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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칼럼 "너희가 조용필을 아느냐"(http://column.daum.net/choyongpil/ )
에서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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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에서 '조용필학(Choyongpilogy)'을 강의하시는 김익두 교수의 글입니다.
(관련기사는 하단에...)
<예술의전당 콘서트를 계기로 본 조용필의 예술세계>
조용필은 68년부터 99년현재까지 30여년 동안 총 17장의 음반을 냈으며,
거기에는 이른바 '건전가요'를 빼면 총 169편의 노래가 발표되어 있다.
2년에 한 번 정도로 약 10곡내외의 노래를 담은 한 장 이상의 음반을,
30여년 동안 꾸준히 계속해서 낸 셈이다.
그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서부터이니까, 그가 이 분야에 첫발을 내디딘지
8년만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후 4년만인 1980년 3월에야 그의 첫 음반인 제1집 「창밖의 여자」가 나왔다.
그의 출발은 이처럼 오랜 밑바닥에서부터의 하드 트레이닝을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초기에 그가 경험한 이 '주변부'에서의 길고 고된 트레이닝 과정은
그후 그의 예술에 오히려 많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의 노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장점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의 노래는 무엇보다도 자기 나름대로 개척해낸 성음과 창법 면에서 발현되었다.
끊일 듯 말 듯하게 가느다란 선을 구현하는 그의 창법은 우리 민족의
가장 뿌리깊은 보편적 정서인 '정한(情恨)'을 대중가요로 구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도록 이루어졌다.
그것은 가느다랗고 처량하게 흘러 넘어 가는 우리의 전통 '동부민요'의
가냘픈 애조의 '메나리조'를 띠면서, 맑고 밝고 고아한 경기민요식 토리가 중심에 있고,
여기에 구성진 남도민요의 '육자배기'식 발성법과 판소리의 걸죽한
'허스키 보이스'창법이 가미되면서, 근·현대 이후 우리 대중 가요계에
구현된 각종 외래적 창법의 장점들까지 소화·흡수된 데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끊일 듯 말 듯 이어지는 애조 띤 가느다란 선의 미학인 동부 '메나리조'와
맑고 고운 경기민요조로 다듬은 기조를, 남도 민요의 구성진 '꺾는목'과 '누른목' 및
판소리의 허스키 보이스인 '수리성'의 '그늘'로 윤택하게 살찌우면서,
판소리가 개척해낸 엄청난 넓이의 '음폭'을 획득한 가창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이야말로, 여태까지 우리의 대중가수들이 성음 구사와 발성법 면에서
갖추지 못했던 초유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점을 주축으로 해서, 우리의 전통 민요·동요·트로트·록발라드 등의
성음·발성법을 각 노래의 경우에 맞게 활용·가미하여 구사함으로써,
그는 우리 대중가요의 새로운 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을 우리는 그의 제1집 음반에서부터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80년 봄에 나온 제1집 음반의 한오백년은 원래 전통적으로
경기민요이지만 그가 부른 「한오백년」은 동부의 메나리조와 중부의 경기민요조와
남도의 육자백이조를 적절히 활용한 음색과 발성법으로 이루어지며,
같은 음반의 「돌아와요 부산항」은 기존의 트로트풍 노래이지만
그는 이 트로트 양식에다 묘한 우리의 전통 판소리식 허스키 보이스를 가미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춘 새로운 트로트로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의 양식 면에서 보면, 그의 독창적인 특징은 더 잘 드러난다.
조용필 노래의 양식적인 특징은 한 마디로, 우리 전통 민요풍을 자기 정체성의
기조로 하면서, 그 이후 우리 대중가요의 여러 양식들 및 외래적 양식들을
경우에 맞게 적절히 활용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제1집 음반에서도 잘 나타나 전통 민요풍의 「한오 백년」
기존트로트풍의 「돌아와요 부산항」, 발라드풍의 「창밖의 여자」,
소프트 록풍의 「단발머리」등,
매우 다양항 양식들이 동원·활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조용필만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가 전통 민요 양식을 자기 정체성 확립의 핵심으로 삼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점은 그의 노래에 와서 우리의 대중가요가 비로소 민족적 정체성을
분명히 확보하게 되었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중가요 논자들은 이점을 눈여겨보지 않아,
조용필 노래의 우리 가요사적 중요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이전 가수들은 주로 트로트풍·발라드풍·포크풍·록풍 등의
4가지 양식들 중 어느 한 가지 양식을 자기화하여 구사하려한 데 비하여,
그는 소위 '포크'를 버리고 대신 우리의 전통민요 양식을
자기 노래의 주요 아이덴티티로 끌어들이고, 여기에다 기존의
대표적 양식인 트로트나 발라드, 록, 동요 등을 창조적으로 수용해 나아갔던 것이다.
