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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생각]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
[사설/칼럼] 2001.09.21 (금) 19:56
변호사일을 시작한 후 차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라디오를 즐겨 듣게되었는데, 어느 날인가 흘러나오는 노래에 가슴이 찡한
적이 있었다. 어찌어찌 노력한 끝에 그 노래가 조용필이라는 가수의 ‘킬
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무실 직원에게 신곡이 나왔
더라며 테이프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때 그 직원이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어 조금 이상하다는생각을 했
었다. 한참 지난 후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좋은 노래가 새로 나왔더라고
이야기하며 그 노래를 들려주었더니,모두들 폭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이미 10년도 더 된 노래이고,아마 그 가수가 지금은 그 노래를 제대로 부
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도 하였다.그제야 그 직원이 왜 그리 이상한표
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간에 그 노래의 가사는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것이었다.구절구
절이 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21세기가 간절히 나
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부분은 가슴이 아프도록 부러운 선언이었다 .
법원에는 법관 3인이 재판하는 합의 재판부가 있는데, 1명의 부장 판사
와 2명의 배석 판사가 있다. 같은 합의부에서 근무하는 법관들은 깨어 있
는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합
의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을 만나서 같이 일을 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
가 되는데, 배석판사 입장에서는 더욱 절실한 문제였다. 특히 모든 배석판
사들이 힘들어하는, ‘벙커’라고 애칭되는 부장 판사를 만나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은일이었다.
배석판사로 근무하던 어느 해, 유난히 힘든 사건이 많이 모인 재판부에
근무하는 중에 인사이동이 있었다. 새로운 부장 판사를 모시게 되었는데,
동료 법관들이 한 번씩 방에 들러 위로의 말을 던지고 가는것이었다.
모두 피하고 싶어하는 그 ‘벙커’에 걸린 것이었다. 사실 그 분을 직접
겪어 본 적이 없어 잘 알지 못했는데, 여기저기서 위로를 받다 보니 절로
앞날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나정작 그 분과 6개월 정도 같이 근무한 후 ‘될 수만 있다면 나도
벙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공공연한 소망이 되었다.
그 때 받은 가르침으로 가장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가 왜 이 자
리에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였다. 합의 도중 이 말을 듣게 되면 며
칠쯤 기꺼이(?) 밤샘을 하면서 기록을 다시 검토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더욱 심각한 화두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 고민을 했지만, 해야 할 일
이 단순했다. 사실 선택할 수 있는 방향도 그리 넓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
이 흐르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선택하지 않으면안될 순간들이 참 많아졌
다.
그러나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 만큼 선택한 후에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안될 책임감도 더 많아졌음을 느낀다. 영향력이 생기고 책
임이 무거워질수록, 그 자리를 어떻게, 얼마만큼 지키느냐에 따라서 결과
에 차이가 나며 그 파급효과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에 대하여 고민을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은 또한 남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 지혜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어찌된 일인지 모든 문제를 다 자신이
해결하려 들고, 모든 문제에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사
람들을 본다. 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말 우리들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나는누구이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이며, 그 일이 왜 나에게 맡겨졌
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겠다.
황덕남 변호사
출처 http://news.naver.com/read?command=read&id=2001092100000201015
[사설/칼럼] 2001.09.21 (금) 19:56
변호사일을 시작한 후 차 안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라디오를 즐겨 듣게되었는데, 어느 날인가 흘러나오는 노래에 가슴이 찡한
적이 있었다. 어찌어찌 노력한 끝에 그 노래가 조용필이라는 가수의 ‘킬
리만자로의 표범’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무실 직원에게 신곡이 나왔
더라며 테이프를 사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때 그 직원이 표현하기 어려운 표정을 지어 조금 이상하다는생각을 했
었다. 한참 지난 후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좋은 노래가 새로 나왔더라고
이야기하며 그 노래를 들려주었더니,모두들 폭소를 터뜨리는 것이었다.
이미 10년도 더 된 노래이고,아마 그 가수가 지금은 그 노래를 제대로 부
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도 하였다.그제야 그 직원이 왜 그리 이상한표
정을 지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간에 그 노래의 가사는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것이었다.구절구
절이 다 그렇지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가 21세기가 간절히 나
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부분은 가슴이 아프도록 부러운 선언이었다 .
법원에는 법관 3인이 재판하는 합의 재판부가 있는데, 1명의 부장 판사
와 2명의 배석 판사가 있다. 같은 합의부에서 근무하는 법관들은 깨어 있
는 시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가족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지내면서 합
의도 하고 토론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사람을 만나서 같이 일을 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한 문제
가 되는데, 배석판사 입장에서는 더욱 절실한 문제였다. 특히 모든 배석판
사들이 힘들어하는, ‘벙커’라고 애칭되는 부장 판사를 만나는 것은 정말
피하고 싶은일이었다.
배석판사로 근무하던 어느 해, 유난히 힘든 사건이 많이 모인 재판부에
근무하는 중에 인사이동이 있었다. 새로운 부장 판사를 모시게 되었는데,
동료 법관들이 한 번씩 방에 들러 위로의 말을 던지고 가는것이었다.
모두 피하고 싶어하는 그 ‘벙커’에 걸린 것이었다. 사실 그 분을 직접
겪어 본 적이 없어 잘 알지 못했는데, 여기저기서 위로를 받다 보니 절로
앞날에 대한 걱정이 밀려왔다.
그러나정작 그 분과 6개월 정도 같이 근무한 후 ‘될 수만 있다면 나도
벙커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나의 공공연한 소망이 되었다.
그 때 받은 가르침으로 가장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우리가 왜 이 자
리에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였다. 합의 도중 이 말을 듣게 되면 며
칠쯤 기꺼이(?) 밤샘을 하면서 기록을 다시 검토할 수 밖에 없었다.
요즘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는 더욱 심각한 화두가 되었다.
젊은 시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 고민을 했지만, 해야 할 일
이 단순했다. 사실 선택할 수 있는 방향도 그리 넓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
이 흐르고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선택하지 않으면안될 순간들이 참 많아졌
다.
그러나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 만큼 선택한 후에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안될 책임감도 더 많아졌음을 느낀다. 영향력이 생기고 책
임이 무거워질수록, 그 자리를 어떻게, 얼마만큼 지키느냐에 따라서 결과
에 차이가 나며 그 파급효과 또한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이유에 대하여 고민을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자리를 잘 지키는 사람은 또한 남의 자리를 넘보지 않는 지혜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어찌된 일인지 모든 문제를 다 자신이
해결하려 들고, 모든 문제에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사
람들을 본다. 이들을 볼 때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정말 우리들의 자리는
어디쯤일까?
나는누구이고, 나에게 주어진 일은 무엇이며, 그 일이 왜 나에게 맡겨졌
는지, 그리고 지금 이 시대가 나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겠다.
황덕남 변호사
출처 http://news.naver.com/read?command=read&id=200109210000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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