악인들이 정당하게 평가받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조: 내가 볼 때, 너의 전략과 계산은 상당히 맞아떨어졌어. 넌 운이 좋은 놈이야. 내가 너처럼 했다면 난 이미 이 바닥에서 사라졌을거야. 네가 불쑥 모습을 드러냈던 92년은 대중문화계에도 돈이 넘쳐나기 시작하고 10대들의 환호가 자지러지던 때야. 넌 ‘오빠’ 하고 몸을 던져 덤벼드는 그 아이들에게 현란한 랩과 춤으로 버무린 댄스음악을 주었어. 교육현장에 관한 저항적인 가사들을 담은 노래들로 지식인들의 지지까지 끌어냈지. 그에 비하면 난 이곳에서 계속 노래부를 수 있기 위해 모든 음악 장르를 숙명인 양 다 받아들였어. 로큰롤부터 트로트, 댄스음악, 발라드, 퓨전, 창과 민요라는 한국적 창법까지. 30년 세월은, 내가 이 땅에서 노래하기 위해선 좀더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깨닫는 시간이었지.
서: 전 그런 선배의 노력을 아무도 정당하게 평가해 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외국 예를 들고 싶진 않지만, 얼마 전 죽은 프랭크 시내트라에 대한 예우를 보십시오. <타임>이 20세기 삶에 큰 영향을 준 문화·예술인 20명을 선정하면서, 그 시내트라와 비틀스, 보브 딜런, 아레사 프랭클린 등 가수를 4명이나 뽑았어요. 전 이 나라에서 대중음악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바꿔보고 싶었어요.
조: 그러나 불행하게도 현재까지로 보면, 넌 돌연변이였을 뿐이야. 네가 떠난 뒤 대중음악계는 댄스음악 일색으로 초토화됐고, 너를 흉내낸 수많은 1회용 스타들이 잠시 떴다 사라졌어. 나이 든 가수들, 댄스 음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음악인들은 설 자리가 없었지. 음반이나 테이프를 사들이는 소비자가 초·중등학생으로 한정된 상황에서, 나머지 가수들이 얼마나 악전고투해야 했는지 넌 모를거야. 넌 주류에 저항한 전사였지만, 어린 친구들만을 상대한 한계성 때문에 아쉬움을 남겼지.
서: 난 알아요, 그 현실을. 그렇지만 기성세대가 우리를 악마 숭배자나 사탄의 아들로 탄압했을 때, 그들로부터 우리를 지켜준 것 또한 그 어린 친구들이었어요. 어찌 보면 제 음악은 분열하는 시대의 모습을 제 식대로 그렸던 게 아닌가 싶어요. ‘됐어, 내 맘이야’ 하는 투로요.
조: 한 오백년쯤 흐르고 나면 너나 나의 노래하는 마음이 진실 그대로 받아들여질까. 그 해답을 아직 못 찾겠다 태지야. 우린 고독한 러너야. 영원히 바람의 노래나 부르면서 방랑하는 떠돌이들이지.
서: 그럼에도 선배는 역사의 현장을 바라보며 뭔가 얘기하고 싶어하셨죠. 82년에 나온 4집 앨범의 <생명>에서 저는 사회비판의 발언을 읽었는데요.
조: 그건 광주항쟁에서 학살당한 민중들을 위한 만가였어. 난 정치는 모르지만 그땐 그 노래를 쓰지 않을 수 없었어. 눈물을 치솟게하던 분노 때문이지. 무고한 시민,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눈 그들이 미워 미워 미웠어.
서: 제가 선배를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건 40대 장년에 들어서고 나서도 지칠 줄 모르는, 라이브 공연에 기울이시는 그 열정입니다. 체력이건, 노력이건, 연중 그렇게 라이브를 한다는 건 젊은 저희들로서도 따라갈 수가 없지요.
조: 76년 대마초 사건에 휘말려 몇년 노래를 빼앗겼다가 박정희 대통령이 죽고, 80년에 컴백한 뒤에 내가 가장 정성을 기울인 건 라이브 공연이야. 콘서트를 통해 만나는 관객은 립싱크를 하는 텔레비전 출연, 허공에 대고 붕어 흉내를 내는 그 바보 짓보다 훨씬 소중한 일이었지. 1년에 148회 라이브를 한 적도 있었어. 객석과 하나가 돼서 숨쉴 때, 살아있음을 느꼈지. 이거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있지, 친구.
서: 친구라 불러주시니 꿈 같군요. 사실 요즘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못찾겠다 꾀꼬리를 부르고 싶은 심정입니다. 음반 발표 소식이 알려지자 로스앤젤레스로, 뉴욕으로 저를 찾아 몰려온 기자들 때문에 도망자 신세가 돼버렸어요. 정말 미국에서 만난 고독과 악수하며 산이 된 듯 살고 싶었는데.
조: 친구의 발길 머무는 곳에서 늘 정신을 열어놓고 노래를 불러라. 넌 가수요, 음악인이야. 미지의 세계에 들어섰으면 그 세계에 한번 푹 빠져보는 것도 좋겠지. 난 지금 진정한 록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어. 30년 전 출발했던 그 초심으로, 록 록 록에 도전할거야. 너에겐 네가 갈 길이 있을거야. 너는 음악을 사랑한다고 했지. 나도 음악을 사랑한다. 넌 록을 사랑한다고 했다. 나도 록을 사랑한다. 그리고 또 우리는 사랑한다. 우리들의 음악과 팬들을.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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