가사 내용을 보면, 그의 노래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노래 가사는 우선 그 어느 가수의 노랫말보다도 더 고도로
신중하게 시적인 경지에까지 상승되어 있는 것들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총 169편에 이르고 있는데, 이를 가사 내용별로 분류해 보면,
① 개인적인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유형이 112편,
②개인적 자아의 문제, 특히 개인적 자아의 동시대적 허무와 방황이나
그에 대한 극복의 의지를 담은 유형이 21편,
③ 동시대의 집단적·사회적 자아의 문제를 탐구하고 표현한 유형이 9편,
④ 혈연적·민족적 한을 노래한 유형이 6편,
⑤ 소박한 그리움을 동요풍으로 처리한 유형이 5편,
⑥ 정한을 생명에의 그리움과 절규로 표현하는 유형이 2편,
⑦ 사춘기 청소년의 그리움과 감상을 표현한 유형이 2편,
⑧ 기타 등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그의 노래 중에 ①의 유형에 속하는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바로 그의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바로 그의 노래가 우리민족의
가장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인 사랑과 이별의 '정한(情恨)'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또 ①뿐만 아니라 ④·⑤·⑥·⑦도 크게 보면 모두 이 민족적 정한의 정서와
상통해 있는 것이므로, 그의 노래는 곧 우리 민족의 깊은 공통 정서인
이 정한의 심금줄에 아주 깊고 폭넓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정한이란 근본적으로 사랑과 애정이 여의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고통을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삭여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신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노래는 이 정한을 현대적으로 부단히 반복·변주함으로써 동시대의
우리 민족 대중들 속에 폭넓고도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다.
-김익두(전북대 국문과 교수) thanks~ T.H
[기사/중앙일보] '조용필학' 강단에 뜬다(1999/2)
서구에선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비톨로지(비틀스학)'처럼
가수등 대중문화인이 학문이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조용필학(choyongpilogy)' 이 첫발을 내딛는다.
전북대 국문과 김익두(45)교수는 음악학,미학, 문학,연극학교수및
대중문화 평론 가 등 10여명으로 최근' 조용필 연구모임'을 구성했다.
또 오는 6월 조용필 음악을 분석한 논문 '학국적인 사랑과 한,
그리고 희망의 당시대적 표현의 '길'을 발표하고 자신의 강의
'공연문화론'한파트로 다룰 예정이다
김교수는 "문자중심 고급문화에서 오디오.비디오 위주
대중문화로 문화의 주축이 넘어갔음에도 학계는 이를 외면해왔다"며
가요는 대중문화의 핵심이며 조용필은 그 가요의 중심이란 판단에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또 " 조용필은 단순한 음악현상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상을 집약한
상징이므로 인문사회과학의 학제간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인다.
그의 연구 초점은 '조용필음악' 이 우선 김지하의 생명사상과도 맞닿을수 있는
독특한 생명지향성을 띠고 있다는점.
80년대엔 분출.폭발의 정서가 지배적이었으나 '슬픈 베아트리체'이후
90년대에는 '깎아 다듬는' 창법으로 전환, 화해와 용서를 노래한다는것.
논문 제목처럼 조용필 음악은 '한국적인 것' 의 전형이라는 것도 초점.
"한국의 3대 정서인 사랑.한.희망을 현대적으로 잘 표현해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내놓을 '한국적인 것' 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음반마다 록.발라드. 민요 .트로트등 장르를 달리하며 변화를
꾀했고 그때마다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점도 다른 '국민가수'들이
이루지 못한 성과 .작사 .작곡. 연주에서 다각적 노력을 했고 가사.
창법 .곡조에 조화를 이뤄낸 점도 돋보인다 .
이는 오로지 음악 한우물문 판 장인정신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조용필연구는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학문적접근이란점에서
주목 받고 있지만 사료와 방법론이 전무한탓에 장애물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강찬호기자
에서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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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대에서 '조용필학(Choyongpilogy)'을 강의하시는 김익두 교수의 글입니다.
(관련기사는 하단에...)
<예술의전당 콘서트를 계기로 본 조용필의 예술세계>
조용필은 68년부터 99년현재까지 30여년 동안 총 17장의 음반을 냈으며,
거기에는 이른바 '건전가요'를 빼면 총 169편의 노래가 발표되어 있다.
2년에 한 번 정도로 약 10곡내외의 노래를 담은 한 장 이상의 음반을,
30여년 동안 꾸준히 계속해서 낸 셈이다.
그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1976년 「돌아와요 부산항」에서부터이니까, 그가 이 분야에 첫발을 내디딘지
8년만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 후 4년만인 1980년 3월에야 그의 첫 음반인 제1집 「창밖의 여자」가 나왔다.
그의 출발은 이처럼 오랜 밑바닥에서부터의 하드 트레이닝을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초기에 그가 경험한 이 '주변부'에서의 길고 고된 트레이닝 과정은
그후 그의 예술에 오히려 많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의 노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장점과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그의 노래는 무엇보다도 자기 나름대로 개척해낸 성음과 창법 면에서 발현되었다.
끊일 듯 말 듯하게 가느다란 선을 구현하는 그의 창법은 우리 민족의
가장 뿌리깊은 보편적 정서인 '정한(情恨)'을 대중가요로 구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일 수 있도록 이루어졌다.
그것은 가느다랗고 처량하게 흘러 넘어 가는 우리의 전통 '동부민요'의
가냘픈 애조의 '메나리조'를 띠면서, 맑고 밝고 고아한 경기민요식 토리가 중심에 있고,
여기에 구성진 남도민요의 '육자배기'식 발성법과 판소리의 걸죽한
'허스키 보이스'창법이 가미되면서, 근·현대 이후 우리 대중 가요계에
구현된 각종 외래적 창법의 장점들까지 소화·흡수된 데에 기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끊일 듯 말 듯 이어지는 애조 띤 가느다란 선의 미학인 동부 '메나리조'와
맑고 고운 경기민요조로 다듬은 기조를, 남도 민요의 구성진 '꺾는목'과 '누른목' 및
판소리의 허스키 보이스인 '수리성'의 '그늘'로 윤택하게 살찌우면서,
판소리가 개척해낸 엄청난 넓이의 '음폭'을 획득한 가창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이야말로, 여태까지 우리의 대중가수들이 성음 구사와 발성법 면에서
갖추지 못했던 초유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장점을 주축으로 해서, 우리의 전통 민요·동요·트로트·록발라드 등의
성음·발성법을 각 노래의 경우에 맞게 활용·가미하여 구사함으로써,
그는 우리 대중가요의 새로운 장을 개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증거들을 우리는 그의 제1집 음반에서부터 분명하게 발견할 수 있다.
단적인 예로, 80년 봄에 나온 제1집 음반의 한오백년은 원래 전통적으로
경기민요이지만 그가 부른 「한오백년」은 동부의 메나리조와 중부의 경기민요조와
남도의 육자백이조를 적절히 활용한 음색과 발성법으로 이루어지며,
같은 음반의 「돌아와요 부산항」은 기존의 트로트풍 노래이지만
그는 이 트로트 양식에다 묘한 우리의 전통 판소리식 허스키 보이스를 가미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춘 새로운 트로트로 재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노래의 양식 면에서 보면, 그의 독창적인 특징은 더 잘 드러난다.
조용필 노래의 양식적인 특징은 한 마디로, 우리 전통 민요풍을 자기 정체성의
기조로 하면서, 그 이후 우리 대중가요의 여러 양식들 및 외래적 양식들을
경우에 맞게 적절히 활용한 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제1집 음반에서도 잘 나타나 전통 민요풍의 「한오 백년」
기존트로트풍의 「돌아와요 부산항」, 발라드풍의 「창밖의 여자」,
소프트 록풍의 「단발머리」등,
매우 다양항 양식들이 동원·활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될 조용필만의 특징이 있다.
그것은 그가 전통 민요 양식을 자기 정체성 확립의 핵심으로 삼았다는 점일 것이다.
이 점은 그의 노래에 와서 우리의 대중가요가 비로소 민족적 정체성을
분명히 확보하게 되었다는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대중가요 논자들은 이점을 눈여겨보지 않아,
조용필 노래의 우리 가요사적 중요성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의 이전 가수들은 주로 트로트풍·발라드풍·포크풍·록풍 등의
4가지 양식들 중 어느 한 가지 양식을 자기화하여 구사하려한 데 비하여,
그는 소위 '포크'를 버리고 대신 우리의 전통민요 양식을
자기 노래의 주요 아이덴티티로 끌어들이고, 여기에다 기존의
대표적 양식인 트로트나 발라드, 록, 동요 등을 창조적으로 수용해 나아갔던 것이다.
가사 내용을 보면, 그의 노래가 가지고 있는 성격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의 노래 가사는 우선 그 어느 가수의 노랫말보다도 더 고도로
신중하게 시적인 경지에까지 상승되어 있는 것들이라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들은 총 169편에 이르고 있는데, 이를 가사 내용별로 분류해 보면,
① 개인적인 사랑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유형이 112편,
②개인적 자아의 문제, 특히 개인적 자아의 동시대적 허무와 방황이나
그에 대한 극복의 의지를 담은 유형이 21편,
③ 동시대의 집단적·사회적 자아의 문제를 탐구하고 표현한 유형이 9편,
④ 혈연적·민족적 한을 노래한 유형이 6편,
⑤ 소박한 그리움을 동요풍으로 처리한 유형이 5편,
⑥ 정한을 생명에의 그리움과 절규로 표현하는 유형이 2편,
⑦ 사춘기 청소년의 그리움과 감상을 표현한 유형이 2편,
⑧ 기타 등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그의 노래 중에 ①의 유형에 속하는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바로 그의 노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사실은 바로 그의 노래가 우리민족의
가장 전통적이고 보편적인 정서인 사랑과 이별의 '정한(情恨)'에 깊이 뿌리박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다.
또 ①뿐만 아니라 ④·⑤·⑥·⑦도 크게 보면 모두 이 민족적 정한의 정서와
상통해 있는 것이므로, 그의 노래는 곧 우리 민족의 깊은 공통 정서인
이 정한의 심금줄에 아주 깊고 폭넓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정한이란 근본적으로 사랑과 애정이 여의하게 이루어지지 못하는 데에서
기인하는 고통을 자신의 내면에서 스스로 '삭여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신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노래는 이 정한을 현대적으로 부단히 반복·변주함으로써 동시대의
우리 민족 대중들 속에 폭넓고도 깊숙이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이다.
-김익두(전북대 국문과 교수) thanks~ T.H
[기사/중앙일보] '조용필학' 강단에 뜬다(1999/2)
서구에선 20년 역사를 자랑하는 '비톨로지(비틀스학)'처럼
가수등 대중문화인이 학문이 대상이 된 지 오래다.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조용필학(choyongpilogy)' 이 첫발을 내딛는다.
전북대 국문과 김익두(45)교수는 음악학,미학, 문학,연극학교수및
대중문화 평론 가 등 10여명으로 최근' 조용필 연구모임'을 구성했다.
또 오는 6월 조용필 음악을 분석한 논문 '학국적인 사랑과 한,
그리고 희망의 당시대적 표현의 '길'을 발표하고 자신의 강의
'공연문화론'한파트로 다룰 예정이다
김교수는 "문자중심 고급문화에서 오디오.비디오 위주
대중문화로 문화의 주축이 넘어갔음에도 학계는 이를 외면해왔다"며
가요는 대중문화의 핵심이며 조용필은 그 가요의 중심이란 판단에서
연구대상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또 " 조용필은 단순한 음악현상이 아니라 동시대 사회상을 집약한
상징이므로 인문사회과학의 학제간 연구가 필수적"이라고 덧붙인다.
그의 연구 초점은 '조용필음악' 이 우선 김지하의 생명사상과도 맞닿을수 있는
독특한 생명지향성을 띠고 있다는점.
80년대엔 분출.폭발의 정서가 지배적이었으나 '슬픈 베아트리체'이후
90년대에는 '깎아 다듬는' 창법으로 전환, 화해와 용서를 노래한다는것.
논문 제목처럼 조용필 음악은 '한국적인 것' 의 전형이라는 것도 초점.
"한국의 3대 정서인 사랑.한.희망을 현대적으로 잘 표현해 세계화
시대에 우리가 내놓을 '한국적인 것' 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한다.
음반마다 록.발라드. 민요 .트로트등 장르를 달리하며 변화를
꾀했고 그때마다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점도 다른 '국민가수'들이
이루지 못한 성과 .작사 .작곡. 연주에서 다각적 노력을 했고 가사.
창법 .곡조에 조화를 이뤄낸 점도 돋보인다 .
이는 오로지 음악 한우물문 판 장인정신 때문이라는 결론이다.
조용필연구는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학문적접근이란점에서
주목 받고 있지만 사료와 방법론이 전무한탓에 장애물도 많을 것으로 보인다.
강찬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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